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썩이는 일본 크래프트 맥주 시장 국제 비어 콘퍼런스 ‘한ᆞ일 맥주 산업의 현황 및 정책
4월 5일에서 8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 ‘바앤펍쇼’에서는 해외 맥주 시장 동향과 양조 트렌드 등을 읽을 수 있는 ‘인터내셔널 비어 콘퍼런스’가 함께 열렸다.
글로벌마이스그룹 GMEG와 비어포스트가 공동 주관하고 플래티넘 맥주가 후원한 인터내셔널 비어 콘퍼런스는 ‘한ᆞ일 맥주 산업의 현황 및 정책’ 세션과 ‘미ᆞ일 맥주 양조 기술 변화’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한ᆞ일 맥주 산업의 현황 및 정책 세션에서는 일본의 크래프트 맥주 전문가 단체인 수제 맥주 협회(The Craft Beer Association)의 유스케 야마모토(Yusuke Yamamoto) 회장과 테츠야 코지마(Tetsuya Kojima) 이사가 연사로 나서 일본 크래프트 맥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생생하게 전했다.
일본의 크래프트 맥주 시장은 우리와 닮은 부분이 적지 않다. 한번 크래프트 맥주의 유행이 꺾였다가 재도약을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크래프트 맥주의 성장에 걸림돌이 됐던 제도들이 하나 둘씩 풀리고 있다는 점에서다. 반면 일본은 한국에 비해 크래프트 맥주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돼 있다. 일본에서는 주류의 인터넷 판매가 허용돼 다양한 유통이 가능하다. 또 맥주의 주세가 30% 가까이 하향 조정될 예정이다.
일본 크래프트 맥주 ‘두 번째 봄’
일본의 크래프트 맥주 역사는 1994년에 시작됐다. 관련 규제가 완화돼 소규모 브루어리들이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일본 주세법에는 브루어리 연간 맥주 생산량의 하한이 규정돼있다. 연간 최소 맥주 생산량이 1940년 1800㎘로 규정된 이후1950년 2000㎘로 상향 조정됐다. 국내 소규모 맥주 제조자 면허를 갖고 있는 브루어리 중 가장 생산량이 많은 카브루의 연간 판매량를 크게 넘어서는 용량이다. 이 규제 때문에 일본에서는 아사히, 기린, 삿포로, 산토리, 오리온과 같은 대형 회사들만 살아남아 5강체제가 오랜 동안 지속됐다.
1994년 4월 연간 최소 생산량이 60㎘로 크게 줄어들면서 소규모 브루어리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규제 완화 이후 3년여 만에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지비루(Ji-biru)’ 브루어리가 급증해 200여개에 이르렀다. 1999년에는 300개를 돌파하며 ‘지비루 붐’이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후 빠른 속도로 소규모 브루어리들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유스케 야마모토 일본 수제맥주 협회 회장은 “지비루의 맥주 품질이 소비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데다가 가격이 비싸 시장이 확대되지 못했다”며 “지역에 기반을 뒀다고 말은 하면서도 정작 지역성을 갖추지 못했던 것도 실패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고전하던 일본의 소규모 맥주는 2010년 ‘제2의 도약’을 시작했다.
품질을 향상시키면서 살아남은 브루어리들이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라는 개념을 가져와 붐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 이때부터 브루어리 숫자가 반등하기 시작해 2017년말 일본의 크래프트 브루어리 숫자는 300개를 다시 돌파했다.
일본에서는 최근 10년간 전체 맥주 출고량이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크래프트 맥주 출고량은 증가하고 있다. 야마모토 회장은 “20~40대가 크래프트 맥주를 즐기게 됐고 맥주를 단순히 술로보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취향을 가지고 즐기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브루어리마다 다른 스토리로 마케팅을 하고 크래프트 맥주 전문 판매점에서 직원들이 맥주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크래프트 맥주 가격에 상응하는 가치를 알게 됐다”고 부연했다.
“이번엔 다르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1990년대의 크래프트 맥주 붐과 현재의 붐은 질적인 측면에서 차원이 다르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양조 기술과 맥주의 품질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야마모토 회장은 “최근 탄생한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은 경험이 많은 브루어리와 브루어로부터 지식을 전수받았다”며 “이를 통해 품질이 빠르게 향상된 곳들이 많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고품질의 맥주를 생산하면서 ‘이세 카도야(Ise-Kadoya) 마이크로 브루어리’ ‘미노비어(Minoh Beer)’ ‘코에도 브루어리(Koedo Brewery)’ 등 많은 일본 브루어리들이 전세계 맥주 대회에서 상을 거머쥐고 있다. 일본 크래프트 맥주의 해외 수출도 늘고 있다.
다양한 유통 경로도 일본 크래프트 맥주 붐을 북돋는 한 축이다.
주류의 인터넷 판매가 가능한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쉽게 크래프트 맥주에 접근할 수 있다. 테츠야 코지마 일본 수제맥주 협회 이사는 “맥주 팬들이 일상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즐기게 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크래프트 맥주의 생산과 유통에 탄탄한 기반이 마련되면서 일본에서는 본격적으로 다양한 맥주가 출시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토종 재료들을 활용하는 것이다. 히타치노 네스트에서는 일본산 몰트와 홉으로 만든 니포니아(Nipponia)라는 맥주를 내놨다. 또 사케 이스트와 쌀로 만든 사케 비어도 시장에 나왔다. 이밖에 부재료로 여주, 미소, 가츠오부시, 벚꽃 등도 활용된다
이와 함께 지역 브루어리들이 지역 음식 문화를 고려해 그에 맞는 맥주 스타일을 내놓기도 한다. 테츠야 코지마 이사는 “일본 동부와서부의 음식 맛이 다른 것을 고려해 지역 브루어리들이 음식 맛과 어울리는 맥주를 양조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같은 미소라도 서부가 더 달기 때문에 서부에 있는 브루어리들은 단맛이 강조된 맥주를 만드는 식”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대기업들도 크래프트 맥주 붐에 올라타기 위해 라이트 라거가 아닌 다른 맥주 스타일을 만들고 있다. 아사히는 ‘도쿄 수미다가와 브루잉(Tokyo Sumidagawa Brewing)’라는 별도 브랜드를 통해 크래프트 맥주를 양조하고 있다. 기린은 다양한 맥주를 양조하는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Spring Valley Brewery)’를 운영하는 동시에 일본 크래프트 맥주 회사 중 규모가 큰 요호 브루잉(Yo-ho Brewing)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산토리와 삿포로 역시 크래프트 맥주 시리즈를 내놓았다.
시장이 끌고 정부가 밀어주고
일본의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들썩이고 있는 가운데 일본 당국에서도 크래프트 맥주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한국에서 2018년 4월 부로 양조 설비, 부재료 등에 관한 규제가 완화된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지난 4월 1일을 기해 크래프트 맥주 시장 활성화를 위한 여러 제도 변화가 있었다.
먼저 현재 350ml 당 77엔인 맥주 주세가 2026년까지 55엔으로 하향 조정된다. 2020년 70엔, 2023년 64엔으로 점진적으로 내려갈 예정이다. 현행 체제에서 맥주에 비해 맥아 함량이 낮고 다양한 부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발포주(happo-shu)에는 350ml 당 62엔의 주세가 붙어 맥주에 비해 싸다. 그렇지만 2026년에는 맥주와 발포주가 동일하게 55엔의 주세를 적용 받게 된다.
또 맥주에 대한 법적인 정의도 바뀌었다. 맥주의 맥아 사용 비율을 기존 67% 이상에서 50% 이하로 낮췄다. 사용할 수 있는 원료도 맥아와 호프, 쌀, 옥수수 등으로 한정했었는데 이제는 맥아 중량의 5% 이하면 과일과 허브, 향신료와 야채, 꽃 등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코지마 이사는 “과일, 코리앤더, 허브, 깨, 꿀, 된장, 꽃, 티, 커피, 코코아, 굴, 해초 등 다양한 부재료를 쓸 수 있게 되면서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 다양성이 확대되고 시장 활성화의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 야마모토 회장은 “앞으로 더다양한 브루어리가 생길 것이고 이중에는 지역성을 담은 맥주를 내놓는 곳들도 많아질 것”이라며 “무엇보다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크래프트 맥주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EDITOR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