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텃밭에서 홉 재배하는 ‘파릇한 절믄이
“맥주 재료, 나도 키워볼까?”
한국에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유난히 높다. 우리는 먹는 것도 좋아하고, 먹는 것에 관해 떠들기도 좋아한다. 항상 타인이 뭘 먹고 사는지 궁금해하며,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관음하기도 즐긴다! 당장 TV를 틀어도 먹는 장면이 다수인 데다, 뉴스에서는 기록적인 먹방을 소화한 유튜버에 대한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맛집은 이 시대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으며, 미식은 모두가 열망하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정작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진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무심한 경우가 많다. 잘 가공된 마트 식품이나 배달음식에는 한 줄짜리 산지가 적혀있을 뿐, 농업과 단절된 도시 생활 속에서 우리는 먹거리의 본질을 잊은 채 살아간다
크래프트 맥주는 그 본질을 일깨우는 몇 안 되는 먹거리 중 하나다. 많은 이들이 자기 손으로 직접 맥주를 만들어 마시는 데서 행복을 찾는다. 그러나 그조차도 대부분 저 멀리 타국에서 바다와 하늘을 가로질러 당도한 재료로 만들어진다. 홉의 경우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오면서도 신선함을 잃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 재료다. 한국 맥주 역시 모든 과정에서 국산 원재료를 사용해 만든다면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해보면 그리 낯선 그림이 아닐지도 모른다.
도심 한쪽에 취미로 농작물을 길러 자급자족을 실천하는 도시 농업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서울의 옥상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홉으로 로컬 브루어리와 협업해 맥주를 만들어 향유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파릇한 절믄이’다. 이름처럼 마음이 파릇파릇한 이들로 구성된 이 비영리 단체는 조경을 공부한 김나희 대표가 만들었다. 그는 도시 녹화 및 공원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해 환경 운동과 먹거리 분야로 관심을 좁혀나갔다. 파릇한 절믄이, 줄여서 ‘파절이’는 이렇듯 도시 환경을 향한 애정어린 시선에서 출발했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김나희 대표를 만나 도시농업의 의의와 홉 재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열정이 넘치는 20대의 많은 시간을 파절이 프로젝트에 쏟아부었다는 그는 빽빽한 빌딩 숲 속에서도 여유 있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Q 파릇한 절믄이와 그 취지를 소개해주시겠어요?
A 안녕하세요. 파릇한 절믄이를 운영하고 있는 김나희입니다. 서울 도시의 옥상에서 최초로 홉을 길러 로컬 맥주를 빚어 보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2년 전에 첫 시도를 했습니다. 현재 성공적으로 2년 째를 맞이했으며, 올해 세 번째 맥주가 나올 예정입니다.
파릇한 절믄이는 도시농업 단체로, 옥상을 파릇파릇하게 꾸며나가며 도심의 건강과 안녕을 챙기자는 모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농업에 관련한 다양한 일을 하며 재밌게 살아가보자는 취지로 움직이는 단체였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지루하거나 재미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파절이는 도시에서 짓는 농사가 하나의 재미난 취미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작년 초에 저희가 광흥창에서 오랫동안 쓰던 옥상이 사라졌어요. 원래 부엌과 텃밭도 있고 노는 공간도 있어서 그곳에서 사람들이 다같이 즐기고는 했는데, 노후 건물이라 누수 문제로 사라지는 바람에 현재 다음 옥상을 찾고 있죠. 어찌 됐든 다양하게 재밌는 농사 콘텐츠로 청년들 내지는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자 합니다
Q 홉을 기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어떻게 보면 우리가 마시는 맥주도, 먹고 있는 음식도 땅에서 나온 농산물이니까. 자급자족이라고 하는 이름 아래서 저희가 기른 작물로 같이 요리해 먹고, 놀고 마시는 문화를 만들어나가고자 했습니다. “먹을 걸 해봤으니 마실 걸 해보자!” 해서 홉을 시도하게 된 거죠. 그리고 크래프트 맥주 브루잉이 한국에서 떠오르고 있잖아요. 홉이라는 아이템을 통해 문화적으로 같이 녹아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도 있어요.
현재 저희는 캐스케이드 홉과 시티지 홉을 기르고 있어요. 양평 쪽에서 홉 구근을 10개 정도 사와서 기르고 있는데, 수확량을 더 늘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Q 많은 이들이 홉을 직접 키울 수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낄 것 같아요. 집에서도 홉을 기를 수 있나요?
A 홉 자체가 3m에서 6m 정도 높이로 올라가는 덩굴 식물이에요. 국내 홉 농장에 가보시면 알겠지만, 6m 정도 되는 기둥에 줄을 설치해 기르거든요. 그러니 집에서 기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또 홉 구근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구근 자체가 우리 나라에서는 멸종했거든요. 그거 아세요? 사실 옛날에는 강원도 산간에 홉이 엄청 많았는데, 지역에서는 ‘악마의 식물’ 처럼 여겨졌나 봐요. 마치 베도 베도 퍼지는 칡처럼요. 홉이 뿌리를 통해 옆으로 퍼지는 작물이거든요. 생태계를 파괴하고 농사에 해를 끼치는 식물이라고 판단을 해서 다 뽑아버린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멸종 되었죠.
그렇게 국내 홉이 없는 상황에서 최근 브루잉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면서, 관심을 갖고 있던 분들이 해외에서 구근을 수입해왔어요. 그런데 미국에서도 브루잉 산업이 커지다 보니까, 옛날에는 제재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구근을 외부 반출하는 데에 강력한 규제를 두고 있어요.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홉 구근도 외교 당국 차원에서 철저하게 신고와 기록이 이루어져요. 국내에 들어온 홉 구근을 다시 외부 반출하는 것도 마찬가지 구요. 되게 웃긴 거죠. 우리나라에도 있었는데 지금은 해외에서 돈 주고 사들여야 하는 이 엄청난 아이러니.
씨앗 단위로도 홉을 심을 수 있는데, 뿌리가 되기까지 3년정도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당장에 수확하고 싶으면 구근을 키워야 하는 거예요. 보통의 농부들은 구근을 배양받아서 홉을 키우는데, 갈수록 구하기가 까다로워지고 있죠.
Q 홉을 재배할 때 신경써야 할 팁이 있다면요?
A 농부들이 홉은 병해충에 약하니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 이유가 다른 작물과 달리 살충제를 뿌리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벌레들이 많이 오나 봐요. 지금까지 저희 옥상에서는 괜찮긴 했지만, 약을 치지 못하니까 벌레들이 많이 꼬일 수 있겠죠. 그리고 시기를 잘 맞춰서 홉을 따야 하더라고요. 꽃이 완전히 열리기 전, 살짝 열리려고 할 때가 적기라, 그때를 맞춰서 따야 해요.
Q 재작년에 직접 재배한 홉을 사용해 어메이징 브루잉과만든 ‘파릇한 IPA’를 맛본 적이 있어요. 올해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A 7월 말에서 8월 초 정도면 홉이 다 익더라고요. 홉 수확을 8월 중순쯤 할 예정이고, 그걸로 바로 브루잉을 할 거에요. 작년과 재작년에는 어메이징 브루잉과 함께 작업했는데, 올해는 다른 곳과 할 계획이에요. 맥파이 브루잉이나 광화문에 위치한 브루어리와 할 수도 있는데, 이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미국 홉 농장에서도 생 홉을 이용한 양조는 그냥 재미로 한다고 하더라고요. 보통 홉을 펠릿 형태로 가공해 사용하지만, 수확할 때 생 홉을 넣고 끓여서 재미로 만든다고 해요. 저희도 사실 거기에 착안해서 하게 되었죠.
Q 최근 국내 맥주 산업에서도 로컬 작물을 재배하고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우리 먹거리에 우리가 재배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A 지금은 외래종이 된 홉이지만, 한국 토착화가 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실험을 거친다면 우리나라만의 맥주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출발한 거거든요. 진짜 우리나라에서 기른 홉으로 우리나라에서 나온 물을 써서 정말 ‘메이드 인 코리아’ 맥주가 나오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고요.
그런 가능성을 보고 싶어서 시작했고, 지금까지는 잘한것 같아요. 하다 보니까 홉을 기르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오기도 하고요. 저희는 그냥 도시에서 가능성을 보여주는 집단이고, 실제로 제천이나 강원도나 제주도 등지에서 농장을 하시는 분들이 만들어나가시는 거겠죠.
Q 건강한 먹거리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A 제철 과일과 제철 음식이 몸에 제일 좋다고들 하잖아요. 그것도 그거지만, 어쨌든 때에 맞는 음식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도시에 살면 그런 것들을 자꾸 까먹어버리니까. 자연과 계절에 좀 민감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알려주는 거죠. “바질은 여름에는 똥값이지만 겨울에는 금값이다.” 같은 거요.
자연과 계절에 민감해졌으면 좋겠다는 김 대표의 말이 오래도록 뇌리를 맴돈다. 그 민감도는 바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먹고 마시는 게 당신을 보여준다’는 말도 있듯, 좋은 맥주 역시 먹거리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할 것이다.
어쩌면 사소해보일 수도 있는 작은 움직임이 다른 이에게 영감을 주고 참여를 이끌어낼 때, 우리는 그것을 ‘변화’라고 부른다. 김나희 대표와 파릇한 절믄이가 만들어낼 즐거운 변화로 우리 도시의 일상이 더 맛있고 건강해지길 기대한다.
EDITOR_홍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