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아일랜드 시니어 브루어 마크가 제안하는 5가지 치즈&맥주 페어링
화창한 5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 서울 역삼동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에서 흥미로운 페어링 시음회가 열렸습니다. 구스아일랜드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을 방문한 시니어 양조사 마크가 치즈와 맥주의 다섯 가지 조합을 선보인 것입니다. 이번 시음회는 비어포스트 독자들의 신청을 받아 진행되기도 한 만큼, 평소 푸드 페어링에 관심이 있거나 치즈를 좋아하는 맥주 애호가에게는 퍽 좋은 기회였습니다. 미 중부 시카고에 위치한 구스 아일랜드 브루어리는 펍에서 출발했기 때문 에 음식과 함께 즐기기 좋은 맥주를 만들어왔고, 페어링에 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는 양조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던 페어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현장에서 맛본 내용을 전하고자 합니다.
10년차 시니어 양조사인 마크는 본인 역시 치즈를 즐겨 먹으며, 특히 치즈의 숙성된 풍미가 크래프트 맥주의 복합적인 맛과 잘 어우러진다는 생각에 이러한 페어링을 기획했다고 말했습니다. 장인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며 만드는 방식에 따라 다양하고 복합적인 맛을 낸다는 점에서 치즈와 맥주에 유사점이 있고, 둘을 서로 대비하거나 상호보완하여 짝지음으로써 더욱 풍성하고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카고에서 치즈와 맥주의 페어링은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치즈는 보통 와인과 많이 페어링을 합니다. 그런데 푸드 페어링을 포함하여 와인이 점유했던 영역을 요즘 크래프트 맥주가 많이 대체해 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는 페어링을 맛보는 방법도 소개했는데, 더욱 자유롭고 풍부하게 맛을 탐험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방법과 마찬가지로 맥주를 먼저 마십니다. 맥주의 산미가 치즈의 향을 돋우고 풍미를 살리는 데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맥주를 맛보고 치즈를 맛본 다음, 다시 맥주를 맛봄으로써 서로 뒤섞이는 새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맥주가 공기와 접촉하면서 맛이 조금씩 변화하는데, 이 변화에 따라 치즈도 같이 맛을 보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맛을 느끼는 것이 또 다른 재미입니다.” 시음은 가벼운 맛으로 시작해 깊고 강한 풍미의 순서대로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치즈에서 오는 맛이 워낙 진하기 때문에, 중간에 신맛으로 입을 한차례 헹구는 효과를 위해 배럴 숙성 맥주 소피(Sofie)를 배치했다고 합니다.
1.구스312&염소젖(셰브르, Chevre) 치즈
312는 구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가볍고 부드러운 밀맥주로, 레몬과 같은 시트러스 향과 풀 같은 상쾌한 풍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염소젖 치즈 역시 아주 부드러운 질감을 갖고있으며, 미묘하게 새콤한 맛이 난다는 점에서 312와 유사성을 지닌 치즈입니다. 마크는 비슷한 특징을 바탕으로 서로 보완적으로 작용하는 페어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특히 염소치즈로 인해 312에 내재된 과일 향이 부각된다고 했는데, 저 역시 염소치즈의 떫은 맛과 312의 시트러스 풍미가 만나 과일 껍질과 같은 느낌이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염소젖 치즈의 단맛이 살아나 아주 감미로운 맛이 느껴졌습니다. 두 가지가 서로 스며들 듯 어우러지는 훌륭한 조합이었습니다.
2. 구스 IPA & 체다 치즈
구스 IPA는 영국식 IPA를 재해석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가벼운 홉 향과 함께 몰트의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맥주입니다. 마크는 영국식 IPA에 맞게 영국 체다 치즈와 함께 페어링 했다고 합니다. 이 체다 치즈는 앞서 맛본 염소젖 치즈와 달리 단단한 질감에 짭짤한 맛이 나며 풍미가 강합니다. 치즈가 주는 강렬하고 응축된 맛이 쌉싸름하고 강한홉 캐릭터와 서로 대비되면서 맛을 증폭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앞선 페어링이 상호보완을 이루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서로 대비를 이루며 상승효과를 유발하는 방식입니다. 이번 시음회에서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마크는 추가로 구스 IPA와 블루치즈의 조합도 추천했습니다. 블루치즈의 퀴퀴하고 강렬한 풍미가 IPA의 홉 캐릭터와 만나 마찬가지로 대비를 이루며 맛을 증폭한다는 설명입니다
3. 덕덕구스 & 고다 치즈
덕덕구스는 한국에서 생산되는 맥주이며 브루하우스에서 가장 잘팔린다고 하는 새콤달콤하고 가벼운 맥주입니다. 시트러스 향과 열대과일 향이 주된 캐릭터인 이 맥주는 네덜란드 고다 치즈와 페어링 되었습니다. 이 고다 치즈는 아주 고소하고 땅콩버터 느낌이 나며 무겁고 부드러운 풍미가 두드러지는데, 맥주 맛과 대조를 이루며 증폭되는 페어링이라고 합니다. 맥주의 맛이 워낙 가볍고 연한편이었기 때문에, 치즈의 풍미가 맥주 맛을 압도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4. 소피 & 브리 치즈
소피는 와인 배럴 안에서 오렌지 껍질과 함께 숙성을 거친 벨지안 팜하우스 에일로, 달달한 열대과일 향과 함께 샴페인이나 화이트와인과 같은 깊은 맛이 두드러집니다. 여기에 페어링 된 치즈는 프랑스 브리 치즈로, 크림처럼 진득한 안쪽 부분에 박테리아가 많은 치즈입니다. 에이징이 중요한 치즈이기 때문에 숙성맥주인 소피와 잘 어우러지다고 마크는 설명했습니다. 이 조합을 즐기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소개되었는데, 하나는 치즈 껍질과 함께 맛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안쪽의 진득한 부분과 함께 맛보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껍질과 함께 먹었을 때, 껍질의 쿰쿰하고 묵은 풍미가 소피의 숙성된 맛과 만나 전체적인 맛이 확장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안쪽 부분과 함께 먹었을 때, 버터처럼 아주 부드럽고 고소하며 느끼한 맛이 났는데, 마크는 이를 ‘아몬드 버터’같은 맛으로 표현했습니다.
5. 마틸다 & 에비 스타일 치즈
야생 효모가 들어간 마틸다는 소피와 마찬가지로 새콤달콤한데, 자두와 같은 플럼 계열의 과일 맛이 두드러지며 위스키 향도 살짝 나는 매력적인 맥주입니다. 에비 스타일 치즈와 페어링 했는데, 야생 효모의 퀴퀴한 풍미와 비슷한 묵은 맛이 치즈에서도 유사하게 나기 때문에 조화롭게 어우러집니다. 직전의 페어링과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번 조합은 치즈 껍질과 함께 먹었을 때 말 안장같은 퀴퀴한 느낌이 훨씬 강력하고 진하게 시너지를 발휘했습니다. 부드러운 안쪽 부분과 함께 먹었을 땐 캐슈넛과 같은 부드럽고 순한 맛이 진하게 납니다.
다섯 가지 페어링 모두 색다르고 맛있는 경험이었지만, 특히 묵은 풍미의 치즈와 숙성 맥주의 쿰쿰한 맛이 어우러지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최근 국내에서는 한국음식과 크래프트 맥주의 페어링이 주목받고 있는데, 마크는 치즈에 맥주를 조화한 것과 비슷한 이치를 한국 발효음식과의 페어링에도 적용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전했습니다. “치즈는 숙성이 되면서 본래 갖고있던 맛이 더 복잡해지고 강해집니다. 하지만 맥주는 숙성을 거치면서 맛이 단순히 복잡해지는 게 아니라, 어떤 맛은 강조되고 어떤 맛은 사라집니다. 한국 발효음식 역시 숙성을 거치며 어떤 방식의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따라 적합하고 균형이 맞는 페어링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전날 소맥을 맛보았던 마크는 한국의 ‘소맥 문화’에 관한 생각도 전했습니다. “소맥은 일종의 ‘블렌딩(blending)’이라고 생각합니다. 맥주를 만드는 과정 역시 블렌딩의 연속입니다. 오늘 함께 맛본 맥주 ‘소피’도 두 가지 맥주를 섞은 맥주입니다. 다만 섞기 전에 술을 마셔보고 본연의 맛을 인식한 후에 재해석하여 스스로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때 섞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발상과 행위 자체는 재미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DITOR_홍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