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공소 골목에서 만나는 독특한 공방 & 펍, 브루스카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에는 항상 오래된 철공소들이 내는 소리가 가득하다. 그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골목골목 자리 잡은 노동의 현장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빛나는 서울의 모습이 아닌 낯선 옛날 서울의 풍경 속에 맥주를 전파하는 재밌는 가게가 있다. 공방과 펍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이색적인 공간 브루스카(Brewsukka),
그곳을 운영하는 이석하씨를 만났다.
Q 브루스카는 공방과 펍이 접목된 특이한 곳이다. 어떻게 이런 공간을 만들게 되었나?
A 브루스카를 만들기 전에는 더테이블과 굿맨 브루어리에서 근무를 했다. 더테이블에서는 품질관리팀, 이후 굿맨 브루어리에서는 어시스턴트 브루어로 일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일을 그만두게 되어 독립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펍을 할 생각은 없었다. 항상 공방에서 맥주 제조를 체험하는 분들이 실제 브루어리에서 하는 것처럼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국내 여건상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이 참에 내가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다. 다만, 공방만으로는 안정적인 수익을 바라기 힘들기 때문에 펍을 겸해서 브루스카라는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Q 문래동은 아직 상업적으로 왕성하게 활성화 된 곳은 아니다. 왜 이곳을 골랐나?
A 일전에 맥주 배송을 다니면서 우연히 문래동을 방문하게 되었다. 내가 평생 알던 서울과는 다른 풍경을 지니고 있는 곳이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또한 문래 창작촌과 연결된 다양한 종류의 공방이 모여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 중에 맥주 공방은 없길래 문래동에 맥주 공방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조건적인 측면에서는 낮은 임대료와 창작촌의 에너지가 좋게 다가왔다.
Q 브루스카를 준비하면서 특히 신경 쓰거나 어려웠던 부분은?
A 브루스카는 기존의 공방과는 조금 다르게 상업 브루어리에서 양조하는 경험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편의상 보통 수제맥주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실제로 소비자들이 ‘수제’로 자신이 맥주를 만들어 내는 것은 환경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 공간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브루어로서 경험한 바를 최대한 살려서 조그만 부분이라도 제대로 된 느낌을 주려했다. 이를테면 실제 브루어리에서 사용하는 부속이나 호스를 사용하는 것이 그러하다. 브루스카에서 경험을 한 소비자들이 향후 맥주 애호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좋은 기억을 제공할 수 있게 많이 노력했다.
본래 브루스카는 공방과 펍 두 공간이 한 번에 가동되는 곳이 목표였다. 이를테면 펍에서 손님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한편의 공방에서 피어나는 맥즙(Wort)향이 은은하게 그곳을 채우는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문래동이 독특한 풍경을 지닌 곳이다 보니 인테리어에서도 동네의 느낌을 많이 담아내려 했다. 가게 외벽의 벽화 같은 경우도 문래창작촌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만들어낸 작품이다.
어려웠던 부분은 내가 직접 공사를 하다 보니 공사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게 된 것이다. 임대료가 저렴하다고 해도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음식과 맥주의 전체적인 구상을 끝내고 공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전체적인 틀이 잡혀야 공사 진행 및 비품 구입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다. 또한 직접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들 -전기, 가스, 냉장설비-에 대해서도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Q 공방과 펍의 수익성은 어떠한가?
A 말씀드렸듯이 공방은 여러 이유로 수익성이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1배치를 진행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문제다. 시간이 길어지면 양조자의 피로도 누적되고 공방의 순환도 막히게 된다. 그런 부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목표는 양조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었다. 노력을 통해 양조시간을 4시간 이내로 줄일 수 있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공방이용이 원활하게 순환되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공방이 지속적으로 돌아간다면 수익성은 당연히 생긴다. 하지만 공방의 수요는 평일 낮과 주말에 한정되어 있더라. 아직까지는 퇴근 후 저녁에 양조를 하는 수요층은 거의 없다. 이것은 홈브루잉 문화와 연결된 부분이라 당장 해결은 어려운 부분이라고 본다. 가게의 위치도 접근성이 떨어져 상대적으로 홍보가 어려운 점도 있다. 따라서 수익성을 위해 펍을 겸하는 공간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펍의 운영이익으로 공방을 지탱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Q 홈브루잉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A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도 좋아하는 것만 먹고 싶은 법이다. 다만 그렇게 한다면 다양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는 홈브루잉이 다양성에 대한 탐구라고 본다. 직접 요리를 하게 되면 맛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며, 새로운 맛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홈브루잉을 하게 되면 맥주에 대한 이해도가 향상되며 시야가 넓어지게 된다. 맥주에서 왜 이런 맛이 나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다 보면 자연스레 더 많은 맥주를 접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어떻게 보면 홈브루잉에서 단순히 맥주를 한 번 만들어 보는 것보다 맥주를 대하는 시야가 넓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단 한 번의 홈브루잉 경험이 한 사람의 맥주 경험 폭을 크게 확장 시켜 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겪었던 이런 과정이 홈브루잉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당장은 문래동에 브루스카가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브루스카가 제대로 정착한다면 역시 제대로 브루어리를 하고 싶다. 다만 그전에 공방을 통해 사람들이 모여서 맥주 경험과 기회를 나누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이런 공방이 대중화되어 맥주 산업의 기반이 된다면 국내 맥주 업계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날 것으로 본다. 현재 맥주 팬덤은 유명한 외국 맥주를 먹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미래에는 그런 맥주들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 국내에서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양조를 경험한 소비자들이 늘어날수록 그런 미래상이 현실로 될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향후에는 맥주를 넘어 다양한 주류를 탐구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싶다. 그래서 공방에서 증류주를 만들어 보거나 전통주 행사를 하는 등 다양한 주류 경험을 제공할 생각도 있다. 지금은 그 꿈의 시작점을 막 통과한 참이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A 개인적으로 양조사로 일을 할 때 자신만의 맥주를 만들지 못해서 갈증이 있었다. 대부분의 양조사들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맥주를 내놓고 싶어 한다. 나 역시 그랬지만 일에 치여서 그러지 못한 것이 항상 아쉬웠다. 그래서 브루스카를 양조사들의 작업실로 활용하고픈 생각이 있다. 나도 나의 맥주를 만들고, 양조사들도 자신의 맥주를 만들어 관심 있는 소비자들과 나누고 교류하는 장소로도 활용하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니 어느새 노을이 문래동 골목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철공소들은 그 붉은색을 신호로 삼아 서서히 문을 닫고 있었다. 본래 오랜 세월 가로등 불빛만 가득한 공간으로 남아있던 골목들은 이제 서서히 다른 빛깔로 스스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필자는 석하씨의 맥주에 대한 진지한 모습을 떠올리며 브루스카의 불빛이 오랜 세월 문래동을 비추기를 기원했다.
EDITOR_강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