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도 수제맥주가?, 4색 매력 목동 탭 하우스
목동이 ‘살기 좋은 동네'인지는 몰라도 ‘놀기 좋은 동네'는 아니라는 말에 근방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목동의 명물은 서울의 여느 번화가와는 달리 수많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늦은 시간까지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학원가다. 목동 주민에게 동네 맛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한참의 고민 끝에 ‘현대백화점'이라는 대답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런 목동에도 크래프트 맥주 탭이 꽂혀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자리를 지켜온 펍부터 신생 펍까지 맥주의 자취를 찾아 나서보았다.
푸른유월
목동중학교 건너편 한적한 골목에 들어서 몇 걸음 걷다 보면 상큼한 네온 간판이 눈길을 끈다. 독특한 자리 배치와 식물들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인상적인 이곳은 이제 막 오픈한 탭 하우스 ‘푸른유월’이다. 미술을 공부한 부부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꾸며 이색적인 분위기 속에서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부인과 함께 로스터리 카페를 하던 이건희 대표는 홈브루잉을 하는 주변 작가들을 통해 크래프트 맥주의 세계에 눈 뜨게 되었고, 마침 카페의 지하에 가게 자리가 나자 당시 룸메이트였던 히든트랙 양조사의 도움으로 탭 하우스를 계획하게 되었다. 네 개의 탭 중 크래머리 브루어리의 맥주가 세 곳을, 굿맨 브루어리의 맥주가 나머지 한 곳을 채우고 있다. 커피도, 술도 스며들 듯 편안하게 마시는 것을 추구하는 이 대표는 크래머리 맥주가 개성있고 화려한 맥주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생각나고 마음이 갔다고 한다. 약 10년 전 처음 마셔본 바이엔슈테판의 헤페바이젠을 인생 맥주로 꼽은 이 대표는 아마 그때부터 독일식 맥주의 매력에 빠져든 게 아닐까 싶다.
처음 가게를 구상할 때 부부는 미술 작업을 하던 이들답게 색깔부터 떠올렸다. 푸른 계열인 블루와 그린이 주요 색상으로 잡혔고, 올해 6월에 가게 공사와 아내의 생일이 맞물려 푸른유월이라는 유일무이한 이름이 탄생했다. 또한 자리의 배치가 인상적인데, 각 테이블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공간을 한 바퀴 빙 둘러싸며 이어져 있다. 이 공간에 애정을 갖는 사람의 꾸준한 발길이 서로 연결되었으면 하는 푸른유월의 지향점이 비치는 듯하다
탭하우스 푸른유월
주소 양천구 목동동로10길 19 지하
전화번호 070-8812-3812
영업시간 월-토, 18:00-24:00
인스타그램 taphouse_bluejune / 페이스북: @bluejune2017
더 퍼치
목동역 1번 출구 쪽 골목에서는 비스트로 펍 ‘더 퍼치’가 기다란 창문을 활짝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맞아준다. 미국 가정식 요리와 국내 크래프트 맥주의 조합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좁다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벽돌 벽과 나무 재질이 따뜻한 고향 가정집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마이클 대표는 맥주를 잘 알지 못하는 누구라도 와서 편안하게 맛있는 음식과 맥주를 즐기다 갈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란다고 했다.
‘횟대'를 의미하는 더 퍼치의 간판에는 귀여운 부엉이가 높게 솟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다. 바쁘지 않을 때면 마이클 대표는 마치 횟대에 올라앉은 새가 된 것처럼 창문 앞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곤 한다. 오래 전 한국에 와 목동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던 마이클은 당시 크래프트 맥주 마실 곳을 찾을 수없어 많이 아쉬워했다고 한다. 다른 곳이 아닌 목동에 가게를 오픈한 이유이기도 하다.
맥주 라인업을 구성하는 마이클 대표만의 원칙이 있다면 국내 맥주만 탭에 배치한다는 것이다. 지역 맥주가 가장 신선하고 맛있을 뿐 아니라 최근 한국 크래프트 맥주의 발전을 바라고 더불어 손님들에게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좋은 맥주들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자신이 가장 맛있다고 느끼는 핸드앤몰트의 맥주를 시그니처 메뉴로 두고 게스트 탭은 특별하게 소개하고 싶은 맥주로 채운다. 방문 당시에는 말로니스 브루잉의 Southie 아이리쉬 레드 에일을 맛볼 수 있었다.
모든 요리를 직접 하는 마이클 대표는 베이컨 할라피뇨 맥앤치즈와 핸드앤몰트 슬로우 IPA의 페어링을 추천했다. 아주 진하고 담백한 맥앤치즈 안에서 할라피뇨가 가끔씩 지나가며 매콤한 자극을 주었고, 동시에 IPA에서 오는 열대 과일의 향긋함, 고소한 몰트 풍미, 깔끔하게 마무리 되는 쓴 맛이 아주 잘 어우러졌다. 묵직한 풍미의 맥앤치즈와 결코 가볍지 않은 슬로우 IPA가 주린 배를 맛있고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다음 목적지를 고민하는 필자에게 근처 펍들을 추천하고 다른 지역의 펍도 소개해준 마이클 대표는 맥주를 사랑하는 이들의 네트워크와 연결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더퍼치가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명료하다. 시간이 갈수록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젖어 들어,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곳이기 때문이다.
더 퍼치
주소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정중앙로23길 10 2층
전화번호 010-2636-7399
영업시간 화-일, 17:00-24:00
인스타그램 theperchmokdong / 페이스북: The Perch
오피움
본인이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하거나 세상의 고뇌를 감당하기 힘들어 혼자 맥주를 홀짝이고 싶은 날에 터덜터덜 오목교역 1-2번 출구 근처 골목으로 발걸음을 이끌어보자. ‘오피움’은 앞서 소개한 더 퍼치의 마이클 대표가 추천한 펍 중 하나로, 매주 무료 음악 공연과 신선한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단골 중심으로 돌아가는 소수정예 아지트라는 것이다. ‘아편'을 의미하는 이름과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진 벽지가 어우러져 어쩐지 ‘지하 소굴' 같은 느낌도 든다.
벽에 이전 주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를 비롯해 펍의 인테리어를 이전 주인이 직접 꾸몄다고 한다.
오피움에선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의 맥주 두 종류와 기네스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데, 특히 기네스 생맥주의 맛이 참 신선하고 인상적이었다. 기네스에서 그런 향긋한 아로마를 느낀 건 처음이었다. 관리하기도 까다롭고 마진도 별로 나진 않지만, 기네스를 생으로 마시고 싶다는 단골들의 빗발친 요청에 들여왔다고 한다. 신선한 향이 살아있는 기네스를 마시고 싶은 동네 주민이라면 이곳이 행운의 장소임이 틀림없다.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를 선택한 이유 역시 맛있을 뿐 아니라 품질관리가 잘 돼서라는 최 대표는 다른 것보다도 신선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펍을 방문하는 모든 손님에게 제철 과일을 서비스로 내주는 최 대표는 아무 말 없이 포도 한 줌을 스윽 내밀었다. 통통하게 단물이 오른 포도는 플레이그라운드의 페일 에일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었다.
“영업에 소질이 없어서 많은 사람을 끌어 들이진 못하지만, 누구든 일단 오면 잘 해드리죠.” 이렇게 쿨한 대사를 특유의 수줍은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최 대표에게서 다소 ‘츤데레(ツンデレ)’ 같은 면모가 엿보인다.
음악 펍의 주인답게 최영기 대표 역시 기타를 치는 사람이다. 지금은 손이 좋지 않아 직접 연주하진 않지만, 낮엔 기타학원에서 일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본인도 원래는 이곳의 단골이었다는 것이다.
이전 사장님이 펍을 접겠다고 하자 기존의 단골들이 아지트가 없어지는 건 너무나 아쉽다고 동요했고, 결국 그나마 사정이 맞아 떨어졌던 최 대표가 이곳을 이어 받게 되었다. 단골들 간의 돈독한 우애가 다시 한번 느껴지는 대목이다. 아직까진 이전 인테리어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최 대표는 내년에 가게를 대폭 재단장할 예정이다. 그의 손길을 거쳐 새로이 태어날 오피움이 기대가 된다.
펍 오피움
주소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동로 228-14 지하
전화번호 010-6654-5626
영업시간 월-목 20:00-02:00, 금-토 20:00-03:00
인스타그램 pubopium / 블로그: http://blog.naver.com/pub-opium
빌리지브라더
오피움에서 나와 조금 더 큰 골목으로 꺾으면 귀여운 스쿠터가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빌리지브라더'를 마주하게 된다. 빌리지브라 더는 앞서 소개한 푸른유월과 비슷하게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일식 펍으로, 이번에 소개한 펍 중 탭 개수가 가장 많다. 코에도와 오리온 등 일본 맥주를 비롯해 다양한 크래프트 맥주와 일본식 안주를 즐길 수 있는 이곳은 평일 저녁인데도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로 적당히 붐비고 있었다.
주변 골목에 이미 다른 세 군데의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양천구 토박이 김선욱 대표는 일식 안주가 크래프트 맥주와도 잘 어울리는데 반해 한국에 일식 꼬치요리와 크래프트 맥주를 함께 즐길만한 곳이 거의 없다는 생각을 했고, 그 결과 일반적인 이자카야와는 다른 분위기의 펍을 오픈하게 되었다. 일본 요리를 15년 넘도록 한 김 대표에게서 요리에 대한 여유로운 자신감이 엿보인다.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요리에 어울리는 맥주를 즐겨 마신다는 김 대표는 특히 코에도 맥주를 좋아해서 처음에는 코에도 라인으로만 구성된 펍을 구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안주는 전복, 가리비, 항정살 등 신선한 재료를 참숯에 굽거나 튀겨 본연의 맛을 살린 꼬치요리가 주를 이루는데, 코에도 시로의 섬세하고 크리미한 질감과 함께 어우러져 꿀떡꿀떡 넘어가 버리는 맛이다.
탭 라인업은 김선욱 대표를 비롯한 네 명의 직원들이 직접 마셔보고 맛있다고 판단하는 맥주로 구성된다. 맥파이와 구스 아일랜드등 최근 들어 비교적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는 맥주뿐 아니라 코에도 시로와 오키나와 오리온 등 한국에서 드래프트로 접하기 어려운 일본 맥주들을 낮은 가격으로 마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김 대표와 빌리지브라더의 잘생긴 직원들 사이에는 몇 년 동안 다져진 끈끈한 유대가 돋보였다. 김 대표는 앞으로 맥주 양조도 하고 싶다는 목표와 더불어, 장사하고 싶어하는 직원들에게 가게를 하나씩 차려주는 게 소망이라는 통 큰 포부를 밝혔다. 펍 이름처럼 든든한 동네형 같은 김 대표의 넓은 마음이 인상적이다. 동네형이 라는 이름은 근처에 사는 동네 주민들이 편하게 와서 먹고 즐기길바라며 지었다고 한다. 그 바람대로 가게 안에는 혼맥을 느긋하게 즐기는 노인부터 연인과 동료들까지 다양한 군상이 행복한 얼굴로 맥주와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빌리지브라더 (동네형)
주소 서울특별시 양천구 오목로 313-5 1층
전화번호 02-2653-4801
영업시간 월-일, 16:00-01:00, 명절 휴무
인스타그램 dama_kitchen
EDITOR_홍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