펍 창업을 꿈꾸고 있는 사람을 위한 일곱 가지 조언
탭하우스 숲 서정일 대표의 리얼 펍 운영기
펍 운영에 관한 글을 써 보겠노라고 답하고 나서 후회가 텍사스 소떼처럼 밀려들었다. 멋지고 이름난 펍들이 줄줄이 있는 마당에 여기저기 맛집 평가 사이트에서 대략 70점의 평점을 받는 그저 그런 펍을 운영하는 내가 자격이 있나 싶어서 였다. 최대한 그럴 듯하게 해석하자면 10명중 7명 정도는 만족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C 등급 수준의 펍이라고 무시당할 수도 있겠지만 고시촌 유명강사 치고 고시 합격한 사람 드문 편이며, 수능 일타 강사들도 서울대 유명학과 출신이 별로 없는 걸 보면 그것과는 상관이 없겠다 싶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원래 쓴맛 단맛 고루 맛본 사람이 썰 풀기는 더 좋은 법이니까. 그리고 얼마나 노력을 기울여야 70점짜리 펍이나마 만들 수 있었는지 써보라는게 편집장 의도이기도 하더라. 기분 나빠도 알량한 원고료가 아쉬워서 쓰기로 했다.
나름 필자로서 자기소개를 하자면 외국계 회사들에서 10여년 근무를 했고, 그러다 보니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맥주에 대해 접할 기회가 많았다. 경영대학원도 다녔으니 적당한 시기에 내 것을 만들어 생업으로 삼고 싶어 좋아하는 맥주와 음식파는 일로 뛰어든 게 2015년 8월 이었다. 그야말로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뛰어든 불나방 같은 존재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성수동 골목길에 펍을 내는 것에 대해 99%의 지인들이 망하기 딱 좋은 장소라며 임금에게 상소하듯 나를 말렸지만 이미 머리 속은 밝은 미래만 있었는데 어찌하랴. 열악한 환경에서 만 3년을 잘 버텼고, 성수기 기준으로 한달에 2000명쯤(재방문 포함) 와 주시는 손님들 덕에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신상의 큰 변화가 없는 이상 계속 이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전업을 위해서 펍 창업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하지 마시라는 조언과 나름대로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이다. (라고 쓰고 잘난 척이라고 읽는다.) 고민과 결정은 당신들 몫이니까.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펍 컨셉과 운영 방식을 계획할 때 고려하고 준비할 점이고, 두 번째는 판매가격, 비용, 그리고 전반적인 재무 요소들이다. 당연히 재미없는 이야기이니 창업 계획이 없는 분들은 서둘러 다른 글로 페이지를 넘기시라. 중간에 있는 광고는 비어포스트를 위해 필독하시고.
하나, 펍은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
펍을 비롯해서 모든 요식업장이 갖추게 되는 요소는 공간, 사람, 메뉴이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공간이거나, 연예인 급 직원들이 서빙을 해주거나, 멀어도 가고 싶을 만큼 맛있는 음식이 있거나 하면 그 가게는 성공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분은 나에게도 좀 알려주길 바란다.
특정방식이 항상 성공하는 것도 아니니 창업전에 어떤 요소를 어떻게 조합해서 매력적인 펍으로 꾸며 놓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한다. 이것이 첫 번째 조언이다. 어설프게 ‘유명한 인테리어 업체에게 돈 들여 공사하면 괜찮겠지’란 생각은 망하기 아주 좋은 길이다. 차라리 프렌차이즈를 차리시라. 고민 끝에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래도 망하면 이건 내 팔자라는 정도의 자신감이 서면 그때 하시라. 고민과 연구를 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헤밍웨이의 일화를 서비스로 알려드린다. 헤밍웨이에게 누군가 물었다. “선생님,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헤밍웨이의 답변은 간단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건 빼세요. 그러면 됩니다.”
‘네 컨셉은 뭐냐’라고 궁금해하실 분이 있을 듯해서 말해보자면 본사근무 할 때 좋아하고 자주 가던 펍들이 모티브였는데 교토나 빠리 몽빠르나스 역 근처에 있을 법한 수수한 인테리어에 블루스와 재즈를 영상으로 보여주겠다는 게 내 컨셉이었다.
플레이 리스트에는 대략 300시간 분량의 영상이 계속 추가되고 빠진다. 같은 곡을 한달에 한 번 정도 듣게 되는건데 보유한 DVD를 리핑해서 플레이 하기도하고 유튜브든 뭐든 다 동원한다. 이것 자체가 엄청나게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공연 영상 소스들을 가리지 않고 총 동원하면 1년 내내 봐도 다 못 볼 분량인데 그 중에서 일일이 고르고, 새로 나오는 것들 확보하고 하는게 시간이 엄청 걸리는 작업이다. 오시는 손님들 중 블루스, 재즈와 인디 음악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분들은 당연히 인정해 주시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가게 평점이 70점이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맛집 소개사이트 등 그 어디에도 음악이나 영상에 대한 언급이 된 걸 본적이 한 번도 없다. 누구 연주영상이 어떻고 누구의 음악이 어쩌고 하는 내 지식과 노력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소개팅 나가서 상대방은 관심도 없는 주제에 대해 열변을 토해봤자 호감 받기 힘들다. 잘난 척 한다는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인거지. 물론, ‘선곡이 너무 좋아요~’ 같은 말을 들으려면 뭘 어떻게 틀면 되는지 모르는 바 아니나, 그것만 계속 들으면 지겨워서 내가 가게에 못 있는다. 가끔 썸타는 듯한 커플이 다른 손님 다 나간 시간까지 도란도란 대화하고 있으면 분위기 좋으라고 플레이 리스트를 살짝살짝 바꿔주는 경우는 있지만 그건 그 손님들 계 탄 날이 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음악 트는게 컨셉이면서도 비용문제로 사운드 시스템은 스피커, 앰프, 플레이어 모두 포함해서 고작 1000만원도 안썼다. 돈 아끼려고 스피커, 빔 프로젝터 공사도 직접 했다. 1000만원이면 고가 시스템 아니냐는 말은 제대로 된 뮤직바에 가보면 우스워진다. 어설픈 마감이라도 애착은 엄청 가지만 이런 것이 내 한계인 거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각자의 더 훌륭한 컨셉을 만들어 보시라. 단, 우리 가게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꽤 괜찮은 컨셉을 잡고 인테리어도 멋지게 꾸밀 수 있다고 자신하는 분들에게 나도 멋진 숙제를 하나 더 드리는 걸로 첫 조언을 끝내기로 한다. 당신이 공들여 만든 인테리어는 계속 변화가 있어야 한다. 처음에 컨셉 잡고 인테리어 구상할 때부터 분기별이든, 반 년이든, 일 년이든 조금씩 바꾸는 걸 전제로 해서 작업하시라. 그 정도 할 수 있으면 3년 넘기고도 잘 살아 남을 수 있다. 나는 더럽게 운이 좋아서 깐느 미술상 받은 미술감독 같은 분들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놀러 왔다가 이런 저런 코치를 해준 덕을 많이 봤는데 이런 건 로또 맞은셈 쳐야 하니 당신들은 미리부터 준비하시라. 단골들은 변화 없는 가게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아주 친해지면 팔 걷어 부치고 페인트 칠하러 기꺼이 와 주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발길을 돌리고 만다. 어쨌든 안목 있는 손님들과 친분을 유지하는게 왜 중요한지도 더불어 기억하라.
둘, 시스템을 구축하라
두 번째 조언은 사람에 의해 영향 받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시라는 거다. 오너가 있든 없든, 매니저와 서빙이 바뀌든 말든, 주방 셰프가 바뀌든 말든 손님들이 방문했을 때 영향 받지 않는게 좋다. 유명한 펍들 중에 오너나 직원들 보려고 찾아가는 곳을 나는 본적이 없다.
이거 엄청 힘들다. 규모가 작을 수록 힘들다. 하지만 방법을 찾지 않으면 당신 삶은 더 힘들다.
사람에 의한 느낌보다 다른 요소들과 시스템이 잘 갖추어 져야 한다는 의미이니 펍의 컨셉을 정하는 것과 맞닿는 부분도 있다.
시스템이 없는데 오너가 자리를 비우면 매출에 영향도 받고 관리가 잘 안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되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볼 일 생겨 외출해도 CCTV로 가게 영상이나 보게 되는거다. 나도 초기에 이 부분때문에 힘들었고 아직도 힘들다. 심지어 일일이 메뉴개발 직접하고 레시피와 메뉴얼 작성에 많은 공을 들이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처음 시작할 때 소개받은 조리과 학생에게 조언을 구하고 주방 세팅을 부탁했다. 당연히 비용도 지불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한 달을 봐주기로 하고 선 열흘 만에 이런 저런 핑계를 대더니 안 나오겠다고 했다. 멘탈이 붕괴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음식 공부를 시작했다. 국내 서적이나 음식블로그는 찾아봤자 딱히 도움이 안되는 내용들뿐이었다. 외국회사 근무 경력 덕에 알량하게 써먹던 영어로나마 해외사이트를 찾아보고 원서를 사들였다. 이게 큰 도움이 되더라. 태국식 파파야 샐러드를 만들어 보고 싶은데 파파야를 안 쓰고 만드는 방법을 질문하면 대뜸 지역을 묻고 무와 비트를 쓰면 된다는 답글이 달렸다. ‘내가 영어 독해와 작문이 가능해서 참 좋았어요’가 아니라 미리미리 준비했으면 이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직접 주방을 잡든, 셰프와 함께 일을 하든 시스템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주방만 문제가 발생하나? 오너가 탭을 분해해서 청소할 줄 모르면 직원들도 안 한다. 탭에 문제가 있는건지, 가스에 문제가 있는건지, 맥주에 문제가 있는건지 오너가 다 판단하고 상황을 교육시켜 놓아야 당신이 없어도 펍은 원활하게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 맥주 교육을 받든, 학원을 다니든, 다른 펍에서 일해보든 선택은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고 나는 그저 준비를잘해서 시스템을 만들라는 조언정도만 하는 거다. 이런 거 다 할 줄 알면 70점짜리 가게라도 꾸려 나갈 수 있게 되니까.
셋, 가장 좋은 맥주, 가장 맛있는 맥주는 없다
세 번째 조언은 맛있는 맥주, 좋은 맥주라는 말을 맹신하지 말라는 점이다. 세상에는 다른 맥주가 존재할 뿐이지 최고의 맥주는 없다. 내가 꼽는 최고의 맥주는 나만 인정할 뿐이다. 유명하고 잘 나간다는 맥주를 판매한다고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당신이 운영하는 펍에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건 다른 곳에서도 이미 팔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게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는 레시피를 직접 짜고 히든트랙에서 위탁 양조해서 내 이름 걸고 파는 페일 에일이다. 두 번째로 많이 팔리는 맥주는 크래머리에서 양조한 필스너 계열이다. 페일 에일과 필스너의 판매량이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엄청 크지는 않다. 신기하게도 IPA를 즐기는 비율이 높지 않았다. 3년 동안 조금 늘긴 했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필스너를 주로 드시는 손님들이 묻는 질문은 항상 같다. “가장 무난하고 향이 두드러지지 않는 맥주는 뭐에요?”
브루펍을 계획한다면 양조설비의 시각적 효과와 양조현장에서 바로 마신다는 오리지널리티 때문에 다를 수도 있겠지만 아직,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은 필스너처럼 무난하고 마시기 편한 맥주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밥과 식빵이 주식이듯 필스너는 누가, 어디서, 어떤 음식과 마셔도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최고라는 맥주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균형잡힌 맥주 메뉴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애초에 맥주의 역사를 봐도 생활 필수품이었던 유럽이나 미국과 기호식품으로 출발한 우리나라와는 기저에 깔린 정서가 다르다. 물론 양조의 관점에서는 결과물의 평가를 할 수 있는 기준이 있지만 소비자의 입장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펍이라는 말의 의미가 대중적이라는 단어에서 온 것처럼 개성을 강조할 부분과 균형을 맞추는 부분이 어떻게 구분할지 충분히 고려해야 좋을 것이다.
희귀한 맥주나, 개성 있는 맥주, 고가의 맥주를 판매하겠다는 건 메뉴구성의 부분이라기 보다는 펍의 컨셉과 닿아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건 그것 대로 고민하시라. 나의 조언은 그저 3년간 운영해보니 숫자로 이런 결과가 나오더라는 부분을 풀어낸 것뿐이니까. 아이러니한 이야기지만 브루펍이 아니라면 맥주를 주로 파는 펍에서 조차 공간과 음식이 맥주 종류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정답은 없으니 고민은 당신 몫이다.
넷, 공간 구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네 번째 조언은 공간을 구상할 때 두 가지는 꼭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1. 수납공간. 일반창고, 냉장·냉동고 혹은 워크인 같이 재고와 식자재, 맥주를 어떻게 보관할지 반드시 고려해라.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물류비용도 더 들어가고 원가도 올라간다. 심지어 맥주 종류를 선택하는데 제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한가지만 예를 들면 워크인 냉장고가 없다면 위탁양조해서 자체 맥주를 판매하는 건 거의 어렵다. 양조장에서 일주일에 서너 번 배송해 주거나 당신이 직접 가지러 가든가 해야 한다. 주류도매상에 보관료와 운송료를 많이 지불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만. 각종물품들도 장사가 잘되면 구매대행을 하든 뭐든 할 수 있지만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큰 로드가 걸리게 마련이다. 어떻게 수납해서 보관할 것인가 잘 생각해야 한다. 내 경우에는 가까운 곳에 다행히 월 15만원짜리 창고공간을 하나 구했다. 나중에 깨닫고 진행한 일이었는데 가게내에 수납공간을 충분히 두려면 비용이 크게 소요되니 가까운 지하공간이나 옥탑방 같은 곳을 싸게 구하는게 유리한 듯하다.
2. 인테리어는 가게가 만석인 경우에도 손님들이 쾌적하고 즐겁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대개 오픈빨이 끝나는 시작이 이런 댓글들이다. “처음엔 친절하고 한적해서 좋았는데 사람 많아지니까 시끄럽고 복잡해서 별로에요.” 공간을 잘 구성해서 이런 불만이 안 나오도록 처음부터 고민해라. 공간이 주는 느낌이 정말 중요하니 넓이와 좌석수와 분위기를 백만번쯤 고민해야 한다. 적당한 공간에 적당히 시작하면 나처럼 70점짜리 펍이 된다. 더불어 첫 번째 조언에서 언급했던 마이그레이션 요소를 꼭 집어넣어야 한다.
다섯, 음식 플레이팅을 연구해야 한다
다섯 번째 조언은 음식 플레이팅에 큰 노력을 기울여서 준비하라는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펍은 간장, 고추장, 식초를 제외하고 모든 소스는 직접 끓이고 만든다. 토마토 케첩, 마요네즈, 머스터드 소스는 물론이고 먹태 소스, 스테이크 소스, 피자소스 등등 완전 하우스 메이드다. 먹태도 직접 살 발라 내고 껍질분리해서 튀길 건 튀기고, 구울 건 굽고, 소스발라 상에 낸다. 먹태 받아보는 손님들은 좀 놀라는 정도다. 크래프트 펍이니까. 소시지도 내 레시피로 내 펍 상표를 붙여서 위탁제조한 우리집 소시지고 함께 내는 사워 크라우트와 피클도 직접 담근다. 심지어는 납품 받고 싶어하는 분들도 있다. 자체 레시피 맥주는 물론이고 가게에서 사용하는 향초도 제일 좋은 재료만 쓰고 나름 조향해서 직접 만든다. 사가시는 분들도 종종 있다. 하우스 메이드라고 꼭 맛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음식 맛있다는 평은 일가견이 있는 손님들께 듣는 편이다. 그런데 우리집 평점은 70점이다. 친분이 깊은 동네 이웃들의 조언은 플레이팅을 바꿔보라는 거였다. 누군지 말해주면 깜짝 놀랄 분들이 열렬히 우리 가게를 사랑해주시면서 일부러 다른 펍들을 한 번씩 돌아보곤 세심하게 리포트해 주신다. 아무튼, 그렇게 플레이팅이 중요하다. 특히 요즘처럼 인스타그램이 마케팅의 핵심이 시대에 플레이팅을 위한 준비는 정성을 다해서 연구하시고 그릇과 커틀러리 구매비용을 아끼지 마라. 싫으면 70점이다. 컨셉과 운영에 대한 조언은 이쯤하자. 내가 큰 돈 받고 쓰는 것도 아니고.
여섯, 가격 결정에 원가율이 중요하다
여섯 번째 조언부터는 가격, 비용과 재무전반에 대한 내용이다. 가격을 정할 때의 핵심은 냉정하게 원칙을 세워놓고 판단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술이든 음식이든 원가비중이 30% 이상 이면 3년 버티기가 쉽지 않다. 매일 손님들이 줄을 서는 이름난 멋진 공간이라면 박리다매로 막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시작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손님에게 만족을 주겠다고 결정하면 결국에는 “저렴하고 한가해서 좋은 곳이었는데 없어져서 안타까워요”라는 댓글의 주인공이 되기 쉽다. 손님은 안타깝지만 당신 눈에는 피눈물이 날 거다. 비싼 맥주를 싸게 팔려 하지 말고 비싼 맥주를 비싸게 마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게 맞는 방법이다. 길이 안보이면 그건 그런 맥주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으로 사람들이 찾아가게끔 하는게 서로 사는 길이다. 가장 어리석은 가격 책정법은 마진을 비율이 아니라 액수로 정해 놓는 경우인데, 예를 들어 원가를 고려하여 필스너 드래프트 한잔에 원가가 2천원이고 판매가가 6천원이니 4천원의 마진이 남는다고 가정하자. 원가 2만원짜리 750ml 병맥주를 세 명이 나누어 마시면 한 잔에 4천원이 남으면 되니 병 맥주 판매 가격을 3만2천원으로 책정하는 경우가 있다. 이 병맥주가 하루에 50병 정도 팔리면 그렇게 팔아도 큰 상관없을 거다. 그게 아니라면 당신은 팔면 팔 수록 손해를 보고 있는 거다. 3만 2천원 이면 6천원짜리 필스너를 5잔 마실 수 있다. 기분파를 제외하고 손님들은 각자 예산을 가지고 펍에 방문한다. 병맥주 한 병을 시키고 나서 평소 마시는 양만큼 추가로 시키는게 아니라 예산에 맞추어서 술과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필스너 5잔 주문했을 때 발생하는 2만원의 이익대신에 당신이 얻는 이익은 1만 2천원이 되는 거다. 정상적으로 6만원의 가격을 받고 병맥주를 팔 자신이 없으면 팔지 않는게 옳은 일이다. 경우에 따라 원가율을 20% 혹은 그 이하까지 낮춰야 하는 몇 가지 사례들이 더 있는데 이걸 다 까발리면 이 글을 읽는 손님들 입장에서 떨떠름 할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한다. 하지만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왜 가격이 원칙에 입각해서 세워져야 펍이 살아 남을 수 있는지 이해할 테니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끝까지 다 읽고 욕을 하더라도 욕을 하시라. 나도 그냥 인심 좋고 이익 안 따지는 좋은 펍 오너를 꿈꿨는데 그건 그냥 환상이더라.
이 부분을 끝내기 전에 식자재 가격 변동에 대해 잠깐 언급해 본다. 이건 음식 가격 책정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다. 다음 자료는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제공하는 2015~2018년 감자가격의 월별, 연평균 변동 자료이다.
내가 처음 펍을 시작했던 2015년과 대비하여 2018년은 감자 평균가격이 73%가 올랐다.
2015년 8월에 펍을 시작했으니 당시 가격에 비교하여 지난 4월에는 무려 400% 이상 비쌌다. 당신은 감자튀김 가격을 어떻게 정해야 할까? 예를 들어보자. 원가가 1000원이어서 내 조언대로 3000원에 감자튀김을 팔기 시작했다. 원가가 오르니 매년 조금씩 가격을 올려야 하니 올해 초에 원가가 1730원이어서 감자 튀김 가격을 5200원으로 올렸다. 그런데 봄이 되어 손님이 많아져서 감자 튀김을 찾는 손님들이 굉장히 늘었는데 감자튀김 원가가 4000원이 되었다. 뭐, 감자튀김을 안 팔거나 수입산 냉동 감자 튀김을 팔면 되지 않냐고? 아주 좋은 의견이지만 나처럼 멍청한 사람들은 손 많이 가는 형태로 이미 만들어 파는 메뉴라서 대체가 불가능한 거다. 이런 부분에 답을 못내니 나는 70점짜리 펍을 하는 것이고 여러분 들은 좀 더 현명하게 결정하시라.
일곱, 비용을 치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일곱 번째는 비용이다. 특히 인건비, 월세, 재료비 비중에 대해서 숫자로 따져 본다. 대략 펍에서 음식 매출의 비율이 총 매출의 30% 정도면 괜찮다고들 한다. 내가 하는 펍도 비율은 참 아름답다. 문제는 그런 음식을 준비하고 조리하기 위해서 셰프를 고용한다면 셰프의 급여는 음식 매출의 최소 30퍼센트 이하가 되어야 이론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재료비 30%에 인건비는 포함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300만원의 급여로 일하는 셰프와 계약했다면 당신의 펍에서 한달 음식매출은 최소 900만원이 되어야 한다. 음식 매출이 900만원이면 맥주를 포함한 음료 매출은 2100만원이 되어야 한다. 총 매출의 30%가 음식 매출이니까 간단하게 역산이 가능하다. 일주일에 하루 쉬고 26일간 영업하는 동안 일평균 115만원의 매출을 내면 된다. 오, 말만 들어도 당신이 고용한 셰프 급여를 통해 나는 당신의 성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일반적이냐고? 그러면 망하는 곳이 왜 생기겠나.
옆에 새로 생긴 펍이 맥주와 음식을 얼마에 팔든 재무원칙에 입각한 가격을 책정하지 않으면 망한다. 가격을 낮추려고 하지말고 그 가격에 손님들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을 만들어라. 잘 되는 펍의 가격, 인건비, 월세, 원가는 결국 매출과 일정한 비율로 구성된다.
요식업에는 10% 룰이 있다. 업장 규모나 컨셉에 따라 다소간의 조정이 필요하겠지만 30평 이하 규모의 업장이라면 거의 맞아 떨어지는 룰인데 임대료가 평균 매출의 10%를 넘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예를 들어 월 임대료가 100만원인 업장의 경우 최소 월 매출이 1000만원이 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기술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보증금은 1000만원으로 가정하였다.
부가세는 면제받는 계정이 발생하지만 정확히 예측이 안되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매출의 5%는 세무서에 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잡비는 인터넷, 전화비 같은 고정비도 있지만 전기, 수도, 가스비와 온갖 추가적인 비용의 총합을 최소로 계산했다.
그리고 권리금으로 초기투자비를 건질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 편이 좋다.
초기투자비는 5년 감가상각 하여 매월 매출에서 제외해야 한다. 2000만원이 초기투자비로 들어간 10평 매장이라면 5년 감가상각과 이자비용으로 월 33만원 정도를 수익에서 제하는 것이 맞다.
인건비는 운영방식에 따라 더 들고 덜 들고 할 수도 있으나 20% 이상이라면 장기적으로 재무적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인건비를 깎으라는 말이 아니고 상권과 업장 상황에 맞는 최적화 방법을 찾으라는 뜻이다.
흔히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30평 정도의 매장을 월급여 300만원에 셰프를 고용하는 것을 포함해서 숫자로 대입해보자. 이미 300만원 급여를 지출하기 위해서 펍에서는 월 3000만원의 매출이 발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화장실을 제외하고 30평 규모의 공간이라면 주방공간을 고려해서 대략 40석 정도를 최대 좌석수로 할 수 있다. 홀의 경우 대략 서빙 인원 한 명이 최대 20명까지 받을 수는 있다. 손님들은 좀 불편하겠지만 참을 만한 정도이긴 하다. 서빙 하는 사람도 화장실 가는 걸 참아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지만 이건 만석이 몇 시간 지속되는 성공한 펍 상황이니 일단 접어두자. 어쨌든 40석을 갖춘 30평 매장이면 주방포함 최소 3인이 필요하고 만석시에는 정말 바쁘게 돌아갈 거다. 실수도 발생할 수 있다. 4인석에 항상 4인 손님이 앉지 않기 때문에 최대 착석률은 80% 정도 가늠하면 된다. 즉 만석일 경우 32명의 손님이 홀에 계시는 거다. 일 매출이 115만원이 나와야 하는 것도 이미 계산 했으니 32명의 손님이 하루 방문객의 전부일 경우 객단가는 35,937원이 되어야 한다. 48명이 방문한다고 가정하면 23,958원의 객단가가 설정된다. 이런 기준으로 당신이 달성해야 하는 매출을 위해서 음식과 술의 가격을 정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조건이 맞는 매장의 월 임대료가 300만원 (부가세 포함)이면 당신이 얼마를 벌 수 있는지 정리해 보자.
이렇게 보면 참 아름답다. 이익에서 소득세와 의료보험을 납부하고 나면 600만원 언저리일텐데, 이건 10%룰이 맞았고 가게가 정말 번창하는 경우에 그렇다. 만약 번화가 지역이어서 월세가 400만원이면 소득은 500만원 언저리로 줄어든다. 6000만원 정도 투자해서 월 5~600만원 정도 수익을 올리면 괜찮은 것 아니냐는 판단을 할 수도 있겠으나 잘 생각해 보시라. 게다가 연 매출 3억 미만인 경우 0.8%인 카드 수수료가 연 3억 이상일 경우 1.8%로 두 배 이상 상승한다. 당신 수입의 8%를 그냥 상납하는 거다.
1.8%라는 비율은 별거 아닌 듯해도 막상 당신 버는 돈과 비교해 보면 작지 않다. 게다가 사업자 카드를 만들면 연회비가 10만원 이상이니 당신은 그야 말로 카드사의 가장 달콤한 호갱인 거다.
아름다운 숫자를 보여줬으니 헬 게이트도 함께 보여드리겠다. 만약 외부 요인이든 뭐든 매출이 10% 줄면 이익은 정도 25% 줄어든다. 매출이 10 ~ 20% 줄었다고 고정비가 함께 줄진 않기 때문이다. 숫자로 보자.
매출이 빠지는 비율에 비해서 두배 이상 당신의 수입은 줄어든다. 여기서 숫자에 밝은 분은 카드 수수료에 질문이 있을 거다. 월 매출 2400만원이면 연매출 3억이 안되니 0.8 %로 줄어 드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카드 수수료로 몸부림 치는 자영업자들은 바보가 아니고, 카드사도 마음씨 착한 서비스 업자가 아니다. 1년 단위로 수수료 비율이 갱신 되기 때문에 지난 해 매출에 의해 정해진 수수료는 그냥 쌩으로 내야한다. 매출이 계속 떨어지면 다음해에는 0.8% 적용되니 비용에서 빼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 상황이 되면 당신은 6000만원 투자해서 월 수입 300만원 이하가 된다. 게다가 그 다음해에 당신이 여전히 건강하고, 손님들은 다시 마구 찾아준다는 보장이 어디 있나? 특히 가게에 손님이 없기 시작하면 올 사람도 안 온다. 자영업은 빈익빈 부익부가 특히 크다. 겨울에 손님 많은 가게는 히터를 줄이거나 꺼도 된다.
에어컨 켜는 전기료보다 히터 켜는 전기료가 비싸다. 하지만 손님 없는 가게는 혹여나 손님이 와서 추울세라 히터 빵빵하게 틀고 더러는 보조 난방기까지 돌려야 한다. 그러니 1.8% 카드 수수료를 수정해야 해야 한다고 따지려거든 그냥 당신이 고쳐서 메모해라. 나는 학술용 논문을 작성하는게 아니니까.
지금 본 매출과 이익률에 대한 내용은 몇 가지를 전제한다. 직접 고칠 수 없는 설비 고장은 일어나지 않고, 직원들도 항상 건강하고 아파서 쉴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고, 식자재 값은 오르거나 내리지 않고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당신은 회사 다닐 때보다 더 길게 일해야 하고, 상권에 따라서는 휴일에도 일해야 하고, 퇴직금도 없고, 가족들과 여행을 가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는데 그게 정말 괜찮은 건지 생각해보라. 자영업자가 시간을 내려면 매출을 포기하고 가게를 닫든, 사람을 더 고용하든 좌우지간 돈으로 메꿔야 한다. 게다가 권리금이 있는 곳에 계약했다가 권리금을 날리는 상황이 되면 멘탈까지 붕괴될 거다.
여기까지 모아 놓은 일곱 가지 조언사항이 이 글을 통해 여러분에게 전달할 만한 내 경험이다. 이 정도면 펍을 해보려고 고려중인 당신이 알아야 할 많은 부분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좋은 공간에서, 좋은 술과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가슴 설레는 좋은 직업이다. 나도 내가 꾸려 나가는 공간에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것이 정말 행복하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들이 고생스러울 수록 손님들이 편안하듯이 행복의 이면에는 조마조마한 시간과 깊은 고민과 번뇌가 자리잡고 있다. 어느 직업이나 비슷한 면이 있지만 자영업을 한다는 건 좀 더 위험한 요소를 떠 안는 결정이다. 부디 당신들의 진지한 고민과 현명한 결정이 밝은 미래를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다.
EDITOR_서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