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홉으로!- 성공적인 홉농사를 위해 필요한 것
홉 농장을 방문해 울창한 덩굴에 둘러싸이고, 홉을 따서 IPA의 심장과 영혼의 향기를 맡는 것. 이만한 일이 또 있을까. 마케팅 캠페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양조 과정의 한 부분을 홉 농장에서는 볼 수 있다.
홉 농사의 어려움
농사는 등골이 휘는 일이지만, 날씨, 병충해, 특정 홉 품종 유행에 대한 정보 부족 등 농부의 통제를 벗어난 요인들로 인해 성공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이 농부들은 오는 해에 날씨가 어떨지, 매달 바뀌는 시장의 홉 취향이 어떨지에 대한 확신 없이 홉 농장을 꾸려야만 한다. 한때 홉 재배로 인기를 끌었던 지역들조차 병충해의 확산으로 인해 작물들이 황폐해지고 결국 유령 마을이 됐다. 하지만 작물 재배 프로그램의 발전과 더 나은 집중형 농약 덕분에 그중 일부 지역들이 다시 홉을 키워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이렇게 홉 시장이 부활한 예로, 미국에서 다양한 과일과 채소가 자라는 것으로 유명한 미시간 주의 경우를 들 수 있겠다.
150년도 더 전에, 미시간은 미국 내에서 홉 재배를 선도하는 지역 중 하나였다. 불운하게도 노균병을 비롯하여 다른 병충해의 습격으로 인해 농부들은 그 땅에서 더 수익률이 좋은 다른 작물들을 키우게 되었다. 미시간의 농부들은 자기 땅에서 키울 작물을 몇 가지 선택하고, 만약 특정 작물이 수익이 나지 않으면 그다음 해에는 다른 작물을 심는다. 홉처럼 고급 작물을 심는 데는 많은 위험이 뒤따르는데, 1 에이커(4,000제곱미터) 당 12,000~15,000달러가 들기 때문이다. 홉을 심으면 첫해에 다 자라긴 하지만, 수확량과 풍미의 안정성은 심은 지 3년이 지나기 전까진 최고조에 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홉 농부들에게 불확실성은 더욱 가중되고, 심을 홉의 품종을 잘 고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진다.
1800년대에 홉 농장들이 대규모의 작물 손실을 경험했을 때, 농부들은 농장에서 홉을 다 뽑아버리고 더 안정적이고 위험성이 적은 체리, 베리 등을 심었다. 근래에는 미국에서의 합법화 경향 때문에 삼과 마리화나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 또한 특정 홉 품종들의 가용성 감소와 공급 감소로 인한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건강한 홉을 키우려면
홉은 재배 프로그램의 첫 번째 세대가 아닌 다음에서야 씨앗부터 자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홉 농장에서 여러분이 보게 되는 홉 작물은 뿌리줄기(rhizome)로서, 줄기는 땅 위로 자라고 뿌리는 더 밑으로 뻗는 형태로 자란다. 뿌리줄기는 식물이 에너지를 지하에 저장할 수 있도록 해주며, 봄에 다시 자랄 준비가 되었을 때 이 에너지가 제 역할을 한다. 이 땅속 줄기는 반으로 자를 수 있을 정도로 클 때까지 매년 크는데, 반으로 자른 줄기가 원래의 홉과 동일한 두 개체의 식물이 된다. 홉 농부가 농장을 일구려 할 때, 여러 가지 홉의 종류 중 공개 특허나 만료된 특허(미국 농무부와 연계된 재배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홉들을 말함)에 해당하는 어떤 홉이라도 고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캐스케이드, 치눅, 센테니얼 등이다. 이 홉들은 모두 작물로서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잘 알려져 있으며 널리 사용되고있다. 하지만 이들은 특별하다고 볼 수는 없으며, 널리 재배되고 있는 만큼 시장에서 낮은 가격을 형성한다.
홉을 땅에 심은 후 뿌리줄기는 위로 덩굴을 뻗는데, 이들은 손으로 직접 노끈에 휘감아 주어야 한다. 이 부분이 정말 등골이 휘는일인데, 들이는 시간이 아주 중요하다. 홉이 제때 노끈에 고정되지 않으면 최적의 형태로 자라지 않으며 병충해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 높은 습도 환경은 홉에게 매우 위험한데, 이는 곰팡이가 번식하는 환경을 만들어 홉 작물 전체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부들은 곰팡이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홉 농장의 특정 영역에서 곰팡이가 발견된다면 그 영역 전체를 불태워야 한다. 덩굴이 일정 길이까지 자라면, 밑부분의 3피트 정도는 살짝 태워서 나뭇잎을 제거하고 질병의 위험을 줄인다. 어떤 홉 농부들은 미국 식약청(FDA)으로부터 “유기농(organic)”이라는 인증을 받고 싶어하지만, 미시간에서는 화학 살충제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유기농이 아닌 홉과는 다른 시설에서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 아쉽게도 현재는 온전히 유기농 홉만 재배하는 시설은 없으므로, 미시간에서 자라는 홉은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없다.
현대 농업 기술인 적하 시비법(Fertigation)은 홉이 한 관개 시스템에서 물과 비료를 동시에 공급받는 것으로, 예전에 미시간에서 홉을 재배할 때와 현재의 홉 재배 부활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화학 제초제와 살충제의 발전 또한 농부들이 더 안정적으로 수확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혹시나 여러분이 걱정하실까봐 하는 말인데, 한국에 수입되는 모든 홉은 엄격한 음식물 안전 평가를 거쳐 여러분의 맥주에 화학 물질이 거의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있다.
재배 시즌이 거의 끝날 때쯤 잘 자란 홉 농장에 발을 디디면, 빽빽한 홉 나뭇잎이 햇빛을 가려 마치 우림에 들어선 기분일 것이다. 각각의 홉 품종은 열매가 열리는 시기가 달라서 농부들에겐 다행인데, 모든 홉을 한 번에 수확해야 한다면 수확 적기 내에 모두 끝내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홉 농장에서는 빨리 완숙하는 홉과 늦게 자라는 홉을 구분해서 수확 일정을 짠다. 홉을 너무 빨리 따면 크래프트 양조자들이 원하는 홉의 기름이 모자라고, 너무 늦게 따면 홉이 강한 양파나 마늘 향을 띠어 아로마 추가를 위해서는 거의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홉이 수확될 준비가 되면, 수확자는 홉 농장을 이리저리 다니며 덩굴의 위아래를 자른 후 수확 시설로 보낸다. 과거에는 이 모든 과정을 손으로 직접 해야 했지만, 다행히도 요즘 대부분의 대형 농장들은 이 작업을 자동화하고 있다. 수확 시설에서 첫 번째 기계는 열매를 제외한 대부분을 제거하고 잘 통제된 환경에서 홉을 말리기 위해 가마로 옮긴다. 적절한 습도에 도달하면(일반적으로8-12%) 홉은 저온 저장실에 보내지기 전에 뭉치로 포장된다. 이 더미들은 펠레타이징 머신(pelletizing, 작은 알갱이로 만듦)에 들어가는데 이 기계는 분쇄하고, 불순물이나 외부 물질을 제거하고, 작은 알갱이로 압출한 다음 질소 세척한 봉지에 포장해 산화를 방지한다. 홉의 생생한 풍미와 아로마를 뺏어가는 주적 둘은 열과 산소다. 양질의 홉을 공급하는 사람들은 다들 거의 얼기 직전의 온도에 홉을 보관하고 홉을 보관하는 중에 최대한 산소에 노출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많은 양조자들이 펠렛 형태의 홉을 열매째의 홉보다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잘 산화하지 않아 더 안정적인 풍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과제: 새로운 홉 개발과 특허
올여름에 미시간 트래버스 시티 외곽의 미국 동부에서 가장 큰 홉 농장인 마이로컬 홉스(MiLocal Hops) 농장을 방문하는 환상적인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농장에서 캐스캐이드, 치눅, 센테니얼, 코퍼, 크리스탈 홉을 포함하여 많은 양의 홉을 재배할 뿐만 아니라, 다른 미시간 홉 농장의 홉을 가공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마이로컬 홉스의 영업부장인 마이크 모란은 친절하게 주변을 구경시켜 주고, 홉 농장 경영의 농업적 측면뿐 아니라 농부라면 맞닥뜨려야 하는 경제적 현실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마이로컬 홉스 농장이 처음 홉 농사를 지을 때, 땅의 많은 부분이 캐스캐이드 홉을 위해 할당되었다. 자몽과 시트러스한 특징으로 알려진 이 홉은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 운동이 시작되는 데 정말 도움이 되었으며 아직도 많은 크래프트 양조장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홉의 수요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줄어들었고, 시트라나 모자익 홉 등 열대 과일 풍미가 더 강한 홉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시트라나 모자익 홉은 아쉽게도 특허로 철저히 관리되는 홉이라, 엄격한 법적 가이드라인에 따라 일하는 몇몇 홉 농장들만이 재배할 수 있다. 20년간 지속되어온 이 특허를 원동력 삼아, 홉 육종 프로그램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혁신하며, 독특한 풍미와 아로마를 가지거나 좋은 농업적 특성을 가지는 새로운 홉 품종을 생산하고 있다. 특허받은 홉을 키우는 농장들은 그들만의 홉을 밖으로 전파하지 않는 데 동의했고, 홉 특허의 주인에게 라이센스 비용을 낼 뿐 아니라 매년 홉을 키울 때 식물 한 개체마다 비용을 지불한다.
미시간의 홉 농장들에게는 다행인 것이, 그들에게는 미국의 오대호 지역에서 홉을 육종하는 프로그램에 접근권이 있었다. 미시간 코퍼(Michigan Copper)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특허받은 홉들 중 하나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홉이다. 이 홉은 강력한 열대 과일 펀치 풍미와 아로마를 가졌고, 양조자들은 뉴잉글랜드 IPA, 혹은 그 외에도 홉 풍미가 앞서는 맥주를 만들 때 이 홉을 찾는다. 모란은 이러한 방법으로 높은 수요의 전매 홉을 확보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미시간 코퍼가 이 농장을 살렸어요.” 이 홉은 아주 큰(5cm보다 길다) 열매를 맺고, 자라면서 관찰되는 붉은 빛의 덩굴에서 이름을 땄다. 이 홉의 수요는 농장의 재배 여력을 넘어서서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다행히도 이 홉을 사용한 여러 맥주들을 맛 볼 기회가 있다. 대도 브루어리의 IPA와 골든 에일, 노매딕 브루잉의 IPA와 크림 에일, 몽트 비어의 하와이안 IPA를 포함해 라미 브루잉, 갈매기 브루잉, 비어바나, 가나다라 브루잉 컴퍼니 등의 맥주들이 있다.
크래프트 맥주, 농장에서 식탁까지
크래프트 맥주라는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최상의 재료 품질과 공동체 의식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존경받는 크래프트 양조장들은 지역에서 재배된 재료를 사용하여 소비자들에게 지역성의 중요성을 이해시킨다. 미시간의 그랜드 래피즈에 위치한, 팜하우스 스타일 에일을 주로 만드는 브루어리 비반트(Brewery Vivant)는 미시간 홉을 사용한 IPA를 상시 판매한다. 칼라마주에 있는 벨즈 브루어리(Bell’s Brewery)는 미국 홈브루어 협회에서 세 차례나 미국 최고의 맥주로 꼽힌 Two-Hearted 에일을 만드는 데 미시간 센테니얼 홉을 사용한다. 미시간 홉을 사용하는 다른 양조장으로는 파운더스 브루잉(Founders)과 지속가능한 양조의 선도자인 클리블랜드 브루잉 컴퍼니(Cleveland Brewing Company)가 있다.
한국에서처럼, 안목이 있는 미국 소비자들은 자신이 먹고 마시는 음식물의 재료가 어디서 왔는지 신경을 쓴다. 지역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 농장에서 식탁까지를 고려하는 식당에서 먹는다는 것, 그리고 농부와 직접 관계 맺는다는 것은 미국에서 품질을 보증하는 것이다. 이렇게 먹고 마시는 것은 가격이 저렴하거나 늘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자기 지갑을 통해서 무엇이 그들에게 중요한지 나타내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