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맛있는 맥주를 위해 드래프트 시스템의 관리와 세척
맥줏집은 맥주가 맛있어야 한다. 음식이나 서비스, 인테리어 등도 맥줏집을 운영함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긴 하나, 맥줏집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한 맥주가 맛있어야 함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당연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 펍은 생맥주를 서빙하는 시스템인 ‘드래프트 시스템’을 철저히 관리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줏집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으면서 드래프트 시스템 관리를 전혀 안한 티가 너무나도 많이 나는 곳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이 우리나라의 슬픈 현실이다. 드래프트 시스템은 왜 관리되어야 하며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펍을 운영하거나 펍에 종사하거나, 앞으로 그럴 생각이 있는 분들이라면 꼭 알아야할 내용이니 필독하도록 하자. 비단 펍에 종사하는 분들 외에 평소 생맥주가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했던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글이 될 것이다.
드래프트 시스템의 구조
펍에서 일을 해본 분들이라면 당연히 드래프트 시스템이 어떻게 구성 돼있는지 잘 알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드래프트 시스템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부터 알아보자.
드래프트 시스템에서 맥주는 케그(Keg)라고 하는 통에 담겨있다. 드래프트 시스템은 이 케그의 안에 가스를 집어넣음으로써, 그 압력을 통해 맥주를 뽑아내서 잔에 따라내도록 만드는 장치들이다. 케그는 크게 맥주를 담는 통(Vessel) 부분과 케그의 넥(Neck) 부분에 연결되는 밸브(Valve), 그리고 밸브부터 케그 거의 밑바닥까지 닿아있는 기다란 관인 스피어(Spear, 혹은 다운 튜브(Down Tube)라고도 불림) 등의 파츠로 나뉜다. 케그의 밸브를 통해 가스가 통 윗부분(Headspace)으로 들어오게 되면, 압력에 의해 스피어 아래쪽으로 맥주가 밀려들어가 밸브를 통해 밖으로 나오는 원리로 맥주가 따라지게 된다.
하지만 평소 케그는 산소를 차단하기 위해 밀봉이 되어있다. 맥주를 따르기 위해선 이 밀봉을 풀어 케그에 가스를 넣어주고, 스피어를 통해 나오는 맥주를 뽑아내 줄 장치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하는 장치가 바로 커플러(Coupler)다. 커플러에는 가스 라인과 비어 라인(Beer Line) 이 연결되어 있다. 밸브의 타입에 따라 알맞은 타입의 커플러를 케그에 연결하면 커플러는 가스 라인을 통해 가스를 받아 케그 안쪽에 주입해주고, 케그에서 나온 맥주를 비어 라인으로 주입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때 맥주가 가스 라인 안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인 토마스 밸브(Thomas Valve), 커플러를 케그에서 분리할 때 맥주가 쏟아지지 않도록 방지해주는 장치인 체크 밸브(Check Valve) 혹은 체크볼(Check Ball) 등이 커플러 내부에 들어있다. 커플러는 가스 시스템, 푸셋과 비어 라인 시스템, 케그 이 세가지가 상호작용 하도록 돕는 동시에 역류 방지를 통해 셋을 확실히 분리하기도 하는, 매우 중요한 장치인 셈이다.
커플러를 통해 밖으로 나온 맥주는 가스의 압력에 밀려 비어 라인을 따라 흘러가게 된다. 이때 비어 라인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다이렉트 드로우(Direct Draw) 시스템과 롱 드로우(Long Draw) 시스템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쓰이는 것은 다이렉트 드로우 시스템이므로, 후술되는 모든 내용은 다이렉트 드로
우 시스템을 기준으로 한 글이란 것을 참고하도록 하자(급속 냉각기를 사용하는 경우 또한 일종의 다이렉트 드로우 시스템이다). 마지막으로 흘러간 맥주는 비어라인 끝에 연결된 푸셋(Faucet1))을 통해 밖으로 나와 잔에 따라지게 된다.
드래프트 시스템의 관리
드래프트 시스템을 관리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바로 ‘맥주를 변질시키지 않는 것’이다. 즉, ‘드래프트 시스템을 관리한다’는 것은 ‘맥주를 변질시킬 요인을 제거하거나 조절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하나의 원칙은 ‘맥주가 원활히 따라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드래프트 시스템과 맥주간의 마찰력, 압력, 고도의 변화, 비어 스톤(Beer Stone)2) 제거 등을 신경써야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주로 쓰이는 것은 다이렉트 드로우 시스템이고, 다이렉트 드로우 시스템은 이 부분에선 비교적 크게 문제될 것이 없으니 이 글에선 ‘맥주를 변질시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만 다루도록 하겠다.
드래프트 시스템에서 맥주를 변질시키는 요인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번째로 꼽히는 것은 온도다. 맥주를 상온에 보관하면 산화 등의 여러 화학반응이 일어나 맥주가 변질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실제로 냉각기를 이용하여 맥주를 서브하는 곳에 가보면 내가 아는 맥주 맛과 다른 맛을 지닌 맥주가 나오는 경우를 심심찮게 발견하곤 한다.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정도의 변질은 동네 맥줏집 어딜 가도 흔히 볼 수 있고, 심한 경우 신맛이 나지 않아야 할 맥주에서 강한 신맛이 나는 경우도 있다. 고로 보다 좋은 맥주를 제공하는 펍이 되기 위해선 냉각기 사용은 되도록 배제하는 편이 좋다.
맥주의 온도가 중요한 것은 비단 맥주의 맛 때문만은 아니다. 탄산 또한 온도에 영향을 받는다. 기체의 용해도는 온도가 높을수록 낮아지고, 압력이 높을수록 높아진다는 사실은 학창시절 과학시간에 들어봤을 것이다. 때문에 온도가 높아지게 되면 맥주에 녹아있던 탄산이 용해도가 낮아짐으로 인해 맥주 밖으로 나오게 되고, 이는 맥주를 푸어링(Pouring, 맥주를 따르는 것)할 때 지나치게 많은 거품을 형성하게 됨과 동시에 맥주의 탄산감을 떨어뜨리기까지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반대로 온도가 지나치게 낮으면 탄산의 용해도가 높아지고, 맥주에 탄산이 더 녹아 들어 본래 맥주보다 더 높은 탄산감을 주게 되며(이를 두고 흔히 과탄이라 한다) 이 역시도 푸어링 할 때 많은 거품을 형성하게 만든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워크인(Walk-In) 냉장고를 이용한 드래프트 시스템에선 가스통만이라도 냉장고 밖으로 빼 두는 것이 좋다. 대부분 의 맥주는 2-4℃의 온도에서 보관하는 것을 추천하며, 되도록 맥주가 지나가는 모든 길(비어 라인까지)을 냉장할 것을 권한다.
두번째 요인은 바로 가스다. 키케그(KeyKeg3))가 아닌 이상, 가스는 케그 안에 들어가 맥주와 직접적으로 맞닿게 되므로 맥주와 상호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가스 그 자체가 별다른 냄새나 오염물질을 지니고있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가스 필터(Gas Filter)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한국에선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가스는 품질뿐 아니라 압력 역시 중요하다. 가스 압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맥주 푸어링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맥주가 변질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또한 앞서 언급한 용해도의 원리, 그 중에서도 헨리의 법칙(Henry’s Law – 일정한 조건 하에서 기체의 용해도는 압력이 높을수록 높아진다)을 생각해보면 된다. 지나치게 높은 압력의 탄산을 가하면 탄산이 맥주에 더 녹아 들게 되고, 반대로 탄산의 압력을 낮게 가하면 탄산이 맥주에서 빠져 나올뿐더러 맥주가 잘 나오지 않는 현상도 일어난다. 또한 양쪽 모두 맥주를 푸어링 할 때 거품이 지나치게 많이 형성되도록 하는 결과를 낳는다. 둘 중 어느 것도 맥주에 좋다고 할 수는 없으니, 탄산 농도의 변화를 막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은 맥주에 녹아있는 탄산의 압력과 케그에 가하는 탄산의 압력을 동일하게 맞추는 것이다.
문제는 맥주에 녹아있는 탄산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통상의 맥주(알코올 함량 5% 남짓)는 보통 리터당 5g의 CO2(혹은 2.5 volume of CO2로 표현하기도 한다)를 포함하고 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100% 농도의 CO2를 기준으로 3.3℃에선 약 11.3psi(0.78bar)의 압력을 맞추는 것을 권장하고 있으며, 2℃에선 약 10psi(0.69bar)의 압력을 맞추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DBQM, 해발고도 0m 기준). 이때 탄산의 용해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앞서 언급한 온도, 압력뿐 아니라 알코올 함량4)도 포함된다. 그러니 맥주의 정확한 탄산 함량을 알지 못하는 상태라면, 앞서 말한 기준과 변수들을 고려하려 탄산의 압력을 재량 것 조절하면 된다. 또한 고도가 높은 곳이라면 해발고도 600m당 1psi를 추가하여 올리면 된다.
드래프트 시스템 세척
드래프트 시스템에서 맥주를 변질시키는 세번째 요인은 바로 ‘청결함’이다. 맥주에는 온갖 물질들이 들어있으며, 이들은 비어 라인과 커플러, 푸셋 등 맥주가 지나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쌓이거나 들러붙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끈적거리는 홉 레진(Hop Resin)과 단백질, 잔당, 딱딱한 미네랄 성분(가령 비어 스톤), 효모, 심한 경우 미생물들이 생성한 바이오 필름(Bio-film) 등이 드래프트 시스템 내부를 더럽히곤 한다. 이는 비단 맥주의 진로를 방해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맥주의 맛을 직접적으로 변질시키며, 세균이 번식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는 역할도 한다. 또 세균이 번식한 드래프트 시스템은 디아세틸(Diacetyl)5)과 초산(Acetic Acid)6) 등의 이취(Off-flavor)가 발생하게 된다. 고로 제대로 된 펍이라면 드래프트 시스템 세척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세척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드래프트 시스템 세척은 강염기나 강산 등 인체에 유해한 약품을 사용하는 일이기에 안전을 신경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되도록 고무 장갑 정도는 착용하는 것이 좋으며, 보안경과 앞치마 등도 두르는 편이 좋다. 또한 염기나 산 등 화학물질을 물과 희석할 때, 반드시 물을 먼저 넣고 물 안에 화학물질을 넣는 방식으로 희석을 해야한다. 화학물질에 물을 붓는 방식이 되면 급격한 온도 변화로 인해 약품이 튀거나 분출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드래프트 시스템 세척은 시간, 화학약품의 농도와 강도, 온도, 기계적 행동 이 네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약품의 농도가 높고 세척력이 강한 약품을 쓸수록, 세척을 오랫동안 진행할수록, 약품의 온도가 높을수록, 더 강한 힘으로 세척을 할수록 더욱 세척이 잘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이들 네 요소를 고려하고 상호보완하여 세척을 해야하나, 우리나라의 경우 드래프트 시스템에 펌프와 같은 기계적 요소를 도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기계적 행동을 제외한 나머지 세 요소를 신경 쓰면 된다. 가령 약품의 온도가 낮다면, 약품의 농도를 보다 높이고 오랜 시간 동안 세척을 진행하는 식으로 수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드래프트 시스템의 세척은 부품과 약품에 따라 주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비어 라인의 경우, 최소 2주에 한번씩은 부식성 용액 (Caustic Solution, 염기성 용액)을 이용하여 세척을 해줘야 한다. 부식성 용액은 여러 유기물들을 제거함으로서 오염균들이 드래프트 시스템 내부에 살 수 없도록 해주고, 비어 스톤을 제거하는 데에도 어느정도 일조한다. 이때 부식성 용액의 성분으로는 수산화나트륨(Sodium Hydroxide)과 수산화칼륨(Potassium Hydroxide)이 포함된 것이 적합하며, 염소(Chlorine)가 포함된 것은 맥주 맛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용액의 농도는 최소 2% 이상은 되는 것이 좋으며, 노후한 드래프트 시스템이거나 많은 문제가 감지되는 드래프트 시스템의 경우는 3%정도의 농도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때 용액의 온도는 26℃에서 43℃ 정도는 되는 것이 좋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켰다는 가정하에, 용액을 비어 라인에 넣고 최소한 20분 정도는 물려 둬야 충분한 세척이 이루어진다. 염기성 용액을 이용한 세척과는 별개로, 산성 용액을 이용한 세척 또한 90일에 한번씩 이루어져야 한다. 염기성 용액이 유기물을 주로 제거한다면 산성 용액은 비어 스톤과 같은 무기물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이때 산성 용액으로는 염산(Hydrochloric Acid)과 질산(Nitric Acid)이 포함되지 않은 용액을 골라야 한다.
염산과 질산은 드래프트 시스템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농도나 시간은 부식성 용액을 이용하는 법과 비슷하다. 그리고 부식성 용액과 산성 용액을 이용한 세척을 진행하기 이전과 이후엔 반드시 물을 이용하여 비어 라인을 한번 세척해주어야 한다. 이때 세척 이전엔 따뜻한 물로, 세척 이후엔 찬물로 비어 라인을 청소해주는 것이 좋다. 이는 냉각기를 이용하는 펍이라면 더더욱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냉각기의 비어 라인은 길고, 빙글빙글 꼬여 있으면서 고정되어있기 때문에 비어 라인이 더러워지기가 더욱 쉽기 때문이다.
푸셋 역시 2주에 한번씩 완전 분해되어 세척이 이루어져야 한다. 푸셋의 부품들은 손과 솔을 이용해 직접적으로 닦아주어야 하며 맨손으로 하면 손이 다칠 염려가 있으니 되도록 장갑을 끼도록 하자. 이외에 커플러의 밑부분(케그와 연결되는 부분)도 2주에 한번씩은 닦아주는 것이 좋으며, 커플러의 완전 분해 세척은 반년마다 한번씩 해주는 것이 좋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드래프트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은 생맥주를 판매하는 곳이라면 필수적인 일이다. 좋은 상태의 맥주를 서빙하는 것은 가게에 맥주를 마시러 와준 고객에 대한 예의이자, 힘들게 맥주를 만든 양조사에 대한 예의이며, 맥주 그 자체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부디 우리나라도맥주 관리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져서, 어느 펍이건 믿고 들어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EDITOR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