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마셔봐요. 깜짝 놀랄 거에요! ‘멜빈 브루잉’ 창업자 제레미 토프트
저녁 바람이 꽤나 쌀쌀하게 불던 11월 3일 신사동 퐁당에서 열린 멜빈 브루잉 런칭 행사에서 멜빈의 공동 창업자 제레미 토프트(Jeremy Tofte)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멜빈 브루잉은 2009년 미국 서부 와이오밍주에 설립된 브루어리로 얼마 전 GABF(Great American Beer Festival)에서 ‘올해의 브루어리’로 선정됐다.
멜빈 브루잉은 한국에 ‘Hubert MPA’, ‘Melvin IPA’, ‘2x4 Double IPA’ 총 세 종류의 IPA를 출시하게 되었다. 세가지 맥주 모두 GABF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바 있으며, 이중 ‘Hubert MPA’는 올해 수상한 맥주이다.
‘Madness’를 기업 정신으로 삼는 양조장의 대표답게, 런칭 기념 파티의 첫 만남에서 제레미의 허물없는 면모가 인상적이었다. 서울을 처음 방문했다는 제레미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라고 소개하며, 공항에서 시내로 오는 동안 한강을 보며 아직도 그곳에 괴물이 사는지 팀원들과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최고의 맥주’라는 단순한 목표
가족이 맥주 유통업에 종사했던 제레미는 16살 즈음부터 상점에 맥주를 배달하러 다니곤 했다. 그때부터 좋은 맥주 맛에 눈을 뜨면서 서서히 맥주를 만드는 일에 꿈을 품기 시작했다. 19살 때는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선망하던 브루어리를 방문해 맥주를 마시다가 붙잡힌 적도 있었다. 그 시기에 홈브루잉을 하기 시작했고,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 때면 더욱 더 나은 맥주를 만들고 싶어졌다고 한다. 이후 그는 미국 브루어리두 군데에서 업무 경험을 거쳐 결국 스스로 브루어리를 차리게 되었다.
급성장을 하다 보면 작은 시스템에서 큰 시스템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맥주 맛이 변질되는 경우도 있는 반면, 멜빈 브루잉은 맥주 맛이 일관되게 좋으며 언제나 더 나은 맥주 맛을 추구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최고의 맥주를 만들자’라는 단순하고도 뚜렷한 목표 의식을 언급했다. 작은 시스템에서나, 큰 시스템에서나 그 목표만은 한결 같다는 것이다. 와이오밍 주는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지역으로, 잭슨 홀(Jackson Hole) 시내에 거주하는 사람 수가 300명 남짓이다. 따라서 같은 지역 내에서 맥주를 판매하는 게 아니라 큰 도시가 있는 다른 지역에 진출하여 경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업계 최고의 장비를 구비했으며 캐나다에서 선진적인 양조 시스템을 들여왔고, 맥주 맛을 위해 각종 실험을 하는 연구소도 4개나 세웠다. ‘최고의 맥주’를 만들어내기 위한 환경 조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알코올 도수 9.9%의 IPA
멜빈 브루잉의 맥주에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IPA 종류가 많은데, 그 이유는 제레미와 팀원들이 호피 (hoppy)하고 알코올이 센 맥주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맥주 소비자의 상당수가 IPA를 선호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IPA를 좋아하고 만드는 자신들은 더없이 운이 좋다”고 말했다. 이러한 성향은 멜빈 브루잉의 대표 문구 ‘If your beer is not madness, it’s not beer’에서도 드러난다. 제레미는 사람들이 마셨을 때 ‘이 정도면 괜찮네’라고 여길만한 맥주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정말 호피하고 강력하며 동시에 밸런스 있는 맥주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고 했다.
높은 도수의 맥주를 만드는 비결에 관해 제레미는 알코올 도수 9.9%인 멜빈의 ‘2x4 Double IPA’ 를 예로 들었다. 처음에 설탕을 좀 넣어서 발효를 시도해봤는데 결과물이 좋았고, 다른 양조장의 최고의 IPA 두 종류에도 설탕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홉만큼이나 몰트의 풍미도 느끼게 해 균형감을 주기 위해 당화 온도는 항상 낮게 설정한다고 밝혔다. ‘2x4(투바이포)’라는 이름에는 다른 맥주 4개만큼의 알코올과 맛이 이 맥주 2개에 담겨있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과하게 마시면 다음날 아침에 2x4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느껴질 테니,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2x4’는 2인치와 4인치의 크기로 가공된 목재를 일컫는데, 미국에서 특정 부위를 세게 맞았을 때 이것으로 맞는다는 관용어가 쓰인다.)
직접 마셔봤을 때, 알코올 도수가 9.9%인데 알코올의 느낌이 느껴지지 않고 음용성이 좋았다. 마시다가 4개 마신 것을 2개 마신 것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호피한 맥주를 만드는 만 큼 홉이 중요할 텐데 요즘은 ‘cryo 홉’을 사용하는 브루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cryo 홉은 생홉에서 알파산(alpha acid)를 추출해 파우더로 만든 형태인데, 일반 홉이 10~14%의 알파산을 지닌다고 치면 이러한 파우더 형태는 30% 수준으로 훨씬 높다고 한다. 그는 “cryo 홉이 색깔도, 냄새도, 맛도 아주 다양하고 그걸로 만든 맥주의 맛도 아주 좋다”며 “내년 2월에 cryo 파우더로 만든 맥주를 캐닝(canning)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가 얼마 전 처음으로 cryo 홉을 사용한 ‘홉스플래쉬 IPA’를 만든 바 있다.
코끼리 로고와 태국
멜빈 브루잉의 로고는 코끼리다. 멜빈은 처음 태국식 레스토랑 ‘Thai Me Up’으로 시작했는데, 코끼리 로고는 당시부터 있었다. 태국에서 코끼리는 행운을 의미하며, 그에게는 행운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한 가지는 멜빈 브루잉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맥주가 인도의 역사에서 유래한 IPA(Indian Pale Ale) 스타일인데, 인도에서 코끼리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 신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가짜 맥주’가 판을 치는 등 마치 우스꽝스러운 서커스처럼 돌아가는 맥주산업의 모양새를 풍자하고자 코끼리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멜빈 브루잉 맥주에는 각각 거칠고 코믹한 인상의 캐릭터가 입혀져 마치 맥주가 의인화된 듯한 느낌이 드는데, 한국에 출시되지 않은 맥주 중 익살스러운 포즈와 표정을 취하는 코끼리가 그려진 더블IPA도 있다.
태국 음식과 맥주의 페어링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랍 샐러드(larb salad)와 IPA의 조합이 아주 좋으며, ‘망고 스티키 라이스(mango sticky rice)’의 고소하고 짭짤한 맛과 임페리얼 스타우트의 조합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추천했다. 랍 샐러드는 소고기나 닭고기 등 얇게 저민 고기와 야채가 각종 향신료와 함께 어우러진 음식이며, 망고 스티키 라이스는 고소한 코코넛 밀크와 소금으로 짭짤하게 간이 된 찹쌀 밥과 새콤달콤한 망고가 함께 나오는 디저트다. 제레미는 한국 음식은 다양하게 먹어보진 않았지만, 대체로 짭짤하고 목이 마르도록 하는 음식이 많은 것 같아 Hubert MPA와 함께하면 개운하고 상쾌하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전했다.
‘자신에게 맥주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제레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모든 것’입니다. 맥주 안에서 다시 태어나면서 맥주는 나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을 만나서 맥주를 마시고 맥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일상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맥주 이야기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좋은 맥주이거나, 별로인 맥주이거나 맥주는 저에게 있어 과거이자 현재고 미래(my past, present, and future)입니다.”
EDITOR_홍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