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8만명의 맥주팬에 전달된 ‘평화맥주’
국내 브루어리 4곳이 남북평화를 기원하며 뭉쳤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만약 남한 브루어리와 북한 브루어리가 협업하여 맥주를 만든다면 그 맛은 어떨까?
한 번쯤 스쳐 지나갈 법한 막연한 상상에 힘을 실어주듯, 국내 브루어리 4곳이 뭉쳐 남북평화를 기원하는 맥주 ‘One day, One Korea’를 만들었다. 더부스(TheBooth), 맥파이, 어메이징 브루잉 그리고 와일드웨이브가 그 주인공이다.
이 컬래버레이션 맥주는 인삼과 산초가 들어간 세종 스타일로, 북한과 남한을 각각 상징하는 의미에서 전통적인 식재료를 활용했다. 언젠가 한반도가 통일되어 평화로운 상태에 이르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이번 협업 프로젝트는 영국에서 맥주 구독 서비스 ‘비어52(Beer 52)’를 운영하는 크래프트 맥주 매거진 ‘퍼먼트(Ferment)’의 제안으로 4개의 브루어리가 손잡았다. 함께 만든 ‘One Day, One Korea’, 더부스의 ‘금수강산’ 시리즈 3종을 비롯해 맥파이・어메이징 브루잉・와일드웨이브가 만든 9종의 맥주는 비어52의 구독자 80,000여 명에게 전달됐다.
판매로 발생한 수익금은 북한 인권 관련 NGO에 기부될 예정이다.
퍼먼트가 한국과의 인연으로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제안을수락한 브랜드가 모여 남북 평화를 기원하는 맥주 레시피를 완성하고 ‘One day, One Korea’라는 이름을 붙였다. 더부스의 한 관계자는 주제가 주제인 만큼, 맥주를 함께 구상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한편으로는 생각의 틀을 깨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으로서 '통일'이나 '평화'에 대해 생각할 때, 예상한 것보다 더 갇힌 사고를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오랜 역사와 과거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여 과거보다는 미래, 그리고 남북이 언젠가 하나가 된다면 할 수 있을 것들에 대한 상상력을 담고자 했습니다. 맥주를 통해 긍정적이고 즐거운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One Day One Korea라는 이름을 붙이자는 의견이 나왔고,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컬래버레이션 맥주 One day, One Korea는 에스테르의 과일 풍미와 함께 남한과 북한을 각각 대표하는 전통적 재료의 풍미가 은근하게 동반되며, 가볍고 달지 않은 맛을 띤다. 처음 레시피를 논의할 때 인삼, 오미자 열매, 청귤, 산초, 녹차, 메밀과 같은 다양한 한국적 식재료가 언급되었지만, 최종적으로 인삼과 산초가 맥주를 위한 부재료로 꼽혔다.
또한 맥주 개발 과정에서 외국 국적인 맥파이 브루잉의 헤드브루어 에릭은 퍼먼트 팀과 함께 북한을 직접 방문하여 북한 양조사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실제 맥주 양조 및 생산은 Mikkeller, To Øl, Omnipollo 등 브랜드의 위탁양조를 해온 벨기에의 De PROEF에서 진행했다.
평화맥주 시리즈는 컬래버레이션 맥주 One day, One Korea뿐 아니라, 각 브루어리의 특성을 살린 맥주를 3종씩 포함하여 총 13종으로 구성했다. 그중 더부스는 “금수강산“이라는 이름 아래 금수강산 Hazy Pale Ale, 금수강산 Red Ale, 금수강산 Milkshake IPA 3종의 레시피를 개발했다. 금수강산은 ‘비단에 수를 놓은 듯이 아름다운 산천’이라는 뜻으로, 한반도의 강산을 이르는 말이다.
“더부스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이루는 트렌디함, 다양성, 재미의 가치를 이번 협업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습니다. 이외에도 뉴잉글랜드 스타일 IPA인 유레카 서울 홉에일을 대표 제품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LGBTQ 커뮤니티를 후원하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스무디 IPA를 생산하는 등 트렌디하고 맛있는 맥주를 선보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퍼먼트 매거진에서는 이번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한반도 분단의 역사와 엮어 소개했으며, 각 참여 브랜드를 소개하는 기사를 발행했다. 이는 영국의 맥주 애호가들에게 한국 크래프트 맥주를 알리는 기회로 작용했다. 영국 전역으로 배달된 13종의 평화맥주는 3월 초부터 한국 크래프트 맥주 팬들에게도 소개될 예정이며, 더부스 매장 및 프로젝트에 참여한 브루어리의 일부 매장에서 만나볼수 있다.
더부스 마케팅실 강명희 이사는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의 브루어리들이 합작해서 맥주를 만든다면, 남북 이슈를 둘러싼 맹목적인 이념 비판을 넘어 남북한의 평화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더 잘 풀어낼 수 있을것 같았습니다.”라며, “실제 협업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브루어리들과 다양한 논의를 통해 맥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매우 즐거웠고, 이것을 계기로 로컬 브루어들과 향후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맥주에 스토리를 담고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은 크래프트 맥주 산업에서 특히 의미 있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국내 크래프트 맥주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4곳의 브루어리가 협업을 통해 보여준 일련의 과정들은 영국 맥주 애호가들뿐 아니라 국내 크래프트 업계에도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다른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자신의 관점을 되돌아보며, 정직하게 발화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사소통의 출발일 것이다.
“맥주를 함께 마시며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강력한 일입니다.”
EDITOR_홍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