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량세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
맥주 세금의 종량세 전환이라는 화두가 나오면서 브루어리, 수입사 등에서는 정책 변화의 영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맥주 비즈니스의 성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주세이기 때문이다. 현재 주세 체제에서 맥주 가격의 절반 가량을 세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종량세 전환에 대한 정부의 방안이 가시화되면 생산, 수입, 유통등 각 업계에서 이해득실을 따지는 복잡한 계산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가격이 아닌 출고량에 대해 세금을 부과한다는 것에 대해 생산량이 적고 가격이 높은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서는 ‘환영’, 반대 구조인 대기업에서는 당연히 ‘반대’ 의견을 낼 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맥주 1리터당 세금이 얼마로 결정될 것인지, 생산량 규모에 따른 과세 구간이 어떻게 정해질 것인지, 알코올 도수별 차등이 얼마나 있을 것인지, 규모가 작은 브루어리에 세금 경감 정책이 적용될 것인지 등에 따라 각 업계가 현재보다 좋은 환경에 놓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 현재 종량세 체계를 따르고 있는 국가들에서는 업계 간 형평성, 세수 등을 고려해 세금 체계를 보완할 여러 가지 추가 정책을 쓰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종량세지만 생산량 규모에 따라 세율을 차등 적용하고 있고 미국은 소규모 맥주 제조자에게 일정량 생산분까지 추가로 세금을 경감해준다. 여기에 영국과 호주 등에서는 알코올 도수에 따라 다른 세율을 적용한다. 국내에서 어느 수준으로 종량세를 도입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또 기존에 비해 세금을 더 내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에 상응해 다른 규제가 해소될 수 있다면 오히려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크래프트 브루어리 - 일반 면허와 소규모 면허
종량세 전환은 그동안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의 숙원이었다. 크래프트 맥주는 기본적으로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조원가가 비싸고 생산량이 적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이 아니라 출하량을 기준으로 세금이 부과되면 현재에 비해 납부액이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크래프트 맥주 업계 안에서도 규모별로 종량세 전환에 대해 온도차가 있다. 생산 규모 120㎘ 이하인 소규모 맥주 제조자에 비해 큰 생산 설비를 보유한 일반 맥주 제조자 브루어리들이 종량세 전환에 더 적극적인 모양새다.
소규모 맥주 제조자 면허를 가진 브루어리들은 생산량 구간에 따라 과세표준 경감을 받고 있다. 또 지난 4월에는 과세표준 경감을 받는 생산량 구간이 넓어져 증설을 하더라도 세금이 크게 오르지 않게 되는 길이 열렸다. 이에 비해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중 일반 맥주 제조자 면허를 보유한 제주맥주, 플래티넘, 세븐브로이 등은 이런 정책의 수혜를 받지 못하고 있다. 맥주의 맛과 품질은 크래프트 맥주와 경쟁하면서 가격은 대기업, 수입맥주 등과 경쟁해야 하는 일반 면허 입장에서 종량세 전환을 통해 납부 세액을 줄이는 것이 절실하다.
특히 일반 제조자 면허를 가진 브루어리 중에서도 맥주의 출고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제주맥주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5월 31일 서울 연남동 제주맥주 팝업스토어 오픈 기념 간담회에서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는 “주세법이 개정돼야 국내 생산 크래프트 맥주도 수입 맥주와 비슷한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국내 소비자들도 선택의 폭을 늘리고 가격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소규모 제조자 면허를 보유한 브루어리들은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이다. 현행 생산량에 따른 과세표준 경감 조치가 사라지고 단순히 리터당 세금이 매겨진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세액이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방향은 종량세로 가는 것이 맞다”며 “그러나 지금 구체적인 방향이 나오지 않았고 앞으로 제도가 바뀌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한 만큼 여러 사안을 신중하게 검토해 협회의 공식 의견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맥주 –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와 같은 대기업 맥주 회사들의 셈 법은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 비해 좀 더 복잡하다.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가면 가격이 아니라 생산량에 비례해서 세금이 높아지기 때문에 불리하다고 볼 수 있지만 여러 배경을 고려하면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먼저 종량세로 바뀌었을 때 리터당 세금이 얼마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대기업들의 입장이 달라진다. 현재 대기업 맥주들이 한 케그에 3만6000원에 판매된다고 본다면 주세를 포함한 세금은 1만 8000원 가량으로 계산된다. 만약 종량세가 일본 수준(리터당 220엔)으로 결정된다면 현재보다 세금이 크게 높아지지만 리터당 세금이 일본에 비해 낮아진다면 지금과 별 차이가 없을 수 있다.
특히 대기업들의 주요 경쟁상대가 저가 수입 맥주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종량세 전환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종가세제도 아래서 수입 맥주들은 신고한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가격을 낮춰 세금을 덜 부과 받을 여지가 있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들은 원가, 마케팅비 등이 다 포함된 출고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수입 맥주에 비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그래서 종량세로 바뀌면 국내 대기업들이 오히려 가격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고 수입 맥주들과 경쟁할 다양한 마케팅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종량세 전환을 환영한다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앞으로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면서 “수입 맥주에 비해 불리한 규제들이 먼저 해소돼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는 대기업들이 직접 맥주 수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비맥주의 경우 스텔라, 벡스, 코로나, 호가든 등 AB인베브 산하 맥주들을 다수 수입하기 때문에 ‘4캔 만원’ 수입 맥주 시장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대기업들은 이처럼 종량세 전환과 연계된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입 크래프트 맥주
수입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서는 종량세 전환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고가의 맥주를 취급하는 수입사일수록 더 큰 혜택을 보게 된다.
그러나 업계 전체적으로 득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나온다. 국내 크래프트 맥주 인구가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국내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이 마케팅 여력을 확보하게 되면 결국 수입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한 크래프트 맥주 수입사 대표는 “한정된 시장 안에서 파이 싸움을 한다고 하면 국내 브루어리들이 수입 크래프트 맥주의 지분을 가져간다”며 “길게 보면 우리에게 손해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정부에서는 맥주 업계에 종량세 전환에 대한 신호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1리터에 840원이라는 종량세 기준을 줬다는 얘기도 업계에서 들리고 있다.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서 종량세 전환 의견은 7~8년 전부터 나왔지만 조세 당국에서는 주류에 대해 종량세로 전환하면 소주 가격이 크게 올라간다는 점을 들어 반대해왔다. 그러나 최근 맥주만을 대상으로 종량세 전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주세법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환경에너지세제과 관계자는 “종량세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직 검토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EDITOR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