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람빅 양조장 우드 비어셀, 대표 Gert Christieans 인터뷰
우드 비어셀의 첫 번째 서울 나들이
비어포스트는 작년 3월 발간한 15번째 배치에서 벨기에 람빅 양조장 우드 비어셀을 직접 방문하여 브루마스터이자 대표인 게르트(Gert Christieans)의 인터뷰를 실은 바 있다. 당시 기사에서는 우드 비어셀의 탄생 배경과 전통적 람빅의 제조 방식을 소개했다. 그로부터 1년이 넘게 흘러, 이번에는 게르트 대표가 직접 서울을 방문하여 한국의 맥주 애호가들을 만났다. 다른 언어 배우기를 즐긴다는 게르트 대표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체험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듯 보였다. 그의 이번 일정은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맥주 박람회를 시작으로 서울을 거쳐 일본까지 순차적으로 방문하는 동아시아 투어다. 람빅 양조장의 대표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쓰러져가던 양조장에서 재탄생한 우드 비어셀:
전통적 맛과 현대적 기술의 만남
게르트 대표는 의외로 대학에서 경제학과 IT를 전공했다. 얼핏 ‘전통’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그의 이력은 마을의 오래된 양조장이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 이후 방향을 틀었다. “그 양조장은 부모님 댁에서 불과 10분 떨어진 곳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맥주를 사러 갈 때 자주 따라다니던 곳이었어요.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저 역시 그곳 람빅을 즐겨 마시게 됐고요.”
77세였던 당시 브루마스터는 양조장에 홀로 남아 감당하기 어려운 경영난에 처해있었다. 통신사에 재직중이던 그는 퇴근 후 양조장에 가서 나이든 브루마스터를 도왔다. 또 그의 지식과 노하우를 본격적으로 전수하기 위해 2년의 전문 양조 과정을 마쳤다. 이후 양조장을 인수하고 2005년에 마을의 옛 이름을 딴 트리펠 ‘베르살리스(Bersalis)’를 성공시키며 지금의 우드 비어셀로 일으켜 세웠다
게르트 대표는 우드 비어셀이 오래된 양조장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양조장이라고 말한다. 보통 양조장이 가업으로 이어지다 보면 아랫세대가 윗세대의 고집스러운 방식에 불만을 느끼기 쉬운데, 그의 경우 가족이라는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에 역사, 문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롭고 참신한 시도를 해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비합리적인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장비에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현대적 기술을 이용해 전통적인 맥주를 만들고자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예를 들어 람빅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특유의 맛을 만들어내는 자연발효(Spontaneous Fermentation)와 나무 배럴 숙성(Wooden barrel aging) 등 전통적인 제조방식은 반드시 지키지만, 배럴을 취급하는 방식이나 병입하는 방식 등에 있어 합리적인 최신 기술이 나온다면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단지 맥주가 아닌 유산을 추구
그는 처음 람빅을 배우고 양조장 일을 시작할 때부터 전통 방식의 람빅을 추구하고 싶었다고 한다. 상업적인 람빅은 점점 많아지고 언제든 구할 수 있지만, 전통적 람빅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 람빅을 지키자는 것이 처음 우드 비어셀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가진 '임무'다. 우드 비어셀의 지표는 항상 '어떻게 하면 람빅의 전통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비롯된다.
람빅에서 파생된 ‘사워 스타일’의 맥주가 세계적으로 넘쳐나는 상황에서, 그는 전통적 람빅만이 갖는 품질에 집착하는 것이야 말로 람빅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만드는 ‘람빅’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확고히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품질의 측면을 조금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저 전통과 역사가 있다는 사실에 안주하고 아무런 발전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훌륭한 품질은 람빅의 존재가치를 보장해주고 람빅의 미래를 보호할 것입니다.”
우드비어셀의 맛 철학
“전 청량음료는 안 마셔요. 맥주만 마십니다.”
인터뷰 도중 농담처럼 던진 이 말은 사실 그가 추구하는 맛의 방향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람빅의 종류 중 신맛이 나는 체리를 넣어 숙성하는 ‘크릭(Kriek)’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람빅의 맛이 너무 시고 극단적이라고 느낀 현대인들은 설탕을 넣어 마시곤 했다. 이에 양조장들은 아예 설탕을 첨가하여 달콤한 람빅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다간 람빅의 본질적인 맛을 흐리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맛을 유지하면서도 소비자가 즐길 수 있는 크릭을 만들 방법을 고민했다. 바로 많은 양의 체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우드 비어셀 크릭에는 무려 40%의 생체리가 들어간다.
“맥주를 달콤하게 만드는 대신, 진한 과일 풍미(fruitiness)를 내는 것이죠. 두드러지는 과일 맛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설탕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이 크릭은 과일 향이 진하고, 상쾌하고, 복합적인 풍미가 가득합니다.”
크릭 뿐 아니라 원래부터 달콤한 맛을 낼 목적으로 탄생한 파로 (Faro)를 만들 때는 전통에 따라 설탕을 넣긴 하지만, 일부러 두 달동안 발효를 거쳐 단맛이 남지 않고 드라이한 맛이 나게 한다. 전통적 방식을 따르긴 했지만, 맛을 재해석했다는 설명이다.
“너무 시고 공격적인 맛을 내는 람빅도 있어요. 하지만 무조건 신맛이 강하다고 대단한 게 아니고, 그걸 마실 줄 안다고 잘난 게 아니에요.” 그가 생각하는 정통 람빅은 달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즐길 만한 맛을 띤다.
게르트 대표는 람빅을 따를 때 유의할 점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대부분 병으로 서브되는 람빅을 따를 때 유리잔은 젖은 것이 아니라 건조된 것을 사용하고, 잔을 돌리면서 따라야 헤드(거품)가 더 오래 유지될 수 있다고 한다. 여러 잔에 나누어 따를 경우 병을 세워서는 안 되고, 따르던 각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렇게 해야 효모가 최대한 안 섞이기 때문이다. 람빅은 병 바닥의 찌꺼기가 섞이지 않았을 때 밸런스가 더 좋으며, 특히 괴즈는 효모와 함께 마실 경우 복합적인 풍미가 떨어지게 된다. 람빅병을 눕히지 않고 세워서 보관해야 하는 이유도 효모가 병 전체로 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효모를 마시는 것은 좋지만, 되도록 효모가 섞이지 않도록 남겼다가 마지막 모금과 함께 마셔보는 것이 좋다는 말도 전했다.
우드비어셀 탭 테이크오버 & 푸드 페어링 at 탭하우스 링고
혹자는 람빅류의 맥주가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푸드 페어링을 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게르트 대표는 람빅이 음식과 페어링하기 아주 수월한 맥주이며, 오히려 함께 어울리는 음식의 종류가 많다고 강조했다. 람빅의 신맛이 음식을 먹는 동안 미각에 신선한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괴즈를 한 모금 마시면 입안이 헹궈지며 환기되기 때문에, 어떤 음식을 먹고 다른 음식을 먹을 때 두 가지 맛을 뚜렷이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특히 향이 강한 생선 및 해산물 요리나 풍미가 강한 고기류 음식 또는 치즈와 함께 즐기기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풍미가 진한 치즈와 와인을 함께 먹을 때 첫 번째 치즈를 먹고 와인 한 모금을 마신 뒤 두 번째 치즈를 먹으면 입안에 여전히 첫 번째 치즈의 맛이 남아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괴즈와 함께 먹을 경우, 입안이 깔끔해진 상태에서 두 번째 치즈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날 탭하우스 링고에서는 네 가지 생맥주의 시음회와 함께 푸드 페어링이 준비되었다. 시음은 람빅, 트리펠, 오크 숙성 트리펠, 크릭 순서였다.
행사의 열기는 뜨거웠다. 플랫 람빅을 비롯해 좀처럼 맛볼 수 없는 생 람빅을 한껏 즐긴 후, 들뜬 표정의 참가자들은 각자 람빅 병을 들고 게르트 대표의 사인을 받기 위해 너나할 것 없이 줄을 섰다.
행사에서 람빅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지만, 아직 많은 사람에게 람빅은 생소하다.
게르트 대표는 벨기에 전통의 하나인 람빅을 타 문화권의 대중에게 친근하게 소개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람빅은 부재료를 접목하기에 아주 좋은 맥주입니다. 예를 들어 그린티 등 동양 문화권에 익숙한 부재료를 람빅에 접목해서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 선보일 생각입니다. 람빅을 접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패키지가 이목을 끌지 않는 한 구매하지 않겠죠. 그러나 그들에게 ‘맥주’와 ‘차’는 친숙합니다. 친숙한 부재료를 나타내는 패키지를 활용하여 람빅을 효율적으로 홍보하고 세계적으로 대중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드 비어셀은 장미 꽃잎을 부재료로 사용한 람빅 출시를 앞두고 있으며 한국에는 올해 말쯤 선보일 계획이다.
우드비어셀 푸드 페어링 현장스케치
람빅(6%) & 구운 가지와 염소치즈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이 기본 람빅은 ‘스트레이트 람빅(Straight Lambiek)’ 혹은 ‘플랫람빅(Flat Lambiek)’이라고 불린다. 자연발효한 맥즙을 오크통에 넣어 1년 정도 숙성한 것으로, 신맛이 강한 편이다. 오래된 나무 배럴에 숙성했기 때문에 탄산이 없고, 떫은 맛이나 쓴맛이 거의 없다. 구운 가지가 돌돌 말린 염소치즈가 페어링 되었는데, 자칫 밍밍하고 연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플랫 람빅 특유의 맛에 감칠맛을 더해주었다.
베르살리스 트리펠(9%) & 타임 향의 오징어 튀김
송로버섯(Truffle)과 같은 쿰쿰하지만 유쾌하고 가벼운 향이 나고, 마셨을 때 이스트에서 오는 바나나의 과일 풍미가 강하게 난다. 후추와 같은 화한 느낌, 밀 몰트의 부드러운 맛, 알코올 느낌 등 여러 풍미가 복합적으로 뒤섞이면서도 전반적인 맛이 가볍고 유쾌하다.
페어링 된 오징어 튀김에 입혀진 허브 향이 맥주의 화한 느낌과 만나 시너지 효과를 이룬다.
오크 숙성 트리펠(10%) & 숙성된 고다 치즈를 올린 카나페
기본 트리펠을 오크 배럴에 넣고 18개월 동안 천천히 자연발효한 맥주이다. 숙성을 거치며 더욱 밸런스가 맞춰지고 맛이 정돈되었으며, 알코올 도수는 더 높아졌음에도 오히려 잘 느껴지지 않는다. 산도와 단맛과 약간 떫은 맛의 균형이 훌륭하다. 페어링된 고다 치즈의 깊은 맛과 사과의 상큼한 풍미가 맥주의 신맛과 어우러져 좋은 조합을 이룬다.
크릭(5.6%) & 그릭 요거트와 꿀을 뿌린 체리
체리 과육과 씨앗을 함께 넣고 숙성한 크릭은 상큼한 과즙 풍미(Juicy)와 씨앗의 고소한(Nutty) 맛이 진하게 조화를 이룬다. 거기에 오래된 느낌의 떫은 맛이 복합적인 풍미를 더해준다. 페어링된 그릭 요거트와 체리는 전체적으로 단맛을 보완하고, 크릭의 신맛을 한층 더 부드럽게 만든다. 또한 같이 먹었을 때 체리 씨앗에서 오는 고소한 맛이 더 살아나는 듯하다.
EDITOR_홍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