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제맥주 협회(CBA) 유스케 야마모토(Yusuke Yamamoto) 회장 인터뷰
“크래프트 맥주 문화는 소비자가 만들어가는 것이죠.”
‘크래프트 맥주’와 ‘독립성’.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미국의 양조협회(Brewers Association)에서는 크래프트 브루어를 정의하는 세 가지 항목 중 하나로 독립을 내세웠을 정도다.
독립이라는 말에는 많은 것들이 함축돼 있다. 그 중에서도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크래프트 맥주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맥주 본연의 맛과 품질에 대한 철학을 지켜내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대기업의 자본에 매각됐을 때 사람들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의 수제맥주 협회(The Craft Beer Association, 이하 CBA)는 그런 면에서 눈길을 끌만한 부분이 많은 단체다. CBA는 어느 자본에도 기대지 않고 순수하게 맥주 애호가들로 구성된 조직으로 일본의 크래프트 맥주 문화를 이끌고 있다.
지난 4월 초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비어 콘퍼런스’ 참석을 위해 방한한 유스케 야마모토 CBA 회장을 만나 그동안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CBA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CBA는 지난 1994년 7월 출범했다. 일본 주세법 상 브루어리의 연간 최소 생산량이 2000㎘에서 60㎘로 크게 줄어든 직후다. 유스케 야마모토 회장은 “협회는 맥주 문화의 보급과 진흥, 그리고 맥주의 다양성 확대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고 밝혔다.
CBA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맥주 전문가 양성을 위한 맥주 교육을 진행하고 인증 시험을 시행한다. 기본 코스인 ‘비어 테이스터’의 경우 지금까지 7000명이 시험을 통과했다. 상급 코스로 ‘비어저지 프로그램’. ‘비어 코디네이터’ 등이 있다. 이와 함께 CBA는 1996년부터 시작해 세계 5대 맥주 대회로 부상한 ‘인터내셔널 비어 컵’을 주최한다.
또 도쿄, 요코하마, 오사카, 나고야 등 일본 5개 도시에서 진행되는 맥주 축제 ‘비어페스(BeerFes)’는 CBA의 가장 큰 행사다. 매년 3만명 이상이 참석하는 비어페스는 어떤 스폰서도 없이 관람객들의 입장료만으로 운영된다. 축제에 참가하는 브루어리들로부터 부스비 등의 비용도 받지 않는다. 순수하게 일본 크래프트 맥주 홍보의 장이 되는 것이다. 이런 운영방식이 가능한 것은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이다. 야마모토 회장은 “CBA의 직원 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적지만 맥주 애호가들의 적극적인 자원봉사 덕분에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회의 운영비도 오롯이 개인 회원들의 연회비로 충당되고 있다. 현재 회원 수는 3000여명으로 일반인과 업계 종사자의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
이렇게 CBA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것은 내수 시장의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야마모토 회장은 “현재 일본 전체 맥주 시장의 0.9%를 크래프트 맥주가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인구의 5% 정도가 크래프트 맥주를 상시적으로 즐기고 있다”고 추정했다. 크래프트 맥주의 시장 점유율은 한국과 유사하지만 일본 인구가 1억2천만명이 넘는 것을 고려할 때 600만명 이상의 두터운 크래프트 맥주 인구가 있는 셈이다. 이들이 탄탄한 크래프트 맥주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대정부 활동 등의 경우 CBA와는 별도로 브루어리들로 구성된 단체가 진행한다.
야마모토 회장도 CBA에 합류하기 전 크래프트 맥주 애호가 중 한 명이었다. 항공사의 엔지니어였던 그는 1998년부터 크래프트 맥주를 즐기며 일본 크래프트 맥주 병을 모았다. 야마모토 회장은 몇 년이 안 가 300개가 넘는 일본 모든 브루어리 맥주를 마셔본 첫 번째 인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2003년에는 그 동안 모은 6000개 이상의 맥주병을 전시하는 ‘크래프트 맥주 뮤지엄’을 오픈했다. 2006년 이후 비어페스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던 그는 마침내 운명처럼 2013년 CBA에 합류했고 2016년 회장직을 맡게 됐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15개가 넘는 브루어리와 펍들을 돌아봤다는 그는 “한국 크래프트 맥주의 품질이 정말 높아 놀랐다”
며 “비어포스트에서 펴낸 브루어리 가이드북 ‘크래프트 비어 코리아’가 한국 맥주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인터내셔널 비어 컵을 통해 전세계의 맥주들을 심사해왔던 CBA는 내년부터 일본 내 브루어리들을 대상으로 한 맥주 대회를 신설할 계획이다. 야마모토 회장은 “많은 맥주들이 나오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을 기회는 많지 않다”며 “대회가 일본 맥주 품질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바람은 맥주로 모두가 즐거워지는 것. “크래프트 맥주에 국경이 어디 있나요. 일본과 한국의업계가 교류를 하면서 크래프트 맥주 문화를 나누고 함께 발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
EDITOR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