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대, 한국 맥주 시장은?
변화의 바람
국제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도 거의 10년전 일이다. 그동안 북미, 유럽, 아시아, 남미, 호주와 뉴질랜드에 출장을 다닌 거리를 합산하면 백만 킬로미터가 넘을 것이다.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친구를 사귀었으며, 전 세계를 걸쳐서 맥주 산업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쩌면 그 성장에 내가 보탬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의 주제는 많은 사람이 달게 들을 만한 것은 아니지만, 향후를 대비하기 위해 꼭 다루어야 하는 문제다. 미래를 의논하기 전에 과거부터 살펴보자.
크래프트의 탄생
크래프트 맥주 산업은 싱크탱크나 기업의 회의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다. 1970년대 후반, 소수의 미국인이 평소 마시는 맥주에 불만을 품고 맥주를 만들기 시작해서 탄생했다. 그 당시 크래프트 맥주는 사람에 따라 이색, 진기, 사치, 혹은 유행 사이의 어딘가에 속하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크래프트 맥주 애호가들에게 맥주 산업은 ‘맛’을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80년대 초부터 2005년 즈음까지 크래프트 맥주 산업은 성장과 쇠퇴를 여러번 반복했지만, 기본적으로 미국 내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90년대 초반에 몇몇 국가에서 소규모 양조장들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대개 국가의 규제 때문에 “크래프트맥주”라고는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1996년 일본의 경우 이런 종류의 양조가 이루어졌는데, 그마저도 대부분 독일식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한국에서 최초로 시작한 몇몇 브루잉 펍들도 독일식 맥주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결을 같이 한다.
2000년대 중반에 와서 미국 크래프트 맥주 산업의 열풍이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이때 만들어진 상징적인 브루어리들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짓기만 하면 올 거야.”
08-09년에는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크래프트 맥주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섹시하고 새로우면서도 멋있고 신나는 데다 꽤 저렴했기 때문에, 고객들은 자석처럼 이끌렸다. 맥주 한잔은 비싼 레드 와인 한 잔만큼이나 지갑에 혹독하지 않았고, 어려운 시기에 맥주만큼 노동자를 대표하는 것은 없었다. 맥주는 느슨해서 샴페인처럼 행사가 있어야 마실 수 있는 술이 아니었다. 크래프트 맥주는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광고할 경제적 여유도 없었지만), 대신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SNS에서 널리 퍼졌다.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백만이 넘는 고객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새 맥주, 입고 행사, 새 브루어리 같은 것들은 고객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브루어들은 혁신을 시도하면서도 기술을 연마할 여유가 생겼다. 크래프트 맥주 산업은 공동체적이었고 상호 긍정적이었다. 그땐 그랬다.
변화가 온다
2016년이 되자 미국 시장이 변하기 시작했다. 크래프트 맥주산업에 유심히 관심을 기울이던 사람들이 그 신호탄을 발견했다. 수요가 낮아지고 있는데도 브루어리가 계속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마트에서 크래프트 맥주 칸의 숫자는 정점을 찍었고, 현장의 탭 숫자 역시 정점을 찍었다. 크래프트 맥주는 본질적으로 틈새 상품이다. 라거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예상 가능한 맛이고 마시는 데 무리가 없으며 저렴하기 때문이다. ‘크래프트’의 정의는 언제나 논란이 있지만, 라거가 맥주 판매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는 논란이 없다. 라거가 미국에서 차지하는 판매량은 85% 정도인데다, 가장 큰 두 개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인 D.G. 잉링&손과 사무엘 아담스가 대표 상품으로 라거를 내세우는 것을 고려했을 때 90% 가까이 될 것이다. 그 말은 에일 중심의 약 7000개 브루어리들이 10%의 시장을 위해 경쟁한다는 뜻이다.결과적으로 수천이 넘는 경쟁자들 사이에서 쥐꼬리 같은 마케팅 예산은 “새로운 것이 최고다”라는 풍조를 만들었다. 이 풍조는 새로운 문제의 전조였다.
“블루베리 싱글홉 밀크쉐이크 IPA에 금가루 올린 거 하나요”
“고객들의 만족을 위해 매주 다섯 개의 새로운 맥주를 내지 않아도 되었던 때가 너무 그리워요.”라고 이블 트윈 브루어리의 오너, Jeppe Jarnit-Bjergsø는 말한다.
물론 크래프트 맥주가 고객들에게 탐험을 격려하기는 했지만, 어디선가 선로를 벗어나 ‘품질을 위한 항해’가 아닌 ‘새로움을 위한 항해’가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가본 전 세계의 수많은 바에서 손님이 “새로 나온 거 뭐 있나요?”라고 물으면 바텐더가 “X가 새로 나왔는데, 솔직히 훌륭하진 않아요.”라고 답하는 것을 보았다. 이때 손님이 무엇을 주문했을까? 솔직히 ‘훌륭하진않다’고 한 그 맥주다. 왜냐? 마치 알코올 중독자용 포켓몬 고처럼 Untapped(혹은 그와 유사한 어플들)에서 점수를 매겨 맥주 종류를 수집해 레벨업을 하기 위해서다. 도대체 어느 식당에서 서버가 비추천한 음식을 굳이 주문해 먹는단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어디로?
한국이 크래프트 맥주의 후발주자라는 사실의 장점은 다른 나라의 실수를 보고 배워 다가올 하락세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크래프트 맥주는 여타 다른 사업과 같이 상품에 대한 기술뿐만 아니라 경영 기술도 갖추어졌을 때 진입해야 하는 사업이다. 마법의 대박 맥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브루어리가 자신의브랜드를 만들고 발전시켜야 고객들이 모이는 것이다. 더불어 소비자들이 새로운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품질에 대해 더 잘 알도록 이끌어야한다. 고객의 필요사항을 전략에 반영하되, 가격절감은 제외한다. 가격 절감은 종점에서 생존자가 거의 남지 않을, 바닥을 향한 끝없는 경주다.
이 글을 쓴 이유는 부정적으로 혀만 차기 위해서가 아니라, 맥주 산업이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크래프트 맥주가 사라질 일은 없다. 아마도 세계 주류 시장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최악을 대비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커리어와 생계, 그리고 자식들의 대학교 등록금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EDITOR_제임스 포터 James Porter