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게 고른 효모가 정확한 맥주로 보답한다
퍼멘티스가 제시하는 효모의 특징
Fermentis Explains Characteristics of Yeast
맥주 양조에 있어서 효모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좋은 맥주를 만들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싶은 맥주에 맞는 효모를 신중하게 고르는 과정을 반드시 수반해야 한다. ‘퍼멘티스’를 비롯한 여러 효모 회사들은 이러한 과정을 돕기 위해 각 효모가 어떠한 특징을 지니는지를 면밀히 기록한다. 효모가 어떠한 특징을 지니는지 알아야 맥주에 적용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선 효모를 고를 때 어떤 특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퍼멘티스가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자.
발효도(Attenuation)
알코올 발효는 효모가 당을 먹고 알코올과 탄산을 생성하는 과정이다. 맥주는 효모가 맥즙 안에 들어 있는 당을 먹고 알코올을 생산함으로써 만들어진다. 다만 똑같은 맥즙을 제공하더라도 그 안의 당을 얼마나 먹는지는 효모마다 서로 다르다. 이때 ‘효모가 당을 먹어 치우는 정도’를 보고 발효도(Attenuation)라 부른다. 발효도는 소비한 당 대비 얼마나 많은 알코올을 생산할 수 있는지를 계산할 수 있도록 해주고, 이 맥주가 발효되고 난 이후에 얼마나 많은 잔당을 남기는지도 예상할 수 있는 기준이기에 효모를 선정하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효모들의 발효도는 저마다 다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극단적으로 발효도가 뛰어난 효모종이 있다. 바로 STA 유전자를 지닌 Diastaticus 효모(Saccharomyces cerevisiae var. Diastaticus)이다. 이 효모 종의 특징은 글루코아밀레이즈(Glucoamylase)라는 효소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글루코아밀레이즈는 일반적인 아밀레이즈보다도 훨씬 강력한 당 분해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Diastaticus 효모를 사용하게 되면 비발효당이 거의 남지 않게 된다. 그래서 발효도가 매우 높고, 많은 알코올을 생산할 수 있으며, 탄산 또한 많이 생성하게 된다. 이러한 종의 효모는 병입 시 같이 넣지 않는 편이 좋다. 지나치게 많은 탄산을 생성하여 병이 터지는 등의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맥주를 굉장히 드라이하고 탄산감 풍성하게 만들고 싶다면, 발효도 좋은 Diastaticus 효모를 고려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알코올 내성(Alcohol Tolerance)
말 그대로 알코올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다. 도수가 높은 주류를 만들고 싶다면 알코올 내성이 강한 효모를 고르는 것은 필수적이다. 보통 일반적인 효모는 8~12% 정도의 알코올은 버틸 수 있으나, 그 이상으로 가면 자신이 만든 알코올이 독으로 작용하여 죽게 된다. 다만 18% 이상의 강한 알코올 농도에서 생존 가능한 효모도 소수 존재한다. 소주와 비슷한 도수를 웃도는 강한 맥주를 만들고 싶다면 고려해볼 만하다.
응집(Flocculation)
응집은 효모가 서로 달라붙어 다세포 덩어리를 형성하여 아래로 가라앉거나 위로 떠오르는 현상을 칭한다. 다만 통상 ‘응집’이라고 하면 아래로 가라앉는 현상만을 칭하는 경우가 많다. 응집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양하나, 간단히 말해 한쪽 효모 세포벽의 단백질이 다른 효모 세포벽의 수용체와 결합하여 생기는 현상이라 보면 된다. 보통 효모 회사들은 응집력을 ‘높음’, ‘보통’, ‘낮음’ 정도로 구분하여 표기한다. 응집력이 높으면 효모가 서로 잘 달라붙어 매우 잘 가라앉으며, 응집력이 낮으면 효모가 서로 잘 달라붙지 않고 맥주에 떠있는 시간이 길다.
응집은 홈브루어보단 상업 양조자들에게 더욱 중요한 특성이다. 상업 양조의 여러 공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은 필터링의 경우이다. 응집력이 높은 효모를 사용하면 발효가 끝난 이후 맥주가 금방 맑아지므로 필터를 거치는 과정이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응집력이 정말 좋은 효모를 사용하면 필터링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마저 있다. 그렇기에 밀맥주처럼 맥주 자체가 탁한 것이 적절한 스타일이 아니라면 상업 양조에선 응집도가 높은 효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풍미(Flavor)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역시 이 효모가 어떠한 풍미를 만들어 내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효모에 의해 생성되는 풍미는 다양한 변수에 의해 매번 달라지므로 쉽게 정형화하긴 어렵지만, 보통은 해당 효모가 어떤 성향의 에스테르(Ester)를 얼마나 만드는가, 그리고 페놀(Phenol)을 생성하는가를 가장 많이 따진다.
일단 에스테르는 카르복시산과 알코올의 축합반응으로 인해 생기는 물질로, R’COOR의 구조를 지닌 화합물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산과 알코올이 효모가 만들어낸 효소에 의해 서로 달라붙어서 만들어진 화합물을 말한다. 이때 어떤 산과 어떤 알코올이 합쳐지는가에 따라 풍미가 다양한 에스테르가 만들어진다. 보통은 지방산과 에탄올이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간혹 탄소수 3 이상의 알코올(Fusel Alcohols)과 결합하여 만들어지기도 한다. 어떠한 에스테르가 얼마나 만들어지느냐는 효모의 종과 발효 온도, 용존 산소량, 맥즙의 비중과 발효조의 형태등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에일 효모가 라거 효모보다 더 많은 에스테르를 생성하고, 높은 온도에서 발효했을 때가 낮은 온도에서 발효했을 때보다 더 많은 에스테르를 생성하며, 맥즙의 비중이 높을수록 더 많은 알코올을 생성하므로 더 많은 에스테르가 만들어지는 편이다. 에일이 라거보다 풍미가 풍부한 것이 바로 에스테르의 차이 때문이다.
에스테르는 종류에 따라 다른 맛을 지닌다. 대표적인 것들만 꼽아보자면, 바이젠에서 풍성한 바나나향을 내는 이소아밀아세테이트(Iso-Amylacetate), 은은한 적사과의 풍미를 내는 에틸헥사노에이트(Ethyl Hexanoate), 그리고 적은 양으론 은은한 과일 향을 내나, 다량으로 들어있을 시 아세톤 같은 역한 풍미를 내는 에틸아세테이트(Ethyl Acetate) 정도가 있다. 효모마다 주로 생성하는 에스테르가 다르니, 맥주에 잘 맞는 에스테르를 생성하는 것으로 잘 보고 골라야 할 것이다.
페놀은 벤젠 고리에 히드록시기(-OH)가 치환된 방향족 탄소 화합물을 총칭하는 말이다. 페놀류는 저마다 고유의 풍미를 가지고 있으며, 때문에 맥주에서 ‘페놀의 풍미가 느껴진다’는 말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페놀은 모노페놀(Monophenol)과 바이페놀(Biphenol), 폴리페놀(Polyphenol) 등으로 구분된다. 모노페놀은 한 분자의 페놀 구조를 가진 화합물, 바이페놀은 두 개의 페놀류 분자가 붙어서 만들어진 화합물, 폴리페놀은 여러 개의 페놀류 분자가 붙어서 만들어진 화합물을 의미한다. 맥주에 존재하는 페놀은 주로 폴리페놀의 형태를 하고 있다. 떨떠름한 질감을 주기로 유명한 ‘타닌(Tannin)’도 일종의 폴리페놀이다. 다만 폴리페놀은 맥주에 다량으로 함유되어있음에도, 분자의 휘발성이 약하므로 풍미에 눈에 띄는 영향을 주진 않는다. 정작 맥주의 풍미에 주로 기여하는 것은 매우 소량만 들어있는 모노페놀이다. 모노페놀은 휘발성이 강하여 아주 소량만 있어도 존재감이 확 드러난다. 일례로 맥주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모노페놀인 4-비닐구아야콜(4-Vinylguaiacol)은 300ppb만 포함돼있어도 감지가 되며, 4-비닐페놀(4-Vinylphenol)은 200ppb만 포함되어도 감지가 된다. 참고로 300ppb라는 양은 1000리터의 통 안에 고작 물 6방울이 떨어져 있는 정도의 농도다. 이러한 모노페놀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효모다. 페놀 여러 개가 붙어있는 폴리페놀의 일부를 대사하여 단분자 페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모노페놀의 풍미는 벨기에 맥주나 바이젠 등 특정 맥주 스타일에서 주로 감지된다. 잘 어울리는 스타일에 나타나면 개성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나, 그렇지 않은 스타일에 나타나면 이취로 취급되거나 오염의 증표로서 여겨지기도 한다. 낮은 역치로 인해 조금만 존재해도 전체적인 풍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효모 회사 측에선 이 효모가 페놀을 만드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실히 표기해줘야 한다. 퍼멘티스 측에선 이러한 효모에 POF+(Phenolic Off Flavor)라 표기해준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Diastaticus 효모의 대부분이 POF+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페놀은 조금만 존재해도 맛의 인상을 확 바꾸니 잘 보고 효모를 선택하도록 하자.
이외에도 효모를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몇 가지 더 있으나, 가장 중요하다 싶은 것만 짚어보았다. 언뜻 효모는 그저 알코올이나 만드는 미생물로 여겨지기도 하나, 그 개성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혹여 여태 양조할 때 효모에 별 신경을 기울이지않았다면, 앞으론 좀 더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 어떤가.
이 글은 효모 회사 퍼멘티스(Fermentis)가 2019년 10월 23일 한국에서 진행한 효모 관련 세미나 내용 중 일부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