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링페어링- 슈렝케를라 브루어리 & 라우흐비어
슈렝케를라 브루어리 & 라우흐비어
밤베르크를 대표하는 라우흐비어는 한국에서 꾸준히 사랑받던 라거와도, 최근 유행하는 에일과도 다르고 바이에른 지방의 주류인 밀맥주(바이젠)와도 구분되는 특색 있는 맥주다. 라우흐는 독일어로 연기를 뜻하고 비어는 맥주를 뜻하니, 라우흐비어는 훈제 맥주인 셈이다. 훈제 연어도 아니고 훈제 맥주라니. 맥주가 연기를 쐬진 않았을 테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훈제 맥주의 역사는 멀고 먼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밤베르크의 양조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덕분에 맥주를 만들려고 준비해둔 보리 맥아가 몽땅 타버렸다. 보리맥아에 짙게 밴 냄새 때문에 모두 버려야만 했다. 하지만 손해를 보고 싶지 않았던 양조장 주인은 불에 탄 맥아를 사용해서 맥주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불에 탔던 맥아를 사용해 만든 맥주가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고 주인장은 훈제 맥주로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훈제 맥주는 현재까지 이어져 명성을 뽐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 말고도 보다 과학적인 관점도 있다. 맥주가 탄생한 수메르와 바빌론과는 달리 독일이 위치한 중북부 유럽은 맥아를 건조하기에 태양 빛이 부족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맥아를 불에 쬐어서 건조시켰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기가 맥아에 배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재미난 이야기만큼 흥미롭지는 않지만, 논리적으로 그럴싸하다. 사실 지금 맛있는 라우흐비어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긴 하지만. 전통적인 라우흐비어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은 바이에른 지방의 밤베르크이다.
단순히 유명한 걸 넘어서 밤베르크에 가야 라우흐비어의 정석을 맛볼 수 있다고 말할 정도. 밤베르크 내에서도 가장 명성 높은 곳을 꼽자면 슈렝케를라를 빼놓을 수 없다.
슈렝케를라 라우흐비어 우어복
슈렝케를라를 대표하는 맥주는 메르첸과 바이젠이다. 두 종류 모두 훈제 맥주로 훈제 향이 일품이지만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건 우어복이다. 우어복은 항상 맛볼 수 있는 맥주가 아니다. 찬란했던 여름이 끝나고 쌀쌀한 날씨가 찾아오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즐기는 계절 한정 맥주다. 옷이 두꺼워지는 계절에 어울리는 맥주답게 알코올 도수가 높고 향과 풍미가 더욱 진하다.
5월부터 만들기 시작해 동굴에서 숙성시킨 후, 가을에 맛보는 참는 자를 위한 맥주라고나 할까. 이 맥주를 맛보기 위해서 그 계절을 기다리다 밤베르크로 여행을 떠났을 먼 옛날의 애주가들을 떠올리면 동료의식이 생긴다. 맛있는 요리와 술을 위해서라면 먼 거리도 개의치 않는 모습은 지금의 나와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병맥주로 나오기에 어느 때건 즐길 수 있다. 만세!)
떠먹는 감자피자
가을이 오면 오븐에 뭔가를 굽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븐을 켜지 않아도 땀이 주르륵 흐르던 무더위가 가고 살갗을 스치는 찬바람이 찾아오기 때문이겠지. 고구마를 구워도 좋고 도미를 구워도 좋지만, 가을엔 역시 피자다. 엥, 가을에 피자라니? 뜬금없다고 여겨진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가을만큼 피자와 잘 어울리는 계절은 없다. 우선 만물이 무르익는 계절이라 피자에 올릴 재료가 넘쳐난다. 새우, 소고기, 가리비, 감자 등등. 매일 피자를 구워도 매일 다른 토핑을 올릴 수 있다. 게다가 가을하면 바스락바스락 떨어지는 갈색 낙엽 아니겠나. 마른 낙엽이 가득한 쓸쓸한 뉴욕의 거리, 거기에 <뉴욕의 가을>이란 노래까지. 뉴욕 하면 역시 피자다. 뭐, 자의적이고 억지스러운 면이 아주 조금은 있지만, 어찌 됐든 가을에 먹는 피자를 사랑한다.
슈렝케를라 라우흐비어 우어복과 어울리는 피자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감자를 듬뿍 올린 떠먹는 피자가 떠올랐다. 꾸덕꾸덕한 으깬 감자를 가득 삼키고, 라이트 바디인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켠다면, 상상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밤베르크가 속한 바이에른 지방이 감자 요리로도 유명하니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거기에 훈제 소시지를 토핑으로 추가해 훈제 맥주와 잘 어우러지도록 만들었다.
떠먹는 감자피자 만드는 법
재료 중간 크기의 감자 4알, 물 500ml, 소금 1t
우유 1T, 파마산 치즈 가루 1T, 소금 3 꼬집, 후추 약간
토핑 토마토소스 8T, 양파 1/2 개, 훈제 소시지 3개, 모차렐라 치즈 1컵, 파슬리 가루 약간
고 소시지를 노릇하게 굽는다.
Tip 구운 소시지를 조금 남겨두고, 치즈 위에 얹어 구우면 더욱 먹음직스러운 감자피자를 만들 수 있다.
슈렝케를라 라우흐비어 우어복 X 떠먹는 감자피자
라우흐비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요리에 가깝다. 풍부한 숯 냄새와 갓 구운 베이컨 향이 묵직하게 자리 잡았다. 라거 계열이면서도 홉의 씁쓸함보단 훈제 맥주의 특색이 강해 훈제 향이 강하고 살짝 달큰한 몰트의 맛까지 갖고 있다. 라거는 맛이 단순하다는 편견을 무참히 부숴주는 맥주라고 할만하다.
그렇다면, 라우흐비어를 위한 푸드 페어링 전략은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훈연 식품과 함께 마시기다. 훈제 연어나 베이컨이 들어간 요리를 함께 먹어도 좋다. 하지만 이 방법은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 훈연 식품의 향기와 라우흐비어의 향기가 만나서 서로를 배합하기도 하지만, 때로 한쪽이 다른 쪽을 잡아먹어 버리기도 한다. 나쁘진 않지만, 최선은 아닌 셈이다.
두 번째 방법은 구운 요리과 함께 먹기다. 훈제까지는 아니고 직화로 구운 요리는 대부분 라우흐비어와 잘 어울린다. 버터로 볶아낸 브로콜리나 아스파라거스, 스테이크, 소시지는 라우흐비어와 조화를 이룬다. 아주 맛있고 잘 어울리지만, 레시피라고 하기엔 너무 간단하다. 그냥 불에 구우면 끝이기에. 따라서 이번엔 라우흐비어가 모든 주목을 받도록 하는 작전을 세웠다. 비유하자면 메시가 모든 골을 넣을 수 있도록 패스를 몰아주는 것과 비슷한 작전이다.
우어복을 사면서 메르첸도 함께 구매했다. 파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한 컵씩 따라 마셨다. 해 질 녘 노을 지는 숲에서 사냥꾼이 고기를 훈제할 때 날 법한 향이 났다. 살짝 차게 식혀 놓은 맥주가 꿀꺽꿀꺽 목 뒤로 넘어갔다.
흠, 분명 맥주를 마셨는데, 어째서 연기를 잔뜩 머금은 고기 같은 맛이 날까. 훈제 고기의 맛 이어지는 홉의 씁쓸함, 살짝 달큰한 맥아적인 특색이 더해진다.
라이트바디에 풍부한 탄산이 있어 목 넘김이 깔끔하다. 마시고 난 뒤엔 입에 향이 풍부하게 남아 있다. 비에 젖은 통나무가 내뿜는 향과 비슷하다. 참고로 우어복이 메르첸보다 맛과 향이 진하다. 라우흐비어가 익숙하지 않다면 메르첸부터 시도해 보시길.
이제 맥주와 요리를 맞춰볼 차례. 짙은 색의 맥주와 새하얀 피자가 대조를 이룬다. 둘이 만나니 클래식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레더호젠을 입은 독일 아저씨네 집에 초대받으면 내어주지 않을까, 싶은 모습이다.
훈제 맥주 특유의 강한 향과 맛은 언제 마셔도 매력적이다. 오랜 기간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맛이다. 훈제 향을 씁쓸한 홉이 받쳐주고 아주 연한 단맛이 개성 강한 맛과 향이 날뛰지 않도록 조율해준다. 이토록 완성도 높은 맥주를 만들어 내다니, 구관이 명관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닐까.
맥주만 서너 병 마셔도 질리지 않고 마실 수 있겠지만 감자피자도 떠먹어 보자. 고소하고 부드러운 감자가 입을 가득 메우고 새콤한 토마토 소스, 양파, 훈제소시지가 입에서 균형 있게 맛을 낸다. 감자가 캔버스를 마련해주면 그 위에서 나머지 재료가 각자의 색을 내며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 여기에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 라거답게 매끈하게 목을 넘어간다. 언급했던 작전대로 감자피자는 자기 자신을 희생해 우어복에 모든 영광을 돌린다. 감자와 치즈가 묵직하게 맛을 눌러주고 차분해진 혀 위에서 우어복이 화려한 몸놀림을 선보인다. 입안에 훈제 향, 젖은 숲 내음, 풍부한 맛이 기량을 펼친다. 감자피자는 묵묵하지만 자기 할 일은 해내는 선수여서 토마토소스와 치즈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맥주와 피자를 모두 비우고 나니, 입에 남은 맥주의 잔향과 소시지의 내음이 서로를 탐하며 어우러진다. 득점 성공!
EDITOR_젠앤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