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링 페어링 #6 파미유 듀퐁 시드르 리저브 X 사과 타르트
파미유 듀퐁 시드르 리저브 Famille Dupont Cidre Reserve
프랑스 북서쪽에 위치한 지방, 노르망디.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널리 알려진 이 지역은 변덕스러운 날씨로 유명하다. 차가운 북해와ㅜ따뜻한 멕시코 연안류가 만나는 영국해협과 맞닿아 있어 365일 중 300일이 흐리고 비가 내리기 때문. 프랑스인 사이에선 노르망디를 위성으로 찍으면 우산밖에 보이지 않을 거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특이한 날씨 탓에 맛 좋은 포도를 기를 수 없다. 포도가 맛있게 익으려면 따사로운 햇살이 필수니까. 포도 대신 선택한 작물은 바로 사과. 덕분에 노르망디 지역 곳곳에선 사과가 재배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과로 만든 술이 탄생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인간에게 술이란 꼭 필요한 모양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상황에 맞는 술을 빚어낸다. 다양한 술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애주가에겐 행복한 일이다. 그렇게 탄생한 술이 바로 시드르. 최근 국내에서도 소규모 양조장을 중심으로 조금씩 시도되고 있는 주종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사이다의 원형이다. 참고로 사이다는 시드르를 영어로 부르는 명칭이다. 일본인이 그 이름을 그대로 차용해서 설탕과 탄산을 첨가해 청량음료로 만들었고 그게 그대로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오랜 시간 한국에서 사이다는 술이라기보단 음료로 여겨졌지만, 최근 시드르가 양조장 사이에서 주목을 받으며 인식도 바뀌고 있다.
시드르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시드르 두(Cidre doux). 달큰한 사과 향과 적당한 탄산감이 느껴진다. 은은한 황금빛이 떠오르는 갈색으로 색감도 예쁘다. 시드르 로제(Cidre rose)는 보다 달콤하고 가볍다. 선명한 분홍색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달까. 그 외에도 시드르 양조장과 변주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시드르를 증류한 높은 도수의 깔바도스, 시드르와 깔바도스를혼 합한 뽀모 등등.
그중에서도 오늘 선택한 건 시드르 리저브(Cidre reserve). 그 이유는 오크통에 숙성되었다는 소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취향일지도 모르나, 오크통이라는 이름엔 어딘가 신화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이 술은 오크통에서 숙성되었습니다.”라는 표현은 어둡고 넓은 지하창고에 셀 수 없이 많은 오크통이 쌓여 있고 술을 사랑하는 요정이 그곳에서 술맛을 지키는 모습을 연상시킨달까. 술을 마시며 글을 쓰다가 환각을 보는 게 아닐까, 생각하신다면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파미유 듀퐁에서 만드는 시드르 리저브는 40도에 육박하는 깔바도스를 만들었던 오크통에 담아 숙성해서 보통 시드르에 비해 도수가 높은 편이다. 일반적인 시드르가 1도에서 4도 정도인 반면, 시드르 리저브는 7.5도.
파미유 듀퐁 시드르 리저브
종류 사과발효주, 시드르
원산지 프랑스, 깔바도스
양조장 파미유 듀퐁(Famille Dupont)
원료 사과
도수 7.5%
용량 750ml
사과 타르트
사과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과일이 있을까. 아침을 상큼하게 깨워주는 사과, 바삭한 파이에 달달하게 녹아든 사과 파이, 백설 공주 동화속 마법의 사과, 사과로 담근 시드르, 사과 같은 내 얼굴(..? 노래의 가사다). 게다가 사과는 요리 재료로도 쓰임새가 많다. 구운 사과는 어느 요리에 곁들여도 어울리고 얇게 썬 사과로 만든 샐러드는 입맛을 돋운다. 비타민까지 풍부하니, 팔방미인인 셈.
프랑스사람 역시 사과를 사랑한다. 특히나 사과 타르트는 프랑스인들에겐 각별한 요리다. 단순히 사과 타르트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수 십가지가 넘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과 타르트를 굽는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끓여준 삼계탕 한 그릇이 우리에게 향수를 일으키듯 프랑스인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구워준 사과 타르트에 관한 추억을 공유한다. 프루스트가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통해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것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사과에 앞니가 닿았다가 바삭한 타르트를 지나는 감촉은 그들에게 지나간 옛 시절을 떠올리게해 줄 것이다.
프랑스인은 아니지만 사과 타르트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 있다. 추웠던 어느 겨울날, 집에 돌아오며 손발이 꽁꽁 얼었다. 왜 그렇게 추웠을까. 어느 곳에도 닿지 못한다는 무력감. 그 차가운 감각이 몸을 더욱 차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내뱉는 호흡이 곧바로 얼어붙어 마음 속 깊은 곳으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 멈춰서려는 발을 재촉해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따스한 공기로 나를 맞아주었다. 따스한 공기에 스며든 사과의 단내음도 함께. 엄마가 구워 준 사과 타르트. 한 입 베어 물자 녹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마음속 얼음은 사르르 녹아내렸다.
사과 타르트 만드는 법
재료 9cm 타르트링 1개 분량
사과 콩포트
타르트지
사과 타르트
파미유 듀퐁 시드르 리저브 X 사과 타르트
시드르 리저브는 시드르 두에 비해 진한 사과 향과 높은 알코올 도수가 특징이다. 탄산감도 강한 편이다. 색도 더 진하다. 잔에 따르면 짙은 황금빛 사과 농액에 기포가 올라오는 것처럼 보인다. 겉모습이 매력적이다. 당장 한 모금 마셔보았다. 역시, 보이는대로 풍부한 탄산이 입을 가득 채운다. 상쾌하다. 식전주로 마셔도 좋을 듯. 은은한 사과 내음과 살짝 올라오는 알코올 향이 식사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만들어 주겠지.
거기에 이어지는 비를 담뿍 머금은 숲의 향기. 흡수한 물을 바탕으로 생명력을 내뿜고 있는 숲에서 나오는 싱싱한 기운이 살짝 코에 머문다. 곧바로 이어지는 젖은 나무를 연상시키는 향은 오크통에서 나왔을 것이다. 마무리는 달큼시큼한 사과의 풍미다. 처음 시드르를 맛본 순간, 곧바로 어울리는 요리를 떠올렸다. 맥주 페어링도 와인 마리아쥬도 모두 본질적으론 닮았다. 시드르에게 딱 맞는 짝을 구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기본을 잊지 않으면 된다. 술의 맛을 강화하는 요리를 찾아보기! 사과로 만든 시드르에 사과로 만든 타르트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전략이다.
사과 타르트는 바삭하면서 촉촉한 식감이 포인트. 구운 사과 특유의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맛은 혀를 자극한다. 거기에 미세하지만 짭조름한 맛이 더해져 ‘겉바속촉’, ‘단짠단짠’이라는 미식 트렌드를 관통하는 표현을 모두 구현한다.
이제 함께 맛볼 차례. 예상대로 잘 어울린다. 타르트를 한 입 먹고 시드르 향을 맡아본다. 코에 사과 향이 더해지니 타르트 맛도 더욱 살아난다. 시드르와 타르트는 향기만으로도 서로 맛을 강화해준다. 시드르 리저브는 단맛이 그리 강하지 않고 씁쓸한 술맛을 나타낸다. 커피와 디저트가 잘 어울리는 것처럼 두 가지 맛이 서로를 더욱 잘 느끼게끔 해준다.
타르트를 먹고 시드르를 마시고, 시드르를 마시고 타르트를 먹다 보니 후각도 미각도 사과로 가득하다. 수확을 앞둔 사과나무 숲에 와있는 기분이다. 술기운이 조금씩 올라온다. 시드르 리저브는 그리 약한 술은 아니다. 하지만 멈추긴 어렵다. 성실한 농부들이 사과를 열심히 채집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들은 곧 일을 멈추고 풍년을 축하하며 사과로 술을 담그기 시작하겠지. 그러한 흥겨운 분위기가 시드르 리저브에 담겨 있다.
타르트를 먹고 나서 시드르를 마시는 편이 좋았다. 단맛과 끈적한 식감이 입에 가득한 순간, 시드르가 쌉싸름한 맛과 경쾌한 탄산감으로 깔끔하게 씻어준다. 동시에 타르트와 시드르에서 나온 사과 향이 입에 머문다. 잔향은 오래도록 입을 즐겁게 해준다. 시드르 리저브와 사과 타르트가 인기를 끈다면 사이다보다 시드르란 표현이 널리 알려질 수도 있으려나
EDITOR_젠엔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