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페일에일이 세계를 누비는 그날까지, 캔맥주 출시한 플래티넘
지난달 전국 편의점 냉장고에는 연두색 손바닥 도장이 찍힌 캔이 등장해 시선을 모았다. 옆에는 개나리색 손바닥 도장이 그려진 캔도 있다. 상큼한 느낌의 패키지가 과일 음료를 연상케 한다. 손바닥 도장 옆 고전 적인 필체로 써 있는 글씨는 ‘플래티넘맥주’. 손바닥 도장 아래 쪽에는 영문 필기체로 ‘Handcrafted in Korea by brewmaster Junghoon Yoon’이라 는 문구와 함께 사인이 돼 있다. 음용성 좋은 페일 에일 드래프트로 널리 알려진 플래티넘 맥주가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시작으로 캔맥주 2 종의 유통을 시작했다 캔에 그려진 손바닥의 주인공인 윤정훈 플래티넘 부사장을 만나기 위해 올 1분기 완 공된 플래티넘 충북 증평 공장을 찾았다.
‘아시아 최대’ 플래티넘 증평 브루어리
플래티넘 캔맥주는 전량 증평 브루어리에서 만들어진다. 브루어리 도착 후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공장 외부에 줄줄이 서 있는 2만5천리터 짜리 거대한 탱크들. 사방이 온통 논밭으로 둘러싸인 공간이라 웅장한 규모가 더욱 돋보인다. 증평 브루어리의 생산 가능 용량은 아시아 크래프트 브루어리 중 최대 규모. 지금 완공된 부분만으로도 1일 6만 리터, 연간으로는 600만 리터 생산이 가능해 아시아 No.1급이다. 현재 2차 증설 공간까지 확보해 놓은 상황으로 탱크만 추가 설치하면 연간 1300만 리터 생산 용량을 갖추게 된다.
브루어리 안으로 들어서자 정렬된 양조 장비들 사이로 6캔씩 포장된 캔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착착 나오고 있다. 시간 당 9천 캔을 만들어낼 수 있는 캔입 장비라고 한다. 캔입뿐 아니라 맥아 파쇄에서부터 당화, 발효, 숙성, 캔입, 포장까지 모든 것이 전자동 시스템이다. 프로그래밍 돼 있는 대로 각 장비들이 분주 히 움직이고 있어 ‘버튼 하나만 누르면 맥주가 나온다’는 느낌이었다.
윤정훈 플래티넘 부사장은 “만 3년 공사를 하면서 장비에 가장 공을 많이 들였다”며 “라구니타스, 빅토리 브루잉, 민타임브루잉 등에서 사용하고 검증된 장비를 들여온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고 말 했다.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대형 원심분리기와 브루어리 맞춤 효모를 지속적으로 키울 수 있는 효모 배양 장비까지 들여놨다.
플래티넘은 조만간 브루어리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어 크래프트 맥주를 널리 알리는 동시에 증평의 관광 명소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Platinum
세계를 누비는 코리안 비어 저지
윤정훈 부사장은 국내 맥주 전문가 중 비교할 사람을 찾기 어려울 만큼 독보적인 인물이다. 미국 현지 브 루어리에서 브루마스터의 자리까지 올랐고 한국인 최초로 월드비어컵과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맥주 대 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10년 이상 전 세계 맥주 전문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맥주 대 회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두 달에 한번 꼴로 해외 대회에 심 사를 나간다. 한국의 맥주를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해외 트렌드를 받 아들이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변화를 감지하 지 못하는데 외국에 나가서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공법, 장비 등 트렌 드가 계속 변하고 있어요. 심사를 하면서 느낀 이런 점들을 플래티넘 의 사업 방향에 반영하는 한편 국내 전문가들과도 나누고 있습니다.”
그의 인생이 처음부터 맥주를 향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네바다대학에서 화학 등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 길에 올랐지만 학교를 다니던 중 크래 프트 맥주의 매력에 빠져 와인과 맥주 양조 교육으로 유명한 UC데이비스 로 과감하게 적을 옮겼다. UC데이비스에서 맥주 양조를 공부하고 라스베 가스의 브루어리에서 양조 보조로 시작해 캔사스주에 있는 포니 익스프 레스 브루잉 컴퍼니에서 브루마스터까지 역임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6년 한국에 왔을 때 미국에서 맥주를 공부했다고 취직이 안 돼 5개 월 동안 놀았어요. 독일식 필바둥(필스너, 바이젠, 둥켈)이 유행하던 시절 이라 미국 브루어리 출신은 찬밥이었죠. 마음이 급해 유학원과 영어학원 에서 알바도 해보고 맥주를 그만할까, 미국으로 돌아갈까, 고민이 진짜 많 았습니다.”
그래도 맥주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의 브루어 경력은 광주 광역시에서 시작했고 2010년 마침내 플래티넘에 합류하게 됐다.
이렇게 커리어를 쌓아온 윤 부사장은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하 는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교육이야말로 크래프트 맥주의 대중화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되멘스 비어소믈리에 한국어과정과 수수보리아카데미 등에서 주요 강사로 활약하고 있 다.
내 손으로 만든 맥주에 손바닥 도장을 찍다
이번에 플래티넘에서 출시하는 제품은 페일에일과 화이트에일. 플래티넘의 대표 상품이자 스테디셀러인 페일 에일은 향긋한 홉 향과 씁쓸한 맛이 조화로운 맥주다. 또 화이트 에일은 오렌지 껍질과 고수 씨를 활 용해 맛을 낸 벨지안 윗으로 오렌지 향을 기반으로 한 깔끔한 풍미가 강점이다. 가볍고 상큼한 향 때문에 5.2%의 도수가 잘 감지되지 않는다.
윤 부사장은 이들 캔 맥주 라벨에 자신의 손바닥 도장을 찍고 사인을 했다. 손바닥을 캔에 형상화한 것은 ‘수제 (手製)’라는 의미와 함께 윤 부사장이 자신을 걸고 맥주의 품질과 맛을 보증한다는 뜻이다. 그는 플래티넘의 맥 주 레시피는 물론이고 재료 수급, 품질 관리의 모든 것, 또 양조 장비의 도입과 최적화에 대해 책임지고 있다.
윤정훈 부사장은 “플래티넘 맥주가 추구하는 것은 맥주의 음용성(drinkability)”라며 “누구나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또 “플래티넘 맥주는 독특한 맥주를 만들고 싶은 ‘브루어 의 욕심’과 편하게 마시고 싶은 ‘일반 소비자의 니즈’의 중간 쯤에 있다”고 덧붙였다. Mr
그의 이런 노력은 세계적인 대회에서도 수 차례 인정받았다. 윤 부 사장은 “애초에 세계 맥주 대회에 출품한 것은 ‘중국산’이라는 핸 디캡을 벗기 위해서였다”며 “연태 브루어리에서 생산하는 맥주 도 재료는 모두 독일, 미국산이고 한국 브루어가 만드는 데도 불 구하고 인정을 못 받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뒤집 을 방법은 국제 대회에서 객관적으로 평가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 다. 그 때부터 국제대회에 플래티넘의 맥주를 출품해 2015년 세 계 3대 맥주 대회 중 하나인 AIBA(Austrailian International Beer Awards)에서 올해의 챔피언으로 선정됐다. 또 인터내셔널 비어 컵(International Beer Cup), 아시아 비어 컵(Asia Beer Cup) 등을 비롯한 세계 맥주 대회에서 20개 이상의 메달을 따냈다. His
플래티넘의 시장은 전 세계
2002년 서울 압구정의 브루펍으로 시작한 플래티넘은 2004년 강남역에 2호점을 연 데 이어 2012년 중 국 연태에 브루어리를 지어 맥주를 생산해왔다. 플래티넘의 중국 브루어리 설립은 ‘전략’이라기보다는 ‘고 육지책’에 가까웠다는 게 윤 부사장의 설명이다.
“브루어리를 만들려고 했을 당시에만 해도 국내 주세법 상 소규모 양조장 맥주의 외부 유통이 금지되어 있 었어요. 여러 기관에 문의를 했었는데 쉽게 법이 개정될 것 같지 않더군요. 그래서 한국에서 2시간 거리인 중국의 부지들을 알아보기 시작했죠.”
중국에서의 브루어리 설립이 쉽지는 않았다. 잘못된 정보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갑자기 법이 바 뀌는 바람에 계획이 어그러진 적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중국에서 맥주를 생산하게 됐다. 그리고 2년 후인 2014년 바뀔 것 같지 않던 주세법이 마침내 개정돼 소규모 양조장 맥주의 외부 유통이 허용됐다. 갑자 기 전국에 브루어리들이 생겨났고, 이 과정에서 플래티넘이 주세를 피해 중국에 생산 공장을 지었다는 오 해도 받게 됐다. 윤정훈 부사장은 ‘이럴 거면 고생해서 중국으로 왜 나갔나’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고 회고 했다.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 한시라도 빨리 맥주를 생산하고 유통했다는 점 에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 공장은 드래프트 버전 생산에, 증평은 캔 생산에 집중할 예정입니 다.“
플래티넘의 시선은 해외를 향해 있다.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증평 브루어리의 증설을 염두에두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플래티넘은 중국 이외에 대만, 태국 등을 비롯해 중동 지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수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수출을 늘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국내 시장을 독차지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다른 국 내 브루어리들과 상생하면서 같이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이끌고 밀어주면서 한국 크래 프트 맥주가 커나가길 바랍니다.”
EDITOR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