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링 페어링 #1 옴니폴로 노아 피칸 머드 케이크 X 호두파이
옴니폴로 브루어리
옴니폴로는 헤녹(Henok Fentie)과 칼(Karl Grandin)이 창립한 맥주 회사다. 창립자가 스웨덴 사람이라지만 옴니폴로를 스웨덴 맥주라고 하긴 어렵다. 옴니폴로는 전세계를 누비는 집시 브루어리이기 때문이다. 집시 브루어리란 세계 곳곳의 양조장에 잠깐씩 머물며 맥주를 양조하는 이들을 뜻한다. 즉, 유목(노마드) 브루어리란 말이다. 덕분에 이들의 맥주는 맥주 종류에 따라 양조장이 다르다. 옴니폴로는 자신이 머물렀던 도시에 맥주라는 인장을 남긴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옴니폴로는 맥주를 남긴다고 해야하나.
디자이너인 칼이 만든 로고는 맥주마다 다르다. 그 디자인이 특색있고 세련된 덕분에 글씨로 이름을 적지 않아도 사람들은 병만 보고도 옴니폴로의 맥주라는 걸 알 수 있다. 맥주 로고 디자인을 모아 전시도 하고 설치미술을 만들 정도니 옴니폴로의 로고는 단순한 로고를 뛰어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노아 피칸 머드 케이크
옴니폴로를 대표작 중 하나인 노아 피칸 머드. 네덜란드의 드 몰렌 양조장에서 헤녹의 레시피를 사용해 만들었다. 피넛버터, 밀크초콜릿 같은 단맛과 에스프레소처럼 쓴 맛이 어우러진 임페리얼 스타우트다. 태운 몰트가 주는 진한 풍미는 노아 피칸 머드 케이크를 마시는 순간, 파이를 한 입 베어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임페리얼 스타우트답게 알코올 기운도 뜨끈하게 목을 타고 위로 흘러간다. 질감도 끈적해 목넘김도 매력적이다. 맥주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디저트에 가깝다. 어린 시절 파티쉐를 꿈꿨던 브루어가 케이크에서 영감을 받아 주조한 맥주답다고나 할까.
옴니폴로 노아 피칸 머드(Noa Peacan Mud) 종류 상면발효맥주, 임페리얼 스타우트 원산지 네덜란드, 보데그라벤 양조장 드 몰렌 양조장(Brouwerij de Molen) 원료 물, 보리맥아, 밀맥아, 피칸/카라멜아로마
도수 11%
용량 330ml
호두파이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면 죄책감이 들곤 한다. 어려서부터 달게 먹으면 이가 썩는다는 말에 세뇌가 된 탓일까. 아니면 늘어나갈 몸무게를 견뎌야 할 체중계에게 미안하기 때문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단맛이 입에 퍼지며 행복한 기분이 들 땐 언제나 동시에 죄책감도 찾아온다. 호두는 정반대다. 건강식품의 대표주자인 호두,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호두,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뇌를 닮은 호두. 심지어 발음도 귀엽다. 호두. 호두를 먹으면 왜인지 올바른 세계로 한 발짝 다가간 느낌이 든다. 그래, 그러면 호두로디저트를 만들면 되잖아. 뿌듯함과 죄책감이 만나 상쇄되고, 달콤한 기분만 남는다고, 라는 마음으로 호두파이를 구워보았다. 바삭한 식감도 달달한 맛도 만족스럽다. 역시 디저트는 최고야. 이번에 만든 호두파이엔 젠엔콩만의 특별한 개성을 넣어보았다. 헤녹이 그러했 듯, 노아 피칸 머드만을 위한 특별한 레시피랄까. 크러스트를 보다 짭조름하게 만들고 필링을 달콤하게 만들어 단짠단짠 조합을 만들었다. 짠맛의 크러스트는 달콤한 호두 필링을 더욱 달콤하게 느끼도록 도와준다. 또한 호두의 바삭한 식감을 살려 끈적이는 풀바디인 맥주와 잘 어울리도록 했다.
호두파이 만드는 법
재료 타르트지 박력분 240g, 설탕 2t, 소금 1/4t, 차가운버터 150g, 달걀 1/2개, 우유 1t 필링 호두 2컵, 물엿 300g, 흑설탕 85g, 달걀 3개, 버터 2t, 위스키 2t, 박력분 1.5t, 바닐라익스트랙 1t, 시나몬가루 1/4t
노아 피칸 머드 케이크 X 호두파이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일반적으로’ 몰트가 주는 다채로운 풍미를 갖는다. 따라서 양조자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맥주이며, 음주자의 입장에서도 맛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았다간 그 섬세한 맛을 놓치기 쉽상이다. 따라서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즐기기 위한 푸드 페어링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연하고 감칠 맛을 주는 안주-이를 테면 치즈 같은-로 임페리얼 스타우트의 맛을 방해하지 않고 돋워주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을 택할 경우엔 웬만한 종류의 임페리얼 스타우트와는 대부분 어울린다. 까망베르 치즈, 브리 치즈를 추천한다.
두번째론, 양조자가 강조한 개성에 맞는 맛을 찾아 강화해주는 음식을 찾는 것이다. 앞서 말했 듯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양조자의 개성에 따라 맛이 확연하게 바뀐다(사실, 어느 주종의 맥주가 안 그렇겠냐만은). 이 경우엔 맥주에 따라 추천 요리가 천차만별이다.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부터 진한 다크 초콜렛에서 달콤한 파이까지. 이번에 노아 피칸 머드를 위한 푸드 페어링 팁은 두번째 전략을 사용했다. 노아 피칸 머드를 한입 베어 문 순간, 아니 마셔본 순간 곧바로 피칸 파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칸을 사와 파이를 구우려는 찰나에 마음 한편에서 변덕이 피어올랐다. 노아 피칸 머드 케이크에 피칸 파이라니, 너무 뻔한 조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호두파이로 급선회. 호두나 피칸이나 그게 그거라고 주장하신다면 대답이 궁색하지만, 호두는 호두고 피칸은 피칸이니 이름부터 엄연히 다르다. 호두파이를 오븐에 구우며 맥주를 마셨다. 오븐에서 꺼낸 파이가 식는 동안 내뿜는 달큰한 내음과 노아 피칸 머드 케이크 병에서 흘러 나온 달달한 향이 부엌을 가득 채운다. 침이 고인다.
칠흑처럼 검은 노아 피칸 머드 케이크와 윤기가 흐르는 호두파이는 보기에도 잘 어울린다. 언뜻 보기엔 에스프레소와 파이 같기도 하다. 맛을 볼 차례, 과연 둘의 만남은 성공일 것인가. 우선 맥주를 한입 마신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맛이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피넛버터, 그 뒤를 따르는 부드러운 초콜릿, 이어서 씁쓸한 맛, 질세라 피넛버터의 달콤함이 다시 찾아온다. 입안에 단맛이 남아있는 그 순간 호두파이를 베어 물었다. 노아 피칸 머드케이크 덕에 예민해진 혀에 고소하고 달달한 호두파이의 폭격! 바스러진 호두와 바삭하면서 촉촉한 파이의 식감은 끈적끈적한 노아 피칸 머드케이크와 잘 어울린다. 맥주를 다시 한입 마셨다. 맥주가 주는 단맛과 쓴맛이 더욱 잘 느껴진다. 아까보다 더 다양한 맛을 감별할 수 있다. 태운 몰트가 주는 진한 풍미와 옅은 꿀향, 그리고 쌍화탕을 연상케하는 맛까지. 입안에서 울려퍼지는 달콤한 향연.
호두파이로 입안을 바삭하게 채운 후, 끈적한 노아 피칸 머드를 마시면 마치 우유를 마신 것처럼 부드럽게 넘길 수 있다. 파이의 식감과 맥주의 목넘김이 조화롭다. 맥주의 잔향이 뒤 따라 오는 파이의 단맛과 잘 어우러진다. 짭조름하고 달콤한 호두파이와 달고 씁쓸한 노아 피칸 머드가 서로 맛을 더해주고 새롭고 풍부한 맛의 층위를 만든다.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도수가 높은 편이라, 한잔 두잔 마시다 보니 취기가 오른다. 이러다가 쓰러질 수도 있을 테니 두 병에서 멈추었다.
EDITOR_젠엔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