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이 만드는 좋은 맥주, 굿맨브루어리를 만났다
살아가는 동안 무언가를 좋아하고, 행동하는 데 그리 거창한 명분은 필요치 않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꽤 우연한 이유로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살면서 마셔본 맥주 중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그저 금요일 밤을 달래주는 맥주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을 뒤바꿀 만큼 강렬한 태풍이 될 수도 있다. 촉망받는 일식 쉐프에서 와인 전문가로, 그리고 지금은 맥주 양조가로 스스로 선택한 길을 묵묵히 가는 브루마스터가 있는 곳. 좋은 사람들이 만드는 좋은 맥주가 가득한 그곳.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굿맨브루어리를 가보았다.
우연히 만난 페일에일 한 잔이 인생을 바꿨다
“제가 맥주 양조가가 된 것은 정말 운명이었어요. 우연처럼 시작했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아요. 제가 사랑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삶만큼 멋진 것은 없습니다. (웃음)” 올해 초, 한국 크래프트 맥주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굿맨브루어리의 조현두 브루마스터는 사실 15년 전인 20대 초반, 일본 요코하마에서 일식쉐프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다만 그의 넘치는 기개를 담아내기에 일본이라는 그릇은 너무나 작았다. 더 큰 세상이 보고 싶었고, 그곳에서 큰 날개짓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유럽으로 건너갔고 스위스의 유명 호텔학교 IHTTI에서 와인과 서비스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프랑스의 르꼬르동블루(Le Cordon Bleu)에서 미식 경영학 석사를 이수했다. 그 기간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와인’이었다. 유럽의 다양한 와인을 음미하고 배워가며 점점 와인의 오묘한 세계에 빠져들었다. 와인을 더욱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었다. 그렇게 영국 런던의 WSET(Wine and Spirit Education Trust)에 진학했다.
와인 전문가로서 사랑하는 영국인 아내와 행복한 런던 생활을 이어가던 2012년, 우연히 접한 페일에일 맥주 한 잔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와인에서 느낄 수 없었던 독특한 향과 풍미가 맥주에 깊이 배어있었다. 여태껏 맥주는 다소 등한시했던 그에게 번개처럼 다가온 크래프트맥주의 강렬함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맛있게 마셨던 맥주 브루어리를 무작정 찾아갔다. 허드렛일도 좋으니 같이 일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양조가로서 첫발을 디딘 곳이 런던 토튼햄(Totten ham)의 리뎀션 브루어리(Redemption Brewery)였다. 헤드브루어였던 앤디 모팟(Andy Moffat)은 무턱대고 찾아온 이방인1임에도 불구하고 조현두의 열정과 가능성을 높이 인정했다. 천운처럼 단기간에 맥주 양조의 여러 과정을 두루 익힐 수 있었다. 와인을 배우며 테이스팅 노트를 작성했던 경험이 맥주 양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영국, 벨기에의 브루어리들과 두루 협력하며 양조 전문가로서 성장하고 있던 2014년 늦가을, 한국에서 찾아온 지인들을 통해 영국에서 그가 처음 경험했던 크래프트맥주의 맛과 감동을 한국에도 전파할 생각이 있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오랜 고심 끝에 2015년 여름, 아내와 한국행을 결심했고, 그렇게 굿맨브루어리는 시작되었다.
기본에 충실한 맥주가 가장 아름답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아요. 밸런스가 꾸준한 맥주를 만드는 것이 제 양조의 철칙입니다.” 조현두 브루마스터는 기본기에 충실한 영국, 벨기에 스타일의 맥주를 추구한다. 너도나도 유행처럼 아메리칸 스타일의 홉 향이 강한 IPA나 페일에일을 만들 때, 그는 지나치리만큼 특정 맥주의 카테고리에 맞는 스타일과 알코올 도수를 지켜낸다. 그래서일까. 굿맨브루어리의 맥주는 ‘테이블 맥주(Table Beer)’라는 호칭이 매우 잘 어울린다. 격식 있는 식사 자리에 곁들여도 좋을 만큼 도수는 높지 않지만, 향이 진하고 재료의 풍부함이 살아있는 맥주를 만든다.
굿맨브루어리는 기존 국내 브루어리들이 선뜻 시도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양조법을 과감히 실행한다. 예를 들어 벨기에 전통 맥주를 만들기 위해 벨기에 전통 이스트를 들여왔다.
더불어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피노누아(Pinot Noir) 오크통을 가져와 양조를 진행 중이다. 그 외에도 최소 18개월에서 3년까지 발효, 숙성이 이뤄지는 람빅(Lambic)에 야생효모를 이용하고 레드와인과 유사한 산미의 플랜더스 레드 에일(Flanders red ale)을 빚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토종 꽃이나 식물을 이용한 세종(Saison)을 만들려고 부지런히 노력 중이다. 이렇듯 질 좋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 최상의 맥아와 호프, 효모를 사용하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다. “내년에는 제가 런던에서 양조했었던 캐스크 에일(Cask conditioned ale)을 한국에서도 선보이려고 합니다. 양조가의 정성이 듬뿍 담긴 양질의 맥주를 국내에 널리 알리는 것이 한국 크래프트맥주를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브루어리로 우뚝 서고 싶다
오랜 해외 생활 끝에 한국에 돌아와 맥주를 만드는 양조가로서 조현두 헤드브루어의 꿈은 무엇일까. “처음부터 한국 시장만을 바라보고 맥주를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영국, 벨기에 스타일의 양조법에 한국 토종의 재료를 곁들여서 국내와 아시아를 대표할 수 있는 크래프트맥주 브루어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인생의 1/3을 일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그
러기에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자신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최고가 되기보다 늘 더 나은 방향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세상에 부딪히는 도전자가 결국 살아남을 것이다.
지금 굿맨브루어리와 조현두 브루마스터는 모험자의 길에 있다. 아직은 척박한 한국 크래프트맥주계에서 꾸준한 노력과 발전으로 살아남기를 바란다. 또한, 그를 크래프트맥주로 인도한 앤디 모팟(Andy Moffat)은 물론 주변의 훌륭했던 동료들과 같이 우수한 양조가들을 양성하고 더욱 질 좋은 맥주를 세상에 알리는 양조가로 거듭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DITOR_오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