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링 페어링 #10 크리스마스 특집 뱅쇼(Vin chaud) 만들기
프랑스의 크리스마스
12월이 다가오면 마음이 설렌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 거리에서 느껴지는 겨울 냄새, 외출하기 전에 두르는 머플러의 감촉,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눈에 대한 기대,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평소에 듣지 않던 캐럴을 듣고, 집 앞에 있는 소나무를 반짝이는 조명으로 치장하다 보면 산타할아버지가 어떤 선물을 가져다 주시려나 꿈꾸던 어린 시절의 행복이 떠오른다. 그동안 소홀히 한 ‘착한 일 쌓기’에 열중하던 기억도, 산타할아버지를 만나겠다고 트리 앞에서 꾸벅꾸벅 졸던 모습도, 결국 만나진 못했지만 머리 곁에 놓여 있는 선물을 보고 느낀 기쁨도. 성탄절은 이제 종교적 상징을 뛰어넘어 전 세계적 축제가 되었다. 유럽에서 느끼는 성탄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설날과 닮아있다.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맛있는 요리를 많이 만들어 함께 먹고, 덕담을 건네며 선물을 교환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껍데기는 달라도 알맹이는 통하는 바가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도 성탄절이 다가오면 거리가 조금씩 바뀌긴 하지만, 프랑스에선 더욱 극적으로 변한다. 마을 골목마다 조명을 설치하고, 주요 광장엔 아기자기한 목조 가옥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기 시작한다. 요정이 만든 것처럼 귀여운 소품과 간단한 간식거리를 팔아 흥겨운 분위기를 더한다. 11월 말에서 12월 말까지 지속되는 만큼, 이 시기에 프랑스를 방문하시는 분이라면 꼭 크리스마스 마켓에 방문해보길 권한다. 도시마다 마켓도 각양각색 특징이 있다. 지역 특산품도 판매하니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한 편.
참고로 프랑스 내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가장 유명한 지역은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다. 건물보다 높이 솟은 소나무를 꾸민 장식은 낮에도 아름답지만, 조명이 빛나는 밤엔 더욱 아름답다. 파리에도 튈르리 궁전, 샹젤리제 거리, 샤틀레 등 여러 장소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옥토버페스트는 바이에른 공국 태자 루드비히 1세와 테레제 공주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때는 1810년 10월 17일. 200년이 훌쩍 넘은 과거의 일이다. 처음부터 맥주 축제는 아니었다. 평생 기억할 만한 결혼식을 치르고자 했던 루드비히 1세는 고대 그리스에서 거행된 제전을 부활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그 결과로 마차 경주를 개최했고, 시합 뒤엔 성대한 뒤풀이가 벌어졌다. 당연히 맥주와 음식이 풍성하게 제공되었겠지. 그 풍요로운 술과 고기의 향연이 세월이 흘러 옥토버페스트가 되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고 우리는 더 행복하게 맥주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해피엔딩 딴딴.
크리스마스 마켓의 꽃, 뱅쇼(Vin chaud)
상점 곳곳을 살피다 보면 달큰하면서도 알싸하면서도 매력적인 냄새가 여행객을 유혹한다. 냄새를 쫓다 보면 가게에서 커다란 솥에 뭔가를 끓이고 있다. 그건 바로 뱅쇼. 주로 레드와인으로 만들지만 화이트 와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영어로는 뮬드 와인(Mulled wine), 독일어로는 글루바인(Glühwein)으로 불리는 겨울철 유럽 음료다. 뱅쇼를 직역하자면 ‘따뜻한 와인’인 셈. 따뜻하게 마시는 와인이니 정종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다른 점은 뱅쇼는 뭉근히 오래 끓이는 과정에서 대부분 알코올이 날아가기 때문에 음료에 가깝다. 어린아이도 즐겨 마시는 편이다.
뱅쇼 레시피
재료
와인 두 병, 과일 (사과 1개, 레몬 1/2개, 오렌지 1개, 자몽 1/2개), 물 3컵, 설탕 200g, 시나몬 스틱 2개, 스타아니스 등의 향신료
1. 과일은 베이킹소다를 뿌려 손으로 문질러 깨끗하게 씻은 후 흐르는 물에 세척한다. 껍질 채 사용할 것이니 깨끗하게 세척하기!
2. 과일은 얇게 잘라 준비한다. 씨앗은 분리해 버린다.
3. 설탕량은 취향에 따라 조절한다. 설탕 대신 꿀을 사용해도 좋다.
4. 냄비에 설탕, 뱅쇼 스파이스, 와인, 물을 붓고 썰어둔 과일을 담는다
tip 1. 와인은 가장 저렴한 것으로 구매할 것!
tip 2. 과일 양은 적당히 넣을 것. 욕심껏 넣는다면 껍질 때문에 맛이 떫어질 수 있다.
와인을 끓여 마시는 건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온 전통이라고 한다. 중세 시대 영국 요리책에서 레시피를 확인할 수도 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뜨끈한 음료로 몸을 데우고 싶은 마음은 삼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인가 보다.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와 뱅쇼가 연결되기 시작한 건 19세기 초중반, 스키나 스케이트 같은 빙상 스포츠가 발달하면서부터. 눈 속에서 놀다 보니 꽁꽁 언 손을 녹이기엔 뱅쇼가 제격이었을 테고 자연스레 겨울철 대표 명절인 크리스마스와 연결된 게 아닐까 싶다.
역사는 차치하더라도 빨강과 초록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분위기 속에서 루비처럼 은은한 빛을 내는 뱅쇼는 잘 어울린다. 한 모금 마시면 속을 데워주는 훈훈한 감촉도 환영!
크리스마스 X 뱅쇼
뱅쇼를 만드는 과정 역시 뱅쇼가 좋은 이유 중 하나. 함께 끓일 과일을 손질하자 상큼한 추위에 웅크렸던 몸을 깨운다. 평소엔 한 잔씩 마시던 와인을 한 병 통째로 냄비에 붓는다. 여기서 오는 왠지 모를 쾌감도 있다. 어린시절 엄마 몰래 초콜릿을 하나 더 먹던 느낌이랄까. 준비한 과일, 시나몬 스틱, 팔각, 꿀을 넣고 와인을 데우기 시작하면 공기에 스며드는 향기도 좋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통째로 방으로 가져온 기분이다. 와인이 뜨겁게 되기전까지 기다리며 함께 있는 이와 나누는 대화도 즐겁다.
완성된 뱅쇼는 예쁜 유리 잔에 따른다(두툼한 머그잔에 따라도 잘 어울린다). 이제 마실 차례! 첫 잔을 홀짝홀짝 마신다. 잔을 채운 뱅쇼 향이 코를 자극한다. 입에 닿으면 다채로운 맛이 혀를 감싼다. 단맛, 신맛, 매운맛 등등 여러 가지가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 마치 여백 없이 채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함께 먹을 음식이 필요하다면 진저브레드맨 쿠키를 추천한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해주기도 하고, 뱅쇼에 스며든 계피 향과 어우러져 그윽한 맛을 더한다.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도 잘 어울린다. 뱅쇼에 쿠키를 찍어 먹는 프랑스인 친구도 있었다. 독특한 맛. 홍차에 마들렌을 담가 먹을 때와 비슷하다. 언젠가 혀에 남은 이 감각이 자몽 과육과 함께 기억 속에서 튀어나오려나.
와인을 한 솥 가득 넣어 계속 데워가며 마실 거기 때문에, 같이 마실 상대는 오래 같이 이야기해도 주제가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알맞다. 추억에 대해서, 일상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크리스마스에 받을 선물에 대해서(..?). 알코올이 대부분 날아간 덕분에 많이 마셔도 취할 이유는 없지만, 왜인지 마시다 보면 술에 취하는 기분도 든다. 아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설레기 때문일 테지.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뱅쇼가 담긴 잔을 들고 서로의 건강을 빈다. 비어포스트 독자 여러분도 한 해를 잘 마무리하길 바란다. 그리고 새해에도 늘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Sant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