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 브루잉 컴퍼니의 브릿 페스트 2019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 맥주로 샤워라도 해야 직성이 풀릴듯한 뜨거운 나날이 코앞이고, 전국 각지에서는 지역색을 살린 맥주 축제가 저마다 성행하고 있다. 그 와중에 자신만의 색깔을 녹여내 독자적 축제를 개최한 브루어리가 있었으니, 바로 부산 광안리에 위치한 고릴라 브루잉 컴퍼니다.
웬만한 맥주 축제에 가면 고릴라 브루잉의 맥주 부스는 거의 항상 만나볼 수 있었다. 그만큼 축제에 가장 활발히 참여하는 브루어리 중 하나다. 게다가 그저 부스를 지키고 ‘맥주를 제공하는 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축제에 함께 녹아들어 방문객 못지않게 즐기는 듯한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모습이 유독 눈에 띄곤 했다.
이렇듯 ‘잘 노는’ 고릴라 브루잉이 이번엔 직접 축제를 기획하고 개최했다. 다름 아닌 ‘영국 맥주 축제’다.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10개 영국 브루어리의 맥주를 직접 선보인다는 소식에 많은 맥주 애호가들의 가슴은 설렐 수밖에 없었다.
영국 맥주 축제는 날씨 좋고 바람 좋은 6월 21일과 22일 양일간 광안리에 위치한 고릴라 브루잉 컴퍼니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온라인으로 판매된 얼리버드 티켓이 조기 품절되었고, 현장 티켓 역시 축제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의 밀도가 높았던 이번 축제는 광안리의 여름밤을 한껏 달구어놓았다. 티켓 구매자들은 입장하는 순간부터 온갖 최신 영국 맥주를 무제한으로 들이켜는 호사를 누렸다. 방문객에게는 축제에서 흔히 사용되는 플라스틱 컵 대신 ‘Brit Fest’가 곱게 새겨진 기념 유리잔이 제공되었다.
바닷바람을 몰고 고릴라 브루잉을 방문했을 때 앤디 대표와 직원들은 축제 준비로 분주했다. 축제를 앞장서서 주관한 앤디 그린 대표는 축제 기획 계기를 묻자 ‘아직 우리가 안 해본 것이니까’라고 쿨한 대답을 내놓았다. 영국에서 즐기던 류의 축제를 고릴라 브루잉의 방식으로 재창조하고 싶었다고도 덧붙였다. 한국에도 이미 좋은 축제가 많이 있지만, 그와 조금 다른 것을 선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요즘 좋은 축제들이 많이 열리고 있고, 여러 방식으로 브루어리들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런 축제를 한번 준비하려면 브루어리나 행사 기획자 모두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한국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 전반적으로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봐요. 이번 영국 맥주 축제에서는 조금 더 친밀하고 느긋한 분위기를 만들어보고자 했어요. 좋은 맥주와 음식, 지역 DJ의 음악이 함께하는 파티같은 느낌이요.
그가 추구하는 축제의 모습은 진행 절차나 겉치레에 얽매이고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무언가라기보다는, 그저 자연스럽고 느긋하게 녹아들 수 있는 어떤 ‘분위기’에 가깝다. 또한 방문객들이 맥주 부스에 길게 줄 서거나 어떤 맥주를 고를지 고민하기 보다는, 그저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대로 즐기고 머무는 상황을 그렸다. 그는 영국에서 방문했던 런던 크래프트 맥주 페스티벌에서도 영감을 크게 받았다고 했다.
이번 축제에서 소개된 영국 브루어리는 총 10 군데로, 벅스톤 브루어리, 노던 몽크, 집시 힐 브루잉 등 최근 영국에서도 새로이 펼쳐지는 ‘크래프트 맥주’ 붐을 이끌어가는 다양한 브루어리의 맥주를 맛볼 수 있었다. 아직 한국 시장에 진출하지 않은 이 브루어리들은 새로운 시장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고릴라 측에 자사 맥주를 2 케그씩 흔쾌히 제공했다. 고릴라 측에서는 축제 기간 이 맥주들을 한꺼번에 풀지 않고, 이틀에 걸쳐 시간 별로 새로운 맥주를 출시함으로써 맥주에 대한 방문객들의 주목도와 호기심을 고조시켰다.
“한국에선 아직 영국 크래프트 맥주가 그다지 부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현재 미국 맥주에서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국 역시 훌륭한 크래프트 맥주를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앤디 대표는 이번에 영국 현지의 수출입업자를 통해 맥주들을 들여왔지만, 향후엔 직접 영국 맥주들을 국내에 수입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빠르게 동이 날 정도로 반응이 좋았던 맥주 중 하나는 바로 노던 몽크 브루어리의 트리플 IPA였다. 열대과일의 과즙 풍미가 입안 가득 터지는 이 뉴잉글랜드 스타일 IPA는 알코올 도수가 10.5%, IBU가 25였으며 탁월한 음용성을 자랑했다.
이 밖에도 세션 망고 사워, 유자를 넣고 만든 시트라 사워, 베리류 1톤을 넣고 만들어 스무디 같은 질감을 낸 프룻 사워, 피나 콜라다 같은 맛을 재현한 베를리너 바이세, 크바이크 효모로 만든 더블 드라이 홉 사워 IPA 등 국내에서 그리 널리 생산되지 않는 재기발랄한 맥주들이 라인업을 채웠다. 그중에는 고릴라 브루잉이 영국에서 브루어리들과 협업하여 만든 맥주 2종류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앤디 대표는 고릴라 브루잉이 이번 축제를 일회성 행사로 멈추지 않고, 매년 진행하는 축제로서 점차 성장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영국 맥주 축제’라는 테두리 안에서 영국 맥주들을 소개하는 자리였지만, 앞으로는 비단 영국 맥주뿐 아니라 아시아 문화권의 다양한 맥주들을 들여와 소개함으로써 브루어리와 사람들 간 교류를 촉진하는 자리 역시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행과 국제적 행사 및 협업을 거치며 우리는 크래프트 맥주 산업 안에서 훌륭한 동지들을 많이 사귀었습니다. 앞으로 그들과 그들이 만들고 소개하는 맥주들을 한국 시장에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에 따라 향후 ‘영국 맥주 축제’는 ‘고릴라 맥주 축제’라는 이름으로 확장할 가능성도 있다.
여러 소규모 브루어리들이 소비자를 더 적극적으로 만나고자 맥주 축제에 참가하지만, 막상 축제에 참가할 때면 판매 수익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고릴라 브루잉의 이번 영국 맥주 축제는 본연의 즐거움에 집중하고 고유한 브랜드 이미지를 공고히 하며 소비자들과 더 밀도 있는 시간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동시에 국내에 새로운 문화를 소개 및 전파한다는 점에서 퍽 의미 있는 자리였다. 한편 고릴라 브루잉은 7월 중 부산에서 생산 시설을 더 큰 규모로 증축 및 이전할 계획이며, 해운대 해변에 두 번째 탭룸을 오픈할 계획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소비자와 독자적인 방식으로 만남을 도모하고 유행을 이끌어갈 그들의 행보가 기대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