거품의 생성부터 문화까지
맥주 거품의 모든 것
All About Beer Foam
세상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술이 존재한다. 술은 저마다 고유한 개성을 지니고, 그 덕에 수천 년 동안 인류와 함께 존속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맥주의 고유한 개성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다른 술과 가장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개성이라면 단연 거품을 꼽을 수 있다. ‘맥주의 꽃’으로도 불리는 거품. 이 녀석은 대체 왜 생기는 것이며,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떠한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어째서 맥주만 거품이 생기는가
Why is that only beer has foam?
당연하지만, 맥주를 따를 때 맥주 거품이 생기는 이유는 맥주에 탄산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끝내기엔 의문점이 많다. 탄산이 녹아있는 음료는 비단 맥주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종 탄산음료를 비롯하여 사이더, 샴페인, 막걸리 등 다른 술들은 탄산이 있더라도 따랐을 때 거품이 생기지 않을뿐더러 생기더라도 금방 없어지던데, 왜 맥주만 유독 풍성한 거품을 생성할까? 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선 맥주와 맥주 거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맥주는 생화학적으로 굉장히 복잡한 음료다. 주재료(포도, 쌀등)와 물, 미생물 정도면 만들 수 있는 다른 주류와 달리 맥주는 보리와 물, 효모와 더불어 홉, 더러는 특수한 부재료까지 굉장히 다양한 원료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온갖 분자들이 뒤엉켜 있는 맥주 속에는 거품 생성을 촉진하는 성분들(이하 촉진제(Promoter))도 있고, 맥주 거품의 생성을 저해하는 성분들(이하저해제(Detractor))도 있다. 이를 이용하면 맥주 거품의 생성 원리는 간단하게 정리된다.
“촉진제의 함량이 높거나 저해제의 함량이 적으면 맥주 거품이 잘 생성 되고, 저해제가 많거나 촉진제의 함량이 적다면 맥주라 해도 거품이 잘 생성되지 않는다.”
촉진제의 역할을 하는 성분은 많지만, 그 중 특별히 큰 역할을 하는 성분은 다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ⅰ. 곡물에서 기인한 소수성 단백질
ⅱ. 홉의 이소알파산
ⅲ. 금속 이온들
단백질은 주로 폴리펩타이드(Polypeptide) 형태의 고분자 단백질들이 거품 형성에 기여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단백질 종류 세 가지를 더 추리자면 Z단백질(Z-Protein)과 호르데인(Hordein), LTP1(Lipid Transfer Protein1)을 꼽을 수 있다. 이들 단백질은 거품을 구성할 때 대들보이자 지주와도 같은 역할을하며, 홉의 이소알파산은 단백질과 교차결합하여 이들을 잇는 연결 판 같은 역할을 하고, 이소알파산과 결합력이 높은 다양한 금속 양이온들(대표적으로 아연)이 못과 같은 역할을 하며 거품의 안정성을 높인다. 이들은 상호 의존적이기에 특정 성분이 결여되면 거품이 잘 생성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맥주를 제외한 다른 음료는 거품이 좀처럼 생성되지 않는다. 단백질의 함량이 적을뿐더러, 홉도 들어가지 않아 연결 판의 역할을 해주는 성분이 없기 때문이다. 추가로 맥아에서 기인한 몇몇 다당류와 멜라노이딘(Melanoidins) , 홉과 맥아의 껍질에서 기인한 타닌을 비롯한 폴리페놀(Polyphenol)들 역시 적게나마 맥주 거품의 안정성에 기여한다. 유독 인터넷에 떠도는 많은 정체불명의 자료들이 폴리페놀이 맥주 거품에 주된 역할을 하는 것처럼 기술하는데, 이는 과장이다.
맥주 거품의 생성 원리
Principal of Formation of the Beer Head
기본적으로 분자들은 물과 친한 성격(친수성)을 지닌 것들은 친한 것들끼리, 친하지 않은 성격(소수성)을 지닌 것들은 친하지 않은 것들끼리 잘 달라붙는 성질이 있다. 이산화탄소 분자(CO2)는 전기적으로 안정한 편이기에 물과 친하지 않은 성질을 띤다. 그 때문에 90% 이상이 물로 이루어진 맥주에 강제로 녹아있는 탄산은 굉장히 불안정하다. 누가 조금이라도 충격을 가하면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듯한 상태로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의 맥주를 흔들거나, 젓가락으로 젓거나, 잔에 따르는 등의 충격을 가하면 탄산은 기다렸다는 듯이 맥주 밖으로 나오기 위해 아우성을 친다. 그리고 탈출을 위해 비슷한 성질을 지닌 자기들끼리 뭉쳐서 몸집을 키우고 밖으로 튀어나오려 하는데, 이 과정을 두고 결정핵 형성 혹은 핵화(Nucleation)라고 부른다.
핵화를 하는 과정에선 탄산끼리만 뭉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맥주 거품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물질이 ‘소수성’ 단백질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 소수성 단백질들(특히 LTP1)은 물보다 탄산에 훨씬 더 큰 친밀감을 느끼므로 탄산이 맥주 밖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탄산에 붙어 올라가게 된다. 탄산이 맥주 표면에 도착하면 단백질 막을 형성하여 탄산이 대기 중으로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고, 거품으로 남을 수 있도록 가두는 역할을 한다. 이때 홉의 이소알파산과 금속 양이온이 충분하다면 단백질 막을 더욱 튼튼하게 연결하여 거품이 오래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맥주 거품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순식간에 일어나면서 생기는 것이다.
맥주 거품이 중요한 이유
Why Is Important the Beer Head
맥주에 거품이 있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난 오히려 거품이 없는 쪽이 더 좋은데 왜 거품 따위에 난리냐 싶다면 다음 내용에 주목하라. 많은 양조사와 브루어리들, 대기업들까지도 괜히 맥주 거품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거품의 상업적 중요성에 대한 학술 연구도 있을 정도다. 일단 맥주 거품은 맥주 외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음식의 담음새가 중요한 만큼 주류의 ‘따름새(?)’도 중요하다. 같은 맥주라도 어떻게 따랐느냐에 따라 다른 매력을 지닌다. 그리고 거품은 맥주의 ‘따름새’에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가장 확실한 요소다. 대중은 부드럽고 조밀하며 거품이 적절하게 형성되어 있는 맥주에 더 많은 매력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기네스나 하이네켄같은 대기업에선 아예 적정량의 거품을 형성하기 위해 맥주 따르는 매뉴얼마저 정해둔다. 거품은 맥주의 풍미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거품이 생성되고 터져서 소실되는 과정은 맥주 내부에 잠들어있는 휘발성 향기 성분들을 맥주 표면으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맥주의 향을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또한 맥주를 마실 때 입술에 부드러운 질감을 전해주며, 맥주와 함께 거품을 마심으로써 부드러운 마우스 필을 더해준다. 그리고 입술과 입안에 가해진 부드러운 감각은 입 근처의 삼차신경(Trigeminal Nerve)에 영향을 미친다. 삼차신경은 얼굴의 감각 및 일부 근육 운동을 담당하는 제5뇌신경으로서 입 주변 상태를 조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스크림 등 차가운 것을 먹고 입안의 온도가 내려갔을때 머리 안의 혈관을 조율하여 머리를 띵 하게 만드는 것도 삼차신경에 의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거품으로 인해 입안에 ‘부드러운 것’이 들어왔음을 인지한 뇌는 삼차신경을 통해 전체 구개(Palate)를 연화(Softening)시킨다. 이로 인해 맥주에 대한 인지를 다르게 만드는 역할마저 한다.
또 거품은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거품이 맥주의 표면을 덮고 있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향과 탄산의 손실이 적어 오랜 시간 맥주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소소하게나마 맥주의 운반에도 도움이 된다. 인간이 맥주가 가득 찬 잔을 들고 움직이게 되면 맥주는 수직 운동을 하여 찰랑거리게 된다. 이때 맥주 위를 덮고 있는 거품이 이를 어느 정도 수평 운동으로 전환해주어 맥주가 잘 넘치지 않게끔 도와준다. 거품이 이처럼 다양한 역할을 하기에, 맥주를 따를 땐 적정량의 거품을 형성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맥주 전문점에서 괜히 손님들에게 맥주를 덜 주려고 거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맥주 거품의 질을 높이는 요소
The Elements Improving the Quality of Beer Head
여러분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겠지만, 거품의 생성력과 유지력(Retention)은 맥주마다 다르다. 어떤 맥주는 거품이 왕창 생겼다가도 금방 사라지지만, 어떤 맥주는 거품이 적게 생기더라도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거품의 생성력은 크게 2가지에 의해 좌우된다. 하나는 당연하게도 맥주가 지닌 탄산의 정도이다. 맥주에 탄산이 많이 녹아 있다면 거품이 많이 생기고, 그렇지 않다면 적게 생길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맥주를 따르는 방법이다. 거품의 생성력은 맥주를 따를 때 맥주가 잔에 닿는 면적의 넓이와 맥주가 지닌 운동에너지에 따라 달라진다. 잔을 똑바로 세워두고 낙차를 크게 하여 맥주를 따랐을 때 거품이 잔을 넘쳐 곤란해진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잔을 똑바로 세워둔 상태이므로 맥주가 잔에 닿는 면적이 좁고, 낙차가 크니 운동에너지가 높아 생긴 결과다. 맥주가 잔에 닿는 면적을 넓히고 싶다면 잔을 기울여서 잔 벽에 맥주를 떨어뜨리면 된다. 떨어지는 맥주가 길쭉한 원기둥의 형태라고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운동에너지를 줄이고 싶다면 맥주를 천천히, 낙차를 낮춰서 따르면 된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 맥주에 들어있는 탄산의 정도에 따라 맥주 따르는 방식을 달리한다면 원하는 정도의 거품을 형성할 수 있다. 물론 숙달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반면 거품의 유지력을 결정하는 변수는 매우 많다. 앞서 언급한 촉진제의 양과 종류, 저해제의 양과 종류, 맥주의 표면 점도, 잔의 형태와 청결도, 맥주의 온도, 맥주의 pH와 알코올 도수, 거품이 형성된 크기 등이 대표적인 변수다. 이들을 모두 자세히 설명하기엔 글이 매우 길어지니 중요한 것만 간략하게만 짚어보도록 하자. 앞서 언급한 대로 촉진제가 많고 다양하면 거품의 유지력이 높아진다. 특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LTP1로, 단백질이 풍부한 밀을 넣은 바이젠, 벨지안 에일의 거품 유지력이 매우 우수한 이유가 여기 있다. 반면 저해제가 많다면 거품의 유지력이 낮아진다. 대표적인 저해제는 바로 지방이다. 지방은 단백질 간 상호작용을 막으므로 잔에 음식의 지방이 묻어있거나, 거품에 립스틱이 닿거나, 잔 내부의 세제가 제대로 세척이 되지 않았다면 맥주의 거품 유지력이 급격히 낮아지게 된다. 또한 지방이 많은 부재료를 넣은 맥주의 거품 유지력도 매우 낮다. 대표적인 것이 귀리와 커피, 코코넛, 견과류 등을 넣은 맥주다. 이런 맥주들을 따라보면 거품이 잘 생기지도 않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알코올 역시 거품 저해제이다. 알코올은 소수성과 친수성을 모두 갖춘 양쪽성 물질이므로 소수성 물질들의 집합체인 거품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고도수의 맥주일수록 거품이 잘 형성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리고 단백질 분해효소도 고분자 단백질을 분해함으로써 거품을 저해한다. 보통 단백질 분해효소는 맥주가 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직접 첨가해주거나 오랜 기간 숙성되어 파괴된 효모의 내부에서 용출된다. 그래서 몇 년 단위로 장기간 숙성한 맥주는 탄산은 있을지언정 거품은 거의 생기지 않는다. 추가로 오렌지, 자몽과 같은 시트러스(Citrus) 계열 과일들에 많이 들어 있는 구연산(Citric Acid)도 거품을 저해한다. 풍성한 거품을 지닌 맥주잔에 오렌지 슬라이스가 꽂혀있는 사진은 실제론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맥주의 점도(Viscosity) 역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맥주를 따르면서 수분을 잔뜩 머금은 채로 생성된 거품은 중력에 의해 수분이 다시 맥주로 돌아가면서 점점 건조해지게 된다. 맥주 거품이 깨지는 현상은 건조해진 맥주 거품이 더 이상 표면장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서 발생한다. 이때 맥주의 점도가 높다면 거품으로부터 수분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느려지고, 거품을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보통 덱스트린(Dextrin)과 같은 비발효당의 함량이 높은 맥주가 점도가 높아 거품 지속력이 좋다.
추가로 맥주잔은 길쭉한 형태일수록, 그리고 아래로 좁아지는 형 태의 잔일수록 거품 유지력이 높아진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 은 비어포스트 Batch 040에 실린 을 참조하도록 하자. 맥주의 pH는 높을수록 거품의 유지 력이 좋고, 낮으면 유지력이 낮다. pH가 낮은 사워 에일들은 밀을 다량 넣어 단백질 함량이 높을 텐데도 거품이 잘 유지되지 않다 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맥주와 주변 온도는 낮을수록 거품 유지 력이 좋아진다. 거품의 유지력은 불균화(Disproportionation) 반응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달려있는데, 온도가 높 을수록 불균화 반응이 빠르게 일어나므로 거품 유지력이 낮아지 게 된다. 처음 맥주를 따를 때 거품이 얼마나 균일하고 일정하게 형성되었는가도 중요하다. 균일하고 사이즈가 작아 조밀한 거품 일수록 더 오래 유지된다. 기포가 작으면 앞서 말한 거품에서 수 분이 빠져나가는 현상이 더욱 천천히 일어나며, 기포가 균일하면 불균화 반응이 천천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질소를 이용한 맥주 거품
Head of Nitrogen-based Beer
앞선 내용은 모두 이산화탄소가 맥주에 녹아 있을 경우를 기준으로 설명한 것이다. 물론 이산화탄소 대신 질소가 녹아있다고 해서 큰 틀이 변하진 않지만, 질소와 이산화탄소는 분자 간 성질이 크게 다르므로 거품에 미치는 영향도 다르다.ㅜ우선 질소는 전기적으로 매우 안정한 분자이기에 이산화탄소보다도 소수성이 훨씬 높으므로 맥주에 대한 용해도가 훨씬 낮다. 쉽게 말해 질소는 맥주에 거의 녹지 않는다. 기네스가 괜히 공 모양의 위젯을 개발하면서까지 맥주에 질소를 넣으려고 노력한 게 아니다. 어쨌든, 그렇기에 질소를 이용하여 맥주를 따를 때는 맥주와 질소를 좁은 틈으로 통과시키거나, 잔에 맥주를 따를 때 굉장히 격하게 따른다. 그렇게 따름로써 질소는 맥주를 전체적으로 휘젓게 된다. 이후 질소는 용해도가 낮기에 금세 맥주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질소는 맥주 전체를 휘저으며 굉장히 균일하고 작은 사이즈의 거품을 형성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균일하고 크기가 작은 거품은 지속력이 좋기 때문에, 질소로 인해 형성된 거품은 굉장히 좋은 지속력을 지니게 된다. 또한 질소는 이산화탄소와는 다르게 대기 중에 굉장히 풍부하게 존재하는 물질이라는 점이 이산화탄소와 다르다.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의 함량은 고작 0.03%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맥주거품의 내부는 이산화탄소로 가득 차있는 상태다. 그렇기에 이산화탄소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맥주 거품의 밖으로 빨리 빠져 나가고자 하며, 이는 거품의 안정성을 저해한다. 그에 비해 대기중의 질소 함량은 무려 75%에 이른다. 따라서 거품 속 질소가 굳이 대기 중으로 빠져나가려 하지 않으므로 굉장히 안정한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그리고 질소는 낮은 용해도를 지니고 있으므로 오스트발트 라이프닝(Ostwald Ripening) 현상이 저해되어 거품 유지력이 좋아지는데, 글이 너무 복잡해지니 이에 대해선 생략하도록 하자. 어쨌든 결과적으로 질소로 만들어낸 맥주 거품은 탄산으로 만들어낸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오래 지속된다.
맥주 거품과 문화
The Beer Foam and Culture
이제 맥주 거품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는 충분히 알게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용적인 측면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과연 맥주를 따를 때 거품의 양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BA(Brewers Association)와 같은 단체는 ‘손가락 2개 정도의 두께’로 거품을 만들 것을 권장하고 있으나, 맥주의 맛이 모두 다르듯 거품 또한 모두 같을 수가 없다. 이에 대한 정확한 정답은 맥주 거품에 대한 문화를 들여다봐야만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만 살펴보자.
체코
체코는 맥주의 역사 자체는 다른 맥주 종주국들에 비해 그리 길진 않지만 1인당 맥주 소비량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맥주를 가장 사랑하는 나라로 봐도 무방한 나라다. ‘맥주는 무엇이든 옳다’는 이들의 인식 덕분일까. 체코에선 맥주 거품이 거의 없게 따르는 것부터 매우 많게 따르는 것까지 모두가 용인되는 문화가 형성되어있다. 특히 거품을 매우 많게 따르는 것은 맥주가 우유같다 하여 ‘밀코(Mlíko)’라 부른다. 이 ‘밀코’는 우리나라의 체코 맥주 전문점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선으로 봤을 땐 맥주를 왜 이렇게 먹나 싶겠지만 말이다.
독일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맥주 문화 덕분에 독일인들은 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며, 그만큼 맥주에 대해 엄격한 시선을 지니고 있는 편이다. 맥주 거품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각 스타일별로 맥주를 어떻게 따르고, 어느정도의 거품 양과 어떠한 형태의 거품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다르게 설정해두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잔 형태마저 다르게 만들었다. 일례로 바이젠 같은 경우, 밀이 다량으로 들어가 단백질이 풍부하여 거품의 생성력과 유지력이 아주 훌륭한 맥주다. 그렇기에 바이젠을 따를 땐 이러한 바이젠의 특징을 잘 살려서 따르기를 권장하며, 바이젠 전용잔도 풍성한 거품을 위해 잔 위쪽의 공간을 충분히 두고 만들어진다. 바이젠을 따를 땐 처음 잔의 3분의2정도는 맥주병과 잔을 거의 수평으로 만들어 매우 천천히 따른 후, 마지막 남은 3분의 1을 다소 빠르게 따라내어 풍성한 거품을 형성하며 따르면 된다(효모의 유무에 따라 따르는 방식이 다소 다르긴 하다). 처음부터 빠르게 맥주를 따르면 거품의 크기가 균일하지 않게 생성되기도 하므로 이러한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이때 거품의 양은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약 1.5인치(3.8cm)만큼만 형성하는 것을 권장한다. 그렇기에 바이헨슈테판(Weihenstephan)의 500mL 바이젠 전용 잔을 보면 500mL 표시선 위쪽 거품 넣는 공간의 두께가 정확히 1.5인치임을 알 수있다. 감탄이 나올 정도의 디테일 아닌가.
벨기에
벨기에도 독일 못지않게 맥주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대단하다. 벨기에의 맥주문화는 그 자체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 될 정도이니 말이다. 벨기에인들 역시 맥주거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들에게 있어 맥주 거품은 맥주의 품질을 판별하는 수단 중 하나로써의 역할까지 한다. 이들은 거품이 풍성하고 오래 지속될수록 좋은 맥주라고 인식하곤 한다. 그렇다 보니 벨기에의 맥주잔들은 맥주 거품이 얼마든지 풍성하게 형성될 수 있도록 맥주의 용량보다도 훨씬 큰 사이즈를 지니고 있다. 이를 모르고 벨기에 맥주를 조심히 잔에 따르게 되면 전용잔에 따랐다 하더라도 잔의 빈공간이 매우 많이 남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벨기에 맥주를 따를 땐 다소 과감히 맥주를 따름으로써 약간 과하다 싶을 정도로 거품을 만들어주는 것이 오히려 정석이다. 그리고 유독 벨기에 맥주잔에서 많이 발견되는 특징이 있는데, 바로 ‘위젯(Widget)’이다. ‘위젯’은 잔의 하단부에 레이저 등으로 무늬를 식각(Etching)해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잔 내부에 거친 표면이 생기도록 일부러 긁어낸 것인데, 이 거친 표면은 맥주에 녹아있는 거품이 모여서 핵화(Nucleation)를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지점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위젯이 있는 잔에 맥주를 따르면 위젯 부분에서 탄산이 핵화되어 지속적으로 거품이 만들어지게 된다. 잘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이 현상을 이용한 유명한 실험도 있다. 바로 탄산음료에 멘토스(Mentos)를 넣어 폭발하게 만드는 실험이다. 멘토스를 액체에 넣으면 표면이 녹아 굉장히 거칠어지게 된다. 그래서 탄산음료 속 이산화탄소들이 멘토스의 표면에서 급속도로 핵화되어 거품이 폭발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벨기에인들은 거품의 생성력 뿐 아니라 유지력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유독 벨기에 맥주 전용잔 중에 위젯이 있는 잔이 많다. 델리리움(Delirium), 시메이(Chimay), 로슈폴트(Rochefort) 등 여러 전용잔들의 밑바닥에서 위젯을 확인할 수 있으니 해당 잔을 보게 된다면 한번쯤 확인해보시라.
영국
‘에일의 본고장’인 영국은 독특하게도 지역별로 거품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이는 영국의 전통적인 맥주인 리얼 에일(Real Ale, 캐스크 에일)에 특히 엄격히 적용된다. 영국 남부 사람들은 리얼 에일을 서빙해 줄 때, 거품이 거의 없이 잔한 가득 액체만 따라주는 것을 선호한다. 반면 영국 북부 사람들은 남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품이 많은 것을 선호한다. 이는 작은 구멍이 여럿 뚫려있는 ‘스파클러(Sparkler)’라는 장치의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리얼 에일은 태생적으로 탄산 함유량이 매우 낮아 거품이 잘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맥주가 나오는 스완 넥(Swan Neck)의 끝부분에 스파클러를 붙이고 맥주를 따르게 되면 작은 구멍 틈새로 맥주가 통과하면서 빠른 속도와 높은 압력으로 기체와 맥주를 접촉시킬 수 있게 된다. 그로 인해 급속도로 산화를 일으키는 효과도 있고, 추가적으로 거품 또한 생성시킨다. 영국 북부는 스파클러를 이용한 서빙에, 남부는 스파클러를 이용하지 않은 서빙에 익숙한 탓에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생겨난 것이다. 이는 리얼 에일 뿐 아니라 현대의 맥주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쳐서, 영국의 일부 펍에선 종종 리얼 에일이 아니어도 거품이 거의 없이 맥주를 따라 주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거품을 얼마나 만들어야 하느냐’라는 질문엔 ‘맥주의 스타일과 잔과 지역 등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라는 것이 답이다. 정말 전문적인 맥주집들은 이러한 특징에 따라 맥주마다 거품 양을 다르게 조절하여 맥주를 서빙해주니 정말 제대로 맥주를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러한 가게를 찾아다녀 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비어포스트바’ 또한 그러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