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는 첫사랑이었네, 죽어도 못 보내… 내가 어떻게 널 보내…
지난 7월 7일 페이스북에는 이태원 크래프트 펍 ‘사계’의 영업 종료 소식이 전해졌다. 그 글에는 순식간에 7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누구 하나 사계와 관련해 절절한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었다. 사계 영업 종료 전 마지막 며칠 동안 사계는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상가집에 와서 상주를 위로하면서 고인을 추모하듯, 사람들은 웃고 또 울었다. 결국 사흘 만에 맥주 재고가 다 떨어져 사계는 7월 10일 완전히 문을 닫았다.
한 달도 더 지난 8월 21일 맥주 수입사 준트레이딩이 사계 문을 다시 열고 ‘사계를 이대로 보내기엔 너무나 아쉬워 진행하는’ 팝업 스토어를 오픈했다. 상가집에 왔던 인파들이 고대로 몰려와 또 한참을 사계를 추모하다 갔다. 그러더니 다시 아산의 브루어리304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역시 엊그제 봤던 그 사람들이 또 바에 앉아있다. 죽은 사계가 자꾸만 살아난다. 대체 왜 사계를 죽어도 못 보내나.
한국 크래프트 펍의 대명사, 사계
사계는 2013년 11월 문을 열었다. 국내에서 맥주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 어렵던 그 때 거의 유일한 맥주 정보 사이트였던 ‘비어포럼’의 멤버들 5명- 이인호 미스터리브루잉컴퍼니 대표, 김만제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이사, 이상원 BJCP Certified Judge등- 이 “제대로 덕질을 해보자”며 사계를 기획했다.
사계의 전성기는 2014년이었다.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맥주를 맛볼 수 있었다. 맥주 탭이 최대 10개까지 늘었다. 사계에서 판매하는 맥주뿐 아니라 손님들이 미수입 맥주들을 들고 와 서로 나눠 먹고 품평했다.
창업자들은 계획했던 대로 즐기고 실험했다. 김만제 이사는 “용감하게 희한한 맥주들을 내놨었죠. 2014년 3월에 국내 최초의 상업 세종(Saison)인 ‘개나리’를 출시했고 다크 세종인 ‘흑장미’, 코코넛 스타우트 ‘미리내’와 ‘마이복’도 잊을 수 없습니다. 비어포럼에서 말로만 했던 것을 실현한 것이 보람됐고 우리나라에서 이런 맥주들이 된다는 것을 보여줬던 정말 신나는 나날이었습니다.”
사계는 ‘맥덕의 아지트’이자 맥덕을 덕업일치에 이르게 하는 ‘크래프트 맥주 업계의 사관학교’이기도 했다. 김영근(어메이징 양조사), 민성준(브루어리304 책임양조사), 정혁준(준트레이딩 대표), 조예림(사워퐁당 매니저), 한원준(전 어메이징 양조사)등이 사계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양조사, 펍 매니저, 수입업자로 업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국내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 한 획을 그은 사계지만 최근 들어 사업이 녹록지 않았다. 김만제 이사는 “비어포럼과 사계가 같은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죠. 맥주에 대한 자료 구하기 어려울 때는 비어포럼이 의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능력 있는 사람이나 교육기관이 많아지다 보니 역할이 줄어든 것처럼 지금은 다양한 맥주를 즐길 곳들이 많이 생겼으니까요.”
그들은 왜 사계의 닫힌 문을 다시 열었나
준트레이딩의 정혁준 대표는 “사계와 이별을 하는데 나만의 이별 의식이 필요했다”고 팝업스토어를 연 이유에 대해 얘기했다. 정 대표는 2014년 여름 사계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에게 사계는 아련한 추억이다.
단순히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계가 정 대표의 진로를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당시 미수입 맥주였던 파이어스톤 맥주들을 구해서 나눠 마시려고 사계에 가지고 왔었는데 소문이 퍼져 바에 엄청난 줄이 만들어졌습니다. 50ml씩 나눠먹으면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맥주 수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정 대표는 “사계는 첫사랑 같은 느낌”이라며 “항상 기억나고 항상 감사한 마음이 큰데 충분히 보답하지 못했다는 부채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에 이어 브루어리304의 민성준 양조사가 팝업 스토어를 이어받았다. 그는 2014년 초부터 사계에서 일을 했다. 준트레이딩 팝업이 끝날 무렵 ‘그냥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계 마지막 영업 때 사흘 연속 왔는데도 마음 속의 아쉬움이 해소가 안 되더라구요. 며칠 간 하루 7~8시간을 혼자 사계에 와서 있었어요.”
그저 맥주를 좋아했던 그를 양조사의 길로 이끈 것도 사계였다. “맥주 만드는 법을 배우고 많은 맥주를 접하고 좋은 맥주가 무엇인지 기준을 잡아준 사람들이 있던 곳이 사계였습니다. 시기도 잘 만났고 분에 넘치게 많은 걸 얻었다고 생각해요.” 사계에서 맥주에 눈을 뜬 그는 히든트랙 양조사를 거쳐 브루어리304에 자리를 잡았다.
내 순수함이 있는 곳… 사계는 사람이었네
김만제 이사, 정혁준 대표, 민성준 브루어 세 명은 ”사계가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때 그 곳에있었던 사람들 때문이었다”
고 입을 모았다. 열정적으로 맥주를 탐구하고 알아갈 때 사계가 중심에서 그 역할을 했다. 직원이건, 손님이건,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맥주로 하나로 뭉쳐 서로 배우고 가르쳐줬다. 귀한 맥주를 모르는 사람과 나눠 마셔도 하나도 아깝지 않고 즐겁기만 했다. 그래서, 사계를 사랑한 이들이 사계를 못 보낸다.
김 이사는 “아무것도 몰랐을 때 열정을 불살라본 곳입니다. 저 자신도, 사람들도 순수하고 풋풋했어요. 고작 3~4년 전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게 정말 많이 달라졌죠”라고 했다.
민성준 양조사는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사계가 문을 닫는 게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서울에 올라오면 무조건 사계에 왔었는데 이젠 갈 데가 없네요. 이태원에 올 이유도 없어요.”
사계는 9월 25일 계약 기간 만료로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사계의 사람과 사계의 추억은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 하나의 강물처럼 도도히 흐를 것이다.
EDI TOR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