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 램지와 한국 맥주의 역설 이인기의 유언Beer
지난 11월 영국의 스타 셰프 고든 램지의 카스 맥주 광고 출연이 맥주 업계와 온라인을 한바탕 떠들썩하게 했다.
그는 광고와 기자간담회 등에서 잇달아 “카스는 정말 상쾌한 맥주”라고 극찬하며 “한국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한국 맥주”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바른 말 하는 독설가’ 이미지로 잘 알려진 고든 램지가 자본에 굴복했다는 비판에서부터 카스 맥주의 마케팅이 소비자를 호도하고 있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생각들이 제기됐다.
여기에 더불어 그간의 광고와 방송, 기사들을 보면서 담아 두었던 고든 램지와 카스에 대한 나름의 의문과 견해를 몇 가지 적어본다.
고든 램지를 모델로 한 이번 광고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서 오비맥주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특유의 신선함과 청량감이 살아있는 카스는 다양한 안주와 함께 맥주를 즐기는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게 개발된 가장 한국적인 맥주"라면서 "세계적인 미식가 고든 램지도 인정한 카스의 뛰어난 맛과 품질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한 이번 광고를 통해 우리 맥주의 우수성과 강점을 더욱 널리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고든 램지도 인정한 카스?
고든 램지는 한 명의 요리사일 뿐이다. 그는 맥주에 별을 달아주는 맥주 업계의 중요한 인물이나맥주 전문가가 아니다. 그는 그저 카스 맥주의 광고 모델로서 맥주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의 말이 한국 맥주의 맛에 면죄부를 주는 것인 양 침소봉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고든 램지가 “한국 맥주의 맛 없음을 사 하노라”고 하면 맥주가 맛있어지는가?
신선함과 청량감이 살아있는 카스?
고든 램지는 카스를 정말 신선한 맥주(Bloody Fresh)라고 표현한다. 전체적으로 그의 한국 맥주에 대한 견해는 ‘신선하다’ ‘깔끔하다’ ‘그래서 양념이 많이 들어간 매운 음식을 씻어주기에 좋다’는 것이다.
맛에 대한 표현도 아니고 그저 느낌으로 표현하고 있다. 보통 맛에 대한 평가를 할 때는 기본적인 다섯 가지 미각에 근거하여 평가하고 거기에 시각적인 플레이팅, 분위기와 음식을 접했을 때의 감성적인 부분이 더해진다. 그런데 고든 램지의 맥주에 대한 평가는 그 어디에도 이런 점을 찾아 볼 수 없다. 광고의 모델을 결정하고 컨셉을 결정하면서 한 마디의 카피를 잡을 때 이 부분은 충분히 고려됐을 것이다. ‘신선’하다는 표현은 음식 평가에 있어서 독설로 유명한 고든 램지의 아이덴티티가 무너지지 않는 범위에서 선택한 최선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Fresh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보자.
엄밀히 말하자면 Fresh는 맛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상태에 대한 표현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카스 외에 모든 맥주, 음료, 음식은 모두 신선할 수 있다. 맥주에서 ‘Fresh’는 홉을 바로 수확해서 만든 맥주나 맥주 공장 방문해서 마시는 맥주에 더 적확한 표현이다. 그러나 고든 램지 식으로 한다면 어떤 이가 뜨거운 여름날 냉장고에서 아무 맥주 한 캔을 따서 벌컥벌컥 마시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 된다
한국 음식은 맵고 짜다?
고든 램지가 광고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한식과 한국 맥주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그는 "아마 유럽사람은 매콤하거나 강한 음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깨끗하게 씻어주는 맛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며 한식의 맛을 씻어 주기에는 카스 같은 맥주가 좋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유럽의 음식에 비해서 한식에 매운 음식이 많은 것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말은 한국 음식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기에 신경이 쓰인다. 특히 음식의 맛을 다루는 세계적인 요리사의 발언이라서 더욱 그렇다. 한국 음식을 접하지 않은 외국의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만 듣고 한국 음식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맵고 짜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음식들이 많이 있다.
맥주 입장에서도 억울하다. 맥주가 얼마나 다양한 맛을 가진 음료인데 그저 매운 맛을 씻어내는 역할로 규정할 수 있나? 와인을 놓고도 그렇게 이야기 했을까? 푸드페어링에 있어서 고든 램지는 아무 생각이 없는 걸까?
한국 음식은 다양하고 다양한 맥주 스타일과 잘 어울린다. 또한 매운 맛이라고 다 씻어버려야 할 대상은 아니다. IPA(India Pale Ale) 같은 스타일의 맥주는 매운 음식을 만나면 서로 상승시켜 묘하게잘 어울린다. 떡볶이와 IPA를 마셔보면 매운 맛과 쌉쌀한 맥주가 풍미를 돋워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이런 다양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도대체 한국 맥주가 뭐야?
그는 알았을까? 그가 모델로 등장에서 그렇게 칭찬한 한국 맥주 카스를 만드는 회사가 한국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고든 램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 얘기를 하면 놀란다. 카스를 만드는 오비맥주는 100% 외국 회사다. 2014년 오비맥주는 세계적인 맥주회사 AB인베브에 회사를 매각했다. 오비맥주의 사장 역시 브라질 출신이다.
2004년 벨기에 맥주회사 Interbrew와 브라질의 Ambev가 합병하여 InBev가 되었고 2008년 앤하이저부시와 합병해 앤하이저 부시 인베브(Anheuser-Busch InBev SA/NV, 약어 : ABI)가 되었다.
2015년 기준으로 전 세계 200여개의 맥주 브랜드를 소유한 회사로 국내에 수입되는 맥주 중 상당 수가 이에 포함된다.
인수 합병은 각 회사의 전략적 선택이기 때문에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만 오비맥주의 카스를 한국 맥주로 홍보하는 것과 그것을 믿고 소비하는 것은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나 싶다. 고든램지가 한국 맥주가 맛있다고 전세계에 떠들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카스가 한국 맥주라고 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2015년 오비맥주는 3700억 원 규모의 배당을 실시했다. AB인베브는 오비맥주 100%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이 배당금을 모두 가져갔다. 한국 맥주라고 마셨는데 그 이익금은 모두 외국의 모기업으로 간 것이다. 이래도 오비맥주가 한국 맥주라고 할 수 있는가? 한국에 공장이 있으면 다 한국 맥주인가? 애플의 생산 공장이 대만에 있다고 애플이 대만 회사가 아니지 않은가?
영향력 있는 광고 모델을 쓰고 그 힘으로 미디어를 점령하고 제품을 홍보하는 것은 각 기업의 사업 전략이다. 하지만 외국 모델을 써서 자사의 맥주를 한국 맥주 전체인 것처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부당하다. 마치 돈으로 한국 국가대표 타이틀을 사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은 오버인가?
이제 소비자들은 알고 마시면 좋겠다. 오비맥주는 100% 외국계 자회사이며 회사의 수익은 모회사의 몫임을 말이다.
겉으로 이번 고든 램지의 카스 광고와 한국 방문은 그저 일개 회사의 광고, 프로모션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들여다 보면 자본과 맥주 시장의 다양한 맥락을 읽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 한편으로는 오비 맥주의 광고는 맥주 시장 1등 업체가 ‘한국 대표’를 자임하면서 크래프트 맥주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시장이 공고하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음식과 맥주의 다양성은 수면 아래 묻어둔 매우 성공적인 홍보 전략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맥주를 좋아하는 한사람으로서 선두 업체가 마케팅 비용의 일부라도 맥주 맛에 대한 연구와 소비자의 기호의 다양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기를 소소하게 바란다.
이번 고든 램지의 광고를 보고 어떤 네티즌이 남긴 촌철살인의 한마디가 계속 생각난다. “고든 램지가 카스를 추천하면 카스에 대한 기대가 올라가겠냐, 고든 램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겠냐?”
어느 쪽인지 확실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가 맥주 맛을 평가한 것은 여론을 유도하기 위한 전술이고 한국 맥주가 맛있다는 프레임을 끌어간 것은 전략으로 읽힌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무엇이 한국 맥주인가?
EDITOR_이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