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을 이어온 크래프트 정신 레이크프론트 브루어리 이야기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가 지금과 같은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였다. 이것도 우리나라에 비하면 꽤나 오래전 이야기처럼 들리건만 이보다 앞선 1987년에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을 차리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브루어리가 있다. 미국 위스콘신 주의 밀워키(Milwaukee)에 위치한 레이크프론트 브루어리(Lakefront Brewery)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이 브루어리를 시작하게 된 건 어처구니없게도 형제의 생일과 장난이 계기가 되었다. 1981년, 현재 레이크프론트 브루어리의 대표인 Russ Klisch는 자신의 형제인 Jim의 생일이 다가오자 무엇을 선물로 할지 고민했다. 이때 마침 Jim은 맥주를 만드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Russ는 그런 Jim을 놀리기 위해 Jim에게 달랑 홈브루잉 책 한 권 만을 선물해줬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Jim은 책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며 홈브루잉을 열정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그 책을 통해 맥주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Jim의 맥주가 썩 괜찮은 결과를 보이자 Russ 또한 양조에 흥미를 보이게 되고, 이들 둘은 형제간에 경쟁적으로 맥주를 연구하고, 만들어내게 된다. 이러한 경쟁 덕분에 이들의 양조 실력은 금세 성장했고, 결국 홈브루잉 대회 등에서 수상을 하기에 이르게 된다. 그런 그들을 보고 주변에선 맥주 사업을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주변 사람들이 이들에게 맥주 사업을 제안한 것은 이들의 가족 중에 맥주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할아버지는 위스콘신 지역의 오랜 맥주 양조장인 Schlitz와 Uihlein의 운전사로 일했었기에 이들 형제는 맥주를 접할 일이 잦았다. 또한 이들 가족 중엔 펍을 운영하는 사람도 많았다. Russ 형제는 맥주와 관련이 있는 가족력(Family History)을 잇기 위해서라도 맥주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집 근처의 오래된 베이커리 건물에서 고작 200L짜리의 장비를 사용하여 양조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1987년 12월 2일, 그들의 첫 맥주를 Gordon Park Pub에서 판매함으로써 이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레이크프론트 브루어리의 생산량은 1988년 11,000L에서 1989년 20,000L로, 이후로도 2배씩 늘어나며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윽고 1990년엔 맥주 병입 기계도 구입하여 병으로도 맥주를 판매하게 된다. 문제는 장비를 급하게 늘려가는 과정에서 중고 장비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1998년, 지나치게 노후한 장비들을 개선하고 양조 공간도 늘릴 겸 이사를 결심하게 된다. 마침 밀워키의 오래된 발전소가 매물로 나왔고, 이들은 2000년에 현재의 레이크프론트 브루어리의 위치로 이사를 완료하게 된다. 이 이후로도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2012년엔 생산량이 5,302,175L에 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다른 브루어리와의 차별을 두기 위해 몇 가지 레이크프론트만의 특징적인 맥주들을 만들게 된다. 첫째로 최초로 ‘유기농 맥주’를 만들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레이크프론트 브루어리는 1996년, 미국에서 최초로 인정받은 유기농 맥주 브루어리(Certified Organic Brewery)가 되었으며 이때 최초로 만들어진 유기농 맥주가 지금까지도 생산 중인 맥주인 ‘오가닉 ESB(Organic ESB)’이다. 이외에 한국에도 수입된 맥주인 오가니카 화이트 에일(Organika White Ale), 퓨엘 카페(Fuel Café) 등이 미국 농산부 (USDA)의 인증을 받은 레이크프론트의 유기농 맥주들이다. 이 맥주들은 모두 100% 유기농 보리와 100% 유기농 홉, 퓨엘 카페의 경우는 밀워키의 유기농 커피 카페인 ‘퓨엘 카페’의 커피 원두를 사용함으로써 100% 유기농 재료들로만 만들어진 맥주들이다. 레이크프론트 브루어리는 이러한 유기농 맥주 사업 증진의 일환으로 유기농 홉을 재배하는 농장을 지원하는 등의 여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두 번째로는 글루텐이 없는(Gluten-Free) 맥주를 들 수 있다. 글루텐은 보리, 밀 등의 곡류에 존재하는 불용성 단백질이다. 곡물을 많이 섭취해온 동양인들에겐 별다른 해로운 물질은 아니지만, 서양권에선 글루텐에 알레르기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유전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일부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레이크프론트 브루어리는 최초로 글루텐이 없는 맥주를 만들기로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맥주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재료인 보리와 밀에는 글루텐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글루텐이 없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선 보리와 밀을 쓰지 않은 맥주를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연방법 상에선 25% 이상의 보리 맥아를 쓴 주류만을 맥주라 정의하고 있었다. 레이크프론트 브루어리는 ‘글루텐 없는 맥주’라는 새로운 주류를 창조하기 위해 ATF(미국의 주류, 담배, 화기 단속국)와 접촉했고, 결국 2005년에 물, 쌀, 사탕수수, 당밀, 홉, 글루텐 없는 효모를 이용하여 만든 ‘글루텐 없는 맥주’를 최초로 승인받게 된다.
이외에도 레이크프론트 브루어리는 밀워키 지역의 펍들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위스콘신주에서 보리와 홉을 기르는 농장을 지원하고, 위스콘신의 농작물과 위스콘신의 야생효모를 이용하여 가장 위스콘신스러운 맥주인 ‘위스콘시나이트(Wisconsinite)’를 만드는 등 지역 사회와의 교류도 꾸준히 이어왔다. 이로 인한 지역사회의 지지와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 다운 실험정신, 훌륭한 품질의 맥주가 한데 어우러졌기에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레이크프론트 브루어리가 존립하고, 사랑받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장기적으로 크래프트 맥주 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레이크프론트의 이러한 전략과 정신에 대한 고찰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EDITOR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