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부터 Z까지 완전하게 정리해보는 에일과 라거의 진짜 차이
맥주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보통 가장 먼저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 에일과 라거의 차이에 대한 점이다. 이처럼 기초적인 상식이라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주제는 굉장히 쉽고 간결하게 정리할 수도 있지만, 그 내용을 정확히 알기 위해선 맥주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맥주를 알아가며 전문지식이 다소 쌓인 후에야 비로소 에일과 라거의 차이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글의 목적은 맥주를 잘 모르는 입문자부터 마니아까지 모두가 에일과 라거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에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맥주의 역사부터 미생물학적 이해, 과학적 상식, 양조 관련 지식과 맛의 차이까지 총망라해두었다. 그간 에일과 라거에 대해 어떤 글도 명쾌하단 느낌을 받지 못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날에야 ‘대부분의 맥주는 에일 혹은 라거 둘 중 하나로 분류된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불과 3, 40년 전만 해도 이런 소리를 했다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비웃음을 당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에일과 라거로 맥주를 구분하게 된 것은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 무렵, 즉 최근에야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에일과 라거는 지금과는 다소 다른 뜻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최근까지도 유럽 쪽의 보수적인 곳들은 이러한 현대의 에일과 라거 분류 방식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에일과 라거에 대한 정보가 많은 혼선을 빚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는가? 이를 알기 위해선 에일과 라거가 본래 무슨 뜻을 지닌 단어였는지, 또 그 의미가 왜 변화하였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5세기경, 영국은 스코틀랜드의 픽트족과 아일랜드의 원주민이었던 스코트족으로부터 많은 침공을 받았다. 영국은 로마의 도움을 청했으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에 영국 지도자들은 이민족의 퇴치를 위해 앵글로 색슨계 용병을 고용했다. 이 용병들이 그대로 영국에 눌러앉아 버림으로써 앵글로 색슨족의 주류 문화가 영국에 들어오게 된다. 이 당시 영국으로 유입되어 온 주류로는 크게 와인을 뜻하는 윈(Win)과 벌꿀 술을 뜻하는 미도(Medo), 다른 벌꿀 술인 비오(Beor), 그리고 곡물로 만든 술인 에알루(Ealu)가 있었다. 이 중 ‘에알루’가 시간이 지나 ‘에일(Ale)’로 변하게 된다. 에일은 중세에 들어선 맑은 에일, 웰시 에일, 마일드 에일 등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며 영국의 대세 주류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일례로 현대판 영국 설화라 불리는 ‘반지의 제왕’을 보면 호빗들이 맥주에 관해 얘기할 때마다 Beer라고 하지 않고 항상 Ale이라 부른다. 즉, 이때까지만 해도 에일은 지금처럼 거창한 맥주의 대분류가 아닌 그저 영국의 맥주를 총칭하는 말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다가 에일에 혁신적인 변화를 주는 시기가 오게 된다. 바로 14세기, 홉이 유럽 전역에 대중화되면서부터다. 맥주에 매우 보수적이었던 영국은 홉을 넣은 맥주는 에일로 인정하질 않았고, 홉을 넣은 맥주는 엄격히 구분하여 Beer라고 불렀다. 심지어 홉을 넣은 맥주를 에일이라 판매할 경우엔 벌금을 매길 정도였다. 그러나 홉은 벌금으로 막기엔 너무나도 매력적인 재료였다. 방부효과는 물론이고 향과 쓴맛까지 줬으니 말이다.
결국 16세기부터는 에일에 홉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였고, 그와 더불어 에일은 100% 맥아로만 만들어져야 한다는 법도 제정하였다(이 법은 1847년에 폐지된다). 이후 17세기에 포터(Porter)가 개발되고 영국 전역을 뒤흔들게 되면서 영국에서의 맥주는 Ale, Beer, Porter로 구분되게 된다. 이때의 Ale은 Beer보다 홉을 적게 사용하고, 맥아로만 만들어지고, Porter보다 색이 밝은 영국 맥주를 칭하는 말이었다. 맛이 쓰고, 색이 진한 것이 에일이라고 하는 현대의 편견을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후 에일은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올드 에일, 브라운 에일, 페일 에일 등으로 다양하게 분화했고 그 매력을 꽃피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19세기 들어서 혁신적인 에일이 하나 탄생하게 되니, 바로 인디아 페일 에일(India Pale Ale)이다. 당시 활발하게 무역을 일삼던 영국은 자국 내에서 큰 인기를 끌던 인디아 페일 에일과 페일 에일을 유럽에 전파하기 시작했고, 에일이란 말은 영국 맥주를 상징하는 말로써 세계에 퍼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에일의 행보에 찬물을 제대로 끼얹는 일이 발생한다. 바로 전쟁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물자 공급을 위해 생산되는 모든 맥주 중 절반의 비중이 1.030이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법을 만들었다. 즉, 이 당시 영국 맥주 중 태반이 알코올 도수 3%를 채 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많은 양조장들이 문을 닫고, 남은 양조장들도 천편일률적인 맥주만 만들게 돼버렸으며, 에일은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음료라는 인식이 생겨나 칵테일과 와인에 밀려 인기를 잃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차 세계대전엔 독일의 폭격으로 인해 많은 양조장들이 사라지게 된다. 결국 영국 맥주, 특히 에일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라거를 비롯한 Beer에게 시장을 내주게 되었다. Ale이 더 이상 맥주를 대표하는 용어가 아니게 된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라거는 14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독일과 보헤미아 지방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왜 라거가 생겨났는지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저장하다’라는 뜻의 독일어 동사 ‘Lagern’에서 유래했다는 점에서 시원한 동굴에 맥주를 저장하면서 생겨난 맥주라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이 역시도 타당성이 충분하진 않은 주장이다. 보리를 산속 동굴까지 옮겨오는 작업이나 양조한 맥주를 동굴에서 꺼내 운반하는 작업이나 당시로썬 보통 비효율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의 기록을 살펴보면 ‘보통 사람들은 고온, 즉 상면 발효로 맥주를 양조하지만 1474년 처음으로 저온 하면 발효에 의한 양조와 여름을 대비해 일부 맥주를 보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나온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바로 ‘상면발효’와 ‘하면발효’라는 단어다. 이당시 양조사들은 효모라는 매우 작은 미생물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리즙 위에 거품이 보글보글 생성되면 맥주가 되더라, 그 거품을 퍼서 다른 보리즙에 넣으니 이 또한 맥주가 되더라, 정도로 발효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온에 맥주를 발효시키는 방법을 사용해보니 거품이 거의 생기지 않았음에도 맥주가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대신 아래에 요상한 덩어리들이 많이 가라앉아있었고, 이것을 퍼서 다른 보리즙에 넣으니 이 또한 맥주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당시 양조사들은 고온에 맥주를 발효시키면 위쪽에 거품이 생기면서 위쪽에서 발효가 일어나고, 저온에 맥주를 발효시키면 아래쪽에 뭔가가 가라앉아 아래쪽에서 발효가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온에서 맥주를 발효하는 것을 상면발효, 저온에서 맥주를 발효하는 것을 하면발효라 칭하기시작한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선 뒤에 가서 서술할 테니, 이 말이 효모의 존재조차 몰랐던 1400년대에 생겨난 말이라는 점만 기억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이렇게 하면 발효에 의해 만들어진 맥주를 통틀어 라거라 불렀다. 다만 이때는 현대의 라거처럼 맑은 황금색의 외관을 지니고 있진 않았고, 고동색에 가까운 어두운색을 지니고 있었다. 저온에서 발효되고 숙성된 맥주는 기존과는 차별화된 깔끔함을 보였고, 이것이 독일에서 큰 반향을 얻었다. 그리하여 라거는 1600년대에 이르러선 독일 남부 바바리아 지역과 체코의 보헤미아 지역을 점령한 맥주가 되었다.
이후 1842년, 체코 플젠(Plzen) 지역에서 탄생한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이라는 혁신적인 황금색 맥주의 성공 덕분에 라거는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다. 그러다 1859년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최초로 효모라는 미생물이 알코올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냈고, 양조장들의 효모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다. 결국 칼스버그(Carlsberg) 연구실에서 일하던 크리스티앙 에밀 한센(Christian Emil Hansen)은 칼스버그의 라거 맥주로부터 최초로 사카로마이세스 파스토리아누스(Saccharomyces pastorianus)라는 한 종류의 효모를 순수분리해내는 것에 성공한다. 양조사들은 단 한 종류의 효모만을 이용하여 양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보다 깔끔하고 일관성 있는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도 많은 연구를 통해 맥주에서 효모는 앞서 언급한 사카로마이세스 파스토리아누스(이른바 라거 효모)와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에(Saccharomyces cerevisiae, 이른바 에일 효모), 두 종류의 효모 위주로 사용되어 왔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맥주는 이 둘 중 한 종류의 효모만을 사용하여 양조가 이루어지게 된다.
여태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에일은 본래 영국에서 만들어진 포터보다 밝은색을 띄는 맥주 종류를 뜻하는 말이고, 라거는 저온 발효(이른바 하면발효) 를 통해 만들어진 모든 맥주를 뜻하는 말이라는 것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너무 애매모호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에일의 경우엔 Beer와의 경계가모호해져 버린 단어였고, 라거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저온’에 속하는지, 어디까지가 라거고 어디부터가 라거가 아닌지에 대해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다. 맥주에 대한 시장이 커지고 전문화가 이루어질수록 이러한 모호한 단어들에 대한 정의가 명확해질 필요가 생겨났고, 이를 주도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은 바로 크래프트 맥주 문화가 태동하기 시작한 미국이었다.
미국은 여러 맥주 스타일을 정리하며 많은 맥주들이 결국 두 종류의 효모 중 하나로 만들어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래서 라거에서 분리해낸 효모인 사카로마이세스 파스토리아누스(이하 라거 효모)로 만든 맥주는 ‘라거’, 다른 효모인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에(이하 에일 효모)로 만든 맥주는 ‘에일’로 구분하자는, 매우 간단하고 적확한 구분법을 만들었다. 여기서 후자의 구분에 왜 하필 에일이란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미국이 영국의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본래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에가 영국 에일에 사용되기도 했고, 크래프트 맥주 문화가 영국의 에일들을 미국식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태동했으니 말이다. 에일이 영국의 맥주를 상징하는 말로서의 정체성이 어느 정도 희석됐단 점 덕분에 가져다 쓰기에 용이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때가 1980년대 후반으로, 지금으로부터 불과 3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유럽에서 말하는 에일과 라거는 현대의 에일과 라거와는 다소 괴리감이 있으며, 이러한 구분을 부정하는 사람도 많다. 독일의 바이젠(Weizen)이나 쾰시(Kolsch), 벨기에의 윗비어(Witbier)나 세종(Saison) 등은 모두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에로 만들어지기에 미국의 분류법상 에일에 속한다. 하지만 뜬금없이 자기네 나라의 전통 있는 맥주들이 분류법상 원래 영국 맥주를 칭하던 말에 속한다고 한다면 자국민으로서 기분이 좋진 않을 테니 말이다. 김치가 피클에 속한다는 얘기를 들은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결국 이러한 분류법을 따르는 방향으로 시류가 흐르는 것은, 아무래도 이것이 앞서 말했듯 가장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분류법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에일과 라거는 ‘에일은 에일 효모로 만든 맥주고, 라거는 라거 효모로 만든 맥주다’라는 매우 짤막한 말로 정리되었다. 덕분에 사워 에일, 벨지안 골든 스트롱 에일, 트라피스트 에일 등 영국과 아무 연관이 없는 맥주에도 에일이라는 말이 붙게 되었고 말이다. 그럼 이제 드디어 본론이다. 에일 효모와 라거 효모는 뭐가 다르기에 이들을 구분하게 되었는가? 그래서 맥주 맛에는 어떤 차이가 생기는가?
일단 효모가 무엇인지부터 간단히 살펴보자. 효모는 버섯과 같은 곰팡이류(Fungi)에 속하는 미생물이다. 우리가 흔히 일상생활에서 ‘효모’라 말하는 것은 여러 종류의 효모 중 당분(탄수화물)을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바꾸는 능력이 뛰어나고, 병원성이 없고, 발효 후의 맛도 좋은 극소수의 몇몇 효모를 칭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술은 효모로부터 만들어지며, 효모에게 당분을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 맥주, 와인, 막걸리 등 여러 술이 나오게 된다.
인간은 기원전 6000년 전부터 공기 중에 떠다니거나 과일에 붙어있는 효모 등을 이용하여 우연하게 술을 만들게 되었다. 이들은 정확히 어떤 원리로 곡물이나 과일이 술로 바뀌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름의 연구를 통해 더 발효가 잘되는 쪽의 효모를 유지하고, 발효가 잘 안 되는 쪽의 효모는 버리는 과정을 반복하여 좋은 품질의 술을 만드는 효모를 선별하는 과정을 수천 년에 걸쳐 해왔다. 그 결과 대부분의 맥주 문화권에선 맛도 좋고 알코올도 잘 만드는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에라는 축복받은 효모 종이 살아남아 맥주 양조에 사용되었다. 과거엔 냉장기술이 없었으니, 맥주 양조도 당연히 상온에서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긴 시간을 걸쳐 선별된 이 에일 효모 또한 상온(섭씨 20도 부근)에서 맥주를 맛있게 만든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유럽이 전 세계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자 세계 각지의 다른 균들이 유럽으로 들어왔으며, 어떠한 과정인지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으나 사카로마이세스 유바야누스(Saccharomyces eubayanus)라는 효모 또한 유럽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 효모는 우연한 계기로 맥주 통에 들어가게 되었고, 에일 효모와 만나게 된다. 그리곤 둘의 유전자가 교잡하여 서로의 특징이 결합한 새로운 효모가 탄생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사카로마이세스 파스토리아누스, 즉 라거 효모다. 라거 효모는 에일 효모의 알코올을 잘 만드는 능력과 사카로마이세스 유바야누스의 추위에 잘 버티는 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효모였다. 그래서 한창 라거가 개발되고 효모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다른 효모를 제치고 인간에게 선택받은 효모가 되었다.
정리하자면 첫째로 에일 효모와 라거 효모는 아예 종이 다른 효모라는 것이다. 같은 고양잇과 동물이어도 사자와 호랑이가 눈에 띄게 차이가 나듯이 말이다. 그래서 완벽히 같은 컨디션에 두어도 활동 방식과 서로 만들어내는 물질이 다르고, 결과적으로 맛도 다르다.
둘째로 에일 효모는 보통 상온에서 맥주를 맛있게 만드는 효모, 라거 효모는 보통 저온에서 맥주를 맛있게 만드는 효모라는 것이다. 물론 에일 효모라고 저온에서 맥주를 못 만들고, 라거 효모라고 상온에서 맥주를 못 만드는 것이 아니다. 소수지만 실제로 그렇게 만드는 맥주도 존재하며(쾰시, 알트비어, 캘리포니아 커먼 등) 이런 맥주들은 하이브리드 맥주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이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에일은 상온, 라거는 저온에서 만들어진다. 이런 둘의 차이 덕분에 생겨난 말이 있으니, 앞서 말했던 상면발효와 하면발효다.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배웠던 것을 잠시 되살려보자. 대부분의 화학반응은 온도가 높을수록 빠르게 일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발효 역시 복잡한 화학반응이므로 이 법칙을 따른다. 같은 조건이라면 더 높은 온도에서 더 빠르게 발효가 이루어진다(효모가 죽을 온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주로 저온에서 발효하는 라거보다 주로 상온에서 발효하는 에일이 훨씬 빠른 속도로 발효가 일어난다.
효모는 당을 먹고 알코올을 만들면서 동시에 이산화탄소를 만든다. 알코올을 빠르게 만들면 이산화탄소 역시 빠르게 생성된다. 생성된 이산화탄소는 효모의 세포벽을 통해 배출된다. 그런데 이산화탄소의 배출 속도가 빠르면 효모의 세포벽에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달라붙어서 효모에게 부력을 부여하게 된다. 그래서 높은 온도에서 발효가 한창 빠르게 진행중일 땐 효모가 맥주 위로 떠 오르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렇게 위로 떠 오른 효모는 서로 달라붙어서 막을 형성하고,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이산화탄소로 인해 거품이 보글보글 생기는 현상을 보인다. 반대로 낮은 온도에서 발효가 진행중일 땐 이산화탄소를 천천히 생성하니 효모가 아래로 가라앉는 경향을 보이며, 눈에 띄게 거품을 만들어 내지도 않는다. 이게 바로 상면발효와 하면발효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다. 이를 통해 ‘에일은 상면발효로 만들어지고, 라거는 하면발효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다만 상면발효와 하면발효란 말은 앞서 언급했듯 효모의 존재조차 몰랐던 1400년대에 생겨난 말이며, 고로 현대에 사용하기엔 어폐가 있는 말이다. 발효 온도에 따라 효모가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가라앉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효모가 위나 아래 어느 한 곳에만 집중적으로 몰려서 발효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효모는 가라앉는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한창 발효가 진행 중일 땐 에일 효모건 라거 효모건 맥즙 내부에 적당히 퍼져서 발효를 진행한다. 그리고 현대의 에일과 라거 분류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 에일을 저온에 발효하거나 라거를 상온에 발효하는 경우엔 에일 효모가 아래로 가라앉고 라거 효모가 위로 떠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단어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중들이 에일과 라거를 이해함에 있어서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온에 발효를 했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는 것이고 저온에 발효를 했기 때문에 아래로 가라앉는 것인데, 많은 자료들이 이 인과를 무시하고 상면발효와 하면발효라는 단어만을 활용하여 효모가 위로 올라가면 에일, 아래로 가라앉으면 라거가 된다고 설명한다. 이는 결국 혼란을 가중하는 역할만 한다. ‘효모가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내려가? 왜 그러는데? 그럼 맥주가 어떻게 변하는데?’라는 또 다른 질문만 낳게 되는 것이다. 과거 유럽에서 쓰던 말을 이용해 현대의 에일과 라거를 설명하려고 하다 보니 생겨난 참사다. 굳이 상면발효, 하면발효 얘기를 하고싶다면 상온발효, 저 온발효란 말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것이 더 직관적이고 더 정확하지 않겠는가.
결론적으로 상면발효, 하면발효라는 말은 에일과 라거의 차이를 설명하기엔 그리 적합하지가 않다. 진짜 주목해야 할 점은 효모가 위로 뜨고 가라앉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효모의 종에 따라 어떻게 다른 맛을 만드는지, 발효 온도의 높고 낮음에 따라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그 얘기를 이제부터 해보도록 하자.
일단 시중에서 접할 수 있는 에일과 라거에 대한 오해부터 풀고 시작해보자. 흔히들 에일은 쓰고, 색이 진하고, 향이 많다고들 하지 않는가. 이러한 말은 편의점이나 대형마트만 가봐도 충분히 반례가 많다. 우선 쓴맛은 효모와는 크게 관계가 없으며, 주로 홉의 영향을 받는다. 바이젠이나 호가든 같은 소위 ‘밀맥주’들은 쓴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데 에일인 반면, 최초의 황금색 라거인 필스너 우르켈은 꽤나 씁쓸하다. 색도 효모와는 별 관련이 없으며, 주로 보리의 영향을 받는다. 맥주 입문자들이 가장 많이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코젤 다크가 라거라는 사실이다. 하이네켄 다크 같은 경우엔 대놓고 ‘다크 라거’라고 써있기까지 하다. 어지간한 라거보다 밝은 색을 지닌 에일도 넘쳐난다. 또 에일이 라거보다 일반적으로 향이 풍부한 건 사실이나, 향신료나 홉의 양에 따라 이 또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고로 다 부정확한 말이다.
에일과 라거의 맛의 차이는 발효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효모는 알코올을 만들고 생명 활동을 하는 동안 여러 가지 부가적인 물질을 생성하며, 이것들이 맥주에 다양한 맛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발효부산물이라 부른다. 효모마다 소비하는 물질이 다르고, 생성하는 발효 부산물이 다르므로 효모에 따라 맥주 맛은 달라진다.
에일 효모는 에스테르와 페놀을 비롯한 다양한 풍미를 지닌 발효 부산물을 많이 생성하는 경향이 있다. 에스테르는 향긋한 과일 향이 나는 여러가지 물질이라 생각하면 된다. 바이젠에서 나는 바나나 향, 벨지안 트리펠에서 느껴지는 배와 복숭아 향, 영국의 페일 에일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딸기, 베리 향 등이 에스테르의 풍미들이다. 페놀은 향신료, 혹은 아릿한 병원 냄새 같은 느낌을 주는 물질이다. 바이젠에서 나는 상쾌한 정향(Clove)의 느낌, 세종을 비롯한 벨기에 에일에서 느껴지는 톡쏘는 후추 느낌 등이 페놀에 의한 것이다. 이외에도 발효부산물에 의한 풍미는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하다.
반대로 라거 효모는 에스테르와 같은 발효부산물을 훨씬 적게 생성한다. 그래서 완전히 같은 레시피의 맥주일 경우엔 라거 효모로 만든 것이 에일 효모로 만든 것에 비해 보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맛을 보인다. 또한 라거는 황의 뉘앙스를 조금 더 풍기는 경향이 있다. 보통 에일은 높은 온도에서 발효를 진행하기에 황화물이 생성되더라도 다량으로 생성된 이산화탄소와 함께 휘발되곤 한다. 반면 라거는 보통 저온에서 천천히 발효를 진행하므로 미처 휘발되지 못한 약간의 황화물이 맥주 안에 잔존하게 된다. 황은 다량 존재하면 유황온천, 썩은 달걀, 심하면 휘발유 같은 안 좋은 인상을 주는 이취이나 극소량만 존재한다면 맥주가 신선하다는 인상을 부여한다. 이런 은은하고 상쾌한(?) 황 뉘앙스를 ‘라거스러움’으로 인지하기도 한다.
추가로 효모는 발효 온도가 높으면 발효 부산물을 많이 생성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같은 효모여도 고온에서 발효시킨 맥주가 좀 더 많은 풍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풍미이건 나쁜 풍미이건 간에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보통 상온에서 발효하는 에일이 라거보다 좀 더 다양한 풍미를 지니게 된다.
종합해보면 에일은 라거보다 조금 더 풍미가 많으며 다양한 편이고, 라거는 에일보다 좀 더 단순하고 직관적이라는 것이다. 그럼 향이 많으면 에일이구나 싶겠지만 사실 발효부산물에 의한 풍미는 보리(맥아)나 홉, 과일이나 향신료 같은 부재료에 의한 풍미에 비하면 꽤나 미약하다. 홉을 왕창 때려 넣은 인디아 페일 라거(India Pale Lager) 같은 경우는 어지간한 에일 뺨치게 향이 강력하다. 또한 향을 많이 절제하는 에일 효모도 존재한다. 위에서 에일 효모의 풍미로 든 예시들은 특별히 존재감이 유독 강한 에일 효모의 경우를 예로 든것이다. 미국의 에일 효모 같은 경우는 정말로 미묘하고 은근한 향만을 만들어내기에 효모의 특성을 잡아내기가 쉽진 않다.
이렇게까지 긴 이야기를 해놓고 참 허무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에일과 라거는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명확한 차이가 나진 않는다. 양조사가 마음먹고 사람들을 속이려 들면 전문가가 아닌 이상 에일과 라거를 맛만으로 구분하긴 매우 힘들다. 그럼 구분이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 싶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완전히 같은 레시피에 효모만 다르게 쓴 맥주를 비교하여 먹어보면 생각보다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다만 이러한 비교군 없이 맥주 하나만 달랑 두고 이게 에일이냐 라거냐를 판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일례로 포터(검은색 에일)와 둔켈(검은색 라거)을 같이 두고 비교하면 둘중 뭐가 더 라거스러운지 느낌은 오지만, 둘 중 하나만 두고 라거인지 에일인지를 맞추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에일과 라거를 구분하게 된 것은 소비자의 편의를 위한 의미보단 양조사들과 전문가들을 위한 의미가 더 크다고도 볼 수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에일의 풍미가 좀 더 다채로울 확률이 높고, 라거는 상대적으로 풍미가 좀 더 단순하고 직관적일 확률이 높다는 것 정도가 되겠다.
그렇다. 에일과 라거의 차이에 대해 한참을 얘기해 온 글의 결론은 놀랍게도 에일과 라거 막 엄청 차이 나지도 않으니 그렇게 열심히 따지고 먹진 말자는 것이다. 특히 입문자는 더더욱 그렇다. ‘나는 에일은 써서 싫고 라거가 좋더라’ 하면서 골든 에일인 빅 웨이브를 집어들던 손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에일은 향이 있어서 싫다더니 영국 본토의 진짜배기 에일을 맛있다고 연거푸 들이켜던 사람도 있었다. 아직 맥주를 다양하게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에일이 어쩌고, 라거가 저쩌고 하는 이야기는 괜한 선입견만 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많이 마시고, 경험해보시라. 이 맥주의 세계는 고작 두 가지로만 나눠서 기억하기엔 너무나도 넓고, 매력 있는 것들이 넘쳐나니 말이다.
Etitor: 김정환 Junghwa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