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맥주 종량세 개정안 발표
맥주 업계의 숙원인 주세법의 종량세 개편안이 6월 5일 발표되었다.
기획재정부는 당초 4월 말로 예정됐던 주세 개편안 발표를 연기한다고 5월 초 밝힌 바 있다. 기재부는 “(종량세 전환에 대해) 주종간 또는 동일 주종 내 일부 이견이 있어, 조율 및 실무 검토에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고 연기 이유를 설명했다.
정부의 주세 종량세 개편 연기는 처음이 아니다. 2017년부터 공청회 개최 등을 통해 여론을 수렴했고 작년 7월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무산된 바 있다. 또한 기재부는 주세법 개정안 연기를 발표하면서 추후 일정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이대로 종량세 전환이 무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6월 3일 주류 과세체계의 개편에 관한 공청회를 거쳐 6월 5일 기획재정부의 주세 과세체계 개편안이 발표되며 종량세 전환을 위한 첫걸음을 떼게 되었다.
맥주 업계 경쟁력 확보 ‘청신호’
현재의 종가세 체제는 맥주 가격(원가)에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대기업 맥주에 비해 고가의 원료를 사용해 다품종 소량생산을 함으로써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크래프트 맥주에 종가세는 불리한 제도다. 이를 종량세로 바꿀 경우 원가에 관계없이 판매량(알코올 도수 고려 가능)에 따라 과세가 되기 때문에 크래프트 맥주와 대기업이 세금 문제에서는 동일한 선상에 설 수 있게된다.
또한 국산 대기업 맥주 입장에서도 수입 맥주에 비해 불리한 세금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종량세 도입을 원하고 있었다. 국산 맥주의 과세표준은 판매관리비, 이윤 등이 모두 포함된 ‘출고가’다. 반면 수입맥주의 경우 과세표준이 ‘수입신고가(CIF)+관세’로 국내에서 발생하는 판매관리비, 이윤에 대해서는 주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이번 종량세 개편 무산으로 맥주 업계가 입는 타격은 적지 않을것으로 보인다. 맥주 업계에서는 정부의 주세법 개정 시기를 공언함에 따라 이에 맞춰 생산 기반을 확대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 를 시행했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는 최근 경기도 이천에 연간 500만 리터 규모의 양조장을 준공했고 제주 맥주는 연구개발 및 설비 증축에 추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종량세 개편을 통한 시장 확대를 예상하고 투자를 진행한 이들 업체는 주세 과세체계 개편안 발표 소식에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
기재부 “가격 변동 없다.”
기재부의 종량세 전환 계획 발표가 늦어졌던 것은 업계 간 이해관계 격차를 의식해서다. 김병규 기재부 세제실장은 당초 4월말 발표 예정이었던 주세법 개정안 발표가 연기된 이후 “맥주 업계는 대체로 종량세 도입에 찬성하지만, 소주·약주·과실주 업체들은 불확실성이 커진다고 우려한다”며 “업체 간 이견 조율과 실무 검토에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여론의 흐름도 기재부의 발목을 잡았다. 최근 맥주 1위(카스), 소주 1위(참이슬), 위스키 1위(디아지오코리아 다수 제품) 제품 및 기업들이 가격을 일제히 올린 탓이다. 김 실장은 “최근 주요 맥주·소주 업체의 가격 인상을 두고 ‘주류세 개편으로 술값이 오른 것 아니냐’는 오해의 소지가 생긴 것도 발표 시점을 늦추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또 종량세로 전환되면 수입맥주 가격이 상승해 ‘4캔 1만원’ 맥주가 사라진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도 여론을 악화시켰다.
종량세 개정, 국산 주류 경쟁력 강화의 초석
국산 주류 경쟁력 강화라는 큰 틀에서 주세법의 종량세 개정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이기도 했다. 전 세계 주요국들은 대부분 종량세 체제를 택해 맥주의 품질을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회원국 중 32개국이 종량세 방식으로 과세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칠레, 멕시코 3개국만 모든 주류를 종가세로 과세한다.
국내 수입 맥주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EU, 일본, 중국의 경우 종량세를 채택한 것은 물론이고 단계적으로 주세를 낮추고 있다. EU에서는 알코올 환산 100리터당 0.748유로를 최저 한세로 제시하고 있고 중국은 판매액의 20%에 해당하는 종가세와 리터당 1위안의 종량세를 동시에 부과한다.
1989년부터 종량세 전환을 한 일본은 현재 1kl당 22만엔인 맥주에 대한 세금을 2026년에 15만 5,000엔까지 단계적으로 하향 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들 국가의 맥주는 빠르게 국내 맥주 시장에 치고 들어오고 있다. 중국 맥주 수입은 2012년에 비해 2017년 5배 이상(513%) 늘었고 EU와 일본 맥주 수입도 같은 기간 각각 259%, 171% 증가했다. 맥주 수입이 늘면서 무역수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2년부터 맥주 수입이 수출을 앞지르기 시작해 2017년에는 맥주 부문에서 1억 5,100만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맥주 종량세 전환 개편방안 발표
6월 3일 양재 AT센터 창조룸에서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주최로 주류 과세 체계의 개편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홍범교 한국 조세재정연구원 연구기획실장의 ‘주류 과세 체계의 개편에 관한 연구’ 발표와 함께 강성태 한국주류산업협회 회장, 경기호 한국막걸리협회 수석부회장, 성명재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양순필 기획재정부 환경에너지세제과 과장, 이종수 (주)무학 사장, 임성빈 한국수제맥주협회 회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번 공청회에는 각계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주류업에 종사하고있는 사람들의 관심도 매우 컸다. 실제로 공청회장은 각 주류업의 종사자들이 가득 채워 공청회 내용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홍범교 연구기획실장의 이번 연구에서는 주류 과세체계 개편방향에 있어 음주의 사회적 비용을 교정하는 데 종량세가 더 효과적이라는 인식하에, 국내외 주류 간 조세 중립성을 회복하고 조세체계 변화로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한다는 점이 고려되었다.
종량세 전환과 관련한 방안은 크게 3가지가 제시되었는데, 첫번째는 맥주만 먼저 종량세로 전환하는 것, 두 번째는 맥주와 탁주를 종량세로 전환하는 것, 세 번째는 전 주종을 종량세로 전환하되 맥주와 탁주 등 일부 주종 외에 시장질서 교란이 예상되는 주종은 일정 기간 시행 시기를 유예하는 방법이다. 또한 중장기적 주세 체계 개편 마스터 플랜을 수립할 경우, 고도주 고세율원칙이 지켜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과 함께 물가연동제를 통해 종량세로 인한 실질 세수 감소를 보전하는 방법이 제시되었다. 종량세 논의의 시발점이 된 것이 국내 맥주와 수입 맥주 간과세 형평성의 문제였음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방향의 제시라고 볼 수 있다.
6월 5일 기획재정부는 맥주와 탁주의 종량세 전환 내용을 담고있는 주류 과세체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개편 방안에는 수입 비중, 출고가 변동 등에 따른 주종별 평균 세율의 연도별 편차를 고려하여 2017~2018년 평균 세율을 종량세의 기준으로 맥주 830.3원, 탁주 41.7원의 종량세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국내 대형 3사의 생맥주 출고가가 낮아 가격상승이 우려되므로 생맥주에 한해 2년간 20%의 한시적 세율경감 조치와 함께 실질세수 보전을 위한 종량세 물가연동제 운영이 포함되었다. 종량세가 2020년 1월 1일 자로 시행될 경우 물가연동제의 최초 적용시기는 2021년으로,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를 기준으로 세율을 조정한다. 기획재정부는 2019년 정부 세법 개정안에 반영하여 9월 초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