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만드는 농부- 주식회사 장동희 대표를 만나다
수제맥주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맥주의 재료에 관심이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맥주의 기본 재료인 보리(몰트), 홉, 효모, 물 중에 보리와 홉은 1차산업 분야인 농업에 기반한다. 효모는 과학적으로 배양하는 기술이 필요하지만, 보리와 홉은 우리 땅에서 한 번쯤 키워볼 만한 일이 아닌가?
충북 제천에 귀농하여 홉을 키우는 젊은 농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 홉 수확 철을 맞아 본지 필진이 찾아가 보았다. 홉 수확도 직접 해보고, 홉 농사에 관해 여러 가지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며 향긋한 한나절을 보냈다. 홉에 대해 자세히 몰랐던 맥주 애호가들과 귀농을 꿈꾸는 예비 농부들에게 한여름의 시원한 맥주 한잔 같았던 인터뷰를 전한다.
회사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본인과 회사를 소개해주세요.
저는 귀농 3년 차 홉 농부 장동희입니다. 골프 스포츠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다 맥주 공부를 하게 되었고, 나이 마흔 이후에는 평생직업으로 멋진 맥주를 만들어 보고자 같이 공부했던 뱅크크릭 브루어리 홍성태 대표를 따라 제천으로 귀농했습니다.
맥주 양조와 홉 농사를 병행하다 홉에 더 큰 매력을 느껴 지금은 홉 농사만 하고 있습니다. 귀농 초기 KBS 작가가 취재를 왔을 때 맥주 만들며 홉 농사도 한다는 뜻에서 ‘맥주 만드는 농부’라고 소개를 해주었는데, 그 단어가 귀에 들어와 농업회사법인을 만들 때 회사명으로 사용했습니다.
국내에서 아직 홉도 생소한데 유기농 홉은 시기상조 아닐까요?
유기농을 처음 생각한 계기는 한국형 홉 농사법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습니다. 미국식, 유럽식의 시설설치법과 농사 방법을 한국에서 그대로 따라하면 낭패 보기 쉽습니다. 참고로 한국은 4월~7월 초까지 고온 건조한 마른 장마가 계속 이어지는데요. 매년 그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물 공급 방법(점적관수)과 재배 방법이 필요한 것이지요. 또 작은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설치 방법이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품질관리 면에서 딱히 매뉴얼이 없는데, 유기농법의 기본을 따라 홉 농사를 한다면 누구든지 어느 장소에서 농사를 하더라도 균일한 품질의 홉을 생산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유기농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5월에 유기농 인증을 획득했으니 진짜 유기농 홉 농장이죠.
현재 재배하는 홉의 종류는 무엇이며 유기농 홉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현재 재배하는 홉은 캐스케이드(Cascade)와 브램링 크로스(BramlingCross) 품종 두 가지입니다.
유기농 홉은 좋은 지력 관리와 수분 공급을 바탕으로 재배되어 일반 관행 농법으로 재배한 홉보다 생산성이 좋습니다. 일반 홉 3년 차와 유기농 홉 1년 차를 비교했을 때, 홉 모양과 루풀린(Lupulin) 향에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홉도 엄연히 식자재인데, 유기농 인증을 받은 홉을 사용한 맥주를 마시는 것이 바른 먹거리의 실천이 아닐까요?(웃음)
한 해 동안 홉 농사를 해보니 할만한 일인가요?
처음 귀농하고 관행 농업을 하는 분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농약안 쓰고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에서 화학비료는 쉽고 싸게 구할 수 있고 실제로 화학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는 농사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내가 먹는 음식에 농약을 사용하기 싫었고, 일단 해보고 나니 유기농법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많은 분들이 유기농법은 어렵다고 알고 있습니다. 올해 한국유기농업협회 이해극 회장님께 유기농법을 배우며 느낀 점은, 첫 시작이 어렵지 그 이후로는 유기농의 가치와 그 생산물을 직접 증명하고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흙의 진정한 힘을 믿고 흙을 이해하면 농작물은 스스로 성장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쉽습니다. 유기농법 아주 쉽습니다. 믿어보세요.
홉은 맥주 회사가 주로 수매해야 하는데, 유통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요?
홉 농사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부분입니다. ‘어떻게 팔것인가?’가 항상 고민이고 지금도 고민입니다. 사실 국내에서 양조용 홉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 중 몇 퍼센트만 국산 홉으로 바뀌어도 가능성이 크다 생각했습니다. 허나 한국은 1인당 경작지가 평균 3,000평이라고 합니다. 전부 임야고 논이라 미국처럼 드넓은 홉 농장은 실현 불가능합니다. 즉 한 양조장에 1~2년 공급할 양을 생산하기 버겁습니다. 지금은 생산량을 늘릴 방법과 그 생산량을 바탕으로 계약 재배 형태로 공급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맥주 재료 외에 홉의 다른 쓰임새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작년부터 화훼 분야에서 홉을 많이 구매하고 있습니다. 홉도 꽃이라, 꽃 자체로 볼 때 플로리스트에게는 참 좋은 재료라고 합니다. 또 홉은 약리적 효능이 뛰어나 건강보조식품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그 추출물을 화장품, 비누, 샴푸 등에 사용 가능하니 가공품으로 확장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미 유럽과 미국에는 이같은 형태로 다양한 제품들이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지요.
제천을 비롯해 홍천, 대구 등지에도 홉 농장이 제법 생겼습니다. 홉 농장이 사업으로서 할 만한 일인가요?
분명히 사업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규모의 농사를 해야 사업성이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한 개 양조장과 계약 재배를 한다면 품종당 최소 1,000평 이상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시설설치와 묘목구입비, 수확기, 건조기 등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자해야 하지만, 농사를 기반으로 생산
물은 판매하고 체험과 투어 상품을 함께 개발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할 만한 농사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뉴질랜드의 넬슨 소빈 홉이나 호주의 갤럭시 홉처럼 한국만의 토종 홉이 개발될 수 있을까요?
나라마다 도시마다 그곳의 특성이 담긴 홉이 있지요. 한국이 실력이 없어 고유의 홉이 없는 것이 아니 라고 생각합니다. 공부 많이 하신 박사님들이 연구소에서 한국홉을 개발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홍천군에서도 그런 일들을 시작한다고 하니 기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귀농해서 홉을 키우고 싶다고 하면 해주고 싶은 말씀은?
저는 귀농귀촌학교를 통해 귀농 공부를 했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분들끼리 귀농하면 어떤 작물을 할 것인지 서로 질문을 많이 합니다. 수많은 작물이 있지만, 그 중 홉이라는 작물도 한번 깊이 생각해보세요. 다년생 식물 중에서 첫해 시설투자 이외에 추가비용이 적은 작물입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아기 걸음마 수준이지만, 멀리 보고 공부하며 시작하신다면 재미있는 작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홉 수확 축제도 하던데 어떤 행사인가요?
매년 홉 수확 축제를 개최했습니다. 올해로 네 번째 축제입니다. 작년까지는 솔티마을에서 솔티 홉 수확 축제를 했는데, 올해는 제천에서 유기농 홉 농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을 기념해 ‘제천 홉 수확 축제’ 로 변경하여 개최합니다.
‘유기농 홉’이 주제이고, 축제에 사용되는 모든 홉은 유기농 홉입니다. 맥주와 식사가 제공되고 직접 수확한 홉으로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는 조금은 색다른 축제입니다.
끝으로 장대표님에게 홉이란 무엇인가요?
마흔 중반에 농사를 이렇게 열심히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돈벌이도 시원치 않은 홉 농사를 왜 하냐고 물어보는 어르신들도 계십니다. 몰라서 시작했고, 재밌어서 하고 있습니다. 돈벌이는 나중에 어떻게 해결되겠죠?(웃음)
후반기 인생을 농사로 사는 삶도 좋습니다. 홉 농사가, 홉이 제게는 새로운 인생 이모작입니다.
비어포스트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맥주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관련 정보를 찾아보기 힘들 때 딱 나와준, 좋은 정보가 많이 담긴 잡지가 비어포스트입니다. 저같이 맥주와 홉 공부를 시작하는 분이 비어포스트를 통해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어 가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