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맥주의 거장, 헤어 오브 더 도그 브루어리(Hair of The Dog Brewery)
두 발로 다니는 포틀랜드 맥주 탐방
사실 미국 여행을 계획할 때, 미국 어디로 여행을 갈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고민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미국식 IPA를 널리 알린 인디카 IPA의 고장 캘리포니아? 아니면 홉을 쭉 짜낸 주스를 마시는 것 같은 동부 IPA를 마시러 뉴 잉글랜드(New England) 지방으로 가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 동안, 이미 미국을 다녀오신 여러 분들의 여행기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여러 번 다녀오신 친한 형님께 직접 여쭈어 보기도 하고, 브루어리의 위치를 지도에서 찾아가며 대략적인 동선을 짜 보기도 했습니다. 계획을 짜다 지칠 때쯤, 기가 막힌 브루어리 두 곳이 걸어서 15분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일행들은 미국 여행 동안 그 두 곳만을 방문하기 위해 주저 없이 포틀랜드로 떠나게 되었죠. 오늘 소개해 드릴 곳은 바로 그 두 곳 중 한 곳인, 헤어 오브 더 도그 브루어리 및 테이스팅 룸(Hair of The Dog Brewery and Tasting Room) 입니다!
‘진짜 맥주’에 빠져버린 쉐프 지망생
느긋하게 흐르는 윌래밋 강 근처,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헤어 오브 더 도그 브루어리는 1993년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남동부에 설립되었습니다. 설립자인 앨런 스프린츠(Alan Sprints) 씨는 헤어 오브 더 도그의 맥주를 직접 만드는 브루어이자, 테이스팅 룸의 음식을 요리하는 쉐프이기도 합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기도 하고, 하와이에서 해변을 대여하는 사업을 하거나 자전거를 수리하기도 했던 앨런 씨는 1988년 웨스턴 컬리너리 인스티튜트(Western Culinary Institute)에서 요리를 배우기 위해 고향인 캘리포니아에서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앨런 씨가 마주한 것은 오리건 브루어 축제(Oregon Brewers Festival)의 기념비적인 첫 축제였고, 기가 막힌 맥주를 신나게 마시고 즐긴 앨런 씨는 맥주를 마시는 데만 그치지 않고 오리건 주의 훌륭한 브루어들과 열정적으로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오리건 브루 크루(Oregon Brew Crew)의 회장을 3년간 역임하고 난 뒤, 1991년 오리건 주에서 가장 오래된 크래프트 브루어리인 위드머 브라더스(Widmer Brothers)에 취직하게 됩니다. 약 2년의 세월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여러 번의 벨기에 여행을 다니고 좋은 스승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난 뒤, 앨런 씨는 그의 첫 상업 맥주인 아담비어(Adambier)와 함께 헤어 오브 더 도그 브루어리를 열게 됩니다.
전통의 재해석으로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다
헤어 오브 더 도그의 대표 맥주, 아담(Adam)은 앨런 씨가 아담비어(Adambier)라는 맥주를 재해석하여 만든 맥주입니다.
오리건 브루 크루에서 앨런 씨가 가장 믿고 따르던 프레드 에크하르트(Fred Eckhardt)와, 맥주와 위스키 분야의 전설적인 평론가인 마이클 제임스 잭슨(Michael James Jackson)에게 배운 아담비어는 독일 도르트문더의 대표 맥주인 알트비어(Altbier)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바바리아의 왕이 도르트문더에 잠깐 들렀다가 알트비어를 한 모금 마시더니, 그 자리에서 온종일 알트비어를 마셨다던 독일의 옛이야기를 들은 앨런 씨는 자신의 방식대로 알트비어를 만들어냈고, 그 결과 헤어 오브 더 도그의 대표 맥주이자 첫 번째 상업 맥주인 아담(Adam)이 탄생했습니다. 이후 헤어 오브 더 도그에서는 1년에 6~9배치 정도로 꾸준히 아담을 만들어오고 있으며, 테이스팅 룸에서는 올해 9월 기준으로 2011년 빈티지 아담과 1995년 빈티지 아담, 그리고 갓 만든 아담을 모두 즐기실 수 있습니다. 잘 볶은 맥아의 초콜릿, 캐러멜 같은 진득한 달콤함과 잘 익은 자두, 체리 같은 농익은 향기, 그리고 오크 통에서 숙성되면서 만들어진 은은한 나무 향기와 젖은 가죽 같은 깊은 향을 느끼실 수 있는 아담을, 숙성 연도별로 비교해 가며 마실 때의 기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브루어이자 쉐프가 만드는, 맥주와 잘 어울리는 요리들
헤어 오브 더 도그의 테이스팅 룸에서는 그들의 첫 맥주인 아담을 비롯하여 프레드(Fred), 블루 도트(Blue Dot), 루스(Ruth) 등 다양한 맥주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장점은 맥주뿐만 아니라 요리가 아주 맛있다는 것인데요. 인터넷의 음식점 평가 사이트인 옐프(Yelp) 등에서 헤어 오브 더 도그의 테이스팅 룸은 크래프트 맥주를 전문적으로 파는 펍이나 브루어리 사이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웨스턴 컬리너리 인스티튜트(Western Culinary Institute) 에서 요리를 배우고 최고급 식당(Fine Dining)과 출장급식(Catering) 서비스 분야에서 4년간 일한 헤어 오브 더 도그의 설립자인 앨런 씨가 만드는 요리들은, 요리만 먹어도 맛있고 그들의 맥주와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잘 양념한 오리 날개와 다양한 채소를 버무린 뒤, 그들의 맥주 중 하나인 리틀 도그 아담(Little Dog Adam)을 넣어 오븐에서 조리한 요리인 척 노리스 덕 윙(Chuck Norris Duck Wings)이나, 비트(Beet), 당근, 버섯, 양파, 셀러리와 후추를 잘 볶아 만든 채소 소테(Vegetable Saute), 소고기를 리틀 도트 아담에 재워 놓았다가 조리한, 부드럽고 그윽한 식감이 일품인 소고기 양지머리(Beef Brisket) 등, 요리를 먹을 때마다 굉장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에필로그
대표 맥주인 아담이 10%, 앨런의 스승의 이름을 딴 골든 스트롱 에일 프레드(Fred) 또한 10%, 시트라(Citra), 아마릴로(Amarillo) 등의 화사한 열대 과일 향이 폭발하는 블루 도트(Blue Dot)는 7%, 그리고 이런 맥주들을 오크 통에서 숙성한 맥주와 콘크리트 발효조에서 숙성한 ‘프롬 더 스톤(From the Stone)’ 시리즈까지… 헤어 오브 더 도그 브루어리 및 탭룸은 맥주를 사랑하는 여행자들이 펍 크롤링의 첫 펍으로 방문하기에는 확실히 조금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즐겁게 맥주를 마시며 얼굴이 벌게진 사람들 사이로 브루어리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높은 천장과 탁 트인 장소, 시끌벅적한 소리, 달콤한 음식의 향과 함께 친절한 직원들이 여러분을 맞아 줄 것입니다. 테이스팅 룸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직원, 자기 일을 자랑스러워하며 우리 맥주가 가장 맛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매니저, 맥주가 너무 맛있어서 무슨 홉을 썼는지 알고 싶다고 하니 브루어에게 물어보고는 쪽지에 홉의 이름들을 적어 준 직원… 가게 문을 나설 때마다 매번 만취하여 나갔던 저희 일행을 반겨 주던 그 얼굴들을 꼭 다시 보고 싶습니다. 포틀랜드에 가셨다면 꼭 방문하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미국의 병입 후발효 맥주(Bottle Conditioned beer)의 개척자, 헤어 오브 더 도그 브루어리와 테이스팅 룸에요.
EDITOR_차건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