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계의 떠오르는 괴물 크바익
‘크바익(Kveik)’. 아직 한국에선 크게 유명하지 않기에 생소하게 느끼는 이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해외 브루어 커뮤니티에선 이미 크바익을 둘러싼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오메가 이스트(Omega Yeast)’나 ‘화이트 랩스(White Labs)’ 등 효모 회사에서도 크바익을 상품화하기에 이르렀을 정도로 세계 맥주 시장에선 아주 핫한 녀석이다.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겠는 이 녀석. 대체 뭐 하는 녀석이고, 어디서 나타났고, 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게 됐는가.
크바익은 무엇인가
본래의 뜻만 설명하자면 ‘크바익(Kveik)’은 노르웨이 서부와 남부 지역의 방언으로 ‘효모’를 의미한다. 어떤 맥주 스타일이나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나타내는 말이 아닌, 그저 효모를 칭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럼 대체 뭐가 특별하기에 이를 ‘효모(Yeast)’라고 번역하여 부르지 않고 ‘크바익’이라고 구분 지어 부르는가.
한국에 막걸리가 있고 벨기에에 세종(Saison)이 있듯, 노르웨이도 농가에서 고유의 팜하우스 에일을 만들어 왔다. 과거 대부분의 농가가 그랬듯 이때 사용하는 효모는 먼 옛날부터 대대손손 물려받아 정제되거나 순수하지 않은 미생물의 군집이었는데, 이를 두고 ‘크바익’이라 불렀다. 크바익은 맥주뿐만 아니라 빵을 만드는 데도 사용하는 등 정말 효모와 같은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당시 노르웨이에선 효모가 곧 크바익이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으로 순수하게 정제된 효모가 등장했다. 이것이 그간 사용해온 ‘크바익’과는 다르단 걸 알게 된 노르웨이 사람들은 새로이 구분 지을 말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정제된 효모를 두고 ‘야르(gjær)’, 팜하우스 에일에 쓰던 것은 ‘크바익’으로 구분지어 부르게 됐다. 즉 크바익은 노르웨이의 팜하우스 에일을 만드는 데 쓰는 전통 누룩이라 생각하면 된다. 순수한 효모가 상업화된 이후 다른 팜하우스 에일이 그러했듯 크바익 효모도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쇠퇴했다. 끈질기게 전통을 고수한 극소수의 가문을 제외하곤 더 이상 크바익을 찾아볼 수 없게 됐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크바익이 어쩌다 뜬금없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됐을까?
크바익은 어떻게 유명해졌나
크바익이 유명해진 것은 노르웨이 오슬로(Oslo) 지역의 과학자이자 팜하우스 에일 덕후인 Lars Marius Garshol(이하 Garshol) 덕분이다. ‘크바익의 대부’라고 할 법한 그는 2013년 처음으로 노르웨이 Voss 지역 외곽에 위치한 양조장 Sigmund Gjernes가 소유한 크바익을 접했다. Garshol이 이 특이한 누룩에 관심을 보이자 Sigmund는 2014년 봄 양조에 Garshol을 초대했다. 그는 노르웨이 전통 팜하우스 에일의 양조 과정과 크바익의 발효 특성을 자신의 블로그인 ‘Larsblog’에 상세하게 올리기 시작했다.
그 기록을 미국 시카고에 있는 효모 회사 ‘오메가 이스트’의 공동 창업자인 Shaner가 보게 됐다.
Garshol의 기록을 통해 크바익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발효 특성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된 Shaner는 노르웨이로부터 크바익을 배송받았다. 크바익이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둘 것을 확신한 그는 상업화를 염두에 두고 2017년 7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에 위치한 Dangerous Man Brewing Company와 협력하여 미국 최초로 크바익을 사용한 맥주를 만들었다. ‘Tarty Party’라는 이름의 이 과일 사워는 크바익의 매력으로 인해 히트를 쳤다.
이후 Half Pint Brewing Company나 Insight Brewing, Birch’s on the Lake 등의 브루어리에서도 크바익을 사용한 맥주를 만들었고, 크바익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실용적인지를 재차 입증했다.
크바익의 원산지인 노르웨이에서도 Garshol의 지속적인 노력과 전통을 고수하던 농가 양조장 Svein Rivenes, Sigmund Gjernes, Bjarne Muri, Terje Raftevold 등의 협력이 더해져 점차 크바익 효모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크바익은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 금세 입소문을 탔고, 세계적인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그런데 크바익의 매력이 대체 뭐기에 이러는 것일까?
크바익이 인기를 끄는 이유
냉장시설이 없던 과거 노르웨이에서는 크바익을 다양한 방법으로 보관했다. 병 안에 크바익을 넣어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긴 했으나, 크바익스토커(Kveikstokker)라 불리는 나무나 린넨, 지푸라기 등에 크바익을 접종한 후 건조하여 보관하는 방법도 쓰였다. 이런 크바익을 맥주에 넣을 땐 노르웨이 팜하우스 에일의 양조 방식 특성상 30-40°C나 되는 높은 온도에 1.080 내외의 고비중인 맥즙 에 크바익스토커를 그대로 넣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고온에 고비중이라는 이중고에도 불구하고 크바익은 꽤 빠르게 발효를 시작하고 빠르게 완료해냈다. 그런 환경을 버티지 못한 균은 버려졌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다 크바익이 오염되어 신맛 등 이상한 이취를 내거나, 너무 가혹한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균이 전부 죽게 되면 이웃 농가에게서 괜찮은 크바익을 빌려오곤 했다. 이후 발효가 끝나면 다시 크바익스토커에 크바익을 건조해 보관했다. 이렇듯 가혹하기 그지없는 일련의 양조 과정과 선별 작업을 수백 년간 반복한 덕분에 크바익은 엄청난 발효 특성을 보이게끔 진화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이게 다 진짜인가 싶을 정도다.
1. 열에 대한 내성과 균일한 발효
크바익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열에 대한 내성이다. 앞서 언급했듯 크바익은 40°C를 넘어 최대 43°C에 이르는 아주 높은 온도에서도 무리 없이 발효를 진행한다. 일반적인 에일 효모의 경우엔 고온에서 생존이 어렵고, 설령 발효한다 하더라도 고온의 환경이 커다란 스트레스로 작용하기에 이취가 많이 생긴다. 반면 크바익은 30-40°C에 이르는 환경에서도 별다른 이취 생산 없이 깔끔하게 발효한다. 그렇다고 저온에서는 발효를 못 하는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일반적인 에일 효모가 활동하는 온도에서도 원활히 발효하는 편이며, Årset Kveik 같은 특정 크바익은 4°C의 저온 환경에서도 발효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균일한 맛을 낸다는 것 역시 장점이다. 일반적인 맥주 효모의 경우, 발효 온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생산되는 물질과 맥주의 맛이 달라진다. 보통 발효 온도가 높을수록 에스테르의 과일 풍미와 더불어 플라스틱, 솔벤트(Solvent), 퓨젤 알코올(Fusel Alcohol) 같은 안 좋은 풍미도 같이 늘어나는 편이다. 그런데 크바익은 소화할 수 있는 발효 온도의 폭이 굉장히 넓은데도 불구하고, 전체 온도에 걸쳐서 유사한 맛의 프로파일을 만들어낸다. 발효 온도가 높을수록 특정 풍미가 더 풍부해지는 경우가 있다고는 하나, 맛의 프로파일 자체가 변하진 않는다고 한다.
홈브루어들이 크바익을 환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이다. 홈브루잉의 최대 단점은 원하는 대로 발효 온도를 조절하기가 어렵다는 것인데, 크바익은 아무 문제 없이 이를 해결해준다. 몇 도의 온도에 방치하더라도 일정하게, 이취 없이 발효해주다니 이 무슨 축복이란 말인가. 물론 상업양조에도 이점이 있다. 무더운 여름철에도 발효 온도 유지를 위해 냉각장치를 돌릴 필요가 없어지므로, 에너지와 자본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맛도 균일하게 나오니 반복 생산성이 중요한 상업양조에 있어서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 점 하나로도 크바익은 맥주 시장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2. 빠른 발효 속도
크바익의 발효 속도는 가히 괴물에 비할 만하다. 우선 유도기(Lag Phase)가 굉장히 짧다. 유도기는 새로운 환경에 접종된 미생물이 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기간으로서, 일반적인 에일 효모의 경우 길면 반나절을 소요하기도 한다. 그러나 크바익은 차원이 다르다. 건조되어 활성을 잃은 상태의 크바익이라 할지라도 2~3시간이면 바로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한다. 심지어 건조되지 않고 바로 새로운 맥즙에 접종된(Repitched) 크바익이라면 20분만에 유도기를 끝내고 활동을 시작하기도 한다.
알코올을 생산하는 시간 역시 비교가 안 된다. 일반적인 에일 효모는 5% 내외의 알코올을 생산하는 데 7일 정도를 소비한다. 그러나 크바익은 그 정도 알코올 도수는 1~2일 사이에 생산을 끝내고 침전하기까지 한다. 이는 상업양조에 있어 매우 강력한 경제적 이점을 가져다준다. 더 적은 발효조로 더 많은 맥주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풍부하고 다양한 맛 생산
심지어 특유의 발효 풍미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크바익은 기본적으로 고온에서 발효하다 보니 에스테르 생산량이 많은 편이다. 덕분에 몇몇 종은 실제로 과일을 넣은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과일 풍미를 풍부하게 생성한다고 한다. 또한 여러 균주가 섞여 있는 집합체이기에 생성하는 맛의 프로파일이 광범위하며, 어떤 크바익을 쓰느냐에 따라 생성되는 풍미도 다양하다. 대표적인 예시로 Voss Kveik은 오렌지 같은 풍미를, Hornindal Kveik은 과일과 밀크캐러멜의 풍미를 내며 Ebbegarden Kveik은 망고나 파인애플 같은 아로마를 만들어내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즉 원하는 풍미가 무엇인가에 따라 골라 쓰는 재미도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크바익의 다양한 종류에 대한 정보는 Garshol이 정리해둔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http://www.garshol.priv.no/download/farmhouse/kveik.html)
맛에 있어 크바익이 다른 전통적 팜하우스 에일 효모와 다른 점은 페놀 풍미를 생성하지 않는다는 것(Non-phenolic)이다. 효모가 생성하는 페놀성 화합물은 정향, 후추, 소독약 같은 풍미를 낸다. 전통적인 팜하우스 에일이나 벨기에 맥주들에는 굉장히 잘어울리는 풍미이나, IPA와 같은 다른 스타일에는 잘 어울리지 않으므로 이취로 취급되곤 한다. 크바익은 그러한 페놀성 풍미를 전혀 생산하지 않는다. 고로 행여 페놀이 생성될까 염려할 필요없이 원하는 맥주 맛만 만들어준다는 장점도 있다. 실제로 크바익을 이용한 팜하우스 IPA는 팜하우스 에일의 뉘앙스와 홉의 캐릭터가 페놀의 방해 없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훌륭한 맛을 선보인다고 한다.
4. 그 외 장점들
크바익은 몇 종류를 제외하면 침전(Flocculation)이 아주 깔끔하게 잘 이루어진다. 실제로 미국 Half Pint 양조장의 경우, 크바익을 이용한 3종류의 맥주를 만들면서 굳이 여과를 하지 않고 그저 몇주간 침전시키기만 한다고 한다. 깔끔한 맥주를 선호하는 양조사에겐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알코올 내성도 굉장히 좋다. ‘오메가 이스트’는 자사가 판매하는 크바익의 알코올 내성이 11~16%라고 표기한다.
일반적인 효모는 알코올 도수 10%을 넘어서면 죽거나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크바익을 이용하면 고도수 맥주를 만들기에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보관과 재사용도 수월하다. 아무 병에나 넣어둬도 1년 정도는 보관이 가능하며, 건조하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 이후 재사용하려면 그저 보관해놓은 크바익을 맥즙에 넣으면 끝이다. 애초에 그런 방식으로 전해져 내려온 균주이기 때문이다. 효모를 구매해야 하는 빈도가 줄어드니, 경제적인 이점으로도 작용한다. 상업양조에 있어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되는 녀석이다. 이쯤 되면 크바익이 왜 유명해졌는지는 충분히 납득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입소문을 탄 지 고작 1~2년에 불과하고, 여러균주의 군집이라는 특성 때문에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들도 많아 확실한 상업화가 이루어지기까진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곧 우리나라에도 정식으로 수입될 예정이라 하니, 조만간 크바익을 이용한 국산 맥주도 여러 가지 만나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크바익은 과연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주게 될지, 기대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