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의 컬래버레이션, 그 의미와 사례
컬래버레이션, 혁신과 성장의 원동력
크래프트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은 새롭고 혁신적인 맥주를 꿈꾼다. 기존의 레시피를 벗어난 새로운 레시피의 맥주를 만들거나 하이브리드 스타일의 맥주를 만들곤 한다. 이러한 도전이 하나의 양조장에서 이루어지는 공동 작업이라면,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은 양조장과 양조장 혹은 양조장과 다른 업종의 협업으로 사업과 사업의 만남으로 볼 수도 있다.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서도 양조장간에 또는 음악, 미술 등과 같은 예술 분야나 다른 사업들과 연계하여 이러한 컬래버레이션 작업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의 컬래버레이션의 형태와 의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컬래버레이션의 정의
컬래버레이션의 어원은 ‘함께’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접두사 ‘com-‘과 ‘노동’을 뜻하는 ‘laborare’의 합성어로 ‘함께 일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지적인 영역에서의 일을 함께한다’는 뜻을 가진다.1 현대의 사전적 의미로는 공동작업이나 협력 또는 합작 등과 같이 두 명 이상의 개인 또는 조직이 함께 작업하여 목표를 달성하거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말한다.
협업을 통해 서로 다른 두 가지가 만나 각자의 경쟁력과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되며, 이러한 의미에서 전략적 제휴와 유사한 개념으로도 볼 수 있다.
컬래버레이션은 영역에 따라 세부적으로 약간씩 다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마케팅 영역에서는 다른 분야에 속해 있는 둘 이상의 브랜드가 새로운 브랜드나 소비자를 공략하는 기법을 말한다. 반면 예술 영역에서는 복수의 예술가들이 동일한 작품을 대등하게 분담하여 제작하는 것을 말한다. 디지털 콘텐츠의 경우 인기 콘텐츠의 캐릭터나 브랜드를 다른 영역의 새로운 콘텐츠와 접목하는 콘텐츠 컬래버레이션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맥주, 특히 크래프트 맥주의 영역에서 컬래버레이션은 양조자간의 협업, 양조자와 양조장, 양조장 간의 협업 등 산업 내에서의 컬래버레이션이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디자인,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의 영역이나 다른 주류(Liquor) 산업과도 컬래버레이션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크래프트 맥주 산업에서의 컬래버레이션은 제품(맥주)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마케팅의 영역보다는 독창적인 제품의 출시에 조금 더 치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 컬래버레이션의 중심이 맥주, 즉 제품인 것은 산업에서의 핵심적 요소가 제품 간의 차별성이기 때문이다. 크래프트 맥주 산업은 1970년대 후반 태동하게 되는데 기존의 대형 맥주회사에서 획일적으로 생산되는 맥주에 대항하는 전통적 방식의 맥주를 근간으로 여기에 크래프트 맥주를 생산하는 ‘크래프트 브루어(Craft Brewer)의 창의성이 더해져 다양한 맥주를 생산한다. 이를 통해서 수많은 스타일의 다양한 맥주가 공존하는 ‘다양성의 생태계’를 추구한다. 이처럼 다양한 맥주를 선보이는 것이 미덕인 생태계에서 제품인 맥주는 마케팅 이전에 맥주 본연의 품질과 매력을 갖추어야 하고, 이와 더불어 개성이 존재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제품의 혁신, 다시 말해 맥주 시장에서 다양한 맥주를 선보일 수 있는 능력은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히기도 한다. 이러한 한계는 맥주를 양조하는 브루어의 상상력이나 경험 등과 같은 역량과 관련된 부분일 수도 있고, 양조장이 보유하고 있는 생산 설비의 한계일 수도 있다. 이러한 한계를 깨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영감을 얻거나 특정 시기나 목적을 위해 기획할 수 있는 것이 컬래버레이션이다. 한편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는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협업의 상승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주를 이루며, 이에 따른 마케팅적인 효과를 분석하기도 한다.
맥주XSomething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서 ‘협업(co-work)’은 상당히 많이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예로 위탁 양조(Contract Brewing)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형태의 작업은 양조를 의뢰한 측과 양조를 실행하는 측이 공동으로 제품을 위한 일한다는 점에서는 컬래버레이션과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레시피를 제공하는 주체와 생산을 하는 주체의 지위가 다르고, 주어진 레시피에 따른 제품을 계약에 따라 생산한다는 면에서 컬래버레이션과 구별된다.
컬레버레이션 작업은 특정 제품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가자들의 의사가 반영되고 그 결과물로 제품이 출시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특정 페스티벌이나 기념일 등의 이벤트를 위한 공동 작업을 기획할 수도 있으며, 개인적인 친분 혹은 특정 양조사나 양조장의 스타일이 마음에 드는 것 또한 컬래버레이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컬래버레이션 맥주를 시장에 선보이는 방식 역시 다양하다. 일반적인 컬래버레이션의 경우 실제 양조가 이루어지는 곳(호스트)과 이에 참여 하는 사람이나 조직(다른 양조장)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일부 컬래버레이션 맥주의 경우 협업을 통해 완성시킨 맥주를 각기 자신의 양조장에서 동일한 레시피로 양조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렇게 완성한 맥주를 일회성이 아니라 연중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양조사나 양조장 간의 협업뿐만 아니라 예술 또는 다른 산업 영역과 협업하여 맥주를 생산하기도 한다. 양조를 실행할 수 있는 주체 간의 협업뿐만 아니라 실제 양조 업무에 참여하지 않는 주체들과도 그들의 아이디어나 이미지를 양조할 맥주의 스타일, 구체적인 레시피 등을 기획할 때 투영함으로써 공동 작업이 가능해진다. 혹은 맥주와 와인, 위스키 등 다른 주류 사이의 컬래버레이션도 있다. 특정 주류를 만들었던 오크통에 맥주를 에이징해서 출시하는 형태다. 음악, 미술, 디자인 등과 같은 예술 영역과의 컬래버레이션에서는 반대로 맥주를 설계 하는 단계에서부터가 아니라 이미 생산한 맥주를 공동 작업자에게 맛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 그 맛과 컨셉에 어울리는 음악이나 디자인, 그림 등을 공동작업자가 제공하는 형태의 컬래버레이션도 있을 수 있다.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컬래버레이션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태동했던 미국에서 첫 번째 컬래버레이션 맥주는 2006년에 처음 출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러시안 리버 브루잉(Russian River Brewing)과 에이버리 브루잉(Avery Brewing)의 “Collaboration Not Litigation Ale”이다. 두 회사 모두 “Salvation”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맥주를 가지고 있었다. 같은 이름으로 인해 상표권 분쟁이 있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2004년 4월 두 양조장은 극비에 만나 두회사의 ‘Salvation’을 블렌딩하기로하고 이를 2006년 출시했다. 이 맥주가 크래프트 브루어리 간의 최초의 컬레버레이션 맥주로 기록되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양조장 간 또는 양조자 간의 협력으로 출시된 맥주가 있겠지만, 시초로 기록되고 있는 컬래버레이션 맥주가 이것이다.
이후 크래프트 브루러이간의 컬래버레이션은 매우 활성화되어 현재까지 출시된 컬래버레이션 맥주만 1000종이 넘는다고 한다. 또한 매년 3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는 컬래버레이션 페스트(Collaboration Fest)가 열린다. 이 축제는 양조장들이 컬래버레이션 맥주를 만들고 선보이는 축제로 지난 해에는 150개가 넘는 브루어리가 참가했으며, 올해로 6회째를 맞는 컬레버레이션 페스트는 3월 16일 열릴 예정이다. 이처럼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서 활발하게 일어난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맥주 중 주목할 만한 맥주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최근 고릴라 브루잉은 칠홉스 브루어리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초코 칠리 홉스 엑스트라 스타우트(Chocochillihops Extra Stout)를 출시한 바 있으며, 브루독 이태원은 비어바나와 협업한 ‘콩글리시 에일(Konglish Ale)’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서울집시와 브루어리 304의 소풍 Saison, 더부스 브루잉과 투올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윗 마이 엑스(Wit My Ex Beers) 등 국내에서도 브루어리 간 협업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맥주 브루어리라고 해서 맥주를 양조하는 사람들끼리만 협력하는 것은 아니다. 위스키, 와인 심지어는 우리나라의 소주에 이르기까지 다른 주종을 다루는 회사와도 컬래버레이션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와 뉴욕의 식스포인트 양조장(Sixpoint Brewery)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맥주는 하이랜드 파크의 두 가지 위스키와 페어링을 염두에 둔 두 가지 맥주였다. 한편 국내에서 최근 출시된 고릴라 브루잉의 소주 배럴 에이지드 킹콩 임페리얼 스타우트(Soju Barrel Aged Imperial Stout)는 전통 소주 제조사인 화요와 협업하여 화요 X 프리미엄을 숙성시켰던 배럴에서 숙성시킨 맥주를 출시하기도 했다.
맥주와 예술의 만남
맥주의 컬래버레이션은 예술의 영역과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출시되어 있는 벨칭 비버 브루어리(Belching Beaver Brewery)의 데프톤즈 팬텀 브라이드 IPA(Deftones Phantom Bride IPA)는 미국 새크라멘토 출신의 록 밴드 데프톤즈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만들어진 맥주로, 맥주 이름은 이들의 정규 8집 수록곡의 제목인 ‘Phantom Bride’에서 따왔다. 도그피쉬 헤드브루어리(Dogfish Head Brewery)도 록밴드 플레이밍 립스(Flaming Lips)와 협업하여 Dragons & Yum Yums를 출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컬래버레이션의 영역이 더욱 넓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아크 맥주는 데일리 호텔, 라인 등과 협업으로 맥주를 출시했다. 또한 제주맥주는 온라인 게임 배틀그라운드와 컬래버레이션 맥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맥주가 맥주를 벗어나 협업한 제품을 출시하는 등과 같은 일련의 과정은 크래프트 맥주 시장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창조와 도전에 대한 열망이 투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컬래버레이션은 다른 양조장이나 양조자 또는 다른 업계와 협업 과정에서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와는 다른 아이디어를 접목하고, 이를 맥주로 표현하는 창조적인 작업임과 동시에 이러한 과정에서 혁신이나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기대할 수 있다.
컬래버레이션, 결국은 내가 아닌 ‘우리’ Collaboration
컬래버레이션은 마케팅적인 측면을 상당부분 포함하고 있다. 단순히 새로운 제품의 출시가 아니라 협업을 통해 탄생한 제품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에게 호기심과 기대를 불러일으킬 수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러한 측면에서 맥주시장, 그 중에서도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의 컬래버레이션은 각기 다른 성향의 양조장이 만나서 어떤 맥주를 만들어내게 될지 기대감을 증폭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양조장의 이미지를 보다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것으로 인식 시키는데도 기여를 하는 바가 있다. 특히 맥주산업 외부와 함께 협업 함으로써 선보이는 맥주의 경우 이러한 기능이 보다 강하게 드러나게 된다.
반면 양조장간의 협업이나 양조장-양조사 간의 협업, 브루어리와 아마추어 양조사의 협업 등은 조금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맥주를 생산해낸다고 할지라도 양조장간의 철학이나 목표 등은 다르며,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이나 실력 역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지금보다 더 창조적이고, 획기적인 자신만의 맥주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상대방을 존중 할 수 있을 때 협업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컬래버레이션은 동업자정신과 혁신을 향한 의지가 합쳐질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라고 불릴 수 있는 맥주 시장이 시작된지 겨우 5년 남짓의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여개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있으며, 이들 양조장들은 국내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 또는 해외 양조장과의 컬래버레이션이나 다른 분야와의 협업등을 활발해 진행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들은 우리나라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성장에 가는데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동일한 시장 안에서 같은 카테고리의 제품을 생산해 낸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경쟁관계를 형성한다는 뜻이며,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참여자들이 본질적으로 같이 경쟁하면서 성장해 나간다는 생각과 함께 동업자 정신이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치열한 생존경쟁만을 하는 것 보다 협업을 통해 시장에 대한 관심을 더 높일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교류는 참여한 사람들의 실력이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 좋은 맥주를 만들 수 있게 되고, 시장은 더욱 성장한다. 이 선순환의 고리의 한 부분에 컬래버레이션이 있다. 결과적으로 맥주시장에서의 컬래버레이션은 창조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도전의 표현이자 시장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본질이라 할 수 있다.
EDITOR_장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