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대표 맥주에서 전국구 맥주로: 지역 브루어리의 서울 직영 펍 4곳
대전, 속초 등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이 종로, 을지로 등 서울의 중심지에 직영 펍을 속속 열고 있다.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맥주를 유통하기 위한 전초기지로서의 성격이다. 지역 브루어리들은 직영 펍을 통해 최종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알리고 다른 펍들과 네트워킹을 강화하는 등 ‘전국구’로의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자판기를 열고 맥주의 세계로 - 맥주덕후X더랜치브루잉
맥주덕후X더랜치브루잉은 최근 ‘힙지로(hip+을지로)’라고 불리는 을지로에서도 유독‘힙’함을 뿜어내고 있는 크래프트 펍이다. 맥주덕후X더랜치브루잉은 2016년 대전광역시에서 시작한 더랜치브루잉이 처음으로 서울에 문을 연 직영 펍이다. 지난 7월 1일 오픈한 이래 SNS에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는 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맥주덕후X더랜치브루잉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을지로 골목에 빨간색 음료수 자판기를 형상화한 문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자판기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화려한 그라피티로 꾸며진 내부 인테리어가 맞이한다. 더랜치브루잉 관계자는 독일 베를린의 ‘힙스터 성지’ 하케셔 마트(Hackescher Markt)의 분위기를 표방한 인테리어라고 설명했다.
직영 펍 이름을 맥주덕후X더랜치브루잉라고 지은 이유는 맥주에 빠져 사는 ‘덕후’들과 다양한 협업(콜라보레이션)을 하겠다는 의지에서다. 이에 따라 더랜치브루잉은 다른 브루어리들과 활발하게 콜라보 맥주를 만들고 이를 맥주덕후X더랜치브루잉 펍에서 선보이고 있다. 부산의 고릴라브루잉, 와일드웨이브와 맥주를 만들었고 충남 서산의 칠홉스브루잉, 강원 강릉의 버드나무브루어리와도 함께 양조한 바 있다. 앞으로 속초 크래프트 루트, 안동의 안동맥주와도 콜라보 맥주를 만들 예정이다. 또 맥주덕후X더랜치브루잉에서는 서울 문래동 브루어리인 비어바나의 맥주 탭테이크오버 행사를 열기도 했다.
더랜치브루잉 관계자는 “연중 생산 맥주 스타일과 다른 여러 스타일의 맥주를 협업을 통해 만들면서 라인업을 다양화하고 있다.”라며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서 네트워킹과 협력은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이를 지속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맥주덕후X더랜치브루잉에서는 총 14개의 탭을 운영하며 8개는 자체 맥주, 나머지는 게스트탭으로 채워진다. 안주로는 디트로이트 피자 6종을 중심으로 윙, 육포, 감자튀김 등을 즐길 수 있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출신의 셰프가 주방을 책임진다. 김태원 더랜치브루잉 본부장은 “브루어리가 지방에 있다 보니 전국적인 홍보에 한계가 있어서 전략적으로 서울 중심에 직영펍을 열게 됐다.”라며 “다른 펍이나 최종 소비자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어 앞으로 직영 펍을 늘려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라고 밝혔다.
로맨틱하면서도 빈티지하게 - 아트몬스터 을지로점
서울 을지로에는 경기도 군포의 브루어리인 아트몬스터의 직영펍도 둥지를 틀었다. 익선동점, 강남역점에 이어 아트몬스터의 세 번째 브루어리 직영점이다. 아트몬스터는 지난 2017년 경기도 군포에 설립된 브루어리로 미국의 양조 교육기관 시벨 인스티튜트(Siebel Institute)에서 맥주 공부를 하다가 만난 두 명의 브루어가 의기투합해 맥주를 만들고 있다.
아트몬스터의 직영 펍들은 ‘공간도 맛의 일부분’이라는 철학 아래 오감 만족을 추구하고 있다. 아트몬스터는 직영 펍마다 특색 있는 인테리어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장 최근에 오픈한 을지로점은 ‘로맨틱 빈티지’라는 콘셉트로 꾸며졌다. 을지로의 최근 유행에 맞춰 뉴트로 트렌드를 반영했다. 오래된 인쇄소 건물을 활용해 과거의 느낌을 살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성 고객들을 겨냥해 조명, 소품 등에 부드러운 느낌을 더했다. 오피스가 많은 주변 환경을 반영해 점심도 즐길 수 있도록 영업시간을 정했고 점심 메뉴도 따로 준비했다.
또 다른 직영 펍인 아트몬스터 익선동점은 한옥의 자연스러움을 살린 인테리어로 주목받았다. 한옥 내 나누어진 공간을 그대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와 함께 강남역점은 홍콩의 밤거리를 모티브로 하면서 고객이 직접 맥주를 서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재미 요소를 더했다. 아트몬스터는 세 직영점의 인테리어와 분위기는 특색 있게 꾸미면서도 맥주나 음식 메뉴는 각 매장에서 동일한 품질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아트몬스터의 브랜드를 일관되게 관리하기 위한 전략이다. 아트몬스터는 국내 브루어리로는 보기 드물게 비엔나 라거(청담동 며느리), 체코 다크 라거(몽크 푸드)를 내놓고 있으며 커피 쾰쉬(잡스), 벨기에 스트롱 에일(핵존심) 등도 맛볼 수 있다.음식은 피자와 치킨이 중심이다. 모두 군포 브루어리의 별도 공장에서 직접 생산한 메뉴로 가성비를 자랑한다.
아트몬스터가 직영점 전략을 택한 것은 “정성껏 만든 맥주를 가장 맛있게 소비자에게 전달하자.”라는 측면이 가장 크다. 아트몬스터 관계자는 “가장 신선한 상태의 맥주를 맥주 관 청소 등 관리가 완벽한 펍에서 서브하기 위해 직영점을 늘려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런 측면에서 직영점 외 다른 펍에 맥주를 유통할때도 냉장 차량을 활용하는 콜드체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옥에서 즐기는 속초의 향기 - 크래프트 루 익선점
강원 속초의 크래프트 브루어리 크래프트 루트는 브루어리보다 펍을 먼저 시작했다. 지역의 브루어리들이 대부분 지역에서 맥주 양조를 시작하고 홍보 및 유통 거점으로 서울에 펍을 여는 것과 다른 점이다. 크래프트 루트의 직영 펍인 크래프트 루 익선점은 익선동의 터줏대감이다. 익선동의 상권이 활성화되기 전인 2016년에 문을 열었다. 당시 익선동에 처음으로 생긴 크래프트 맥주 펍이었다. 크래프트 루 익선점은 100년 된 한옥 공간을 활용했다. 루(Roo)는 다락이라는 뜻의 ‘루(樓)’를 의미한다. 좁은 한옥 다락 공간이 크래프트 맥주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져 소비자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국산 크래프트 맥주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하던 크래프트 루 익선점은 지난 2017년 속초에 브루어리를 열면서 자체 맥주를 알리는 직영 펍이 됐다. 브루어리 이름은 펍 이름에 ‘t’를 붙여 (root) 뿌리, 근본의 의미를 강조했다. 실력파 브루어들을 영입해 맥주 품질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크래프트 루 익선점은 총 15개의 탭 중 10개 정도를 자체 맥주로 운영하고 있다. 동명항 페일에일, 설 IPA, 속초 IPA, 대포항 스타우트 등을 즐길 수 있다. 나머지 탭은 주로 국산 크래프트 맥주로 채워진다. 크래프트 루트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도 직영 펍(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6길 10)을 운영하고 있다. 속초에 자체 브루어리가 생긴 후 익선동, 신사동 펍과의 시너지가 두드러지고 있다. 직영 펍들은 기본적으로 지역 브루어리로서 전국에 맥주를 알리는 거점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윤수구 크래프트 루트 본부장은 “신제품, 시즈널 맥주 등을 바로 시장에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유리한 점이다.”라며 “익선동 펍에서 캔 포장 맥주를 판매함으로써 브랜드 노출 효과가 더 좋아졌다.”라고 설명했다. 또 반대로 크래프트 루 익선점, 신사점을 경험한 소비자들이 속초에 브루어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속초 브루어리에 방문하면서 브랜드 홍보의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속초 브루어리에 방문해 속초 현지 재료를 활용한 해산물 파스타 등 다양한 메뉴를 맛보고, 넓은 공간에서 여유를 만끽하고 브루어리 투어를 하는 등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크래프트 루트와 크래프트 루의 브랜드 이미지가 더욱 긍정적인 방향으로 각인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표현주의 영화의 한 장면처럼 - 칼리가리브루잉탭룸 익선점
인천의 브루어리 칼리가리브루잉도 자체 브루어리보다 펍을 먼저 시작했다. 영화와 음악을 공부하던 칼리가리 박지훈 대표는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의 효시라고 불리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제목을 차용해 2016년 인천 송도에 크래프트 펍을 열었다. 로고 역시 영화 속 칼리가리 박사가 쓰고 나오는 페도라 모자에 맥주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위탁 양조를 통해 맥주를 공급하던 칼리가리는 2018년 인천 신포동에 브루어리를 오픈하고 자체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직영점과 체인점을 잇달아 확장해 갔고 지난해 9월에는 익선동에도 직영 탭룸을 열었다. 칼리가리브루잉탭룸 익선점은 한옥 특유의 전통적인 느낌을 특화하면서도 일부를 현대화하는 작업으로 완성됐다. 한옥의 기존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 인테리어는 키치한 색상으로 대비시켜서 표현했다. 어두운 조명에 붉은색의 네온사인이 부각되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분위기를 낸다. 칼리가리브루잉탭룸 익선점은 메뉴판 디자인에도 전통적인 문양을 반영했다. 칼리가리브루잉탭룸 익선점에서 판매되는 자체 맥주는 4~5종. 닥터필굿 페일 에일, 바나나 화이트, 사브작 IPA, 등이 대표적이다. 귀여운 캔에 담겨 포장도 된다. 맥주와 함께 서브되는 대표메뉴로는 피자, 치킨, 샐러드, 떡볶이 등이 있다.
칼리가리브루잉은 서울 익선동 외 이태원에도 직영탭룸(서울 용산구 이태원로19길 6-4)을 운영하고 있다. 칼리가리브루잉탭룸 이태원점은 1~2층의 탭룸과 3층의 루프탑으로 이뤄져있다. 박지훈 칼리가리 대표는 “서울의 직영 탭룸은 홍보, 마케팅 통로로서의 의미가 가장 크다.”라고 설명했다. 칼리가리브루잉은 앞으로 외연을 빠르게 확장하기보다는 브루어리의 기반인 인천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단단한 지역 기반이 있어야 더 멀리, 더 오래 나아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차원에서 인천 신포동 브루어리 인근의 인천아트플랫폼과의 협업을 준비하고 있다. 박지훈 대표는 “맥주에 인천의 지역색을 강하게 입히고 작게나마 지역 문화와 연결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려고 한다.”라며 “작은 지역 브루어리가 나아갈 방향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