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이 된 당신을 위한 유혹적인 맥주들
매년 5월 셋째 주 월요일은 ‘성년의 날’ 이다. 대통령령으로 지정된 국가 공인 기념일이며 공법상 선거권 획득을 비롯해 미성년의 제한이 모두 풀리는 날이다. 무엇보다 음주가 공식적으로 가능한 나이가 되므로 많은 청소년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거리와 대학 캠퍼스에 붉은 장미꽃을 나눠주는 사람들과 꽃을 받으며 싱그럽고 해사한 웃음을 터트리는 젊음으로 가득해지는 이 날은, 대학가를 비롯해 신촌, 홍대, 강남, 이태원 일대가 성년의 날 이벤트를 펼치고 다수의 술집과 클럽, 숙박업소들이 붐을 맞이하는 날이기도 하다.
흔히 성년의 날에는 장미와 향수, 그리고 키스를 선물한다고 알려져 있다. 장미는 꽃말과 같이 ‘열정’ 가득한 삶을, 향수는 ‘향기’로운 사람이 되길, 그리고 키스는 ‘책임감’ 있는 사랑을 하길 바라는 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것이 하나 빠졌다. 꽃보다 붉고, 어떤 향수보다 향기로우며, 키스보다 달콤한 ‘술’ 말이다. 그중에서도 맥주는 도수가 높지 않고 다양한 맛을 가진 데다 가격 접근성도 좋아 첫 술로 제격인 장르다. 그동안 몰래 냉장고 속 소주를 홀짝여보거나, 늦은 밤 부모님이 조금 내어준 맥주를 맛보거나, 도대체 드라마 속 어른들이 매일 밤 술을 찾는 이유가 뭔지- 왜 모두 그렇게 술의 세계를 사랑하는지 궁금했던 성년들이여- 여기를 주목하시길. 레드벨벳의 유행곡처럼 ‘빨간 맛, 궁금해 허니’라고 외치는 성년들에게 이제 화려하고 유혹적인, 당신을 웃고 울게 할 의미 있는 9종의 빨간 맛 맥주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로덴바흐 알렉산더 레드 에일, 세상의 모든 아들에게
독일이 본고장인 로덴바흐 가는 저명한 인사들이 속한 명문가로 1836년 벨기에의 루셀라레에 브루어리를 세운 것이 로덴바흐 맥주의 시초다. 로덴바흐 가(家)는 플레미쉬 레드 에일을 최초로 선보인 역사적인 가문으로, 깊고 짙은 붉은 빛의 색깔과 더불어 과일 맛이 도는 특징과 함께 가장 품위 있는 와인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맥주라 스스로 명명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알렉산더 로덴바흐의 200번째 생일을 기념해 탄생한 이 맥주는 브루어이자 작가, 동시에 탁월한 정치가이자 시각 장애인이었던 그에게 헌정하는 맥주다. 어두운 보랏빛에 가까운 붉은 색을 띤 이 아름다운 플레미쉬 에일은 로덴바흐 그랑 크뤼를 베이스로 사워 체리를 숙성시켜 만든 술로, 나폴레옹이 사랑한 버건디 와인에 밀리지 않는 탐스러운 풍미를 자랑한다. 할아버지로부터 아들, 그아들과 아들로부터 후손까지 이어지는 전통을 가진 로덴바흐와 함께 성년으로서, 한 시대 속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선시 해야 할 책임감을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뒤셰스 드 부르고뉴, 세상의 모든 딸에게
뒤셰스 드 부르고뉴는 가히 어느 맥주와나란히 놓아도 금세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로 당신을 뚫어지게 마주 보는 부르고뉴 공국의 마지막 상속녀, 마리 드 부르고뉴 공작부인의 아름다운 초상화 덕분이다. 맥주 입문자부터 마니아까지 모두의 사랑을 받는 이 플레미쉬 레드 에일은 벨기에 비흐트에 위치한 유서 깊은 페어해게 브루어리에서 만들어진다. ‘와인 맥주’라고도 불리는 뒤셰스 드 부르고뉴는 와인으로 유명한 보르도 지역의 상속자였던 그녀에게 헌정되었는데, 낙마 사고로 일찍 목숨을 잃은 이 여인은 다양한 언어를 구사했을 뿐만 아니라 생전 플레미쉬 지역의 양조장들을 비롯해 수많은 예술가들을 지원하면서 시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매사냥을 즐기고 고대 로마 정치 서적들을 아껴 읽으며 시민들의 권리 획득에 앞장섰던 공작부인의 이름을 딴 맥주는 섬세한 산미와 싱그러운 체리, 무화과와 산딸기 향이 풍부하게 어우러진다. 동시에 짙은 캐러멜과 건자두, 발사믹 식초를 비롯해 적포도 와인을 닮은 붉은 색과 감질나는 오묘한 맛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맥주인들로 하여금 그녀에게 속절없이 빠져들게 한다.
델리리움 레드, 핑크 코끼리를 조심하세요
핑크 코끼리를 조심하라. 적어도 이 코끼리가 의미하는 뜻을 안다면 말이다. 델리리움은 단어 그 자체로 ‘의식이 흐리고 착각과 망상을 일으키며 헛소리나 잠꼬대, 혹은 흥분과 불안을 오가는 증상’의 상태로 핑크 코끼리가 보일 만큼 술에 취한 환각 증세를 의미한다. 도수가 높고 체리와 엘더베리가 들어가 새콤달콤한 과일 향이 인상적인 이 벨지안 골드 스트롱 에일은 자극적이면서도 짜릿하되 자꾸만 목을 적시고 싶을 정도로 유혹적인 맥주다. 너무 맛있어서 코끼리 환각까지 보일 정도의 맥주라니. 그러나 이제 막 성년이 된 그대에게 무분별하고 책임감 없는 음주를 권할 수는 없는 터. 자유롭게 즐기되 델리리움의 핑크 코끼리가 흐릿하게 보일 즈음 잔을 내려놓고 기분 좋은 체리 향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길 권장한다.
드리 폰타이너 프람부아즈, 성년을 위한 단 하나의 사치
‘3’은 모든 람빅 애호가들의 심장을 뛰게한다. 특히 맥주병에 크게 그려진 숫자라면 더욱 그렇다. 성년의 날을 위해 단 한번 사치를 부린다면 드리 폰타이넌의 프람부아즈 만한 것도 없다. ‘3분수’라고도 불리는 드리 폰타이넌의 시리즈는 분, 린데만스, 지라르댕 세 곳의 브루어리에서 공수한 람빅들을 블렌딩해 만든 것으로 시작됬다. 특히 라즈베리를 뜻하는 ‘프람부아즈’로 불리는 이 맥주는 손으로 채취한 유기농 라즈베리를 람빅 1L당 1kg의 비율로 넣어 오랫동안 숙성을 거친, 라즈 베리의 비율이 무려 전체의 35% 달할 정도로 압도적인 기획으로 만들어진 프루트 람빅이다. 국내 극소량만 들어온 데다 구하기 어려울뿐더러 고가인 터라 특별한 날이 아닌 이상 구입이 망설여질 수 있다. 게다가 특유의 강렬한 산미와 쿰쿰함이 익숙지 않은 초심자에게도 어려운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성년의 날을 맞이해 특별하고 새로운 맥주를 찾던 모험가라면 함께 성년이 된 세 명의 친구들을 모아 3분의 1로 나눠 마셔보는 것은 어떨까. 처음으로 람빅을 맛보는 이도, 평소 람빅이 궁금했던 이도, 첫 ‘3분수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이에게도 특별한 맥주 ‘성인식’이 되지 않을까.
세인트루이스크릭 프리미엄, 크릭 람빅
사랑도 좋지만 우선은 썸부터 성년이 된 당신은 당장 진하고 열정적인 어른의 사랑을 꿈꿨는지 모른다. 하지만 뜨거운 사랑 이전에 썸부터 시작해보자. 세인트루이스 프리미엄 크릭은 ‘썸’같은과일 맥주다. 저도수라 편하게 다가갈 수 있고 과일 주스같이 새콤달콤한 귀여운 느낌이 있다. 체리 향 가득한 빨간 맥주 위로 핀 몽글몽글한 딸기색 거품을 보고 있노라면 이보다 더 풋풋한 첫 연애를 닮은 맥주가 어디 있을까 할 정도다. 아니나 다를까 이 맥주는 온라인 맥주 커뮤니티 ‘맥주야 놀자’와 주류저널이 공동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썸남섬녀가 썸타기 좋은 맥주’ 1위로 뽑힌 적도 있다. 벨기에 람빅에 크릭 체리를 통째로 넣어 숙성시킨 이 맥주는 가당 람빅이라 달콤한 맛이 한층 더 강하다. 디저트와 곁들이기도 좋고, 즐거운 파티를 시작할 아페리티보로도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다. 특히 맥주에 익숙하지 않은 그/그녀에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썸 맥주 한 병을 건네보는 건 어떨까.
파운더스 르베이어스, 인생의 슈퍼스타를 꿈꾸는 이들에게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파운더스는 보증수표나 다름없다. 매번 출시하는 시리즈마다 훌륭한 퀄리티와 밸런스를 자랑하는 맥주이기에 많은 이들의 신뢰와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지금은 미국 최고의 브루어리 중 하나로 칭송받는 파운더스지만, 한때 무난하고 평범한 맥주만 생산하다 부도 직전까지 갔던 뼈아픈 역사가 있다. 자신의 정체성과 진로를 고민하는 성년이 한 번쯤 인생의 슈퍼스타가 되길 꿈꾼다면 파운더스 브루어리의 철학을 눈여겨 볼 만 하다. 남들보다 좀 더 튀어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향기와 단단하고 강렬한 바디감과 풍미로 ‘한계를 뛰어넘는 맛’을 창조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파운더스 르베이어스는 새로운 출발에 어울리는 붉은 라즈베리 에일이다. 갓딴 신선한 라즈베리의 풍미가 지배적인 이 맥주는 다소 절제된 단맛과 톡톡 튀는 베리의 향이 어우러져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스스로의 특별함을 믿고 탄탄대로의 길을 개척하고자 오늘의 한 발자국을 씩씩하게 내딛는 야심찬 성년에게 이 맥주를 권하고 싶다.
앰비션 브루어리의 꽃신 최고의 향기를 가진다는 것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향기란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앰비션 브루어리가 선보이는 ‘꽃신’은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예시다. 히비스커스의 ‘꽃’과 신맛의 ‘신’이 합쳐서 ‘꽃신’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맥주는 로즈힙과 히비스커스 꽃을 블렌딩한 베를리너 바이세다. 무엇보다 이 맥주의 수익금 일부는 나눔의 집 국제평화 인권센터 건립 및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과 복지에 후원된다. 핑크색의 거품과 붉은빛의 맥주, 특유의 신맛과 밀 향의 조화로움이 특징인 이 맥주는 단순히 보기에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이들의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한 ‘꽃신’은 ‘좋은 신발은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말처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좋은 영향력을 갖고자 목표하는 성년에게 그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향수의 향기는 반나절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좋은 맥주의 향기는 마시는 이의 몸 속에 배어든다. 그러나 올곧은 마음이 가지는 향기는 시간을 뛰어 넘는다. 성년의 날을 맞이해 스스로의 몸과 마음에 가장 향기로운 꽃을 선물하고 싶다면, 꽃신을 선택하는 건 어떨까.
리프만스 프루티제, 당신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언어, 학문, 전통, 사회, 도덕, 종교 등 세계화에 따른 다양한 문화를 서로 인정하고 교류하기 위한 공감과 존중은 이 시대 필수적인 덕목 중 하나가 되었다. 리프만스 프루티제는 전통과 유행을 넘나들며 기존 람빅을 유쾌하게 재해석한 벨기에 과일 맥주다. 무엇보다 이 발랄하고 경쾌한 빨간 맥주 속에 라즈베리, 체리, 빌베리, 엘더베리, 스트로베리 등 각종 야생 베리류들이 한껏 블렌딩 되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 수많은 베리들이 공중에 요정처럼 떠다니는 야생 효모들과 18개월이 넘는 숙성 기간을 통해 세상에 나왔음에도 지나치게 진지하지 않고, 무겁지 않게 다가온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특히 기존 맥주들과 달리 얼음 잔에 타서 마셔도 좋은 맥주로 어느 누구에게나 쉽고 가볍게 권하기 좋다. 분노와 경계, 폭력과 불신으로 가득한 오늘날 성년이 된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향한 위트와 열린 마음이 아닐까. 다양한 베리들이 한데 어우러진 프루티제가 주는 빼어난 달콤함처럼
캐스케이드 상 로얄, 악마보다 아름다운 맥주
포도 넝쿨을 휘감은 듯 악마보다 아름답고, 키스보다 달콤한 더블 레드 에일 캐스케이드 상 로얄은 오크 배럴에 피노 누아 포도를 넣고 22개월 이상 숙성한 맥주다. 크래프트 맥주의 성지인 미국 포틀랜드 주에서도 가장 섹시한 브루어리를 하나 꼽자면 캐스케이드를 빠트릴 수 없는데, 아메리칸 사워 에일의 선구자이기도 한 이곳에서는 와인 숙성에 사용한 오크 배럴과 지역 농산물과 과일로 만든 독특하고 매혹적인 맥주를 만들어낸다. 특히 ‘로얄’은 상(Sang) 시리즈 중 가장 짙고 깊은 와인의 풍미와 더불어 어두운 루비색과 다크 베리, 캐러멜, 체리, 건포도와 같은 감미로운 향기를 자랑한다. 맥주와 와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을 모아둔 이 맥주야말로 특별한 날을 위한 섹시한 선택이 될 것이다. 성년이 된 그대에게 유혹이 필요한 날이 있다면, 반짝거리는 와인잔과 상 로얄 한 병을 챙겨가길.
EDITOR_조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