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는 우리를 여행하게 한다– 해외편-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남쪽의 소도시 토런스(Torrance). 이 지역의 대부분은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조용한 주거지로 이뤄져 있다. 마땅히 볼 거리나 즐길 거리가 없어 관광객들이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던 곳. 이 토런스의 거리에 언젠가부터 외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스모그 시티브루잉(Smog City Brewing), 몽키쉬 브루잉(Monkish Brewing), 스트랜드 브루잉(Strand Brewing), 더 두드스 브루잉 (The Dude’s Brewing), 앱솔루션 브루잉(Absolution Brewing) 등 실력 있는 브루어리들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다.
이제 이들 브루어리의 맥주 출시일에 거리에는 미국 전역에서 모여든 인파가 긴 줄을 이루고, 맥주 애호가들은 스스로 맥주 투어코스를 만들어 토런스를 즐긴다. 맥주를 마시러 온 이들은 자연스럽게 주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쇼핑몰을 찾는다. 브루어리를 당일에 다 돌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숙박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조용한 소도시에 사람들을 모여들게 한 것은 ‘좋은 맥주의 힘’이다. 맥주 하나가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그렇다면 맥주를 향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래프트 맥주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지역성(로컬)’이기 때문이다. 소규모로 생산하는 지역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의 맥주는 전국 유통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유통망을 개척하거나 캔입이나 병입장비를 갖추는 것이 소규모 브루어리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현지에 가야만 마실 수 있는 크래프트 맥주들이 적지 않다.
이와 함께 일부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은 맥주의 맛과 품질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의 유통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맥주의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맥주 덕후들이 적지 않은 시간과 자본을 투자해 해외 브루어리를 찾는 이유다. 또 지역 특유의 분위기가 담긴 공간에서 현지의 식재료로 만든 안주와 함께 맥주를 즐기는 기쁨은 다른 어떤 곳에서 마시는 것과 비교하기 어렵다.
많은 맥덕들에게 유럽 맥주 여행의 로망을 심어준 ‘유럽 맥주 견문록’을 비롯해 최근 출간된 ‘두 바퀴로 그리는 맥주 일기’ ‘독일에 맥주 마시러 가자’ ‘베네룩스 맥주 산책’ 등 여러 맥주 도서들이 ‘맥주’와 ‘여행’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크래프트 맥주와 여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저 브루어리에서 신선한 맥주 맛만 보더라도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겠지만 여기에 현장에 가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결합돼 맥주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1.개별 브루어리 견학
맥주 여행을 즐기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각 브루어리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견학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브루어리의 양조사나 직원과 함께 브루잉부터 캔입, 보틀링에 이르기는 양조 시설을 돌아보고 시음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맥주의 재료와 양조 과정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브루어리의 역사와 이야기를 브루어리의 구성원으로부터 직접 들음으로써 그들의 문화와 정신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미국의 시에라 네바다, 사무엘 아담스, 브루클린 브루어리, 앵커브루잉 컴퍼니, 라구니타스, 스톤 브루어리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은 대부분 브루어리 견학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양조시설 견학과 시음뿐 아니라 테이스팅 교육, 오프 플레이버 교육 등을 하는 브루어리도 있다.
람빅 명가 칸티용(Cantillon)의 브루어리 투어 프로그램은 벨기에 브뤼셀의 관광 필수 코스다.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갖고 있는 브루어리인 만큼 역사의 깊이가 묻어있는 시설들을 돌아볼 수 있다. 브뤼헤의 드 할브만(De Halve Maan), 안트워프의 드코닉(DeKoninck) 등에서도 견학과 맥주 시음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리얼 에일의 전통이 살아있는 영국과 맥주순수령의 역사를 갖고 있는 독일에서의 브루어리 투어도 놓칠 수 없다. 지역별로 특색 있는 맥주 스타일을 브루어리 투어를 하면서 익힐 수 있다.
작은 브루어리들도 셀프 가이드 투어를 할 수 있거나 비정기적으로 브루어리 견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들이 많기 때문에 홈페이지나 전화를 통해 알아보는 게 좋다. 해외에 수출되지는 않지만 지역에서 인기 있는 브루어리를 옐프(Yelp) 등을 통해 찾아 방문하는 것은 여행의 큰 재미가 될 수 있다.
2.지역 맥주 투어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이 모여 있는 지역에서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3~4개의 브루어리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있다. ‘비어바나’로 잘 알려진 미국 오레곤 포틀랜드, 홉 산지와 가까운 시애틀, 미국식 IPA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샌디에이고 등 미국 주요 맥주 도시에는 어김 없이 이런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영국, 벨기에, 독일 등에서도 여행사 등을 통해 즐길 수 있다. 물론 개인이 여러 브루어리를 스스로 방문할 수도 있지만 브루어리와 맥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교류 하면서 마시는 경험은 개별적으로 하기 어렵다.
개인들이 지역의 브루어리를 찾아다니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마련한 프로그램도 있다. 지역의 브루어리들을 방문해 여권 형태의 수첩에 도장을 찍는 이른바 ‘브루어리 도장깨기’가 대표적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지역의 50여개 브루어리를 돌면서 도장을 받으면 도장 개수에 따라 오프너, 전용잔 등의 기념품을 받을 수 있는 새크라멘토 비어 프론티어(sacbeerfrontier.com), 미네소타 지역의 탭룸과 브루어리를 대상으로 하는 노던 에일 가이드(www.northernaleguide.com/minnesota)를 비롯해 ‘비어 시티’를 자처하는 그랜드 래피즈(www.experiencegr.com/things-to-do/beer-city/brewsader)에서도 브루어리의 간략한 소개가 담긴 여권을 가지고 이 놀이를 할 수 있다.
해외의 브루어리 투어는 맥주에 관광이나 액티비티를 더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크래프트 맥주와 함께하는 유람선 투어, 맥주를 마시면서 즐기는 사파리 등의 상품이 나와있다.
또 영국의 브루독은 올해 객실마다 맥주 탭을 갖추고 맥주 양조 과정을 내려다볼 수 있는 맥주 호텔을 완공해 맥주와 숙박을 결합한다는 계획이다.
EDITOR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