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거의 기원에 대하여
제아무리 크래프트 맥주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곤 하나, 아직까지도 전 세계 맥주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당연히 라거다. 그만큼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맥주가 라거이건만 불과 수 백 년전 만 해도 라거는 만들기 힘든, 전혀 당연하지 않은 맥주였다. 그랬던 라거가 지금과 같이 대중화되기까지 많은 우연과, 인간의 노력이 있어왔다.
라거 효모의 탄생
라거의 역사는 ‘라거 효모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라거 효모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선 에일과 라거의 차이부터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에일과 라거는 과거엔 정형화 되지 않은 여러 의미로 쓰였으나 현대에 들어서는 ‘에일은 에일 효모로 만든 맥주, 라거는 라거 효모로 만든 맥주’로 정의되곤 한다. 에일 효모-Saccharomyces cerevisiae 는 발효 속도가 빠르고,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발효가 되며 여러 풍미를 내는 발효 부산물들(에스테르, 페놀 등)을 풍부하게 생성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에일은 라거보다 상대적으로 풍미가 풍부한 편이다. 반대로 라거 효모-Saccharomyces pastorianus 는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발효를 진행하며, 발효 부산물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므로 라거는 에일보다 깔끔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허나 이러한 특징은 굳이 에일과 라거를 구분할 때나 느낄 수 있는 차이점이며, 다들 아시다시피 사실 에일과 라거는 그렇게까지 드라마틱한 차이를 보이진 않는다. 이는 에일 효모와 라거 효모가 서로 유전자가 99.5% 일치하는, 유사한 미생물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주목한 학자들은 두 효모의 유연관계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 라거 효모는 사실 에일 효모와 모종의 야생 효모간의 교잡을 통해 만들어진, 에일 효모의 자식이라는 점을 밝혀내게 된다. 문제는 에일 효모의 교잡 대상인 야생 효모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었다. 라거가 탄생한 곳이 유럽이 었으니 학자들은 당연히 상대도 유럽에 서식하는 효모일 것이라 추측하였고, 유럽 전역의 효모를 연구했으나 일치하지 않았다. 그러다 엉뚱하게도 유럽과는 정 반대편에 위치한 아르헨티나의 너도밤나무 껍질에 서식하는 S. eubayanus 라는 효모가 라거 효모의 또 다른 부모인 것으로 밝혀진다.
이 효모가 대서양을 횡단하여 유럽대륙까지 도착하게 된 경위는 당연하게도 인간이 개입되어 있다. 유럽의 남미 침략 및 식민지화가 이루어질 당시 유럽으로 가는 배의 과일 껍질, 나무 껍질 등에 효모가 붙어 유럽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운 좋게 도착한 이국의 효모가 더욱 운 좋게도 에일 효모와 유전자가 99% 일치하는 효모였기에 서로 교잡되기가 용이했고, 추위에 대한 내성을 갖춘 능력자이기까지 했다. 덕분에 라거 효모는 에일 효모의 우월한 알코올 발효 능력과 S. eubayanus 가 가지고 있는 추위 내성까지 갖춘, 라거에 특화된 효모로 탄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운 좋게 교잡만 된 것 가지고는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인간에 의해 알게 모르게 사육되어온 에일 효모와 비견되기엔 무리가 있다. 양조사들은 교잡된 효모가 자신들의 맥주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다시 수백 년간 양조를 하게 되고, 그동안 라거 효모는 보다 훌륭한 양조 효모로서 거듭나게 되는데 이것이 라거 맥주의 시작이다. 즉, 라거는 다른 주류와는 달리 효모의 탄생부터 인간이 깊게 관여한 술이라는 것이다.
스파텐과 라거의 발전
오랜 과거부터 독일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맥주의 품질을 중요시 여겨왔다. 때문에 1553년부터 바바리아 지방에선 맥주 양조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는 4월부터 9월(더운 여름 기간) 사이엔 맥주 양조를 엄격히 법적으로 금지해왔다. 무더운 여름철에도 맥주를 마시기 위해선 맥주가 상하지 않게 차가운 곳-알프스 동굴 등-에 맥주를 보관하는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찬 곳에 맥주를 오래 보관하면 깔끔하고 청량한 맥주가 나온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이때 독일어로 ‘저장하다’가 ‘Lagern’ 이다 보니 이를 따서 ‘라거’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라거의 기원이다. 이 과정에서 추운 곳에선 번식이나 발효를 잘 진행하지 못하는 에일 효모가 점차 도태되어 갔다. 어쩌다가 발효 과정에 유입된, 추위에 내성이 강한 라거 효모는 반대로 자연스레 세대를 거듭하며 점점 점유율이 높아졌고, 여러 번의 선택을 거침으로써 효율 좋은 양조 효모로서 진화하게 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어쨌건 이때까지의 라거 맥주는 맥아화(Malting) 기술이 잘 발달하지 못한 탓에 대부분 어두운 색이었으며, 효모의 존재조차 몰랐거니와 냉장기술 또한 없으니 맥주의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다 1807년, 선대 가브리엘 젠들마이어(Gabriel the elder Sedlmayr)라는 사람에게 뮌헨의 존재감 없던 브루어리 하나가 인수되는데, 바로 지금까지도 뮌헨의 6대 양조장 중 하나로 불리는 스파텐(Spaten)이다. 열성적인 양조사였던 선대 가브리엘 젠들마이어는 아들인 후대 가브리엘 젠들마이어(Gabriel the younger Sedlmayr)와 함께 새로운 맥아화 기법 등의 선진 양조 기술을 매우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맥주를 발전시켰다. 그 결과 스파텐은 1841년 최초로 엠버 색의 라거(Märzen)를 만들게 되었고, 이는 1년 뒤인 1842년 요셉 그롤(Josef Groll)이라는 바바리아 지방의 양조사가 체코 플젠(Plzen)으로 넘어가 최초의 황금색 라거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을 만들게 되는 데에 영감을 주게 된다. 그 뒤로도 스파텐은 1844년 최초로 양조장에 증기기관을 도입하고, 1873년엔 린데(Carl von Linde)라는 기계공학 교수와 함께 냉장설비를 개발하여 1년 내내 맥주를 만들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양조장이 되고, 1894년엔 필스너의 돌풍에 맞서 헬레스(Helles)를 처음으로 만드는 등 맥주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기는 행보를 이어가게 된다. 덕분에 스파텐은 뮌헨 최고 라거 브루어리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칼스버그와 라거 효모의 발견
맥주가 만들어진지는 수천 년이 넘었으나, 비교적 근대까지도 양조사들은 도대체 어떠한 원리로 곡물의 당이 알코올로 변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다 1800년대 중반, 미생물학의 아버지인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맥주 내부에 효모가 존재하며, 효모가 당분을 알코올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내고 나서야 효모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양조에 있어서 효모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리하여 스파텐이 한창 주가를 올리기 시작하던 1845년, 가브리엘 젠들마이어의 학생 중 하나였던 야콥센(Jacob Christian Jacobsen)은 스파텐의 효모를 들고 나와(이때 효모를 몰래 훔친것인지, 정식으로 양도받은 것인지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코펜하겐으로 가서 새로이 양조장을 차리는데, 이것이 지금의 칼스버그이다. 다만 설립 당시 생산하던 맥주는 지금과 같은 황금색의 맥주가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라거와 같은 어두운 색 라거였다.
전통을 따르던 다른 양조장들과는 달리 칼스버그는 양조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굉장히 중요시 여겼다. 때문에 1875년 세계 최초로 양조장 소유의 연구소인 Carlsberg Laboratory를 설립한다. 단백질 결정을 위한 분석법을 개발한 켈달(Johan Kjeldahl), pH의 개념을 정립한 소렌슨(SPL Sørensen)등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이곳을 거쳐 갔을 정도로 이곳에선 양조와 관련된 연구 뿐 아니라 양조 범위 밖의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당연하게도 효모에 대한 연구 또한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결국 1883년, 에밀 한센(Emil Christian Hansen)에 의해 세계에서 최초로 다른 균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상태의 라거 효모를 분리해내기에 이르게 된다. 이 효모는 칼스버겐에서 처음 발견되었기에(엄밀히 말하면 스파텐의 효모이지만) Saccharomyces calsbergensis (사카로마이세스 칼스버겐시스)라 이름이 붙여졌으며 꽤나 최근까지도 이러한 이름으로 불려왔으나, 분류학이 발전한 이후 다시 확인해보니 기존에 존재하던 Saccharomyces pastorianus 라는 효모와 일치하는 효모라는 것이 밝혀져 이후 Saccharomyces calsbergensis 라는 이름은 사실상 버려지게 된다.
이후는 여러분도 잘 아는 내용일 것이다. 순수한 라거 효모를 채취 할 수 있게 됐음은 물론 냉장 설비 또한 개발되었으니 잡맛이 없는 더욱 깔끔한 라거를 생산하기 용이해졌을 것이다. 또한 플젠에서 시작된 황금색 라거 열풍까지 겹쳐져 이후 전 세계 맥주시장을 라거가 주도하게 된다. 이에 맞서기 위해 쾰쉬나 알트비어와 같은 새로운 스타일도 개발되긴 했으나 벨지안 윗, 세종 등의 당시 비인기 맥주들은 라거의 열풍에 의해 거의 멸종 직전까지 내몰리기도 했다. 라거가 전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이러한 행보는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고 말이다.
EDITOR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