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맥주 유럽 역사를 빚다
도서소개
『수도원 맥주 유럽 역사를 빚다』(꿈꾼문고, 2019년 6월 21일 출간)는 희한한 책이다. 맥주, 그중에서도 유럽 수도원 양조장에 뿌리를 둔 맥주에 대해 어디 가서 아는 척하기 좋을 만한 지식을 알려주는가 싶어 호기심을 갖고 읽어가다 보면 그리스도교의 부패와 부조리, 그에 따른 교회 개혁과 수도원 운동을 중심으로 중세 유럽의 역사와 만나게 되고, 그 역동적인 흐름을 타고 가다 보면 어느새 한국의 어제와 오늘이 자연스레 합류해 들어온다. 결국 수도원 맥주 이야기와 중세 유럽 그리스도교 이야기와 한국 사회 이야기가 천연덕스럽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예컨대 맥주의 필수 재료인 홉에 대한 설명에는 12세기의 그야말로 천재 수녀 힐데가르트 폰 빙겐이 등장하고, 당시(지금도 여전한) 교회의 이분법적 사고와 남녀 차별은 21세기 한국 사회의 미투 운동으로 연결된다.
이쯤 되면 궁금하기도 하다. 맥주를 타임머신 삼아 시공간도 주제도 마음껏 넘나드는 이 자유분방한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지은이 고상균. (지금은 놀고 있지만 어쨌든) 개신교 목사다. ‘맥덕목사’임을 자임하며, 최근에는 ‘술기로운생활’이라는 유튜브 방송도 한다. 목사라고 술 마시면 안 된다는 말씀은 없으니 맥주 덕후라는 건 그렇다 치고, 개신교 목사라고 가톨릭과 수도원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그것도 그렇다 치고, 그런데 이 사람, 퀴어를 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지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편에서 그들의 고난을 함께 나누고 있다, 굳이굳이. 소위 주류 보수교계의 시각에서 보면 괴짜를 넘어서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다.
이제야 『수도원 맥주 유럽 역사를 빚다』에서 봐야 할 것이, 지은이가 가리키고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다. 그것도 대개 역사에서 지워지고 세상에서 소외된, 그러나 역사를 이뤄내고 세상을 떠받치는 이름 모를 민중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다르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당연히 차별받고 지워지는 사람들, 이 책은 그들을 잊지 말자는,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리고 더디더라도 어렵더라도 같이 한번 바꿔보자는 제안이다.
영성의 깊이는 그윽한 ‘맥주 향’으로부터!
트라피스트 맥주 이야기 1
# 1
몇 개월 전 환절기 중 감기 몸살에 된통 걸린 적이 있었다. 예전 일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그리 춥지 않았던 지난겨울도 생각난다. 지난해보다 한결 온화한 겨울을 보내며 ‘올여름은 도대체 얼마나 더울까’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따뜻한 날씨에 방심하여 옷을 가볍게 입고 돌아다녔고, 어느 날 덜컥 몸살이 찾아왔던 것이다. 처음엔 목과 이어진 콧속이 조금 따끔거리는 듯싶더니만, 하루 만에 콧물이 그칠 줄 모르고 흘러 나오며 증상이 심해졌다. 이후 밤마다 폐부로부터 나오는 소리 깊은 기침이 더해지더니 그 상태로 한 열흘을 골골거렸다. 그 시간을 지나며 느끼게 된 것이 있었다. 그건 언제부턴가 내가 몸이 아플 때마다 사람들에게서 걱정이나 염려보단 핀잔 혹은 지적을 더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 그리 힘이 없어 보여?”
“콜록콜록, 저기, 감기 몸살이…”
“몸살? 술병이네 술병! 그러니까 맥주 좀 작작 마셔.”
“그게 아니고 이런저런 일로 무리를…”
“알겠고, 술 좀 줄이라고!”
“…”
맥주 때문이 아니라고,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많아서 그런 거라고, 병나기 전엔 오히려 다른 때보다 음주 횟수도 양도 현저히 적었다고, 아무리 말해봤자 허사다. 뭐라 말해도 ‘지금 너의 상태는 술병’이라는 사람들의 확신은 쉬 바뀌지 않는다. 이런 반응이 처음엔 못내 서운하기도 했다. 아플 땐 밖에서 버스지나가는 소리조차 서운하게 들릴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뭐 어쩌랴, 선입견 또한 지난 시간 내 삶의 궤적이 만든 것일 테니 말이다. 사실 골골거리느라 한동안 알코올 종류를 입에 대지도 못하는 순간순간에도 ‘한잔하고 푹 자면 낫지 않을까’, ‘중세 수도원에서는 감기 처방으로 맥주를 사용했다는데 도수 높은 걸로 한번 마셔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그러니 주변인들의 단정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 할 수도 있겠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이 계속 맥주 생각이나 해야지. 이번엔 각종 질병 치료에도 사용했다는 수도원 맥주, 그중에서도 트라피스트 맥주다
# 2
로마제국을 거쳐 중세에 이르기까지 유럽 문화의 중심에 있었던 그리스도교, 일반적으로 그 당시의 그리스도교 하면 장엄한 미사와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 같은, 아마도 고풍스러운 그림이나 영화에서 봤음 직한 장면들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같은 기간의 그리스도교에는 이러한 화려함과는 정반대의 공간도 분명 존재했다. 소박함, 노동과 수행, 명예를 내려놓는 마음가짐을 소중한 신앙생활로 인식했던 이들의 자리, 바로 수도원 말이다. 서구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수도원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그리스도교의 초기 형성 과정에서 고행과 극기를 중심으로 하는 시리아 및 북부 아프리카 종교의 전통을 받아들였던 해당 지역 예수 공동체의 수행 전통이 훗날 유럽 중심으로 재편된 그리스도교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2 이러한 수행 전통은 교회가 거대화, 정치 세력화될 때마다 신앙의 근본정신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대안적 가치로 떠올랐고, 이를 위해 모여든 수행자들의 모임은 점차 일정한 규모의 수도원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렇게 발전하게 된 수도원은 교회가 신앙의 근본에서 흔들릴 때마다 경종을 울리며 신앙 본연의 자세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한편 수도원은 철저한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했다. 이는 노동과 수행을 근간으로 하는 수도원 문화의 특성이기도 했고, 상공업과 교역이 발전하지 않았던 탓에 가능한 한 직접 만들어 사용해야 했던 당대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아무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도사들은 하느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과 동시에 농사와 생필품 만드는 방법도 함께 터득해야 했다. 그들의 삶에서 가장 급선무는 역시 먹고 마시는 것이었을 터! 면적에 비해 식수가 풍부했던 한반도에 비해 중세 유럽, 특히 중부 지역은 양질의 식수 확보가 쉽지 않았다. 이는 유럽 대다수 강물에 석회 성분이 지나치게 섞여 있기 때문이었다. 고대로부터 맥주와 와인 같은 음료가 유럽 일대에서 광범위하게 음용되었던 것은 석회수에 대한 일종의 여과 혹은 정수의 의미가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여 이들 주류는 기호 식품을 넘어 단연 최고로 시급한 생활필수품이었고, 수도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알프스 이북의 수도사들은 일상의 노동 중 하나로 먹을거리 확보를 위해 빵을 굽는 동시에 정성껏 맥주를 빚었다.
# 3
소박한 삶은 한편 무척 단조로운 삶이기도 했다. 그와 같은 단조로움은 영성 수련에 더없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어찌 사람이 고귀한 영성만으로 살 수 있으랴! 반복되는 일상에서 오는 무료함, 또 노동과 수행의 노곤함은 분명코 꿀처럼 단 주님의 말씀만으론 해소되지 않는 ‘형이하학적’ 영역이었다. 그러한 수도사들에게 정성 들여 빚어낸 맥주 한잔은 얼마나 천금 같은 것이었을까? 그 귀중함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것은 그야말로 설명충이 되는 지름길. 게다가 사순절 금식 기간과 같은 고행의 시간, 물 이외에 빵과 같이 씹는 것의 섭취는 일절 금지되는 시기에도 맥주는 섭취가 인정되었다. 아니, 밥도 못먹게 하는 마당에 술은 가능하다고?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액체 섭취는 금식에 반하지 않는다!
맥주는 ‘액체’니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알프스 북쪽 지역에 위치한 수도원들에서 맥주는 수행의 고됨과 허기를 달래줄 ‘신의 선물’이기도 했다.5 뭐니 뭐니 해도 맥주 최고의 안주는 역시 ‘공복과 갈증’이 아니던가? 맥주는 수도원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유일한 낙이자 사치였다.
한편 생필품 생산과 관련된 정보가 체계적으로 집대성되거나 전수되지 못하던 시절, 수도원은 당대 유럽에서 거의 유일한 교육기관이기도 했다. 수도사들은 성서 및 신학 연구와 함께 농업과 생필품 생산을 통해 얻게 된 지식을 축적하고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맥주 역시 주먹구구식의 양조를 벗어나 체계적인 계획을 통해 건설된 양조 시설에서 엄선된 레시피에 따라 빚어졌다. 이를 통해 수도원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맥주 맛을 형성해갔다. 다 맛있지만 집집마다 다른 김치 맛처럼 말이다. 엄청 소중한 것이 맛도 좋으니, 수도원 맥주는 한번 경험한 이들에게 ‘생명수’로 자리 잡을 수밖에. 수도원 맥주에 대한 명성은 점차 높다란 수도원 담장을 넘어 세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는 수도사가 아닌 이들도 수도원표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순례자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수도원이 무상으로 제공했던 식사 중의 한잔, 또 고관대작이나 교회 중요 인사의 방문 때 선보였던 특제 음료 등이 가장 흔한 경우였다. 중세 시대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수도원 중 하나였던 코르비 수도원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찾아오면 두 잔의 맥주를 제공하는 것을 규칙으로 지키기도 했다.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 점점 인기가 높아진 수도원 맥주는 마침내 세상을 향해 판매되기 시작했다. 수도원 맥주의 상업화가 시작된 것이다.
# 4
맥주는 오래지 않아 수도원의 중요 수익원이 되었다. 본격적인 판매를 위해 수도원 양조 시설은 크게 확장되었다. 또 대개의 경우 지역 및 국가 권력과 결탁하는 가운데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수도원 양조장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서민들의 양조장은 문을 닫거나 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결국 견물생심이라는 인간사 진리가 작동했으니, 맥주 판매를 통해 얻은 막대한 이익은 수많은 수도원들의 타락과 권력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수도원에서는 교회와 수도원이 정치 세력화되거나 금권에 휘둘릴 때마다 내적 개혁 운동이 일어나곤 했다. 이처럼 교회와 수도원의 거대화와 금권화에 문제의식을 느낀 이들 중에는 베네딕토회 계열의 수도사들도 있었다. 세속화되어가는 수도원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기도와 토론을 이어가던 수도사 20여 명은 마침내 1098년 시토회를 결성했다. 교회와 수도원을 향해 신앙 본연의 자세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던 시토회 수도원에서는 단식, 침묵 수행, 노동의 원칙을 엄격하게 지켜나갔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확대된 시토회는 지역별로 독자성이 강해지면서 고수했던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교권과 연계되면서 정치 세력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초기의 창립 정신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이를 안타까워하던 이들이 1664년 라 트라프La Trappe 수도원에서 ‘엄률嚴律 시토회’를 세웠다. 이들은 시토회와 가톨릭의 자정을 외치는 가운데 ‘기도와 노동’이라는 수도원 전통의 가치를 더욱 엄격히 준용했다. 엄률 시토회는 차츰 서유럽의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었고, 여타의 수도원과 구별하기 위해 자신들을 ‘트라피스트’라고 불렀다. 수도회의 발상지 트라프에서의 정신을 간직하겠다는 의미였다. 이들은 필요한 물품 모두를 자신들의 노동으로 만들어냈다. 치즈와 같은 발효 제품과 함께 그들만의 독특한 맥주도 양조되기 시작했다. 위대한 트라피스트 맥주의 시작이었다.
고상균
자펜빌의 빨갱이 목사’ 칼 바르트가“한 손에는 성서, 한 손에는 신문”이라 했다던가? 이를 빌려 감히 말하고 싶다. “한 손에는 성서! 한 손에는 맥주!”
빈둥거리는 시간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개신교 목사이며, 한신대학원 구약학 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이기도 하다. 맥주와 성서를 굉장히 사랑하는 가운데, 10년쯤 전부터 ‘술과 인문학’을 주제로 시민사회단체와 기업 등에서 강연을 하고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취미는 2019년 전반기부터 친구들과 시작한 유튜브 ‘술기로운 생활’의 구독자 수 세기이다. 작든크든, 적든 많든, 다양한 사람들이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세상, 놀아도 크게 비난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여 차린 밥상에 살짝 숟가락만 얹어 맥주와 1도 상관없는 책을 몇 번 출간했다.
저서
『차별금지법 국면에서 인권으로 신학하다』(공저, 2008, 평화나무,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공저, 2010, 한울, 슘 프로젝트)
『성소수자 인권이해』(공저, 2018, 도서출판 따뜻한 평화, 한국YMCA간사회젠더정의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