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제대로 알고 숙성시키자
와인이면 몰라도, 맥주를 숙성한다는 상은 맥주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맥주는 최대한 신선하게 마실수록 맛있으며 오래될수록 신선도가 떨어져 맛이 없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다수의 맥주에 있어선 맞는 말이지만, 몇몇 맥주는 오히려 숙성을 권유하기도 한다. 또한 바로 먹어도 맛있으면서 숙성을 하면 더욱 맛이 재미있게 변하는 맥주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떤 맥주를 숙성해야 하고 어떤 맥주를 숙성하지 말아야 할까. 그리고 맥주를 숙성시키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숙성, 성숙, 썩음의 차이
우선 용어 정리를 확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나 숙성(Aging)과 성숙(Maturation)은 한글로 보면 큰 차이가 없게 느껴지는 단어이기에 많이들 혼용하곤 한다. 오늘 우리가 이 글에서 다룰것은 ‘숙성’이며, ‘성숙’과 ‘썩음’은 술을 오래 둔다는 점에서 숙성과 언뜻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르다. 우선 ‘성숙(Maturation)’은 1차 발효가 막 끝난 직후부터 맥주를 패키징 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이른다. 컨디셔닝(Conditioning)이나 라거링(Lagering)도 이에 포함된다. 발효가 끝났으면 술이 완성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테지만 발효는 어디까지나 당을 알코올과 탄산으로 분해하는 과정만을 이를 뿐, 실제로 발효가 끝난 직후의 맥주는 여러 안 좋은 풍미들이 마구 뒤섞여 있다. 이 안 좋은 풍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버터와 같은 풍미를 지닌 디아세틸(Diacetyl)과 초록색 사과와 같은 풍미를 지닌 아세트 알데히드(Acetaldehyde)이며, 이외에 꿀과 같은 풍미를 주는 펜탄디온(Pentanedione)과 썩은 계란 같은 풍미를 주는 황화수소(Hydrogen Sulfide)도 포함된다. 성숙이 안 된 맥주는 특히나 아세트알데히드의 ‘초록색 사과’스러운 풍미가 강하기에 성숙이 안 된 맥주를 두고 보통 ‘Green Beer’라고 한다. 또한 ‘성숙이 잘 안 되었다’는 것을 ‘Green’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Green’함을 없애기 위해선 보통 1~2주 남짓의 시간이 걸리며, 간혹 몇 달 정도 성숙을 시키는 맥주도 존재한다.
성숙은 ‘맥주를 판매에 적합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가지는 과정’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바꿔 말하자면 성숙이 제대로 되지 않은 맥주는 아직 판매에 적합하지 않은 맥주란 것이다. 그렇기에 성숙은 필수적인 과정이며, 성숙이 되지 않은 맥주는 좋지 않은 맥주라고 여겨지곤 한다. 정상적인 양조장이라면 성숙을 하지 않고 맥주를 판매하는 경우는 없기에(일부 바틀 컨디셔닝(Bottle Conditioning)1) 맥주의 경우는 예외다) ‘Green Beer’를 시중에서 만나보긴 어렵겠지만, 홈 브루잉을 해보면 왜 성숙이 필요한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숙성(Aging)’은 맥주가 패키징이 되고 난 이후에 이루어지는 과정이며, 성숙과 달리 필수적인 과정은 아니다. 대부분의 맥주는 오히려 숙성하지 않아야 더욱 맛이 좋으며, 양조장 차원에서 맥주 숙성을 권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맥주를 숙성시키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일부 맥주의 경우는 숙성을 거친 후 더욱 맛이 좋게 변하거나, 기존의 맥주와는 아예 다른 맥주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올바른 환경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된 맥주를 두고는 잘 ‘숙성’되었다고 하지만, 올바르지 않은 환경에서 묵혀서 되레 맛이 불쾌해진 맥주, 혹은 묵히지 말아야 하는데 묵힌 맥주는 ‘썩었다(Staling)2)’고 말한다. 발효와 부패의 차이와 같다고 보면 된다.
맥주를 썩게 만드는 요인은 열, 빛, 산소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이러한 요인들은 맥주에 불쾌한 풍미들을 생성하게 된다. 고로 맥주를 묵히기로 마음먹었다면 제대로 된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숙성을 하면 왜 맛이 변할까
맥주 안에는 굉장히 다양한 물질들이 들어있다. 시간이 갈수록 이루어지는 이들 간의 화학적, 물리적 상호작용은 정말 무궁무진하며, 그만큼 숙성을 통해 생성되거나 사라지는 풍미들도 매우 다양하다. 이중엔 명확한 원리가 규명되지 않은 것들도 많다. 그래도 숙성 시 맛이 변하는 요인으로 크게 미생물에 의한 변화와 산화, 비산화적 반응까지 세 가지 정도는 꼽아볼 수가 있다.
1.미생물에 의한 변화 Change from microorganisms
많이들 간과하곤 하는 것이지만, 미생물도 엄연히 살아있는 생물이다. 먹을 것이 없으면 다른 것을 주워 먹기도 하고, 평소와는 다른 물질을 생성하기도 하며, 죽기도 하고 살기 위해 발악을 하기도한다. 맥주병 속에 효모나 다른 균들을 집어넣은 경우에도 똑같다. 맥주 속에서 미생물이 일으키는 여러 생리적인 반응은 결국 맥주 맛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대표적인 예시로 람빅(Lambic)과 와일드 에일(Wild Ale)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맥주 안에서는 브레타노마이세스(Brettanomyces) 속(Genus)의 야생효모-일명 브렛(Brett)-뿐 아니라 여러 다양한 균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서로 간에 영향을 미치며 만들어내는 화학작용은 조그마한 변수에도 정말 많이 달라지기에, 미생물들이 만들어내는 풍미는 복잡하고 다양하며 예측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굳이 사워 맥주뿐 아니라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에서 맥주의 복잡성을 더해주기 위해 야생효모를 사용하기도 한다.
미생물에 의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는 람빅이다. 숙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람빅과 오래 숙성된 람빅을 비교하며 시음 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곤 한다. 보통 어린 람빅(Young Lambic)은 다소 날카로운 신맛과 함께 크게 복잡하지 않은, 직선적인 풍미를 나타낸다. 반면 오래 숙성한 람빅은 어린 람빅에 비해 훨씬 드라이해지고 비교적 둥글어진 신맛과 파인애플, 살구 등의 다채로운 과일 풍미가 느껴지며, 추가로 말 안장, 정향 등으로 표현되는 특유의 ‘브렛’스러운 쿰쿰함을 더욱 풍부하게 낸다. 물론 앞서 언급했다시피 야생효모의 활동은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항상 같은 결 과를 보여주진 않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야생효모가 들어있는 맥주는 대체로 한 번쯤 숙성시켜 볼만한 가치가 있는 맥주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유명한 트라피스트 에일인 오르발(Orval)이며, 스톤(Stone)의 인조이 애프터(Enjoy After)처럼 아예 특정 날짜까지 숙성을 시킨 이후에 맥주를 먹도록 권유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한 야생효모와 세균 이외에 일반적인 맥주효모-사카로마이세스(Saccharomyces) 속의 효모-를 함께 병에 넣는 경우도 당연히 존재한다. 다수의 벨기에 맥주들이 이에 해당하며, 그 외에도 ‘바틀 컨디셔닝(Bottle Conditioning)’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면 안에 효모가 들어있다고 보면 된다. 이런 맥주들은 적당한 시간 동안 병내 숙성을 거치며 여러 에스테르와 알데히드를 만들기도 하고 분해하기도 하면서 맥주의 풍미를 변화시킨다. 때문에 ‘바틀 컨디셔닝’이 적혀있는 맥주는 숙성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러한 맥주들을 지나치게 오래 숙성할 경우 효모 자체가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먹을만한 영양분이 거의 다 사라진 병내 환경은 효모에게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이에 효모는 결국 고통스러운 생을 마감하기 위해 자살(!)을 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자가분해(Autolysis)라 한다. 자가분해 시 효모는 자신의 세포막을 파괴하며, 세포 내부의 가수분해효소를 비롯한 여러 물질이 맥주 속으로 섞여 들어가게된다. 이 물질 중 아미노산과 뉴클레오타이드 등은 쓴맛과 황의 구린내, 특히나 고기와 같은 풍미(Meaty)를 내게 되며, 지질은 악취를 내곤 한다. 자가분해된 효모가 많을 경우엔 맥주의 pH까지 증가시킨다. 거기다 가수분해효소들은 맥주 내부의 단백질들을 분해하여 맥주의 거품 유지력을 떨어뜨리고 맥주를 더욱 탁하게 만든다. 또한 미처 분해되지 않았던 잔당들을 분해하여 다시금 활성을 잃은 효모가 발효를 진행하도록 유도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10년 이상 장기 숙성된 바틀 컨디셔닝 맥주들은 대부분 잔당감 없이 굉장히 드라이한 편이다. 이러한 효모의 자가분해에 의해 생긴 풍미들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이라 여겨지곤 하지만, 맥주의 다른 풍미들과 좋은 조화를 이룬다면 감칠맛 같은 느낌(고기 같은 풍미의 경우)을 주기에 좋은 풍미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빈티지 샴페인에서 종종 느껴지는 구운 헤이즐넛 같은 풍미 역시 효모의 자가분해가 좋은 풍미로 작용한 예다. 다만 그 양이 많다면 문제가 되기에, 헤페바이젠(Hefeweizen)과 같이 효모가 매우 많이 들어있는 맥주는 숙성을 시키지 않는다. 반면 소량의 효모가 들어있는 트라피스트 에일은 10년 이상 숙성을 시키기도 한다.
2.산화에 의한 변화 Change from Oxidation
산화는 화학적 정의로는 어떤 원자, 분자, 이온 따위가 전자를 잃는 일을 의미하지만, 맥주에선 주로 맥주 내 물질이 산소와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보니 산소가 있는 곳이라면 산화는 항상 일어난다. 흔히들 밀봉돼 있다고 착각하기 마련인 병이나 캔 속에서도 산화는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맥주에서의 산화는 꽤나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산화가 일어난 맥주에선 오래된 꿀, 가죽, 종이, 고양이 오줌이나 블랙 커런트, 토마토와 같은 안 좋은 풍미가 난다고들 표현하니 말이다. 산화는 일종의 화학반응이므로 온도가 높을수록 더 활발하게 일어나고, 온도가 낮을수록 더 천천히 일어난다. 그 때문에 대형 마트 매대에서 냉장되지 않고 오랫동안 방치된 맥주들을 먹어보면 산화에 의한 풍미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경우엔 숙성이 아니라 ‘변질’이 된 것이다.
하지만 산화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맥주 스타일이 일부 존재하긴 한다. 발리 와인이나 올드 에일, 임페리얼 스타우트같이 맥아의 성향이 굉장히 강한 맥주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의 경우, 보리에서 기인한 풍부하고 고소한 빵 같은 풍미들은 산화를 통해 아몬드나 토피1), 나아가 셰리(Sherry) 와인과 같은 풍미를 내게 된다. 앞서 언급한 가죽 같은 풍미도 이와 어울리면 꽤나 좋은 풍미가 되기도 한다. 또한 구운 맥아(Roasted Malt)의 신선한 커피와 같은 풍미는 산화되면 다크 초콜릿의 풍미로 변하고, 이어 감초 같은 풍미로까지 변하므로 맥주의 복잡성(Complexity)을 더해주게 된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맥아의 성향이 강한 맥주라도 홉의 아로마 역시 풍부한 맥주라면 숙성 시 긍정적으로만 변화하진 않는단 것이다. 많은 아메리칸 임페리얼 스타우트나 아메리칸 발리 와인들은 맥아의 풍미 못지않게 홉의 아로마 또한 굉장히 강한 편인데, 이러한 맥주들은 묵히면 되레 본래의 개성을 잃고 맛이 없어질 확률이 높다. 홉의 쓴맛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줄어들고JF2), 홉의 아로마들 역시 시간이 갈수록 점점 사라지기 때문이다3). 홉의 아로마는 나중 가면 결국 안 좋은 찻잎 같은 풍미만 남게 되고, 알게 모르게 맥주의 풍미를 구성하고 있던 다채로운 홉 아로마들이 없어진 빈자리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오곤 한다.
여담으로 배럴 에이징(Barrel Aging)을 한 맥주들은 배럴 에이징을 하는 동안 이미 산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의 맥주들이다. 이는 양조사가 ‘산화가 다소 일어나도 괜찮을 맛’으로 설계를 하여 만든 맥주임을 의미하므로, 배럴 에이징 맥주는 숙성했을 때 맛이 좋은 경우가 많다. 또한 일부 맥주들의 경우엔 병 입구 주변을 왁스로 밀봉하기도 한다. 이는 추가적인 산소 유입을 방지하여 산화를 막기 위한 것으로, 달리 말하자면 ‘산소는 우리가 막아놓았으니 안심하고 숙성을 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숙성을 권장하는 맥주란 뜻이니 이러한 맥주들도 숙성을 했을 때 맛 이 좋은 경우가 많다.
3.비산화적 반응에 의한 변화 Change from Non-Oxidative Reaction
숙성 시 일어나는 비산화적(Non-Oxidative) 반응은 굉장히 다양하며,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가장 흔한 비산화적 반응은 분자가 분해되는(Break Down) 현상이며 분해된 물질들이 다시 새로운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또 새로운 풍미를 만들고, 이런식의 연쇄반응이 맥주 안에선 꾸준히 일어난다. 그리고 맥주가 숙성되면 밝은색 맥주들은 색이 조금 어두워지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어두운색 맥주들은 색이 조금 밝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 또한 일종의 비산화적 반응에 의해 생기는 현상이다. 다만 이 정도를 제외하곤 솔직히 이 파트에서 할만한 원론적인 얘기는 많지 않다. 앞서 말한 대로 연구가 잘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어떤 맥주가 묵혔을 경우 맛이 좋아지는가 정도의 이야기는 할 수 있다. 보통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맥주가 알코올 도수가 낮은 맥주보다 숙성했을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또 잔당이 많이 남아있는 맥주일수록 숙성 시 그 변화가 눈에 띄게 드러나며, 좋게 숙성이 되는 편이다. 그리고 밝은색 맥주보단 어두운색 맥주를 많이 숙성하는 편이다. 종합해보면 임페리얼 스타우트나 발틱 포터, 발리 와인, 올드 에일, 위헤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이는 ‘일반적인’ 경우의 얘기고, 항상 예외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잔당이 그다지 없음에도 많이들 숙성하는 벨지안 다크 스트롱 에일이라든가, 밝은색이어도 숙성을 하는 람빅이나 와일드 에일, 벨지안 트리펠 같은 경우가 예외에 해당한다.
올바르게 맥주를 숙성하는 방법
맥주를 숙성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올바른 방법으로 숙성을 진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맥주가 맛없게 변질되기만 할 테니 말이다.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온도다. 온도가 지나치게 높을 경우 산화가 빠르게 일어나며, 이는 맥주에 부정적인 산화취를 주곤 한다. 반대로 온도가 지나치게 낮은 곳에 맥주를 보관하면 화학반응이 매우 느린 속도로 일어나 유의미한 변화를 보기가 어렵다. 그리고 온도가 자주 변하면 효모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 때문에 맥주를 숙성할 때는 항상 11~13°C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이는 와인 숙성을 위한 온도와도 비슷하기 때문에 와인셀러를 가지고 있다면 와인셀러에 맥주를 함께 보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피치 못하게 이 온도를 꾸준히 유지하기가 어려울 경우, 온도가 높은 것보단 낮은 편이 좋다. 김치냉장고에 맥주를 숙성하곤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6°C 안팎의 낮은 온도이긴 해도 항상 일정하게 온도를 유지해주는 효과는 있으니 말이다.
빛 또한 최대한 받지 않도록 신경을 써줘야 한다. 아무리 갈색 맥주병이 98%의 빛을 차단해준다지만 몇 년 단위로 빛을 받을 경우엔 빛에 의한 변질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치냉장고나 셀러에 묵힌다면 빛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하다못해 종이상자 같은 곳에라도 넣어두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맥주를 항상 세워서 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와인의 경우, 코르크가 말라서 와인 병 안으로 빠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병을 눕혀서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맥주는 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 맥주는 크라운 캡으로 막혀있거나, 코르크를 쓰더라도 맥주병 안에 빠질 염려가 없는 버섯 형태의 압축 코르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1). 거기다 맥주병을 눕힐 경우, 맥주와 공기가 닿는 면적이 맥주병을 세웠을 때보다 넓어지기에 산화가더욱더 빠르게 일어나게 된다. 발리와인과 임페리얼 스타우트 같은 맥주들은 장기간 숙성을 시키면 이미 필터링을 한 맥주더라도 검은색 종이 쪼가리 같은 침전물이 생성되기에, 이 침전물을 잘 가라앉히기 위한 목적에서도 맥주병을 똑바로 세워두는 것이 좋다.
숙성은 강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매우 고된 과정이다. 눈앞에 술을 두고 몇 년 동안이나 먹지 못하다니, 보통 고역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숙성을 하다가도 목표를 못 채우고 술을 까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보았으며, 필자 또한 그러한 경험을 많이도 겪어 왔다. 하지만 숙성은 그러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낼 각오를 다질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부드럽고 우아하게 몇 년 동안 농익은 맥주가 입안에 들어올 때의 쾌감을 한번이라도 겪어본다면, 왜 맥덕들이 그렇게나 맥주를 묵혀 대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숙성된 맥주를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시작해보는 것이 어떠한가.
EDITOR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