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 트렌드로 알아보는 IPA의 트렌드
홉 트렌드로 알아보는 IPA의 트렌드
맥주 꽃 취향의 변화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게 된 맥주의 장르는 무엇일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IPA(India Pale Ale)’라고 대답할 것이다. 대영제국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시절, 영국 본토에서 식민지였던 인도까지 맥주를 온전한 상태로 운반하기 위해 고심한 끝에 탄생한 이 스타일은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열리며 스타가 되었다.
크래프트 맥주의 본질은 무엇일까? 미국 양조자 협회(ABA: American Brewers Association)의 정의에 따르면, 크래프트 맥주는 독립적인 자본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양조장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양조 되는 혁신적인 맥주다. 여기서 혁신이란, 창조와 도전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전통적인 맥주 스타일과 양조자의 창의성이 결합하면 기존의 맥주에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가 탄생한다. 혹은, 같은 스타일 안에서도 전혀 다른 맛과 풍미를 가진 맥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러한 도전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다. 이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상업 양조와 홈브루잉을 막론하고 브루어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맥주의 장르가 IPA다.
IPA, 크래프트 맥주의 꽃이 되다
대공황 시대의 금주령과 함께 찾아온 맥주의 암흑기는 마치 맥주의 종류가 라거밖에 없는 것처럼 인식되게 만들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전통방식의 맥주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러한 가운데 IPA를 다시 주목받게 만든 것이 CAMRA(Campaign for Real Ale)의 시작이다. CAMRA는 1971년 조직된 소비자 단체로, 맥주의 대량생산 방식과 농작물의 획일화를 반대하는 캠페인으로 시작되었다. CAMRA는 ‘Real Ale’. 즉, 대량생산시대 이전의 영국에서 주로 마시던 맥주나 사이다(Cider) 및 전통 영국 펍의 홍보와 보호를 위한 소비자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이 캠페인이 시작되면서 소비자들은 영국의 전통 방식의 맥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IPA 역시 영국에서 개발된 맥주로서 재조명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크래프트 맥주 시장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며 점차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 IPA는 CAMRA가 그러했듯이 크래프트 정신을 대표하는 맥주의 스타일로 성장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크래프트 맥주 시장을 대표하는 맥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미국이 농업, 특히 농업개발 분야가 발달한 나라라는 점이 큰 몫을 차지했다. 맥주 소비자들이 풍미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며 맥주에도 이러한 흐름이 이어졌다. 이에 일반적인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다양한 풍미를 부여할 수 있는 홉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홉의 특성을 가장 도드라지게 활용하는 IPA 스타일이 주목받게 되었고, 브루어들 역시 다양한 홉의 개성을 드러낸 자신만의 맥주를 만들어내며 시장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홉 재배와 수요가 시장을 반영한다
홉은 다년생 덩굴 식물로 첫해부터 수확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수확량을 얻기 위해서는 3-4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즉, 기존에재배되고 있던 홉 품종이 다른 종으로 대체되는 경우, 다시 말해 홉 선호의 유행이 달라지는 분기에 경작면적 대비 생산량의 감소가 나타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확량이 점차 회복되는 경향을 보인다.2004년부터 2018년까지 홉 재배 면적의 변화를 살펴보면 2006-2008년까지 상승기, 2008-2013년까지 하강기를 거쳐 다시 홉 재배 면적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 중 2008년까지의 상승기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부동산 버블 시기이며, 이후 하강기는 금융위기로 인해 경기 침체가 가시화되던 시기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홉 생산량을 살펴보면 2009년부터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특히 주목할 점은 2013년에 전년 대비 경작 면적 감소 폭이 매우 적음에도 불구하고 홉 생산량은 많이 감소했다는 점이다. 이후 2014년 큰 폭의 회복세를 보인 보이며, 이듬해 2015년 다시 큰 폭으로 감소한 후 2016년부터 홉 생산량이 큰 폭으로 증가해 완만한 상승세를 보인다.
이와 같은 흐름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미국이 전 세계 홉의 최대 산지 라는 점에서 생산되는 홉의 특성, 다시 말해 맥주에 쓴맛을 부여하는 목적으로 주로 쓰이는 비터링 홉과 향과 맛을 부여하는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는 아로마 홉의 경작 면적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를 살펴보는 것은 전반적인 맥주의 트렌드, 그중에서도 크래프트 맥주의 대표라고도 할 수 있는 IPA의 트렌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는데도 매우 큰 단서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서 홉은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인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경작 면적이 감소하다가 점차 경작 면적을 늘려가고 있다. 2015년 미국의 홉 경작면적은 2008년 수준을 넘어섰으며, 2018년에는 2008년 대비 41%나 증가했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최근 홉 경작면적이 꾸준히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 홉 생산량은 2008년 대비 약 25% 증가하는 데 그쳤다. 또한, 홉의 알파산을 기준으로 한 Alpha Production을 기준으로 볼 때는 약 20.4% 증가한 수준이다. 2011-2018년 기간동안 경작 면적이 꾸준히 증가한데 반해 홉 생산량의 증가 폭과 Alpha Production의 증가가 둔한 것으로 볼 때 기존보다 알파산 수치가 낮은 홉, 다시 말해 아로마 홉의 재배 면적이 증가하고, 비터링 홉의 재배 면적이 감소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증거는 미국 홉의 최대 산지인 태평양 북 서부 연안 지역의 홉 특성별 경작면적 비중 변화를 살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PNW(Pacific Northwest, 태평양 북서부 연안) 지역은 미국과 캐나다의 접경 지역으로 미국 북서부 캐스케이드 산맥 동쪽 지역을 말한다. 이 중 아이다호(Idaho), 오리건(Oregon), 워싱턴(Washington)주는 미국의 최대 홉 산지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홉 수확량을 보면, 2009년을 기점으로 높은 알파산을 가진 홉들의 수확량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며 2018년 소폭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아로마 홉의 경우 2010년부터 꾸준히 수확량이 증가해 2013년 알파 홉보다 많은 수확량을 보였으며, 전체 수확량이 점차 증가하는 가운데 알파 홉 대비 수확량이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기존의 알파 홉을 재배하던 지역 일부에 아로마 홉이 재배되기 시작했으며, 새롭게 경작을 시작한 지역에서도 주로 아로마 홉을 재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의 시작은 2011년으로, 2012년 홉 재배 면적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전체 홉생산량과 Alpha Production이 감소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홉이 재배를 시작하자마자 생산량이 극대화되는 것이 아니라 몇 년의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IPA 트렌드의 변화와 홉 품종
홉의 특성별(아로마 홉, 비터링 홉) 생산량의 변화 원인으로는 두가지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소비자 기호의 변화다. IPA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기존의 IPA, 특히 어느 정도의 바디감과 구릿빛을 연상시키는 색, 캐러멜의 풍미를 내는 맥아적 특성에 홉의 쓴맛이 밸런스를 만들어내는 ‘West Coast Style’로 불리는 IPA 스타일의 감소다.
최근 시장에서 선보이는 IPA는 비교적 옅은 색과 상대적으로 가벼운 바디감, 홉의 쓴맛보다 아로마가 강조된 형태가 주를 이룬다. 예전에 유행하던 IPA에 비해 현재 시장의 주류를 이루는 IPA 스타일은 음용성이 뛰어나며, 새롭게 IPA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비교적 거부감이 적다. 두 번째는 새로운 홉 품종의 개발이다. 2000년대 들어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성장은 홉 품종 개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맛과 향을 추구하는 맥주들이 늘어나며 기존의 홉 품종을 개량하여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어 냈다. 대표적인 품종으로는 2012년 처음 선보인 모자이크(Mosaic®), 1990년 처음 개발되어 2008년 시장에 선보인 시트라(Citra®) 등을 들 수 있다.
미국의 홉 품종별 재배 면적 변화가 알려주는 흥미로운 사실은 비터링과 아로마 용도로 모두 사용하는 다목적 홉이 재배면적 상위 10개의 품종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연도별 재배면적 상위 10개의 홉 중에서 홉 프로파일 기준으로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 뉘앙스를 주는 홉이 상위에 있다. 이 홉들 중 시트라는 지난 몇 년간 1위를 달리던 캐스케이드를 누르고 가장 넓은 곳에서 재배되는 홉이 되었다. 지난 몇 년간 캐스케이드와 슈퍼 캐스케이드로 불리는 센테니얼 홉이 가장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이 두 가지 홉과 시트라는 시트러스 계열의 특성을 보여주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캐스케이드와 센테니얼이 비교적 차분한 시트러스 뉘앙스와 플로럴한 케릭터를 가졌다면, 시트라는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과 함께 자몽, 라임, 열대과일 등 보다 가벼운 느낌을 주는 특성을 지녔다. 더 가벼운 특성의 홉이 결국은 이전보다 점차 몰트의 케릭터가 약하고 홉이 조금 더 도드라지는 맥주가 유행하는 현상과 이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IPA와 Jean: 돌고 도는 트렌드
우리가 입는 옷은 트렌드를 따라 움직인다. 그중에서 청바지를 예로 들어보자. 유행에 따라 길이가 길어지기도 짧아지기도 하며, 바지통이 넓어지기도 좁아지기도 한다. 그리고 몇 년, 몇십 년을 돌아 이전에 유행했던 스타일이 조금 형태를 달리해 다시 돌아오곤 한다.
IPA 역시 그렇다. 비교적 크래프트 시장 초기라고 볼 수 있는 1990년대 중반에 선보인 Bell’s의 Two Hearted Ale, Lagunitas IPA, Stone IPA는 지금 시장에서 회자되고 있는 IPA 제품들과는 비교적 다른 특성을 보인다. 이때 선보인 IPA에서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선보였던 IPA는 홉의 쓴맛을 강조하고,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맥아의 특성과 함께 높은 알코올 도수를 가진 것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IPA는 알코올 6% 중반 이상이었으며, 높은 IBU 수치를 가지고 있었다. 2010년에 근접하며 알코올 도수를 낮추고 홉의 쓴맛을 줄이되 IPA만큼의 강한 홉 향을 가진 Session IPA가 속속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2011년 미국 북동부 끝자락의 버몬트주의 알케미스트 양조장은 ‘IPA는 이래야 한다’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맥주를 선보인다. 대부분의 IPA가 필터링을 거쳐 투명한 데 반해 이 맥주는 뿌옇다 못해 부유물이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 혀를 찌르는 날카로운 쓴맛은 없는 대신 코를 잔에 가까이 가져가면 터지는 홉의 향과 마신 뒤 긴 여운이 남는 맛이 강렬한 맥주였지만 맥아적 특성은 기존의 IPA에 비하면 미미했다. 훗날 ‘New England Style IPA’로 명명되는 새로운 IPA 스타일의 시초는 헤디 토퍼(Heady Topper)이며, 동시에 캔 맥주의 열풍을 이끈 시작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 역시 ‘New England Style’의 IPA와 페일 에일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헤디 토퍼가 임페리얼 IPA(Imperial IPA)를 선보인 데 비해, 지금 좋은 평가를 얻는 맥주들은 알코올 도수가 낮고 홉의 쓴맛이 적으면서도 주스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홉의 맛과 향이 강조된 맥주이다. 마치 청바지의 유행이 돌듯, 점점 강한 맥주가 선보이다 홉 캐릭터의 강렬함이 정점을 찍고, 홉의 특성은 살아있되 마시기 쉬운 맥주로 유행이 돌아왔다. IPA 시장이 발달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홉 품종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기존의 품종들을 교배하거나 홉 품종마다 가지는 장점을 모은 홉들이 선보이고 있다. 대략 1만 번 정도 시도하면 3-4종 정도의 성공적인 결과물이 나온다고 하는 이 작업의 결과로 홉의 품종은 전통적인 품종을 포함해 몇백여 종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품종들을 조합해 만들 수 있는 맥주의 맛은 끝을 알 수 없게 된다. 지금의 IPA는 전통적인 홉 품종들을 이용하기보다는 새롭게 개발된 품종의 홉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탁하고 ‘Juicy’한 IPA, 가볍고 음용성이 좋은 IPA가 유행하고 있는 현재를 지나 미래에는 어떤 스타일의 IPA가 유행하게 될까?
물론, 최근 새롭게 만들어진 Brut IPA와 같이 맥주의 당도를 떨어뜨려 극도로 드라이함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홉의 영역에서 지금도 개발되고 있을 새로운 품종으로 만들어질 맥주를 예측해보는 것도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이 될 수 있다.
최근 홉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홉 공급 부족이 몇 년째 지속되고 있다. 특히, 아로마 홉의 인기로 인해 재배면적이 증가하면서 상대적으로 비터링 홉의 공급 부족이 점차 누적되어 가는 상황이다. 홉 재배 면적 역시 이러한 점들이 반영되어 2018년에는 미국의 전년 대비 비터링 홉 재배 면적이 조금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은 또 다른 IPA의 트렌드를 가져오게 될지도 모른다. IPA는 같은 스타일 안에서도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의 선호와 유행에 따라 변해간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홉이 있다. IPA의 새로운 맛 트렌드를 기다려보자.
EDITOR_장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