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좋은 배럴 에이징 맥주가 가능할까?
올봄, 저는 미국 덴버에서 열린 크래프트 비어 컨퍼런스(이하 CBC)에 다녀왔습니다. 부산에서 14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이 컨퍼런스는 크래프트 맥주 현장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해 종교와 같은 신념으로 모여든 맥주 애호가들의 메카와 같았습니다. 크래프트 맥주의 축복이라 할 수 있는 CBC는 매년 개최되며 14,0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3일간 맥주 산업과 업계에 대한 심층적인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모입니다.
컨퍼런스에는 세계 각지에서 준비한 전시와 세미나들이 포함됩니다. 1,000개가 넘는 기업들이 이 전시회에 참여하며, 단순히 맥주 산업의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이 업계에 종사하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맥주 양조와 마케팅, 판매 등 맥주 산업에 관련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급성장하는 한국의 크래프트 산업의 종사자로서 한국의 브루어리를 대표한다는 책임감과 더불어 개인적인 관심사였던 배럴 에이징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습니다. 제 첫 미국 여행이기도 한 이번 출장의 목표는 미국 크래프트 맥주 산업의 현장을 직접 들여다보면서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미국 맥주들을 마셔보는 데 있었습니다. 덴버로 향하기 전 먼저 도착한 시애틀에서 미국 땅을 처음 밟아보았습니다. 잠을 설친 탓인지 비몽사몽한 채 가져온 짐들과 함께 안전벨트를 매고 덴버로 향하는 내내 제 맥주 경험을 폭넓게 일깨워줄 술맛이 어느 때보다 간절했습니다.
웰드웍스 브루어리
미국을 여행할 때 운전 면허가 없다면 시내 외곽에 위치한 주요 브루어리들의 방문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웰드웍스에서 일하는 친구를 둔 제 친구 조를 만나 운좋게 브루어리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맥덕까지는 아니라 미국 맥주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웰드웍스의 NE IPA에 대한 멋진 후기들을 익히 들어왔습니다.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저는 그 맥주를 주문했고, 곧 단 한 모금만으로도 기운이 날 만큼 훌륭한 맛으로 보상받았죠. 높은 ABV에도 불구하고, 매우 밸런스가 좋고 음용성이 뛰어난 맥주였습니다.
단언컨대 양손 다 엄지척을 게 만들 정도였죠. 하지만 여기서 만난 맥주 중 최고는 배럴 에이지드 임페리얼 스타우트였습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로웠죠!
그 스타우트는 전체적으로 초콜렛을 연상케 하는 달콤한 맛이 지배적이었는데 그에 바닐라와 더불어 호밀 특유의 싸하고 매운 끝맛이 느껴졌습니다. 매우 강렬할 정도로 진한 풍미는 마치 탐욕적으로 게걸스럽게 초콜릿을 베어 물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죠. 생애 단 한번도, 그동안 마셔왔던 모든 맥주를 통틀어 마치 디저트를 먹는 듯한 느낌과 흡사한 부드러움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웰드웍스의 주인이자 헤드 브루어인 닐 피셔와 배럴 에이징 맥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닐은 배럴 에이징을 할 때 오로지 첫 맥즙만을 쓰는 걸 원칙으로 삼으며, 나머지는 제 아무리 많은 당분을 가지고 있어도 쓰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닐에게 파티-가일 양조법 (편집자 주: 1번의 매시로 2종류의 맥주를 만드는데, 그중 하나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맥주, 다른 하나는 알코올 도수가 낮은 맥주로 만들어지는 양조방식)을 시도 했는지 물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이 저를 놀라게 했는데, 그가 거의 36시간 가까이 계속 맥주를 끓이는 편을 선호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 대답은 정말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보일링을 할 수록 당분의 구조는 (단당류가 다당류로) 변하는데, 이를 중합 과정으로 부릅니다. 그 후 카라멜화를 통해 최종적으로 달콤하면서도, 견과류의 풍미가 자리잡게 되는거죠.
닐은 다른 일정으로 자리를 비우기 전에 저를 데리고 배럴 에이징을 하는 공간을 구경시켜주었습니다. (역시 출장은 일이죠, 일.) 저는 잠시 더 그 곳에 머무르면서 다른 브루어들과 맥주에 대한 보다 더 심층적인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이 올해부터 진행할 새로운 문화 교류 프로그램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맥주의 세계에서 또 어떤 것들이 우리를 기대하게 할 지, 정말 기다려지더군요!
CBC 세미나 - 비치우드 브루잉
누군가 종일 크래프트 맥주에만 빠져 산다고 하면 뭐라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주변에서 미친 게 틀림없다고 말할 수 있겠죠. 음, 그렇다면 저는 미쳐있었던 것 같습니다. 귀하고 맛 좋은 크래프트 맥주를 찾기 위해 밤낮으로 걷고, 마시고, 미팅하고 끝도 없는 토론을 이어갔으니까요. 사워 맥주로 온 몸이 가득찼다는 걸 알면서도 제산제를 가져오지 않은 자신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덴버에서 양조 기술에 대해 집중적으로 더 배우고 싶었습니다. 특히 스플릿 배럴 에이징에 관해서 말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 주제에 대해 매우 흥미를 갖고 있고, 한국에 돌아가 이 곳에서 얻은 정보들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배럴 에이징 맥주 생산으로 유명한 비치우드 브루어리의 주인이자 헤드 브루어인 줄리안 쉬라고가 올해의 초청 연사였습니다. 매년 CBC는 분야별 업계 전문가를 초청해 컨퍼런스에서 지식과 전문성을 공유하는 장을 마련합니다.
이번 세미나는 배럴 에이징 기법을 중심으로 깔끔한 맥주를 만들기 위한 모든 기술과 절차들에 관한 내용들을 다뤘습니다. 더 나아가 배럴의 특징을 강조할 수 있는 다양한 레시피를 깊이 있게 논할 수 있었습니다.
스피릿 배럴 에이지드 맥주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며 긍정적인 풍미 혹은 아로마에는 바닐라, 코코넛, 숯, 담배 및 오크 혹은 베이스 스피릿과 탄닌 등이 있습니다. 좋은 배럴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신선한 배럴에 곧장 맥주를 채워야 합니다. 두 달 내로 좋은 스피릿 배럴을 구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죠.
또 다른 흥미로운 주제는 블렌딩에 관해서였습니다. 비치우드 브루어리의 줄리안 쉬라고는 우리에게 “배럴에 담근 맥주는 놀랍죠. 하지만 블렌딩이야말로 환상적인 맛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고 알려주었다. 특히, 10-25%의 비(非) 배럴 에이지드 맥주를 블렌딩하면 최종적으로 훨씬 화사한 맛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저는 이 방식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고, 줄리안에게 그가 만든 스카치 에일을 블랜딩한 임페리얼 스타우트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는 배럴에 무엇을 넣든지 간에 거무스름해질 거라고 말하며, 그야 말로 베럴 에이지드 스타우트라는 이름에 걸맞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줄리안은 양조에 있어 베테랑이고, 그는 고맙게도 제게 몇 가지 블렌딩 팁들을 알려주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블렌딩을 할 때 밀크 스타우트를 사용하길 추천했는데, 밀크 스타우트는 맥주의 풍미가 살아나게 하며, 블렌딩 한 시점 이후 24-48시간 정도가 지나면 전자의 특성 자체는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훌륭한 맥주는 어떻게 탄생하는 걸까요? 한국에서도 훌륭한 배럴 에이징 맥주를 만들 수 있을까요?
한국에는 배럴 에이징 맥주를 취급하는 양조장이 몇 군데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맥주를 시도하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한국에서 좋은 배럴을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배럴을 들여오는 데 최소 3주가 걸리고, 그 상태 역시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집니다. 스피릿 배럴의 경우 최대 2개월까지 비워둘수 있습니다. 반면 와인 배럴은 냉장 보관을 해야만 합니다. 와인이나 위스키 같은 다른 술의 풍미를 이해한다면, 배럴 에이징 맥주 스타일 역시 더 수월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배럴 숙성과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켈빈 크퍼리지의 판매 담당 이사인 브리트니 윔셋과 배럴의 배송 기간 및 특정 브랜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품질 좋은 배럴을 3주 이내에 받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한국 양조업자들에게도 유효한 투자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또한 재료를 수입하는 일이 이전에 생각하던 것처럼 심각한 문제가 아니며, 양조 자원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배럴 에이징을 해서 훌륭한 맥주를 만들기 위한 또 다른 아이디어는 되도록 많은 실험을 하는 것입니다. 즉,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죠. 36시간 동안 맥즙을 끓이는 웰드웍스의 사례를 보세요. 그 과정은 터무니없을지 모르지만, 틀에서 벗어난 사고와 실험 정신이 대단한 평판과 뛰어난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을 어기고 위험을 감수하며 실험하는 것은 개인에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혁신적이고 다르게 생각함으로써, 한국의 맥주 산업을 조금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은 크래프트 맥주 업계를 만들어감으로써, 맥주를 만드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정의할 수 있습니다.
EDITOR_이창민(와일드 웨이브 브루잉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