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커뮤니티 트레바리 북클럽 ‘맥맥’ 방문기
오로지 맥주 이야기만 하는 독서모임이 있다고?
창 밖으로 고즈넉한 한옥지붕이 보이는 종로구 와룡동. 젊은 남녀 무리가 손에 책과 맥주를 들고 정해진 시간에 함께 모였다. 삼삼오오 둘러앉은 그들은 오로지 ‘맥주’에 관한 책을 읽고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한 두 잔, 맥주는 비워지고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도 그들의 맥주 이야 기는 끝이 가는 줄 몰랐다. 독서모임 기반 커뮤니티 ‘트레바리’에서 책과 맥주의 이색적인 컬래버레이션으로 요즘 가장 핫하다는 북클럽 ‘맥맥’을 방문해보았다.
책과 맥주의 이색 컬래버레이션
트레바리는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을 더 친하게’라는 모토를 갖고 있는 독서모임 커뮤니티 스타트업으로 4개월 단위의 유료 멤버십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100여개가 넘는 북클럽이 운영되고 있는데, 2018년 1월부터 맥주와 관련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이야기하고, 친해지는 북클럽이 개설되었다.
책과 맥주. 개인의 소소한 취향이 반영되는 일상 속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으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에세이에서 언급한 이후 유행)’이지만 두 가지 아이템은 얼핏 상관관계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이러한 독서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책과 맥주라는 키워드로 사람들이 모였어요. 그것도 불과 몇 시간만에 모객이 마감되었고요.” 트레바리에서 독서모임을 1년 가까이하고 있는 자칭 트레바리 마니아 이지훈 씨는 힘든 경쟁률을 뚫고 북클럽 ‘맥맥’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평소 소맥이나 편의점 4캔 맥주만 사다 마시곤 했는데 우연히 맛 본 크래프트 맥주에 눈이 번쩍 뜨였다.”면서 “술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다는데 북클럽 신청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날 모임에는 직업과 연령, 성별이 다양한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크래프트 맥주가 하나의 대중문화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임에 참가한 ‘맥맥’ 회원들은 저마다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맥주를 하나씩 꺼내 자기소개를 하는 것으로 모임을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유명 세계 맥주나 크래프트 맥주 전문 보틀샵에서 이색적인 맥주를 구해온 회원도 있었고, 자가양조한 맥주를 가져온 회원도 있었다. 맥주 스타일은 제각각이었지만 맥주를 사랑하고, 더 알고 싶은 열정만큼은 모두 그 어떤 맥주 전문가 못지 않았다.
크래프트 맥주 전도사가 되어가는 길
참가자들이 미리 읽고 독후감을 쓴 책은 미국의 맥주 칼럼리스트 조슈아 M. 번스타인의 ‘맥주의 모든 것’. 방대한 크래프트 맥주 세계에서 어떤 맥주를 골라야하는지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나 양질의 맥주 정보를 얻고 싶은 맥주 마니아들을 위한 바이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두툼한 두께를 자랑하는 책이었다. 맥주 초심자들에게는 사뭇 어려웠지만 이미 완독을 하고 토론에 나선 ‘맥맥’ 회원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첫 번째 독서토론 의제는 한국의 맥주시장이 반 세기 넘게 천편일률적인 맛의 대기업 맥주가 독과점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가 나타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책 ‘맥주의 모든 것’에 다뤄진 맥주만 하더라도 수백 가지인데 그 동안 라거 위주의 맥주만 마셔온 억울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자가양조를 시작한 지 2년이 넘은 참가자 구희성 씨는 “소맥 위주의 회식문화가 주된 원인이었다.”며 “최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 불고 있는 크래프트 맥주 열풍 등 독특한 스타일의 맥주를 접하고자 하는 소비자 욕구가 대두되면서 점차 음주소비문화도 바뀌려는 조짐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 참가자 배정환 씨는 “다양한 맥주를 즐기기 어려웠던 여러 장벽에도 불구하고 이제 한국은 맥주를 마시러 해외를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5-6년 만에 맛있는 맥주가 넘쳐나는 곳이 되었다.”면서 “크래프트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메신저가 되어 주변에 널리 좋은 맥주를 전파하다보면 종가세 위주의 주세법과 같은 구태의연한 장애물도 조금씩 걷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의제는 맥주를 더욱 맛있게 즐기기 위한 음식 페어링 비법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책 ‘맥주의 모든 것’ 후반부에는 미국 내 브루어리들이 크래프트 맥주와 음식 페어링 대중화를 위해 여럿 상업적 실험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 시장 또한 이제는 저변을 넓히기 위해 한국 음식과의 페어링을 고민할 때가 아니냐는 지점에서 의제가 결정되었다.
음식과 관련된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참가자 원현선 씨는 “크래프트 맥주는 제각각 어울리는 음식이 존재한다.”면서 “매운 맛이 강한 음식에는 IPA가, 시큼한 맛이 강한 음식에는 사워 맥주가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페어링으로 홍어 삼합과 플랜더스 레드 에일을 추천했다. 자칫 맥알못(맥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이현희 씨는 “지금껏 땅콩, 오징어, 치킨만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인 줄 알았다”면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음식 페어링과 그러한 조합을 선정한 이유를 들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면 꼭 방문해보고 싶다”고 음식 페어링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이렇듯 책과 맥주의 이색적인 조합을 만들어낸 트레바리 북클럽 ‘맥맥’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트레바리 직원 박성전 씨는 “트레바리는 창업 초창기부터 책과 맥주, 두 가지 키워드를 엮은 독서모임을 만들고 싶었다”며 “책과 맥주라는 공동 관심사로 묶인 사람들이 북클럽 ‘맥맥'을 통해서 맥주와 관련된 지적 쾌감까지 얻어갔으면 좋겠다”고 북클럽 개설 의도를 밝혔다. 그의 희망따라 북클럽 ‘맥맥’의 첫 독서모임은 책과 맥주,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을 유지하며 새로운 독서문화와 음주문화를 만들고 있었다.
이 날 북클럽에 특별 게스트로 초대받은 비어포스트 이인기 대표는 “맥주를 마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인생을 풍성히 즐기기 위한것”이라며 “맥주를 현학적인 탐구 대상으로 여기지 마시라”고 당부했다. 그는 맥주 초보자들이 마시기 어려운 맥주를 처음부터 무작정 시도하기 보다는 북클럽 ‘맥맥’과 같은 커뮤니티를 통해 접하다보면 점차 좋아지게 될 것이고, 어느새 맥주마니아로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백만맥덕 양성’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비어포스트처럼 “맥맥 회원들도 크래프트맥주 전도사가 되어 좋은 맥주를 널리 알리는데 기여해달라”는 당부로 토론을 마쳤다.
트레바리 북클럽 ‘맥맥’의 다음 시즌은 2018년 5~8월이며, 3월 말 모집을 시작한다. 맥주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길 원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신청해보자. 인생에서 잊지 못할 맥주와 책, 그리고 사람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EDITOR_오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