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CE 2019- 중국 맥주 전시회로보는 맥주 산업
5월 15일부터 17일까지 상하이에 위치한 Shanghai World Expo Exhibition & Convention Center에서 Craft Beer China Conference & Exhibition 2019(이하 CBCE)가 열렸다. 본 박람회는 뉘른베르크 메세 차이나(Nürnberg Messe China)가 개최했는데, 이는 독일 전시 전문 회사인 뉘른베르크 메세(Nürnberg Messe)의 자회사로 2007년 5월 상하이에 진출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미국, 이탈리아, 한국, 독일, 벨기에, 체코, 스페인 등 11개국에서 온 250개의 업체 및 40여명의 연사가 참가해 각종 전시 및 콘퍼런스 행사가 기획되었다.
맥주는 전 세계 알코올음료 시장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항목이다. 아시아 시장에서도 맥주는 가장 많이 소비되는 알코올음료다. 아시아의 맥주 소비량은 전 세계 맥주 소비량의 1/3을 차지하며, 그중에서도 중국의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다. 중국은 아시아 전체 맥주 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큰 시장이다.
미국을 제치고 중국 맥주 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01년이다. 중국 맥주 시장은 설화(雪花), 칭다오와 같은 대형 맥주 회사와 글로벌 맥주 브랜드를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다 벨기에 등 유럽 전통 맥주들이 소개되며 점차 다양성을 확보해갔고, 미국 크래프트 맥주가 중국 시장에 소개되면서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불린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맥주 시장에서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브루어리가 중국산 맥주 생산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커플러, 포싯 등 생맥주 추출 관련 용품, 스테인리스 케그, 일회용 케그와 같은 소비재도 중국에서 활발히 생산된다. 기자재를 생산하면서 자연스레 이루어진 기술의 축적과 맥주 문화의 이식은 마침내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필자에게 CBCE는 처음 방문하는 해외 박람회이자 첫 중국 출장이었다. 비어포스트에서 처음 가는 해외 출장이자 박람회인 만큼 이번 박람회를 잘 전달하고 중국 맥주 시장, 나아가 아시아 맥주 시장의 방향을 읽어보자는 목표를 품고 비행기에 올랐다.
상하이 푸둥 공항에 도착하며 출장 일정이 시작되었다. 처음 방문한 상하이는 낯선 인상을 주었다. 착륙하며 바라본 상하이 항에는 겐트리크레인이 늘어서 있었고 컨테이너가 하역장 가득 쌓여있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 항이기에 중국이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복잡한 공항 주변의 도로를 지나 상하이시로 가는 길은 조금 전의 공업화된 모습과는 상반된 느낌을 준다. 지붕이 붉고 뾰족한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마치 유럽 주거지같은 인상을 주는 동네를 지나 도심 속으로 들어서자, 어느새 빌딩의 중간에 걸린 도로 위였다. 조금은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이 풍경은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의 모습과 함께 가장 먼저 개방된 상하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전시회의 구성
2016년 처음 시작된 CBCE는 매년 그 규모가 눈에 띄게 성장하며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지난해 전체 면적 3151 제곱미터, 참가 업체 169개, 방문객 8,321명이었는데 올해는 면적 15,000 제곱미터에 참가 업체 250개, 방문객 10,649명을 기록해 규모 면에서 큰 성장을 보였다. 특히 250개의 참가 업체 중 중국 내 브루어리는 88개로 중국 또한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CBCE는 전시회와 콘퍼런스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회는 원재료(Raw Material), 생산 기술 및 기자재 (Production Technology and Equipment), 맥주 브루어리(Beer Brewery), 기술 서비스(Technical Service), 마케팅 서비스 및 기타 서비스(Marketing Services & Other Services) 등 맥주 산업 생태계의 가치 사슬에 해당하는 각각의 기업들이 참여하며 맥주 산업의 전체 구성을 볼 수 있었다.
원재료 부문에는 야키마 치프 홉스(Yakima Chief Hops, 바스하스(BARTH-HASS GROUP), 퍼멘티스(Fermentis), 화이트 랩스(White Labs), 캐슬 몰팅(Castle Malting) 같은 세계적인 홉, 효모, 몰트 회사들을 비롯해 중국의 몰트 회사들이 참가했다.
생산기술 및 기자재 부문에서는 크로네스(Krones), 코막(Comac), HGM, 티엔타이(Tiantai), 항창(Heng Chang) 등 브루잉 장비 업체와 마이크로매틱(Micro Matic), 탈로스(Talos) 등 부품업체를 비롯해 원심분리기, 펍 장비 등 맥주 양조부터 판매 전 과정에 이르는 장비 업체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브루어리 부문은 판다 브루잉(Panda Brewing), 유어브루(Urbrew) 등을 비롯해 대부분 중국 업체들로 구성되었으며, 유럽 및 호주 맥주 수입 업체도 참여했다. 한국 업체로는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와 플래티넘 브루어리가 참가했다는 점이 눈에띈다.
마케팅 서비스 및 기타 서비스 부문의 경우 우리나라 박람회보다 패키징 업체, 그중에서도 라벨 디자인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많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전시회로 보는 중국시장
CBCE 전시회는 전반적으로 중국 시장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람회로서 세계 맥주 시장에서 중국이 하는 역할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가장 많이 참가한 업체는 맥주 브루어리였다. 참가한 80여개 브루어리는 패키징의 화려한 라벨 디자인이 공통된 특징이었다. 브루어리마다 정체성과 개성을 드러내는 화려한 맥주 라벨을 선보이고 있었으며, 이들 맥주는 캔이나 병으로 패키징되어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현재 중국 맥주 시장의 법적 규제와 맞물려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브루어리가 최소 생산량 규정을 충족해야 맥주를 유통할 수 있다. 이는 케그 유통뿐 아니라 병이나 캔맥주의 경우에도 해당한다. 이 때문에 많은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맥주 생산을 OEM 방식(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각 브루어리는 자사 맥주 맛의 차별성을 명확히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아무리 레시피가 다른 맥주라고 할지라도, 같은 양조장에서 생산한다면 그 특성이 맥주의 맛에 드러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은 라인 맥주 판매가 가능한 국가라는 점도 패키징 산업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으로 맥주를 구매할 시 패키징이 초기 제품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직접 맛을 보고 첫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기에 첫인상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면 중국 내 브루어리들의 맥주 맛에는 전반적으로 아쉬운 지점이 있다. 액상 효모의 유통이 원활치 않아 아직까지 건조 효모의 사용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건조 효모의 경우 액상 효모보다 양조 후 ‘효모의 맛’이 두드러지는 편이고, 사용할 수 있는 종류 역시 제한적이다. 물론 건조 효모를 사용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며, 이는 재료의 다양성에 관한 문제다. 생산과 재료의 제약으로 인해 브루어리 간 맥주 맛의 차별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크래프트 맥주의 품질 역시 최근 몇 년간 눈에 띄는 성장을 거듭했다. 3-4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 크래프트 맥주의 맛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정도로 놀라운 성장과 발전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맥주는 중국 시장 내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 서구권 맥주보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다는 사실은 높은 수준의 맥주를 신선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강점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개최되는 맥주 박람회를 방문한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중국 시장의 반응을 살피고 진출을 모색할 수 있기에 브루어리 입장에서 좋은 전략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회로 보는 세계 시장
전시회에 참여한 기자재 업체는 이미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경우가 많았다. 유명 서구권 업체에서부터 중국 업체까지 다양하게 구성된 브루잉 장비 업체들은 중국이 맥주 산업에 있어서도 ‘세계의 공장’임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의 경우 가장 많이 선택하는 양조 장비가 ZPM, 티엔타이, 캐롤리나 등 중국 브랜드다. 과거 중국 장비 업체는 유럽과 북미 지역의 업체들보다 가격 경쟁력은 높으나 기술과 품질의 측면에서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미국 크래프트 브루어리에 수많은 중국 장비가 공급되고 있고, 크로네스와 같은 세계적인 장비 업체가 중국에 진출하는 것을 통해 알수 있듯이 기술과 품질 면에서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 만큼 그 수준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물론, 가격적 우위는 여전하다. 이와 같은 빠른 성장은 단순히 장비 제작 기술이 이전된 것이 아니라 가격적 우위를 바탕으로 제조 경험이 축적되며 이루어진 결과로 보인다. 이번 박람회에 참여한 수많은 브루잉 장비 제작 업체들은 중국 내에서도 다양한 가격대의 장비가 생산되고 있음을 보여주어, 바이어들이 한정된 예산과 원하는 기술적 수준에 따라 장비를 고를 수 있을 정도로 장비 산업이 계속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브루잉 장비 외에도 이미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일회용 케그를 제작하는 펫테이너, 맥주 커플러, 포싯 등을 제작하기로 유명한 탈로스 등 기자재 업체들 역시 중국 시장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알려주는 듯했다. 특히 탈로스 부스는 자사 일회용 케그와 함께 탄산을 사용하지 않는 맥주 디스펜서와 냉장고를 선보였다. 일반적으로 케그 속 맥주를 추출할 때 커플러에 탄산을 연결하고 주입함으로써 케그 안의 맥주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추출한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 탈로스가 선보인 장비는 탄산 통을 별도로 연결하지 않고 디스펜서의 모터로 공기를 주입해 맥주를 추출하는 디스펜서였다. 기존 맥주 추출 방식보다 공간 효율이 뛰어난 방식으로, 단순한 제조 업체가 아닌 기술 회사임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브루어리 신규 개업 및 증설을 준비하는 회사이거나 각종 기자재 구매를 원하는 곳이라면 CBCE와 같은 박람회를 통해 거래처를 탐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업체를 직접 물색하고 찾아가는 것보다 박람회를 통해 다양한 업체를 비교하는 것이 우수한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를 찾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맥주 시장
중국은 세계 최대의 맥주 시장이다. 여기서 ‘맥주 시장’이란 세계최대의 맥주 소비 시장이자 맥주 기자재 공급 국가라는 점을 내포한다. 이러한 성장의 요인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 급격한 경제 성장, 성장 잠재력을 보고 중국 시장으로 진출한 기업을 꼽을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가 초기 개발도상국이었던 시절처럼 경제성장률이 높고 국민 소득이 증가하고 있다. 소득의 증가는 소비의 다양화로 이루어지게 된다. 초기 경제개발단계에서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는 규모의 경제는 획일적 소비로 나타나지만, 이후 소득이 증가하고 교육 수준이 높아지며 소비의 세분화가 나타난다. 그리고 시장은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발전은 자국 장비 산업의 발전과 함께 소비 수준이 증가하며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상하이는 중국의 대표적인 경제 중심지이자 문화, 상업, 산업, 통신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19세기 중반 개항 이후 발전하기 시작한 상하이는 20세기 초 뉴욕과 런던 다음의 금융중심지로 성장했다. 중국의 폐쇄적인 경제체제로 인해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1992년에 재개발되며 중국의 초기 경제특구였던 선전, 광저우를 능가해 명실상부 중국 최고의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상하이가 경제중심지로 기능하면서 이를 중국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자하는 글로벌 기업의 진출 역시 가속화되었다. 그 결과 소득이 높은 국민과 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식음료 문화를 비롯한 새로운 문화도 빠르게 전파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의 맥주 산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람회가 상하이에서 개최된다는 것은 중국 내 맥주 시장을 넘어 세계 맥주 시장 속 중국 시장을 나타내는 장면으로 느껴진다.
크래프트 맥주가 세계 각지에서 성장하는 이유를 분석하려면 경제적 여건과 취향의 변화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최근 수년간 전세계의 맥주 소비는 감소하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2013년이후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래프트 맥주시장 만큼은 성장하고 있다. 기호가 다양해지고 소위 프리미엄제품에 대한 선호가 늘어나면서, 알코올음료의 소비량은 줄지만 질적인 측면은 강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CBCE의 성장은 중국 크래프트 맥주, 나아가서 기호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중국 맥주 시장은 질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 성장의 이면에는 맥주와 관련한 다양한 산업의 성장이 바탕으로 있다.
CBCE와 같은 전시회 규모의 성장으로 이를 엿볼 수 있다. 산업 전시회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산업의 구성과 경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산업의 성장에 따라 전시회의 규모는 성장하고 그 구성은 더욱 세분된다. CBCE는 맥주 생산 이전에서부터 이후에 이르는 맥주 산업 생태계를 촘촘하게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