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도시가 함께 만드는 브랜드의 힘- 칭다오에 다녀왔습니다.
일 년, 혹은 격년으로 한 번씩 칭다오를 간다. 비행기표를 끊고 간다는 소식을 알리면 지인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또?”, “맥주 마시러 가?” 한 번 본 영화 다시 안 보고 한 번 간 맛집도 어지간해 부러 두 번 가지 않는, 세상에는 먹고 마시고 여행할 새로운 곳들이 너무 많다고 믿는 내가 다시 찾아가는 그 곳. 칭다오에 또, 맥주를 마시러 간다. 한 개그맨이 성인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외친 ‘양꼬치엔 칭따오!’가 전국구 유행어가 되고, 유행어에 힘입어 그 개그맨은 일약 광고 스타가 되고, 양꼬치 전문점을 비롯한 중국 음식점들이 때맞게 유행하자 순식간에 칭따오 맥주 해외 수출국 중 한국이 1위를 달성해버린게 불과 삼 년 만의 일이다. 작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매출 1,263억원을 달성하고야 만 중국 브랜드 맥주. 결국 유행어 하나가 브랜드 슬로건이 된, 우리에게는 도시보다 맥주로 더가 까운 칭다오.
칭다오 시를 부르는 다양한 별명들이 있다. 중국 국영방송은 칭다오를 ‘브랜드의 도시, 장인(匠人)의 도시’로 소개한다.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장 많이 팔리는, 무려 80여개국에 자사 맥주를 수출 중인 칭다오 브루어리를 비롯해 하이얼(Haier)과 하이센스(Hisense) 등 중국 내 다수 기업들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또한 연간 관광객 1억명이 방문하는 도시로, 인천에서는 비행기로 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국내 한 여행사 조사 결과 올 초 황금연휴기간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은 해외 여행지 5위에 들었고, 세계 4대 맥주 축제 중 하나인 ‘칭다오국제맥주축제’에는 작년 기준 620만 명이 해당 주간에 도시를 방문했다. 작년 한 해 칭다오시 내에서만 1900억 위안(한화 32조 8,000억원)의 여행 소비액이 집계되었는데, 이 매출액의 많은 부분이 칭다오 맥주 박물관과 칭다오 국제 맥주축제에서 발생되었다. 이는 칭다오 맥주가 단순히 브루어리를 넘어 한 도시에 큰 영향력을 기여하는 지 알 수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에서 ‘메이드 바이 칭다오’로
칭다오 맥주는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다수의 수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중국 라거다. 중국 브랜드 최초로 아시아 50대 유명 브랜드로 선정되었고, 중국의 영향력 있는 기업 10위권에 매년 이름을 올린다. 중국 내에서는 화룬쉐화에 이어 판매량 2위를 기록하고 있으나 매출은 전자보다 2배 더 높다. 중국 내에서도 칭다오는 프리미엄 맥주로 인식되고 있으며 브루어리도 이에 고급화 전략에 속도를 가하며 칭다오 맥주 박물관 근처에 대형 탭룸과 기념품샵을 새로 단장하고 IPA, 스타우트, 무알콜 음료 등 다양한 라인업을 생산하고 있다. 칭다오에 오는 많은 해외 관광객들은 칭다오 맥주를 통해 도시를 먼저 알게 된다. 칭다오 시 또한 칭다오 브루어리와 협력해 다양한 행사와 행정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칭다오 시내를 걷다 보면 눈이 닿는 구석구석 칭다오 맥주 로고를 마주한다. 칭다오 시민들은 로컬 브루어리에 자부심을 갖고 홍보대사를 자처한다. 맥주가 콘텐츠가 되어 지역경제와 도시 브랜딩을 이끌어 나가는 셈이다
칭다오 브루어리는 1903년 독일인과 영국인이 합작으로 ‘게만 칭다오맥주회사’를 세운 것이 시초다. 당시 칭다오가 속한 자오저우만은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자국 맥주를 수입해오는데 한계를 느낀 독일인들의 니즈를 파악한 사업가들은 중국 내에서도 최고의 물로 손꼽히는 라오산 물에 주목했고, 곧 독일 양조장비와 기술을 접목해 칭다오 맥주를 탄생시켰다.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칭다오 브루어리의 대표 맥주는 라거다. 칭다오 맥주는 기본 원료 외에 부가물로 쌀이 첨가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칭다오 사람들은 쌀이 들어가 은은한 재스민 향이 난다고 하고, 달짝지근한 끝 맛도 미세하게 느껴진다고 설명한다 칭다오 맥주는 창립 후 첫 양조 때 썼던 최초의 효모를 지속적으로 배양해 현재까지 맥주로 만들고 있다. 칭다오 시에 방문하면 제 1 공장에서 갓 생산된 신선한 맥주를 비롯해 원장(原浆) 맥주, 프리미엄 라인인 오거타(奧古特)를 비롯해 최근 런칭한 칭다오 IPA까지 생으로 맛볼 수 있다. 맑고 청량한 맛에 연령대를 불문하고 중국 요리와 잘 어울리는 맥주로 손꼽히는 칭다오 맥주. 한 낮 구시가지의 거리나 해변가, 퇴근시간 버스 안에서 생맥주가 담긴 비닐봉지나 페트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현지인들은 가까운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원하는 용량만큼의 맥주를 비닐봉지에 포장해간다. 아침 일찍 공장에서 나온 신선한 맥주를 차(茶)처럼 즐기는 모습도 자연스럽다. 도수가 낮은데다 시간대를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술을 즐기는 문화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칭다오 맥주 박물관
칭다오 맥주 박물관은 칭다오 맥주 제 1공장과 같은 위치에 있다. 과거 허름한 벽돌 공장에 불과했으나 올 초 대대적인 리뉴얼을 마치고 기념품 샵을 비롯해 대형 탭룸과 상영관, ‘비어 카페’라고 불리는 펍이 신설되었다. 작년 초 겨울 칭다오를 방문 했을 때 맥주 박물관에 적잖이 실망했었다. 중국 내 현존하는 유일한 맥주 테마 박물관이자 1903년 개장한 이래 아직도 운영 중인 역사적인 공장과 연결된 박물관이라 기대가 컸던 탓이었을까. 고풍스러운 독일식 벽돌 건물에 대형 맥주 캔이 올려진 외관은 인상적이었으나 부실한 안내문과 열악한 시설, 다소 무성의한 전시 구성은 불친절하게 느껴졌다. 출구 쪽 구석 매대에 놓인 기념품이나 맥주 종류도 한정적이었다. 티켓 값에 포함된 무료 시음권으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빈 손으로 박물관을 빠르게 빠져나온 게 다였다.
그러나 올해 재방문한 맥주 박물관은 입구부터 탄성을 자아냈다. 짙은 초록색으로 깨끗하게 간판과 벽을 칠했고, 내관도 같은 색깔과 오크 색의 나무 가구들로 통일감을 주었다. 주요 장소와 동선마다 한자와 영문 폰트가 세련되게 배치되었고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매표소에서는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기존에 한 개 밖에 없던 입장권이 열 가지 종류로 세분화되었으며 시음할 수 있는 맥주의 종류도 오리지널 라거 한 종류에서 IPA, 스타우트, 원장을 포함한 네 가지 종류까지 확대되었다. 입장권 안내 스크린에서는 중국어, 영어, 한국어, 일본어, 독일어 등 여러 언어의 안내 화면이 수시로 등장했다. 매표소 맞은 편에 새로 생긴 비어 카페는 펍과 카페를 겸하는 곳으로 맥주 박물관을 입장하지 않는 사람도 자유롭게 들어가 맥주와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꾸며졌다. 벽 전면에 조각으로 새겨져 초록색으로 빛나는 대형 홉 모형이 인상적이었다. 카페뿐 아니라 맥주 박물관 내부 인테리어 곳곳에 홉이나 몰트, 라오산 물 등 맥주의 원재료들을 비롯해 오크통, 지도, 옛 로고 등 조각이나 그림, 벽지의 패턴으로 작은 귀퉁이마저 신경 쓴 점이 돋보였다.
또한 역사관이 크게 확장되었는데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옛 사료들과 기록들, 라벨과 광고 등이 각 방에 연도별로 구성되어 있어 창립 116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칭다오 맥주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해왔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어와 영어 안내문이 각 방마다 상세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홀로그램과 시청각 자료를 비롯해 체험형 터치 스크린 등이 추가되어 방문객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칭다오의 역사를 따라가는 방들이 좁고 통로같이 이어진데 비해 현재를 보여주는 관은 넓은 홀로 트여있다. 한 쪽 벽에는 칭다오가 수상한 국내외 상들이 트로피와 상장으로 진열되어 있고 역대 중국 국가 주석들을 비롯해 국내외 유명인들의 방문 사진이 걸려있다. 이 모든 벽을 지나 역사관의 마지막 벽에는 칭다오 공장 직원들의 단체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 밑 안내문에는 칭다오 브루어리가 꿈꾸는 미래는 ‘사람’이며 노동자의 행복과 복지가 최우선이라 쓰여 있다.
칭다오 맥주 박물관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은 유리벽과 다리를 통해 실제 공장이 운영되는 과정을 투명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제 1공장 일부를 공개하고 있으며 양조장과 패키징 시설을 볼 수 있다. 실제 유통되는 캔과 병입 과정을 비롯해 검수와 선별, 포장 과정까지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볼 수 있으며 쉼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와 기계들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박물관 중간 지점의 작은 비어 바에서 나눠주는 무료 시음 맥주와 꿀 땅콩도 별미다. 극장을 비롯해 크게 확장한 기념품 샵에서는 칭다오 제 1공장 맥주의 병과 캔 전 라인과 병따개를 비롯해 잔과 인형, 의류와 문구 심지어 맥주 화장품과 홉 커피 스틱, 맥주 초콜릿을 비롯해 다양한 관련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장바구니에 가득 맥주와 기념품들을 담아 계산대에 줄을 섰다. 실내 자전거를 타고 스크린으로 칭다오 시내를 다닐 수 있는 게임과 들어가면 술에 취한 느낌을 주는 ‘기울어진 방’ 체험관에도 방문객들의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칭다오의 변신은 무죄
칭다오에 가는 주된 목적은 오로지 칭다오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맥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칭다오 맥주거리를 비롯해 미식 거리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원장 맥주는 가장 좋아하는 맥주다. 원장, 혹은 위엔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맥주는 효모를 거르지 않은, 즉 언필터된 맥주로 부가물인 쌀이 첨가되지 않은 오리지널 생맥주다. 제 1공장에서 당일 공급받아 24시간 내로 소비하거나 이후 폐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색이 뿌옇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보통 식당에서는 유리 저그에 내어주는데 이 때 물컵보다 매우 작은 잔에 따라 수시로 마시는 게 특징이다. 칭다오 맥주는 수출국마다 맛을 다르게 해서 출시하기 때문에 내수용과 차이가 있다. 한국 수출용은 중국 내수용에 비해 맥아즙 함유량이 높다. 내수용 또한 맛이 다르다. 중국 내 51개의 칭오 맥주 공장이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중국인들도 칭다오 제 1공장 맥주를 마시기 위해 여행을 온다고 할 정도다. 칭다오 제 1공장에서 생산된 맥주들은 병목의 라벨 색이 다르며, 박스에도 ‘제 1공장 생산’이라는 표기가 되어 있다. 제 1공장 칭다오 맥주들은 같은 라인도 두 배 더 비싸게 팔린다.
칭다오 맥주 박물관 탭룸에서는 생맥주 샘플러를 비롯해 무알콜 맥주나 칭다오 IPA, 필스너를 비롯해 최초 오리지널 레시피를 복원, 그 시절과 같은 라벨을 부착한 칭다오 맥주와 한국 수출용과 맛이 다른 순생과 스타우트를 구매할 수 있다. 원장 맥주 또한 1L 혹은 5L 캔으로 판매하나 생맥주와는 맛 차이가 있으며 캔입일 기준 일주일 내로 소비해야 한다. 콜라보레이션도 활발하다. 주로 라벨지를 바꿔 한정판을 내는 방식인데 매년 12간지 에디션을 비롯해 중국 아티스트와의 협업, 각종 드라마와 게임을 비롯해 중국 인기 배우나 캐릭터의 얼굴을 넣기도 한다.
최근 칭다오는 중국 내 프리미엄 맥주를 비롯한 고급화 전략으로 라거를 벗어나 크래프트 맥주를 모델로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를 출시할 계획을 밝혔다. 아직까지 중국 사람들은 맥주를 미지근하게 먹는 문화가 있어 병과 캔을 비롯해 케그도 실온에 방치되는 경우가 많지만 점점 더 칭다오 시 내에서도 콜드체인이 강화되고 케그레이터가 보편화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맥주가 도시를 만들고 도시가 맥주를 만드는 곳. 로컬 맥주인 칭다오 맥주가 성장할수록 관광을 중심으로 칭다오 시의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며 고용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칭다오 맥주 박물관의 대대적인 리뉴얼과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는 칭다오국제맥주축제가 좋은 예시다. 브루어리와 도시가 서로 협력하며 ‘칭다오’라는 브랜드를 키워 나가는 선순환적 고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돌이켜본다. 일부 맥주 공장들이 견학을 비롯해 방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표적인 맥주 콘텐츠 시설이나 박물관은 없는 실정이다. 광고 모델은 매번 바뀌지만 라거 외 다른 맥주는 실험하지 않는 공장들, 아직 국제적 규모로 크기에는 여건이 어려운 맥주 축제들과 지속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소극적인 역할과 지원 등은 고민해 볼 문제들이다. 116년의 역사를 가진 칭다오 브루어리도 박물관을 세우고 지자체와 협력해 국제맥주축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칭다오 브루어리의 현재 행보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주류 라거에만 편승하지 않고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고 있으며 지자체를 비롯해 지역 소상공인들과 소통하며 관련 교육과 지역 환원 사업도 이어가고있다. 우리에게도 도시를,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로컬을 존중하고 또 존중받는 크래프트 맥주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 생기길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