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맥주 여행기
"맥덕이면 미국에 가야지" "또 독일이냐" 이번 여행을 앞두고 가장 많이 들은 얘기 중 하나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크래프트 맥주 마시기엔 미국만큼 좋은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힙스터의 본고장’ 포틀랜드는 전 세계 크래프트 맥주 유행을 선도하고 있고, 캘리포니아에선 맥주 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와인을 즐길 수 있다.
독일을 다녀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년 전에도 비슷한 일정으로 여행했던 것. 같은 계절에 다시금 같은 동네를 찾은 이유는 단순했다. 남편은 축구 여행을, 나는 맥주 여행을 원했으며 그 둘의 접점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도시가 바로 뮌헨이었다.
‘그래, 남들이 간다고 최선인 건 아니지. 내가 좋으면 그만 아니겠어?’ 더 이상 고민 말고, 우리 선택대로 여행 일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뮌헨을 중심으로 갈만한 도시를 찾아봤다. 신혼여행으로 갔던 파리와 브뤼셀은 가장 먼저 제했다. 국적기 직항편이 닿는 도시인 프랑크푸르트, 거기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인 프라하와 그 주변 도시들, 그리고 뮌헨까지 기차로 이어지는 잘츠부르크 등을 함께 둘러보기로 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바이엔슈테판과, 황금빛 맥주의 기원 필스너 우르켈 브루어리도 일정에 넣었다.
프랑크푸르트는 지금
먼저 밝혀두자면 맥덕들이 독일에서 가장 열광하는 도시는 단연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이다. 유럽의 힙스터가 모이는 도시답게 가장 다양한 크래프트 맥주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새콤한 밀맥주에 시럽을 넣어 먹는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ße)’ 외에는 크게 눈여겨 볼만한 맥주가 없었지만,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모여들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바가분트 브루어리(Vagabund Brauerei)같은 신예가 활약하고 있는 한편, 이탈리아 비라(Birra), 스코틀랜드 브루독(BrewDog), 덴마크 미켈러(Mikkeller)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탭룸이 성업 중이고, 미국 스톤 브루잉의 해외 첫 양조장도 베를린에 둥지를 틀었다.
프랑크푸르트에 부는 크래프트 바람, 나이브(naïv)
그에 비하면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는 아직 조용하다. 바인딩(Binding), 쉐퍼호퍼(Schofferhofer) 등 전통적인 스타일의 맥주가 주를 이룬다. (물론 사과 와인인 아펠바인 Apfelwein 또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맥주 순수령’으로 인해 맥아, 홉, 효모, 물을 제외한 부재료가 들어간 맥주 생산이 오랫동안 제한되어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가 발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단, 전통적인 맥주 생산에 자부심을 갖는 양조장들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어디에나 새롭고 다양한 맛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 도시 규모에 비해 크래프트맥주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프랑크푸르트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딱 한곳만 들러야 한다면 단연 나이브(naïv)를 추천한다. 미국, 영국 등 맥주로 이름난 나라의 맥주는 기본이고, 독일의 신예 양조장들을 만날 수 있다. 탭은 6개뿐이지만 세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보틀, 캔 리스트를 자랑한다. 맥주를 베이스로 만든 비어 칵테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별미다. 풀드 포크를 가득 넣은 풀드 포크 버거는 나이브의 자랑. 좀 더 특별한 안주를 곁들이고 싶다면 칠리 브라트부르스트(Chili Bratwurst)를 추천한다. 독일 바이에른 주 아샤펜부르크에 있는 한스크래프트(Hanscraft) 양조장에서 만든 IPA가 들어간 특제 소시지다.
‘옥토버’가 아니어도 좋아!
뮌헨은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도시. 연 500만 명 이상이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뮌헨을 찾아온다.
하지만 축제가 대수랴! 현지인들은 굳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식당이나 카페는 물론 공원, 길거리, 심지어는 대중교통 안에서 도 맥주를 마신다. 차림새도 각양각색. 좋아하는 구단(대개 FC바이에른 뮌헨) 유니폼이나 레더호젠(Lederhosen)과 디른들(Dirndl)을 입고 맥주를 즐기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뮌헨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맥주는 호프브로이(Hofbräu), 뢰벤브로이(Löwenbräu), 파울라너(Paulaner), 아우구스티너 브로이(Augustiner-Bräu), 하커 프쇼르(Hacker-Pschorr), 슈파텐브로이 (Spatenbräu) 등이다. 소위 ‘필바둥(필스너, 바이젠, 둥켈)’으로 불리는 전통적인 스타일의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이다. 이들의 인기를 꺾기엔 역부족이지만, 뮌헨 구석구석에서 ‘크래프티한’ 몇몇 공간을 만날 수 있었다.
뮌헨의 이단아, 기징거(Giesinger Bräu)
기징거는 2006년 뮌헨의 남서쪽에 위치한 ‘기징(Giesing)’의 오래된 차고에서 탄생했다. 전통을 재해석해 자신들만의 색채를 입힌 것이 특징으로, 뮌헨에서 두번째로 큰 개인 양조장으로 꼽힌다. 켈러비어, 바이스비어, 필스, 메르첸 등 전통적인 맥주부터 발리와인 헬러 복, 도펠 알트, 트라피스트 효모로 발효한 트리펠 등에 이르기까지 개성 넘치는 맥주를 선보이고 있다. 발효 전 맥아즙 농도가 7~8% 정도인 샹크비어(Schankbier)도 이색적이다. 한방에 확 취하고 싶다면, 또 일행들도 술을 좋아한다면 아이스복(Eisbock) 맥주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알코올 도수가 무려 30도에 달한다.
맥주 파라다이스를 찾는다면, 탭하우스 뮌헨 (Tap-House Munich)
탭하우스는 뮌헨에서 보기 드물게 아메리칸 스타일을 지향하고 있는 곳. 무려 40여 가지 탭과 200여 가지 병맥주를 취급하는 등, 뮌헨에서 가장 다양한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탭의 상당수가 바이에른 주 크래프트 브루어리인 ‘캄바(Camber)’로 채워져 있는데 서로 파트너 관계이기 때문이다. 모든 맥주를 슈피겔라우 글라스를 이용해 서빙 하는 것이 특징. 스타우트를 넣어 만든 ‘비라미수’는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디저트다.
천년 고도의 맥주, 바이엔슈테판(Weihenstephaner)
남부 독일까지 온 이상, 크래프트 맥주보다 독일 정통 맥주를 즐기고 싶다면 뮌헨 근교의 소도시 프라이징(Freising)으로 가볼 것을 추천한다. 우리나라 ‘공항동’쯤 되는 위치로, 시내에서 열차로 20~30분이면 도착한다. 작고 소박한 도시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인 ‘바이엔슈테판’ 양조장을 품은 것만으로도 특별함이 더해지는 곳이다. 뮌헨 공과대학교 캠퍼스 안에 양조장이 있는 것이 특징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맥주 효모 은행이 있기도 하다. 매년 4월 마지막주엔 도시 중심에 있는 광장(마리엔 플라츠 marienplatz)에서 맥주 순수령 반포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 옥토버페스트에 비하면 무척 작은 규모이지만, 독일 소도시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는 야무진 행사다. 참. 브루어리 레스토랑에선 여과하지 않아 효모가 살아있는 ‘언필터드 필스너’를 맛볼 수 있으니 절대 놓치지 말 것.
EDITOR_박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