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사랑하는 전주의 노매딕 브루일
자연을 사랑하는 전주의 브루어리
노매딕 브루잉에 관한 12가지 질문들
봄비가 내리는 4월의 어느 화요일이었다. 맛의 도시 전주에 새로운 브루어리가 오픈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로컬 브루어리가 생길 때마다 가뭄으로 튼 땅에 단비를 마주한 듯 설렌다. 그들의 첫 시작이 애틋하면서도 사랑스럽기 때문일까. 전주의 구 도심이자 소위 ‘웨딩 거리’라고도 불리는 완산구 중앙동 일대에 한옥을 개조한 노매딕 브루잉 컴퍼니가 문을 열었다. 미국 미시간 주에서 온 존 가렛과 그의 아내 이한나 공동대표가 직접 공간 설계부터 메뉴 구성까지 일궈낸 이 곳은 양조장과 탭룸, 그리고 그들이 사는 집이 공존한다. 아메리칸 IPA 부터 크림 에일, 스타우트까지 다양한 맥주들은 전 세계를 여행하며 경험한 그의 손으로부터 탄생했다. 젖은 공기에 감도는 풀 내음과 세심하게 가꾼 붉은 벽돌의 정원, 새의 지저귐이 어우러진 고요하고 평화로운 노매딕에서 맥주와 자연, 그리고 제2의 고향이 된 전주를 사랑하는 존(이하 ‘조니’)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1. 노매딕 브루잉와 당신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조니고, 미시간에서 온 유퍼(편집자 주: 북부 미시간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아내의 이름은 한나고 전라북도 출신이죠. 우리는 부부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노매딕 브루잉에 관한 컨셉은 매우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아일랜드와 독일, 체코에서 경험한 맥주 문화로 인해 저는 맥주의 세계에 중독되었죠. 대학 졸업 후, 전주로 이사해 홈브루잉을 시작했습니다. 그 시기 돈을 모아 시카고와 뮌헨에 있는 브루잉 스쿨을 다녔습니다. 그다음에는 미시간으로 옮겨가 브루잉 어시스턴트를 시작으로 이후 칸쿤 멕시코 근처에 있는 새 브루어리의 헤드 브루어로 일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제 브루어리를 시작하기에 충분한 경험치를 쌓았다고 느꼈고, 한국에 돌아와 2년간 노매딕을 준비했습니다.
2.전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에게 전주는 2010년부터 ‘제2의 고향’이었습니다. 아내의 가족이 근처에 살고 있고, 제가 속한 공동체가 이곳에 있죠. 저는 이 멋진 곳에서 무려 10년에 걸친 추억과 우정을 쌓아왔습니다.
전주는 우리 부부가 사랑에 빠진 도시이기도 하죠. 사람들은 종종 제가 전주에 브루어리를 열었다는 데 놀라곤 합니다. 전주는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엄청난 역사와 놀라운 건축물들이 그 증거죠. 그럼에도 전주는 매우 힙한 도시입니다. 대안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수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전주를 고향처럼 여깁니다. 이곳은 크래프트 브루어로서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음식, 예술, 그리고 음악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특히 전주 음식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집니다. 이런 문화는 항상 좋은 자극이 됩니다. 브루어리나 한옥 마을에서 쉽게 숲으로 걸어가거나 강가를 따라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입니다. 쉬는 날에는 종종 할리 데이비슨을 끌고 근처 지리산으로 드라이브를 나가기도 하죠.
3.로컬 브루어리를 열기까지 겪었던 도전이나 어려움은?
하하! (큰 웃음) 말 그대로 하루하루가 도전이었죠. 도전은 독특한 개성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 나은 컨셉을 찾을 기회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때때로 특정한 문제들이 우리를 곤란하게 하기도 했지만, 며칠 뒤에는 웃으며 넘길 일이 되곤 했습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우리가 할 일은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 실천해 나가는 것뿐입니다.
4.당신이 만난 가장 황홀한 맥주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맥주는 아니지만, 에콰도르의 아마존 열대 우림에서 마셨던 치차(Chicha)를 마신 경험을 들 수 있겠네요. 대학교 여름방학 때 한 아마존 부족을 방문해 그들의 문화를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발효를 위해 입안에서 곡식을 씹던 여자가 저에게 술을 따라주었죠.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어요. 그로부터 10년 뒤, 제 아내를 같은 마을로 데려갔고 그녀도 그 치차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유럽,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를 여행하며 여러 맥주를 마셨고, 각각 다른 경험과 기억을 남겨주었습니다
5.최근에 첫 양조를 마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브루어리를 운영하는 것은 언제나 도전입니다. 노매딕은 제가 책임을 맡은 세 번째 브루어리지만, 오너로서는 첫 시도입니다. 양조하는 내내 도취될 정도의 행복감과 공황 상태가 번복됐고, 이런 감정은 진자의 추가 멈추지 않고 움직이듯 계속 엎치락뒤 치락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모든 게 제대로 들어맞았다는데 그저 감사하게 되죠. 결과적으로 맥주가 괜찮게만 나온다면, 그보다 더 완벽한 건 없을 겁니다
6.당신에게 있어 양조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인가요?
‘열정’. 양조는 24시간짜리 일입니다. 브루어리에서는 끊임없이 일거리가 생기는 데다 시간 또한 매우 빨리 흘러갑니다. 브루어가 하는 일의 99%는 청소고, 1%가 양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브루어리를 운영하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 없이는 이 일을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제 직업을 ‘노동’이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7.캐나다의 양조 장비 회사인 DME에서 커스터마이징으로 주문한 장비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노매딕은 7bbl(약 1100L) 크기의 베슬(Vessel) 2개와 전기로 가열되는 핫 리쿼 탱크(Hot Liquor Tank, 뜨거운 물을 상시 저장하는 탱크)로 이루어진 브루하우스(맥즙을 제작할 때 쓰이는 장비들), 그리고 대략 2500L 정도의 맥주를 저장할 수 있는 21bbl(약 3300L) 크기의 유니 탱크(발효조) 3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니 탱크 크기가 브루하우스 크기의 3배이니, 제 맥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면 세 번까지 양조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BBT(편집자 주: Beer Bright Tank, 맥주 패키징 전에 맥주를 맑게 만들기 위해 맥주를 보관해두는 바닥이 평평한 탱크)를 사용하지 않고, 유니 탱크 만으로 진행하는 양조를 연습 했습니다. 또한 저는 노매딕을 환경친화적인 곳으로 만들기 위해 비슷한 크기의 다른 양조장보다 물을 적게 쓸 수 있는 2-스테이지 열 교환기(Two Stage Heat Exchanger)를 설치했습니다. 게다가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돈도 절약할 수 있었죠. 당화조의 갈퀴(편집자 주: Mash Tun Rake, 당화조 안에서 자동으로 맥아를 저어주는 장치)나 LCD 스크린 같은 불필요한 장비를 설치하지 않았으니까요. 저희는 최대한 수작업을 하는 100% 아날로그 양조장입니다.
8.로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2년 전, 한나와 제가 조슈아 트리 국립 공원에서 캠핑을 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에 이미 ‘노매딕’이라는 이름은 정했지만 로고는 정하지 못한 상태였죠. 침낭 속에 누워 텐트 천장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노매딕을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지금, 현재 이 순간’에 마음을 집중하자 매우 깊고 압도적인 희열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캠핑을 정말 사랑합니다. 마치 자연 속에서 목욕하는 느낌이거든요. 한나와 저는 신혼여행으로 캠핑을 했을 정도이니까요. 사실 일에 밀려 한동안 캠핑을 못 했던 터라 다시 텐트로 돌아왔다는 게 굉장히 좋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제가 로고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텐트였어요! 텐트와 캠핑에 관한 것 외에도 지난 수년간 많은 사랑을 나눠준 제2의 고향 한국에 대한 깊은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태극기 속 태극 문양에 영감을 받은 디자인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9.노매딕의 피자에 대해 더 알려줄 수 있나요?
제가 21살이었을 때, 어머니가 저를 피자 레스토랑에 데려갔고 같이 곁들일 맥주 한 잔을 권한 기억이 납니다. 그녀는 피자와 맥주가 고전적인 조합이라고 알려주었죠. 하지만 오늘날 현대화된 식품 산업에 대해 많은 정보들을 알게 되면서, 지금 우리가 먹는 많은 음식들이 얼마나 가공되었으며, 부자연스럽고 건강에 좋지 않은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노매딕은 사람들에게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공유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우리는 모든 도우를 자연 발효시켜 표면의 글루텐양을 줄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재료는 피자를 문화적 유산으로 여기는 이탈리아로부터 옵니다.
10.오래 사랑받는 브루어리로 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에 진실할 것.
11.노매딕 양조장을 열기 전 상업 양조사로 일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다른 곳에서 양조사로 일할 때와 노매딕에서 양조를 하는데 있어 장단점이 있다면?
상업 양조는 고도의 근면성을 요구합니다. 훌륭한 맥주를 하나 만들기도 어렵지만, 같은 맥주를 계속 똑같이 만들어내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렵습니다. 상업 양조사는 같은 레시피를 계속 반복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톱니바퀴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죠. 노매딕에서는 현재 기존 상업 양조 방식에 보다 더 예술적인 접근법을 반영한 소량의 배치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는 스스로 선택한 재료로 얼마든지 원하는 맥주 스타일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꿈이 현실이 된거죠!
12.자연을 바라보는 방식과 더 나은 환경을 위해 당신이 하는 노력이 궁금합니다. 크래프트 정신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노매딕은 한국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일절 거부한 최초의 브루어리라는 점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점점 환경 문제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저는 기업에게 지역 사회의 생활 환경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려는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크래프트 맥주 축제들을 다녔지만, 그에 못지않게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도 함께 목격했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환경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고 약속했죠. 노매딕에서는 값싼 플라스틱병에 맥주를 담아주고, 그보다 더 싼 플라스틱 컵을 사고, 유기농이 아닌 팝콘을내놓아 생길 경제적 수익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비록 다른 양조장들처럼 구색을 맞출 수 있겠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우리는 전문가도 아니고, 완벽하게 친환경적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환경과 크래프트 맥주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저는 크래프트 맥주야말로 진실되고 신뢰할 수 있는 삶의 경험을 목표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고민과 의식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지 않을까요.
EDITOR_조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