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 서울 한영훈 대표 인터뷰
지난 몇 년 새 크래프트 맥주는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인근 대형 마트에는 벨기에 트라피스트 맥주가 줄지어 있고, 근처 편의점에는 6캔에 1만원 맥주부터 미국 유명 브루어리의 IPA까지 다양한 라인업이 기다리고 있다. 또 웬만한 지하철역 근처에서는 수제맥주 프랜차이즈 펍 하나쯤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야말로 크래프트 맥주를 언제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제 우리가 고심하는 것은 맥주를 즐기는 방법이다. 남들과 같은 맥주를 마시지만 어떤 분위기의 공간에서 어떤 음식과 함께 즐길 것인가.
사람들이 북적이는 ‘힙’하다는 동네는 지친다. 나만의 은밀한 공간에서, 다른 데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음식과 그 음식에 어울리는 맥주 한잔을 하고 싶다. 친한 친구하고만 조용히 가서 즐기고 싶은 그 곳. 지난 5월에 문을 연 서울 논현동의 스탠서울이다.
간판도 없지만 메뉴 이름도 없지만
스탠 서울은 7호선 논현역과 9호선 신논현역의 중간 정도에 자리잡고 있다. 논현동 먹자골목에 걸쳐 있어 낯설지 않은 길이지만 스탠 서울에 당도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범한 건물의 2층이 스탠 서울이라고 알려주는 간판 같은 건 없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건물 주변을 한동안 서성인 끝에 겨우 스탠 서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탠 서울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한영훈 대표와 이재준 대표는 2016년 맥주 수입사 버즈샵(Buzz shop)을 시작하면서 맥주 업계로 발을 내디뎠다. 사회초년생이던 친구들이 모여 맥주에 대해 관심 갖다가 의기투합해 수입사를 시작했다. 수입사를 공동 창업했던 친구 중 두 대표가 펍을 열게 된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각자 본업을 유지하고 있고 한영훈 대표가 전업으로 맥주 일을 맡고 있다.
한영훈 대표는 “맥주 수입업을 하면서 최종 소비자들에게 맥주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며 “좋은 맥주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펍을 생각하게 됐다”며 스탠 서울을 열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음식은 맥주 문화 레벨업의 필수 조건”
간판조차 없는 스탠 서울이 SNS에서 회자되고 매일 적지 않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가장 큰 이유는 음식이다. 버거, 치킨, 피자, 튀김으로 점철된 펍의 메뉴에 지친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스탠 서울의 음식을 부지런히 촬영한다.
“와인은 음식과의 경험이 쌓여 자리 잡았는데 국내에서 맥주와 함께 하는 음식은 너무 단순하다는 점이 늘 안타까웠습니다. 맥주가 와인처럼 문화로 인정받고 뿌리 깊게 자리하려면 음식이 매개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한영훈 대표의 이런 철학은 미국 CIA 요리학교 출신인 유태화 셰프를 만나면서 꽃피울 수 있었다. 미국 브루클린의 펍 톨스트(Torst)에서 셰프로 일했던 그는 스탠 서울이 가오픈했을 때 우연히 방문한 손님이었다. 이직이 예정돼 있던 유태화 셰프는 스탠 서
울에서 한동안 일하기로 했고, 이로부터 메뉴 자체가 스탠 서울의 ‘시그니처’가 됐다.
스탠 서울은 지금까지 30가지가 넘는 메뉴들을 선보였다.
한 대표는 “고정 메뉴 없이 계속 실험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뉴판을 보니 간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식에도 이름이 없다. ‘한우설깃/아몬드/칠리w/사워도우’ ‘소프트쉘크 랩/꽈리고추/태운양파’하는 식으로 재료를 나열해 놓았다.
유태화 셰프는 “재료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메뉴판을 활용하고 있다”며 “마트에 가서 재료를 보면서 음식을 구상한다”고 밝혔다.
손님들이 메뉴를 고를 때 불편하게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 대표는 “고객에게 메뉴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있고 이를 통해 한번 더 고객과 대화를 유도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경계를 넘나드는, 항상 새로운
맥주와 음식의 페어링을 고려해서 메뉴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음식을 완성한 후 이에 어울릴 만한 맥주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최근에 가장 반응이 좋았던 메뉴는 ‘가지/허머스/명란’이다. 구운 가지를 병아리콩으로 만든 허머스 위에 올리고 명란베이스의 소스와 루꼴라를 위에 올려 서빙하는 에피타이저다. 여러 풍미로 입맛을 살려주는 이 음식에는 가벼운 느낌의 세종 맥주가 어울린다는 설명이다.
또 얼마 전 메뉴에 올렸던 체리 머랭 케이크와 임페리얼 스타우트의 조합도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한 대표는 “앞으로도 계속 창의적인 메뉴를 바꿔가면서 선보일 것”이라며 “언제와도 새로운 메뉴를 기대하게 하는 공간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근에는 내추럴 와인 2종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와인 애호가들도 와서 맥주를 경험해볼 수 있고 맥주 마시는 사람들도 와인을 마시면서 경계를 넘나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겨있다.
스탠 서울에서는 ‘비어 디너’라는 이벤트도 기획하고 있다. 5~6가지 코스요리와 맥주를 페어링하는 행사다. 흔하지 않은 음식 메뉴는 물론이고 맥주 역시 버즈샵이 소량으로 들여왔던 시중에 없는 맥주가 준비된다.
“맥주를 기반으로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주는 펍이 되고 싶습니다. 이런 스탠 서울의 발걸음이 조금이나마 크래프트 맥주 문화에 일조할 수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겠죠.
EDITOR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