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시장의 ‘숲’을 보여주는 산업 전시회
맥주 산업 생태계의 특성
금주령 시대 이후 세계 맥주 산업은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사람들은 맥주를 만드는 대기업, 더 정확히는 그들의 브랜드와 마케팅에 주목했고, 맥주 한 잔을 마시기까지 이어지는 과정들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시장은 기업들이 치열한 마케팅을 통해 싸워가는 성숙기에 접어든 듯했다.
1970년대 후반,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이래 2000년대에 들어서며 맥주시장은 변화를 맞았다. ‘대기업, 대량생산, 규모의 경제, 획일화’ 등과 같은 소수의 자본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던 시장에 ‘다품종 소량생산, 전통, 혁신’ 등의 키워드와 함께 소규모 양조장들이 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맥주 산업 내 ‘크래프트 맥주 산업’이 성장하며 비로소 ‘맥주 산업 생태계’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외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래서 산업 생태계란 무엇을 뜻하며, 더 나아가 ‘맥주 산업 생태계’의 의미와 이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이를 살펴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산업 생태계가 유지되려면
일반적으로 산업이라고 하면 재화를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것을 떠올린다. 즉, 생산적 활동을 지칭하는 것과 동시에 특정 업종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이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해당 산업이 농림어업에 속하느냐, 제조업에 속하느냐, 서비스업에 속하느냐에 따라 1차, 2차 또는 3차 산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산업 생태계’라는 말은 조금 다르다. ‘산업’이 특정 업종을 지칭하는 말이라면, ‘산업 생태계’는 특정 업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주요 기업뿐만 아니라 소재나 부품, 원자재등의 공급자, 완성된 제품을 소비하는 수요자와 함께 경쟁자 또는 보완재를 생산하는 업체까지 망라하는 개념이다. 즉 산업 환경 내의 모든 이해관계자가 ‘생태계의 유기체’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상호 작용하는 시스템 자체를 일컫는다. 인간이 지구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한 부분인 것처럼 말이다. 생물의 생태계에서 기온, 습도 등과 같이 환경에 해당하는 것이 산업 생태계에서는 제도, 언어, 문화와 같은 사회적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은 종종 ‘산업환경’ 또는 ‘사업환경’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각 기업이 사업을 시작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연결되는 ‘내생변수(endogenous variable)’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이나 법률 등과 같이 이미 주어져 있는 ‘외생변(exogenous variable)수’의 성격을 띤다.
산업 생태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선순환 고리를 형성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선순환의 고리’는 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각 구성원이 혁신을 지속적으로 이루어낼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발생하는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업은 각자의 핵심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체화해야 하며, 기업이 축적한 경험은 결국 고객에게 전해진다는 관점에서 역량을 강화하고 재투자를 통해 지속적인 혁신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위해 투자가 수익으로 이어지고 다시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관계자들은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간에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 각 구성원이 제품이나 서비스등을 통해서 구현하는 가치창조 활동은 매우 복잡하게 나타나며, 따라서 각각이 속한 일부분만으로 전체를 이해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각자의 변화로 다른 산업 생태계 내의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쳐 서로의 진화와 발전을 유도하기도 한다. 기술적 변화나 소비자의 욕구 변화, 제도나 인식의 변화 등 외부환경의 변화에 따라 적응해가며 각자 생존을 이어가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산업 생태계 내에서 존속함으로써 산업 생태계 전체가 외부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취하게 된다.
무엇이 맥주 산업의 숲을 구성하는가
맥주 산업을 예로 들어 보자. 맥주 산업은 주류(Alcoholic Beverage) 산업에 속하며, 맥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주재료는 맥아, 홉, 효모, 물이다. 원재료에서부터 소비자에게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면 보리, 밀 등의 곡물을 가공한 맥아와 홉을 재배하는1차 산업, 맥주를 제조하는 2차 산업, 이를 유통하고 판매하는 3차 산업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1, 2, 3차 산업이 결합한 형태로 ‘맥주 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 역시 다양하다. 산업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느냐에 따라 산업 생태계의 범위 역시 한없이 확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산업 생태계의 구성원을 결정짓는 요소로서 ‘핵심 제품’을 기준으로 본다면, 당연하게도 맥주 산업의 주요 제품은 ‘맥주’다. 맥주를 중심으로 맥주 산업 생태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보면, 맥주 산업을 구성하는 주요 기업은 맥주 생산을 직접 하는 브루어리, 해외의 맥주를 수입하는 맥주 수입회사로 볼 수 있다. 생태계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이들과 함께 맥주의 재료인 맥아, 홉, 효모 등을 공급하는 원재료 공급 회사, 맥주를 공급받아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펍이나 보틀샵 등도 맥주 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일원이다. 물론, 그 사이에서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물류 회사나 주류 도매상도 맥주 산업 생태계에 포함된다. 그리고 맥주병이나 캔 혹은케그 등과 같은 패키징, 드래프트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기기를 판매하는 회사 등 직접적인 판매와 관련된 산업이 있다. 직접적인 판매 행위를 돕는 제품 또는 서비스를 공급하는 부문에까지 확장한다면, 맥주잔, 코스터, 탭 핸들 등의 용품을 제작하는 회사도 맥주 산업 생태계에 포함될 수 있다. 또한 전문 잡지, 교육, 관광 상품 등 직접적인 생산행위와 연결되지 않는 세밀한 부문까지 포함한다면 맥주를 중심으로 구성된 맥주 산업 생태계는 그 범위가 대단히 넓다. 게다가 맥주 산업 생태계에서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구성원의 경우나 보완재 또는 대체재를 생산하는 업종의 경우에는 업종 분류에 따라 해당 산업에서 핵심 제품을 생산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즉, 맥주 산업 생태계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산업 생태계와 함께 교집합의 영역을 가지며 공존한다. 맥주 관련 직업을 가지고 싶어 맥주 산업과 관련 산업을 심층적으로 탐색해본 경험이 있는 구직자라고 할지라도, ‘맥주와 관련된 일의 영역’을 특정 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맥주’를 중심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맥주 산업 생태계에 포함되는 전체 ‘숲’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특정 산업의 핵심 제품을 중심으로 한 ‘산업의 숲’, 다시 말해 산업 생태계 전반을 조망할 기회를 제공하고,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와 의미를 가지는 일일 것이다.
대한민국 첫 맥주 산업박람회
우리나라 수제맥주 시장은 2002년 소규모맥주제조자 면허도입, 2015년 소규모맥주제조자의 맥주 외부유통 허용에 이어 현재의 종량세 전환 논의 등 제도의 변화와 함께 성장해왔다. 제도라는 외부적 환경 변화와 맥주의 다양성 확대는 소수의 자본이 지배하는 독점적 시장에서 경쟁적 시장으로 조금씩변화해 가고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2018년 맥주 양조장 숫자는 2005년 이후 처음으로 100개를 넘어섰다. 이같은 흐름은 향후 상당 기간 지속할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맥주 관련 비즈니스의 기회 역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이 세분화되고 확장해 나가는 시점에서 열리는 산업박람회는 맥주 산업 구성원들의 비즈니스 가능성을 높임과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 맥주 시장이 성장하고 있음을 알릴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2019년 3월 21부터 23일까지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대한민국 맥주 산업 박람회 (KIBEX 2019)'가 개최된다. 이번 맥주 산업 박람회는 맥주의 원재료에서부터 장비 및 설비, 해외 맥주, 액세서리, 프랜차이즈 등을 비롯해 교육 및 서비스 등 맥주 산업 생태계를 이루는 국내외 기업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다. 이처럼 맥주 산업의 구성원과 관련 기술, 산업 내 이슈들을 통해서 맥주 산업 생태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 그리고 맥주 산업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대한민국 맥주 산업 박람회에서는 전시뿐만 아니라 국제 맥주 콘퍼런스(International Beer Conference)가 3월 21일과 22일 개최된다. 국제 맥주 콘퍼런스에서는 맥주 원재료의 특성과 양조에 관한 주제에서부터 홉 트렌드 등 시장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내용이 다루어질 예정이다. 이와 함께 주세법의 종량세 전환을 주제로, 제도적 변화에 따른 외부 환경의 변화와 비즈니스의 방향성에 대한 내용도 다룬다. 한편 우리나라 맥주 시장뿐만 아니라 미국 크래프트 맥주 산업의 트렌드도 살펴볼 예정이다. 대한민국 맥주 산업 박람회는 맥주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숲’ 을 보여줌과 동시에 맥주가가지는 다양성, 그리고 그 다양성으로 인해 펼쳐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리가 될 것이다. 또한 맥주 산업의 구성원들 사이에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새로운 비즈니스 또는 협업의 기회를 만들며, 맥주 시장 성장의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