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맥주 VS 캔맥주, 어떤 것이 더 나은 것인가
일반적으로 맥주를 담는 용기를 살펴보자면 케그(Keg), 병, 캔, 페트(Pet)를 들 수가 있다. 이중 케그는 드래프트 맥주를 따르기 위한 전용 용기이고, 페트는 대기업 맥주들이 대용량으로 맥주를 팔 때 사용하는 용기라는, 특유의 사용 목적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케그와 페트에 대해선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의구심을 가지지 않지만, 병과 캔은 다르다. 소비자들과 가장 밀접한 포장 용기이기 때문에 병맥주와 캔맥주는 어떻게 다른지, 뭐가 더 나은지는 간혹 가다 튀어나오는 소소한 토론주제가 되기도 한다. 과연 정답은 무엇일까.
잘못된 보관이 맥주에 미치는 영향
맥주의 용기가 대체 왜 중요한가? 이유는 바로 맥주가 굉장히 예민한 술이기 때문이다. 일단 온갖 휘발성 물질들(대표적으로 홉의 에센셜 오일)이 고스란히 들어있을뿐더러, 맥아와 효모 등에서 비롯된 각종 변질되기 쉬운 지방산들이 들어있다. 뿐만 아니라 몇몇은 살아있는 효모가 직접 맥주 안에 들어가 있기도 하다. 때문에 맥주는 탄생과 동시에 여러 화학반응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맛이 변하기 시작하며, 맛이 변하는 정도는 주변 환경이 얼마나 잘 컨트롤 됐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이때의 ‘맛이 변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맥주의 맛을 변하게 만드는 요인은 여럿 있으니,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자. 일단 첫째로는 빛이다. 여기서의 ‘빛’은 흔히들 안 좋다고 잘 알고 있는 태양의 직사광선뿐만 아니라 형광등의 빛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니 사실 보틀샵이나 펍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 주변에서 맥주에 직접적으로 빛을 비추고 있는 쇼케이스 냉장고는 맥주의 보관엔 그다지 안 좋은 것이다.
맥주가 빛을 받았을 때 맛이 안 좋아지는 이유는 맥주에 쓴맛을 부여하는 물질인 이소 알파 산(Iso-Alpha Acid, Isohumulone)때문이다. 빛을 받은 이소 알파 산은 3MBT(3-Methyl-2-Butene-1-Thiol)라는 물질로 변하게 되는데, 이 물질의 맛과 향은 흔히 고무, 혹은 스컹크의 향과도 같다고 해서 스컹키(Skunky)하다고도 표현을 한다. 제 아무리 향에 둔감한 사람이라도 코를 대자마자 이거 뭔가 이상하다는 인상은 확실하게 주는 향이기에 맥주에서 반드시 없어야 할, 주요 이취 중 하나로 취급된다. 맥주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그루트(Gruit)를 제외한 모든 홉을 쓴 맥주엔 이소 알파 산이 들어있으므로 굳이 스컹크의 향기를 느끼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맥주를 보관할 땐 빛을 꼭 신경 쓰는 것이 좋다. 참고로 빛에 의한 맛 변화는 막아주는 것이 없다면 고작 몇 분 안에도 빠르게 일어난다. 그러니 뙤약볕 밑에서 맥주를 투명한 잔에 따라 마시는 행위는 그림은 좋아 보일지 몰라도 맥주의 맛엔 썩 좋지 않다
두 번째 요인은 산소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맥주엔 맥아와 효모에서 비롯된 온갖 물질들이 잔뜩 들어가 있고, 이중엔 산소와 잘 반응하여 성질이 변하게 되는, 즉 산화되기 쉬운 물질들 또한 다수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이면서 치명적인 물질은 맥아의 지방들이 산화되어 생긴 물질인 T2N(Trans-2-Noneral)이며 이는 종이, 심하면 카드보드지를 씹는 듯한 떫으면서도 불쾌한 맛을 낸다. 이뿐만아니라 오래된 가죽 같은 맛을 내는 물질(Isobutyl Quinolone), 오래된 꿀과 같은 맛을 내는 물질(Ethyl Phenylacetate)도 산화로 인해 생기게 된다. 특히나 오래된 꿀과 같은 맛은 지금 당장 대형마트에 가서 회전률 안 좋고, 상온보관중인 아무 맥주나 집어서 마셔보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흔한 맛이다. 거기다 안에 효모가 살아있는 맥주에 산소가 주어지게 되면 효모가 산소를 먹고 알코올을 산화시켜서 아세트알데히드(Acetaldehyde)라는 불쾌한 청사과 향을 내는 물질을 생성해내기도 한다. 즉 산소는 여러모로 맥주에 있어선 도움이 안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산소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산화는 모든 맥주에서 무조건 일어나는 반응이다. 산화의 반응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 방법인데, 때문에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인이 바로 온도다. 대부분의 화학반응은 온도가 높은 곳에서 더욱 잘 일어난다. 그러므로 온도가 높은 곳에서 맥주를 보관하게 되면 저온에선 잘 일어나지 않는 맥주 내부의 자체적인 화학반응도 잘 일어나게 되고, 산화나 일광변화와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한 반응들 또한 더욱 빠르게 일어나게 된다. 즉 맥주를 차가운 곳에 보관하는 것은 단순히 맥주의 서빙 온도를 알맞게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캔 VS 병
그럼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캔과 병을 비교해 보도록 하자.
우선 빛의 경우, 볼 것도 없이 캔의 압승이다. 캔은 빛이 투과할 여지를 전혀 주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병이라고 빛을 막는 기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맥주병인 갈색 병은 투과되는 빛을 98%나 차단해준다. 그렇다보니 짧은 기간이라면 병과 캔은 빛에 의해 큰 차이가 발생하진 않는다.
하지만 병의 보호 능력이 완벽한 것은 아니기에, 캔과 비교를 하면 단연 캔이 더 좋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초록색 병과 투명한 병은 빛을 차단하는 능력이 매우 많이 떨어진다. 때문에 테트라 홉 추출물을 사용하는 등 다른 방법을 이용해 빛에 의한 맛 변화를 최소화하려 하긴 하나, 비용과 맛을 비롯한 여러 측면에서 갈색 병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좋은 점이 거의 없다. 그저 외관과 맥주의 이미지에 대한 이점만이있을 뿐이다. 실제로 앞서 말한 ‘스컹키’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대형마트 같은 곳에 장기간 방치된 코로나(Corona)나 뉴캐슬 브라운 에일(둘 다 투명한 병을 사용한다)을 구입해서 향을 맡아보도록 하자. 높은 확률로 빛에 의한 변화가 심하게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요소인 산소에 대한 보호능력 또한 캔이 더욱 유리하다. 우선 맥주를 포장할 때, 용기 내부의 산소를 제거하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문제는 이후 유통과정에서 산소가 얼마나 용기 내부로 새어 들어오느냐 하는 점이다. 이 점에서 병의 경우는 병뚜껑(크라운) 사이의 틈이, 캔의 경우는 캔 뚜껑과 캔의 몸체사이 접합부의 틈이 문제가 된다. 그리고 얼핏 상상해 봐도 알겠지만, 캔이 산소 투과에 있어서 훨씬 빈틈이 없다. 장기간 숙성을 추천하는 맥주들이 괜히 병뚜껑 주변에 파라핀을 씌워 놓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병이 산소 투과에 취약하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온도다. 이 점에선 병이 캔보단 그나마 장점을 지니고 있다. 캔보단 병이 열전도율이 낮기 때문에 주변의 온도 변화에 덜 민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큰 의미가 없는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맥주는 항상 차갑게 보관되고 있다. 게다가 혹여 상온에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더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병이나 캔이나 별 차이가 없어진다.
이렇게 보면 맥주 맛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병이 캔보다 나은 점이 딱히 없어 보이는데, 문제는 그 외 다른 부분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비용의 측면에서 봤을 때 병을 이용하는 비용보다 캔을 새로 만드는 비용이 더 저렴하며, 같은 용량대비 병이 캔보다 더 무겁고 더 부피가 크므로 운송에 드는 비용과 효율 또한 병이 캔보다 안 좋다. 안전의 측면에서 봐도 병은 잘못되면 깨지는 등의 위험성이 있으나 캔은 잘못되면 맥주가 좀 새거나 터지는 것이 끝이다. 심지어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캔이 병보다 낫다. 우리나라처럼 재활용이 잘 되는 나라에선 알루미늄 캔의 재활용성이 병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굳이 병보다 캔이 안 좋은 점을 꼽아보면 건강의 측면을 살펴볼 수 있긴 하다. 병은 내부에 별다른 화학 물질이 들어가지 않는 것에 반해 캔은 내부에 코팅이 얇게 덧씌워져 있다. 이 코팅된 물질 중에 비스페놀 A(BPA, Bisphenol-A)라는 물질이 사람의 내분비계 교란물질로서 작용하거나 심장병을 유발하는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비스페놀 A는 강력한 세제에 닿았거나, 고온인 액체에 닿았을 때에나 적은 양이 녹아 나온다. 일부러 고온에 맥주를 데워 먹는 이상한 취향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혹자는 맛의 측면에서 캔의 단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캔맥주로 맥주를 마시면 약간의 쇠 맛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허나 그러한 문제는 캔 입구 주변을 닦아내고 마시거나, 맥주를 잔에 따라 마시면 바로 해결되는 문제이다. 쇠에 직접 입을 대고 마시면서 쇠 맛이 나는 것이 문제라고 그러면 어찌하란 말인가.
결과적으로 병은 캔보다 나은 점이라곤 뭔가 외관이 멋있다는 점 말고는 딱히 없다. 그 때문에 현재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선 10여년 전 콜로라도(Colorado) 브루어리를 시작으로 캔을 이용한 맥주 포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높은 신선도 유지를 요구하는 맥주(예를 들어 뉴 잉글랜드 IPA)일수록 더더욱 캔을 많이 사용하고 있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왠지 모르게 캔맥주를 천시하는 듯한 기조가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 깔려 있다는 점은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이다(개인적으론 아마도 와인이나 고가의 양주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 만이라도 부디 캔의 장점을 널리 퍼트려 주어서 이러한 인식이 달라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DITOR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