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에 내 이름을 걸고 내 인생을 바친다 울산 화수 브루어리 이화수 대표를 만나다
봄이 오리라는 희망마저 얼어붙는 시간을 견뎌내면 매서운 바람과 차가운 눈을 뚫고 봄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봄을 알 리는 벚꽃 망울이 터지려 한껏 몸을 부풀리던 무렵 울산광 역시 남구 무거동 의 브루펍 화수 브루어리로 향했다. 화수 브루어리는 2003년 문을 연 이래 14년 동안이나 한 자리에 서 묵묵히 맥주를 만들고 있다. 이곳에서 자신의 이름과 얼 굴을 건 맥주를 만들고 있는 이화수 대표를 만났다.
이화수 대표는 2003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울산으로 내려 와 당시에는 하우스 맥주로 불렸던 맥주를 생산하며 판매하 는 브루펍을 열었다.
“우연한 계기로 울산에서 브루펍을 열게 되었어요. 하우스 맥주 붐이 일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고, 당시에 고모부께서 이곳에 건물을 짓는다고 하셔서 브루펍을 열기로 했죠. 그 때는 울산과 울진을 구분하지도 못할 만큼 아무것도 모르고 이곳으로 왔어요. 그리고 이렇게 울산에 눌러앉게 될 거라 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곳은 ‘바이젠브로이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 다. 처음에는 외국인 브루마스터가 있었지만 이내 스스로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처음에는 제가 만드는 맥주가 어떤 것인지 잘 몰랐어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맥주 공부를 제 대로 시작한 것이 2009년부터였습니다. 맥만동(다음 맥주 만들기 동호회 카페)에 가입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질문 도 많이 하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화수는 공간을 설계할 때 외부 유통을 염두에 두고 양조 공 간을 당시의 필요보다 넓게 마련해 두었다. 하지만 2014년 소규모 양조장 맥주의 외부유통이 허용되기까지 12년이라 는 세월이 필요했다.
“오픈하고 한동안은 괜찮았어요. 그러다가 서서히 내리막길 을 걷기 시작했죠. 그 내리막이 법이 바뀔 때까지 계속됐습 니다. 매출이 줄면서 결국 저와 아내 둘이서 꾸려 나가게 됐 죠. 심지어 보리를 빌려다 맥주를 만든 적도 있었어요.”
홍종학 의원이 대표 발의한 주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외 부유통의 길이 열려 소규모 양조장의 맥주가 시장에 선보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법이 통과된 그 시점, 화수브루어리는 백척간두의 위기 상황에 서 있었다. “주세법이 개정되고 시행되기까지 3개월이 가장 힘들었죠. 전기요금을 근근이 내고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때 가게를 부동산에 내놓고 ‘마지막으로 확인해보자’하는 마음으로 주 세법 관련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하고 내려 올 때까지만 해도 희망이 조금 보였죠. 그런데 막상 돌아오 고 보니 희망이 없었어요. 케그를 살 비용도 없었거든요.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최고로 어려운 시점이었죠. 정리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이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화수 대표는 외부유통을 시작할 때만 해도 케그 10개가 전부였다고 했다. 케그에 맥주를 담고 납품을 하고, 회수해 와서는 케그를 세척해 다시 맥주를 담아 납품했다. 그리고 2015년 1월 처음으로 서울지역에 납품을 시작했다. 크래프 트 맥주의 불모지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울산의 맥주가 서울에 진출하며 생산량이 늘어나 처음 10개였던 케그는 지 금 1,500개가 됐다.
외부유통을 시작하면서 이름을 화수 브루어리로 바꿨다. 자 신의 이름과 얼굴을 걸었다. 맥주를 직접 만들고 납품하러 다녔다. 외부유통을 하는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 중에 최초 였다. “책임감이 무겁죠. 나도 조금은 편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 데 못 벗어나요. 그래서 품질에 더 신경 쓰게 되죠. 이름을 건다는 것이 나를 잡아주는 것 같아요.” “외부 투자 부분에서도 자제하고 있어요. 투자를 받고 시설 을 확충하면 더 편하겠지만 그런 것보다는 조금씩 천천히 로컬 맥주로 성장해 가고 싶다고 생각해요. 조금씩 커가는 것이 재밌으니까.”
화수 브루어리는 맥주 축제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사람 들이 많이 찾건 찾지 않건 가리지 않는다. 작년 축제에 나가 있던 기간이 총 30일쯤 된다고 말할 정도로 축제를 정말 좋 아하는 이화수 대표, 그리고 화수 브루어리다. “울산에 있다 보니 수도권으로 영업을 따로 나가기도 쉽지 않잖아요. 업계 사람들, 일반인들을 가릴 것 없이 교류하고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접점이 축제죠. 업계 정보도 얻을 수 있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어떤 맥주를 좋아하 는지도 바로 느낄 수 있잖아요. 축제는 화수를 알리러 가는 창구인 거죠. 축제가 끝나면 거래처가 많이 늘어나요. 무엇 보다 축제에 나가면 재미있어요.”
수많은 양조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맥주를 물으니 스타우트 라고 했다. 재료비가 워낙 많이 들어서 스타우트를 담그는 날은 온종일 긴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즐겁고 흐 뭇한 미소가 감돌았다. 맥주를 만든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맥주를 사람들이 마신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맥주를 만드는 것 자체는 스트레스에요. 일정한 품질로 맥 주를 만들어내는 것이 관건인데 그 부분이 가장 신경 쓰이 죠. 저는 단순히 맥주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맥주 일을 하는 게 재밌어요. 디자인, 마케팅도 해야 하고 소품도 만들어야 하죠. 그런 일들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몰두하게 하는 매력이 있어요.”
올해 화수의 목표는 현재 생산하고 있는 여덟 종류의 맥주 에 두세 종류 정도의 새로운 맥주를 추가하는 것과 이번 해 발생하는 모든 이윤을 투자하는 것이라고 했다. 화수의 이 름을 알리는 데 조금 더 집중하면서 작가와의 컬래버레이션 이나 디자인, 마케팅적인 측면을 강화할 것이라고. 10년 후의 화수는 어떤 모습일까? 화수의 미래를 물었다. “아마 경주 외곽의 기와집에 제가 설계한 장비로 브루펍을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급하게 커버리면 즐겁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차근차근 만들어가고 조금씩 성장해 갈 겁니다. 경주의 황남 빵 같이 그 지역에 가면 있는, 그 지역을 떠올 렸을 때 생각나는 그런 곳이 되고 싶어요.”
이화수에게 맥주란? 마지막으로 비어포스트의 공식 질문을 했다. 이화수 대표는 맥주 일 하기 전에는 눈꼬리도 올라가 고 사납게 보였다고 했다. 맥주를 만들면서 인상이 누그러 졌다며 모두 맥주 덕이라는 말을 했다. “사람 만들었네 진짜. 맥주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고.”
이화수 대표는 얼마 전 유럽의 양조장을 돌며 밝게 일하는 사람들을 보며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인상까지 바꿔준 내 이름을 건 맥주를 만드는 데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 하는 그에게서 맥주, 그리고 자신의 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 이 느껴졌다.
EDITOR_장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