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캔에 만원, 어떤 맥주를 고르지? 마트·편의점 세계맥주 시음회 - 라거 편 –
편의점과 마트에서 ‘네 캔에 만원’ 수입 맥주는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되었다. 심지어는 5캔, 6캔 만원에 이르는 수입 맥주도 판매되고 있다. 맥주를 마시는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 가격이 싼 수입 맥주는 주머니의 부담도 줄여주고, 국내 맥주보다 맛이 있으니 유용한 상품이 아닐 수 없다. 국내 맥주 시장에서 갈수록 수입 맥주의 점유율이 높아지는 이유다. 소위 ‘가성비’가 높다. 하지만 맛의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이 수입 맥주들은 어떤 맛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정말 한국 맥주는 다른 수입 맥주에 비해 맛이 없을까?
이런 의문을 해결하고, 국내에 수입되고 있는 맥주 맛 평가를 위해 비교시음의 자리를 마련했다. 품목은 마트와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맥주 중 밝은색 라거 27종으로, 그 중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카스의 국내 생산분과 미국 생산분의 비교 시음도 포함했다.
시음에 참여한 사람은 총 8명으로 서울대학교 양조 동아리 스누브루의 장원혁, 지우현, 현승민 등 3명, 더부스 판교 브루어리 총괄 양조사 강대인, 공인 씨서론 자격을 보유자이자 비어포스트 에디터 김정환, 홈브루어 강한준, 비어포스트 에디터 홍희주다.
네 캔 만원 맥주의 홍수, 흙 속의 진주를 찾아라!
마트·편의점 수입맥주 소비 패턴
먼저 시음회 참가자들이 평소 마트나 편의점에서 어떤 맥주를 소비하는지 물어보았다. 대답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가성비를 중시하는 대답으로 국산맥주보다 싼 수입 맥주를 주로 사 마신다는 대답과 ‘12캔에 만 원(355ml 기준)’으로 판매되는 발포주 필라이트를 주로 마신다는 응답이 있었다. 두 번째는 마트의 경우 보관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사먹지 않는다고 답했다. 예를 들어 뜨거운 바람을 내뿜는 냉장고 바로 뒤에 맥주를 쌓아 놓는 곳이 있는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매장들이 있다고 한다.
시음회의 진행 이번 시음회에서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브랜드로 인한 선입견이나 마셔본 적 있는 맥주의 인상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모든 과정은 블라인드로 진행했다. 또한 맥주의 전문적인 평가 경험이 없는 참가자가 포함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여 맥주의스타일, 알코올 도수 등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개인의 맛을 기준으로 10점 만점 기준의 스코어만 기록하도록 했다. 이후 작성된 맥주별 스코어를 기준으로 8명의 평균 점수로 시음 대상 맥주 27종(미국과 한국 생산된 카스의 비교시음은 제외한다)을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 그룹으로 분류하였다. 시음회 중 첫 10개의 맥주에는 카스, 클라우드, 하이트를 포함시켜 수입 맥주 사이에서 한국 맥주를 찾아낼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함께 진행했다. 이번 시음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국산 맥주 구분할 수 있을까?
시음은 서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진행 되었다. 첫 번째 세션으로 카스, 클라우드, 하이트가 포함된 10종의 맥주를 평가하고, 한국 맥주 찾아보기를 진행했다. 진행 결과 유일하게 스누브루의 장원혁씨 만이 클라우드를 찾아냈을 뿐 대부분 우리나라 맥주를 찾아내지 못했다. 수입 맥주 중 스텔라 아르투아를 카스로 착각한 경우와 필스너 우르켈을 클라우드로 착각하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했다. 반대로 클라우드의 경우 필스너 우르켈이라는 의견도 있었고, 카스를 마신 뒤 하이트일 것으로 예측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음이 끝난 뒤 정답을 말해주자 자신이 그토록 많이 마셨던 맥주 맛을 기억하지 못했다며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맥주의 맛 만을 기억하지 못한다. 브랜드와이미지가 결합되어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배제하고 맛으로만 맥주를 평가하고자 하던 것이 이번 시음의 의도이기도 하다.
같은 맥주 다른 제조국: 카스 5 vs 3 카스
최근 미국에서 생산된 카스의 역수입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러시아 월드컵 기념으로 생산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한국으로의 역수입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같은 맥주, 같은 레시피, 그러나 제조국이 다르다면 맛도 다를까? 그리고 맛이 다르다면 어떤 것이 더 맛있을까? 카스 A는 미국 생산, 카스 B는 한국 생산된 것으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했다. 진행 결과 5:3으로 미국 생산 카스가 더 맛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미국 생산 버전의 경우 맛이 더 진하고 탄산이 한국 생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의견으로, A를 선택한 사람들은 맛이 더 진하기 때문에 더 맛있다고 한 반면, B를 선택한 사람들은 이 맥주에는 가벼운 질감과 강한 탄산이 더 어울린다는 점과 늘 마시던 익숙한 맛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시음 전 각종 SNS나 포털 사이트의 댓글에는 미국 생산 카스가 더 맛이 없다는 의견도 상당수 있었는데 시음 결과와 종합해보면, 첫 째, 이번 시음 참가자들은 비교적 진한 맥주에 대한 선호가 높다는 점을 알 수 있었으며, 둘 째, 사람들이 생각하는 ‘카스의 맛’에서 동떨어진 맛을 보였을 때 맛이 없다고 판단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시음회 결과 전체 27개 맥주의 평균 점수는 4.74점이었으며, 그룹별로 살펴보면 상위권 평균점수는 5.54점, 중위권 평균 점수는 4.71점, 하위권 평균 점수는 3.96점으로 나타났다. 이번 시음 결과의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상위 9개의맥주 중 클라우드와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가 속해 있다는 점이다. 클라우드의 경우 향이 상큼하고 유쾌하다는 평을 얻었다.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맥주들은 시음단의 호평을 받았는데, 산토리 프리미엄 몰트의 경우 다른 맥주에 비해 확연히 호피한 특성이 드러난다는 평이 많았으며, 하이네켄 라거는 홉 향이 제대로 느껴지고 맛이 깔끔하다는 평을 받았다. 무스헤드 라거는 벨지안 화이트와 비슷한 향긋한 풍미와 영국 홉 같은 향이 느껴져서 좋았다는 평을 받았다. 중위권에서는 부데요비츠키 부드바르가 전반적으로 부담스럽지 않고 과일향이 감지된다는 코멘트와 함께 좋은 평을 받았다. 웨팅어 엑스포트의 경우 고소하고 단 옥수수 맛이 두드러지지만 유쾌한 맛이었다는 평을 이끌어냈다.
반면 이취가 발견되거나 부가물의 향이 도드라진다는 평을 받은 맥주도 있었다. 불쾌한 단 맛이나 시럽을 연상시키는 맛이 감지되는 맥주도 있었고, 청사과, 밀가루를 연상시키는 빵 맛등을 연상시키는 맥주도 있었다.
시음회가 무르익을수록 참가자의 상당수가 고통을 호소했다. 비슷한 스타일의 맥주를 장시간 집중해서 마시다 보니 혀와 코의 감각이 점점 무뎌지는데다 27종이나 되는 맥주를 마시는 데서 오는 체력적인 문제를 호소하기도 했다. 맥주별로맛에 대한 평이 극명하게 갈리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개인의 취향이나 컨디션 등을 고려하더라도, 참가자들이 비교적공통적인 반응을 보이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단서를 발견해 보기 위해 시음회를 마친 뒤 참가자들의 평과 함께 맥주의 상태를 알려줄 수 있는 정보들을 확인해 보았다.
시음 평가 통계로 살펴 본 맥주 맛
이번 시음 및 평가 대상이었던 27개 맥주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시음 대상 맥주의 특성을 분류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어떤 맥주를 맛있어 하는지를 알 수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시음 대상 맥주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그 결과를 살펴보았다.
시음 대상 27개 맥주는 Ratebeer.com 기준으로 페일라거 17종, 프리미엄 라거 1종, 필스너 5종, 헬레스 2종, 쾰쉬 2종으로 구성 되었다. 또한 평균 유통기한 잔여 일수는 200일로 조사되었다. 생산 시점으로부터 경과된 시간을 조사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일부 맥주의 경우 제조일이 따로 표시되지 않고, 유통기한만 표시되어 있어 잔여 유통기한을 조사했다.
순위별 유통기한 잔여 일수
평가자들의 평균점수가 높은 순으로 1-14위, 14-27위에 해당하는 맥주의 잔여일수의 평균을 계산해서 높은 점수를 받은 맥주와 낮은 점수를 받은 맥주간의 평균 유통기한 잔여일수를 비교해 보았다. 대상 맥주는 17개로 중간 순위인 14위의 맥주는 점수 상위 맥주와 하위 맥주의 일수에 모두 포함하여 동일한 조건으로 비교했다.
비교 결과 1-14위로 상위권에 속한 맥주의 평균 유통기한 잔여 일수는 219.3일, 14-27위의 평균 유통기한 잔여 일수는 183.2일로 36.3일의 차이를 보였다. 그룹별로 나누면 상위권과 중위권은 각각 228.8일, 201.7일로 전체 평균 잔여 일수인 200일 이상이 남아 있었으나 하위권의 경우 169.7일에 불과했다. 상위권에 속한 맥주 중 클라우드는 유통기한이 10개월로, 유통기한이 대개 1년 정도인 다른 맥주들에 비해 잔여일이 짧은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평균 유통기한 잔여 일수 기준 평가 점수 비교 평가 대상 맥주의 평균 유통기한 잔여 일수는 200일로, 200일 이상 남아 있는 맥주는 12개, 200일 미만은 15개였다. 전체 맥주의 평균 점수는 4.74점으로, 200일 이상의 유통기간 잔여 일수의 경우 4.94점으로 평균보다 높은 점수를 얻은 반면 200일 미만의 경우 4.58점으로 평균보다 낮은 점수를 획득했다
맥주 스타일별 평균 유통기한 잔여 일수 및 점수
맥주 스타일별 평균 유통기한 잔여 일수와 점수의 관계도 살펴보았다. 페일라거의 경우 평균 유통기한 잔여 일수는 219.8일로 전체 평균 200일보다 높았으며, 점수도 전체 평균 점수인 4.74점 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페일 라거 외의 스타일의 평균 유통기한 잔여 일수는 166.5일로 평균보다 33.5일이 적었으며, 점수도 4.62점으로 전체 평균점수보다 낮았다.
페일 라거를 기준으로 분류한 것은 시음한 맥주 중 페일라거가 17종으로 단일 스타일로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한 것과 맥주 스타일 중 가장 가벼운 스타일임을 고려했다. Ratebeer.com의 설명에 따르면, 페일 라거는 4-6%의 알코올 함유량을 가지고 있으며, 색이 옅고 부가물이 첨가될 수 있으며 맥아와 홉의 케릭터가 약한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이를 기준으로맥주 맛의 강도에 따른 선호도, 일반적인 맥주 스타일별 맛의 강도별로 잔여 유통기한 일수가 맥주 맛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다.
페일 라거를 제외한 스타일의 평균 잔여 유통기한 대비 잔여 유통기한별 점수특히 페일 라거를 제외한 맥주 10종을 이들의 평균 유통기한 잔여일수인 166.5일을 기준으로 분류해본 결과 평균 이상의잔여 유통기한을 가진 맥주의 경우 5.12점, 평균 미만의 잔여 유통기한을 가진 맥주는 4.13점으로 잔여 유통기한에 따라평가 점수가 더 크게 갈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면 페일 라거의 경우 페일 라거의 평균 유통기한 잔여 일수를 기준으로 분류했을 때 맛의 평가가 유의미하게 달라지지 않았다.
알코올 도수 기준 평균 점수 10위권 내 분포
한편, 27개 맥주의 평균 알코올 도수는 4.9%로, 평균 이상의 알코올 도수를 가진 맥주는 16개, 미만은 11개였다. 평균 알코올 도수 이상을 가진 맥주의 평균 점수는 4.89점, 평균 이하의 알코올 도수를 가진 맥주는 4.47점으로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맥주가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10위 내에 포함된 맥주 중에서 평균 알코올 도수인 4.9% 이상의 맥주가 7개나 포함되어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맥주가 더 선호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결과들은 한 가지의 결론으로 향하고 있다. ‘맥주는 신선할수록 맛있다’는 것이다.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맥주의 잔여 유통기한 일수는 하위권에 속한 맥주보다 36.1일이 길었으며, 평균 유통기한 이상으로 잔여일이 남은 맥주는 전체 평균점수보다 높은 평균 점수를 보였다. 특히 페일 라거를 제외한 헬레스, 필스너, 쾰쉬, 프리미엄 라거 등의 맥주는 잔여유통기한에 따른 점수 차이가 더욱 크게 나타났다. 한편 이번 시음 및 평가를 진행하는데 있어 맥주에 대한 스타일, 알코올 도수 등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평가를 진행했음을 감안하면, 이번 시음에 참가한 사람들의 경우 알코올 도수가 높은맥주에 조금 더 좋은 점수를 주었음을 알 수 있다.
맥주의 맛을 해치는 여러 요인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어쩌면 그 중에서 시간이 맥주 맛의 가장 큰 적은 아닐까? 우리는 신선한 맥주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한다. 유통기한을 초과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맥주가 시간이 지나며 맛이 떨어진다는 것을 이번 시음 평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이취를 가진 맥주도 있었지만, 특별한 이취가 발견되지 않은맥주의 경우에도 잔여 유통기한이 짧은 맥주들의 평균적인 점수가 높지 않았다는 점은 맥주별로 맛의 완성도나 강도, 사람들의 선호도의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패 확률이 적은 맥주란 결국 신선한 맥주
대형 마트와 편의점에는 수많은 맥주가 있다. 네 캔에 만원인 수입맥주, 국산맥주, 국내외 크래프트맥주까지. 수많은 맥주중에서 맛있는 맥주, 혹은 실패할 확률이 적은 맥주를 고르는 방법이 있을까? 특히 맥주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말이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맥주를 고른다면 실패할 확률은 매우 떨어진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을 잘 알지 못한다면 이러한 방법이 크게 의미 있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제조일자 또는 유통기한의 확인이다. 앞선분석 결과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유통기한이 많이 남아 있는 맥주의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맥주를 고를 때도 보다 신선한 맥주를 고른다면 실패 확률이 더욱 줄어들지 않을까? 맥주를 고를 때 캔의 바닥을 한 번 뒤집어 보는 수고만 하더라도 보다 좋은 맥주를 고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긴 시간 맥주를 마시고 견디며 스코어를 작성했던 참가자 모두에게 감사를 표하며, 마트·편의점 세계맥주의 다음 시음회도 기대해주시길 바란다.
EDITOR_장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